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유 경력

1 개요

호날두맨유에서 활약하던 기간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맨유에서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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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성장중

스포르팅에서 데뷔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맨유와의 친선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발휘하며 알렉스 퍼거슨의 시선을 사로잡고 맨유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하자마자 데이비드 베컴의 등번호였던 7번을 받게 된다.

이적한 후 빅 리그에서도 계속 자신의 개인기 위주의 플레일 스타일을 고수하였지만(참고로 왼쪽 윙은 라이언 긱스로 고정) 분명 어느 정도 실력이 있었고 재능이 뛰어났지만 그렇다고 과거 등번호의 주인이자 윙어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준 베컴과는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혼자우도"라는 별명을 얻은 한낱 유망주였고 그 후 2005년 이적해온 박지성과 주전 경쟁을 펼치게 되는데, 빅 리그에서도 계속 자신의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하여 박빠들에게 열심히 까인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재능을 만개해,[1] 2006년 월드컵 전후로 서서히 포텐셜이 터지면서 성장해갔고 능력이 본격적으로 개화되는 06-07 시즌부터는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치면서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는 AS로마를 상대로 챔피언스리그 시즌 1호골과 2호골을 작렬시키고 4강전 상대로 AC 밀란으로 결정나자 국내의 맨유빠들은 호날두와 루니를 열렬하게 빨았지만, 호날두는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오토에게, 루니는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카베르 칼라제에게 가로막혀버렸다.

게다가 발롱도르 경쟁 상대이던 카카는 1차전에서 비록 2-3으로 패했지만 가히 미쳤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2골을 넣었고, 원정에서는 3-0으로 발리면서 챔스 4강에서 탈락한다.발롱도르를 카카에게 뺏긴 건 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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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 시즌에는 프리롤을 부여받으며, 프리롤 공격수로서, 오른쪽 측면에 배치되어 리그에서만 31골을 넣고 득점왕,시즌 통틀어 42골. 이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2016년 현재 25살인 아자르보다 어린 23살이란 나이에 EPL을 씹어먹고 리그 31골이란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것이다.EPL 출범 이후 리그 30골을 넘은 선수는 앤디 콜, 앨런 시어러,[3] 티에리 앙리, 루이스 수아레스, 로빈 반 페르시 정도 밖에 없을 정도이다. 그나마 이 넷은 최전방 공격수지만 호날두는 이 당시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면서 저런 기록을 달성했다. 그 해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4] 챔피언스리그 득점왕,피파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 등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휩쓸며 월드클래스의 선수로 발돋움한다.

2008-2009시즌에는 팀을 리그에서 우승시키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에서 아스날을 만나 홈경기였던 1차전에서 1:0으로 이겨 2차전 승리가 절실할 때 원정 2차전에서는 전반 7분 박지성의 선제골에 1어시, 전반 10분에는 30m거리에서 알무니아를 상대로 무회전 프리킥을 작렬시키고, 전반 60분에는 그 유명한 호날두-박지성-루니-호날두로 이어지는 10초 역습으로 쐐기골을 작렬시키며 쐐기골을 뽑아낸다. 후반 75분에 반 페르시에게 패널티킥 골을 먹히지만 팀은 3:1로 승리, 결승으로 올라가고 말 그대로 맹활약을 펼쳐 경기 MOM으로 선정된다.

결승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메시 앙리 에투 라인에게 완벽하게 2:0으로 패배하며 팀은 준우승에 머무른다. 2008-2009 시즌에도 26골 9도움을 하며 맹활약을 했지만 저번시즌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팬들에게 비판이 아닌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맨유 시절 각성한 호날두는 말 그대로 맨유의 전술의 핵이자 중심으로 퍼거슨도 인정한 맨유의 최전성기[5] 이끌었다. 재능, 실력에서 전혀 꿀리지 않는 루니도 자신을 희생하고 호날두가 공격의 핵이 되었으며 호날두&루니&테베즈의 빠른 역습은 엄청났다. 이때의 시원시원한 맨유의 역습 축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것이 맨유 팬들이 여전히 호날두의 리턴을 바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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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원이라는 별명도 이때 달렸다. 늘 출전해서 늘 골을 넣는 그의 플레이가 출근해서 출근 도장 찍는 공무원같이 다를 게 없이 언제나 늘 똑같기 때문(…). 시즌 초반 부상 때문에 결장하자 무단 결근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상대 수비수가 태클이나 파울을 하면 골무 집행 방해라는 소리가 나온다(…).

