충렬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은 한국과 중화민국에 여러 곳이 있으나 여기서는 가장 유명한 두 곳만 서술한다.
1 부산광역시의 충렬사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안락동) 소재. 무슨무슨 사라고 해서 절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순국선열을 모신 사당이다. 본래 동래성 전투를 이끈 동래부사 송상현을 모신 송공사(宋公祠)로 시작했다가 1624년 선위사 이민구의 건의로 지금의 이름인 충렬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부산진 전투의 정발 장군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그 후 165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고 이런저런 부속건물이 붙어 서원의 기능이 추가되었고 조영규, 윤흥신 등 모시는 위의 숫자가 계속 늘어 현재는 93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매년 5월 25일 제향을 봉행한다.
입구에는 동래성 전투 당시 일본군의 '전즉전의 비전즉가도(戰則戰矣 非戰則假道: 싸우려면 싸우고 안 싸울 거면 길을 비켜라)'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았다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키기는 어렵다)'이 작은 비석에 새겨져 있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작게 서 있어서 아쉬움을 자아낸다. 길게 늘어선 계단의 중간쯤에 위치한 기념관은 임진왜란 관련된 유물이 보관된 작은 박물관처럼 되어있다.
충렬대로나 부산 도시철도 4호선 충렬사역의 역명이 여기서 유래했고 실제로 충렬사역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다.
2 타이베이의 충렬사
한자는 忠烈祠로 한국의 충렬사와 같다. 정식 명칭은 국민혁명충렬사(國民革命忠烈祠). 발음은 중례츠(zhōngliècí).
중화민국 건국공신들과 중일전쟁, 국공내전, 진먼 포격전 전사자들을 위시로 해서 중화민국을 위해 순직한 사람들을 기리는 곳으로 안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작전 시, 승리를 얻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불사하여 공을 이뤘으나 희생당한 자’2. 작전 시 맡은 바 최선을 다하여 죽음을 달게 받던 자.
3. 위험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하여 총통에 의해 표창령을 받은 자
면적은 5만2천여 평방미터이며, 건물 면적은 약 5천 3백여 평방미터다. 국방부 사정편역국(史政編譯局)에 예속되었다가 1998년 7월 1일 연합후근사령부 유수업무서(聯合後勤司令部留守業務署)에 이양되고, 다시 2006년1월1일 후비사령부(後備司令部)로 예속했다. 중앙정부 소재지에 설치한다... 라는 소개문을 볼 때 대륙 시절에도 있었던듯. 자세한 건 확인바람. 원래는 일본식 신사가 있었으나 철거하고 1969년 3월 25일 완공되어 운영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현충원과 비슷한 시설이지만 (타이베이 국군 묘지가 따로 있기에) 타국의 추모 시설과 1대 1에 대응되는 곳은 딱히 없다. 굳이 따지자면 야스쿠니 신사가 제일 비슷하긴 하지만, 비교대상이 대상이다보니...
3월 29일과 9월 3일 총통이 직접 주례하는 제사를 지낸다. 또한 4월5일 황제릉(黃帝陵)을, 총통 취임식에 손문 국부릉(國父陵)을 멀리서 제사지낸다고 한다. 크고 아름다운 중국 황궁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매 시간 칼같은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꽤 보이는 곳. 아이러니하게도 본토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타이베이 첩운 단수이신이선 위안산역이나 타이베이 첩운 원후선 다즈역 인근이며 근처에 공자를 모시는 타이완 공묘, 초대형 호텔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1]이 있다. 국립고궁박물원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편이다.
여담이지만 1958년 진먼 포격전 당시 순직한 기자들의 위패는 이곳이 아니라 진먼에 있는 태무산 충렬사에 모셨다고 한다. 고 최병우 기자의 위패도 그곳에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