국내에선 흔히 호날두라고 불려지나 현지에선 호돈신과 마찬가지로 호나우두라고 한다..기엔 발음이 좀 다르다. 호나우두의 경우 L 발음이 뭉개져 w 발음이 나타나는 반면, 호날두의 경우 미세하게 L 발음이 나타나기 때문. 발음똑같은데? 이는 포르투갈의 포어와 브라질의 포어가 조금 다르기 때문으로 Cristiano Ronaldo는 본국의 포어 표기에 따라 '호날두'로 표기한 것. 호날두가 처음 알려진 초창기에는 호나우두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포포투 등 호나우두 표기를 고수하는 곳도 있다. 호나우두 역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축구 선수이기 때문에 혼동을 피해 유니폼 마킹을 그냥 Ronaldo 가 아닌 C.Ronaldo 로 썼고, 호돈신이 은퇴한 이후로도 이 표기를 계속 쓰고 있는 중. 아예 호나우두와 차별화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의 약칭이자, 그가 런칭한 패션 브랜드인 CR7처럼. 이 마킹 덕인지 한국에선 호돈신과의 구별을 위해 씨(C)날두라고 부르기도 했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는 불화가 심했는데, 판 니스텔로이는 호날두가 자신에게 패스와 크로스를 안 한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호날두와는 도저히 같이 못 뛰겠다고 늘상 투덜댔는데, 리오 퍼디난드의 증언에 따르면 트레이닝 도중에 판 니스텔로이와 호날두가 싸우는건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한 번은 여느 날 처럼 호날두와 말 다툼을 하던 판 니스텔로이가 호날두를 발로 찼는데, 퍼디난드는 호날두를 보호하기 위해 판 니스텔로이를 살짝 발로 찼고, 그러자 판 니스텔로이는 퍼디난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판 니스텔로이는 결국 다음 경기에 출장 하지 못 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로 쫓겨나고 만다.

또 다른 일화로는 판 니스텔로이가 호날두와 트레이닝 도중 말 다툼을 하다, 이 때 반 니스텔로이는 호날두에게 "너네 아버지한테 가서 고자질 해라." 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반 니스텔로이가 지칭한 아버지는 수석코치 였던 카를로스 케이로스 였는데[6] 호날두는 그 아버지를 진짜 자신의 아버지라 알아 듣고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라고 하며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즉 호날두의 입장에서는 패드립인 셈, 이 대화가 언론을 통해 공개 된후 판 니스텔로이는 엄청 까였다.[7]
  1. 2003-04 40경기 6골 7어시 2004-05 50경기 9골 10어시 2005-06 47경기 12골 8어시 2006-07 53경기 23골 19어시 2007-08 49경기 42골 8어시 2008-09 53경기 26골 9어시.
  2. 이 대목을 넣는 이유는 현재도 호날두가 까이는 이유 중 하나인 AC 밀란전 경기력에 대한 것인데, 당시 호날두는 최고로 주목받던 유망주 시절을 벗어나고 팀의 에이스로 각성하던 시기였다. 상대하던 선수들은 당대 월드 클래스 선수 중 포지션상 톱으로 꼽힌 선수들이니 경기장에서 지워졌다고 신랄하게 까지는 말자. 결국 AC 밀란은 그 대회를 우승하였으며 당시 AC 밀란은 노화로 인해 저평가받았지만 2002~07년 챔피언스 리그 성적이 우승-8강-준우승-4강-우승이었던 팀이다. 불과 1년 전 오심만 아니였다면 FC 바르셀로나 대신 결승에 올라갔을 만한 세계구급 전력을 보유하였다. 그 전 해엔 우리가 잘 아는 이스탄불의 기적이 일어났고.
  3. 시어러는 세 시즌 연속으로 달성했다. 다만 38라운드 체제에서는 한 번뿐.
  4. 모스크바에서 EPL라이벌인 첼시와 결승전을 치루었다. 이때 4강까지 대단한 활약을 펼친 박지성이 벤치멤버도 아닌 결승전 엔트리 자체에 오르지 못해 국내 해축팬들이 퍼거슨을 무진장 깠다. 아무튼 결승에서는 연장까지 1:1 접전을 벌인 끝에 승부차기로 가서 존 테리의 미끄덩슛 (...)으로 맨유의 승리 참고로 호날두는 이날 골을 기록하고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했다. 맨유의 우승이 확정된 후 그라운드에 엎드려 우는 모습은 덤
  5. 트레블을 기록한 98-99 시즌보다 이 당시의 맨유가 더 강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고, 실제 Elo 레이팅 등 간접적으로 시대별 비교를 할 수 있는 지표들에서 이 당시의 맨유가 트레블 당시의 맨유보다 더 강력한 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 같은 포르투갈 국적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유독 친했었고, 호날두가 퀘이로즈를 잘 따랐었기 때문에 비꼰 것이다.
  7. 물론 후에 "호날두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라는 패드립을 쳤었던 주제 무리뉴가 이 당시 판 니스텔로이 보다 몇 배는 더 많이 까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