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긱스

감독 대행 라이언 긱스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 교체출전긱수겸
라이언 조지프 긱스(Ryan Joseph Giggs OBE)
생년월일1973년 11월 29일
국적웨일스
출신지카디프
신체 조건179cm, 72kg
포지션윙어, 중앙 미드필더
유소년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1987~1990)
선수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0~2014)
지도자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대행 (2014)[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수석코치 (2014~2016)
국가대표64경기 12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
(2013~2014)
라이언 긱스(감독대행)
(2014 잔여시즌)
루이 판 할
(201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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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의 마법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윙어이자 EPL의 수많은 기록을 써내려간 EPL 레전드 중 하나

그리고 화려한 선수 경력과 대비되는 가정사의 소유자

1 소개

맨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나 말년의 불륜으로 그 광휘에 손상을 가한 복잡한 선수
스카이 스포츠에서 만든, 라이언 긱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Football's Greatest - Ryan Giggs[3]


현역시절 등번호는 11번, 포지션은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처진 공격수 모두 소화해냈다.

EPL이 출범하기도 전인 1990년 3월 2일[4] 에버튼 FC전에서 교체로 출장하며 데뷔. 당연히 2014년 당시 EPL 이전 시대의 풋볼 리그 경력이 있는 유일한 현역 선수였으며, EPL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이다. 데뷔 때부터 은퇴를 앞둔 지금까지 임대 한번 가지 않고 평생 맨유에서 뛰었던 진정한 원 클럽 맨으로 팀에게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다만 웨일즈 국가대표 소속이었기에, 월드컵 본선경력은 없다. 화려한 프로 경력과는 달리 월드컵 본선무대 한 번 못밟아본 슬픈 역사때문에 이런 광고도 있다. 화분에 입맞추는 장면에서는 그저 눈물만이...안습...ㅠㅠㅠ 그런데 리복은 이걸 시리즈로 만들었다(…).

2 가정사


아버지와 사진. 아버지시에라리온의 피가 흐르는 웨일스인이자 유명 럭비선수인 대니 윌슨. 그는 웨일스 출신의 16세 소녀 라이네 긱스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한 뒤 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라이언 윌슨. 하지만 윌슨의 바람기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라이네와 결혼한 이후에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러 다녔고 그 모습을 소년 라이언이 보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라이언은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이후 윌슨이 이적함에 따라 라이언은 맨체스터로 이사하게 되고, 당시 맨체스터 시티의 스카우터였던 데니스 스코필드에게 발굴되어 딘스 유스클럽에서 축구를 하고있었는데 귀신같은 드리블을 치는 꼬마가 있다라는 스카우트의 보고를 받은 알렉스 퍼거슨이 14세 생일날 긱스의 집에 직접 찾아가 라이언의 첫 유스 계약을 성공시킨다.

라이언이 14세가 된 어느 날, 아버지 윌슨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이혼을 하게 된다. 이미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던 라이언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고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른 "긱스"로 바뀌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라이언에게 퍼거슨 감독은 많은 위로를 해주었고 라이언은 퍼거슨을 아버지처럼 따르게 된다.

아버지가 시에라리온계 웨일즈인(정확히 말하자면 긱스의 친할아버지가 시에라리온 출신이다)이기 때문에 긱스 역시 쿼터는 흑형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5] 그 때문에 어렸을 때 인종차별[6] 로 인한 힘든 시절을 보낸 듯, 그 당시를 잊지 못하고 성년이 된 지금 유니세프의 인종차별 추방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7]

3 클럽 커리어: 맨유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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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1993, 1994, 1996, 1997, 1999, 2000, 2001, 2003, 2007, 2008, 2009, 2011, 2013)
  • 잉글랜드 FA컵 우승 4회(1994, 1996, 1999, 2004)
  • 잉글랜드 리그 컵 우승 4회(1992, 2006, 2009, 2010)
  • 잉글랜드 커뮤니티 실드 우승 9회(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2013)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1999, 2008)
  • UEFA 슈퍼컵 우승 1회(1999)
  •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3회(1999, 2000, 2008)[8]

Man Utd No.11

긱스의 전성기가 바로 맨유의 전성기였다.[9]

EPL 역사상 가장 많은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선수가 되었으며 평생 하나도 못드는 사람이 많은 트로피를 글자 그대로 쌓아놓고 있다. 국가 대항전 트로피만 빼고.

1991년 3월 2일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데니스 어윈과 교체되어 자신의 1군 데뷔전을 치루었고,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1991-92 시즌에는 당시 주전 레프트 윙이었던 리 샤프의 부상으로 1군 기회를 얻게 되었고, 나이를 뛰어넘은 빼어난 활약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 1992-93 시즌에는 등번호 11번을 받게 되었고 팀은 시즌 초반 부진했으나 후반기에 팀을 바로잡고 프리미어리그로 새로이 출범된 리그 첫 우승을 이루게 된다. 이듬해에는 리그와 FA 컵 더블을 기록하게 된다.

10대에 1군 무대에 데뷔했을 때부터 완성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고 오랜세월 축구계 레프트 윙어의 본좌로 군림했다. "조지 베스트의 재림" 혹은 "왼쪽의 절대자"라 불렸던 "전성기 긱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귀신같은 드리블". 축구사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를 꼽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전성기 당시 긱스의 드리블은 말 그대로 알고도 못 막는 레벨이었고, 입벌어지는 스피드의 돌파에 이은 다이렉트 러닝크로스의 정확도는 당시 누구와도 비교를 거부했다[10]. 거기다 득점력[11], 전술 이해도, 개인기 등등 윙어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완벽한 선수이다.[12] 심지어 헤딩마저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킥의 정확도 역시 천하의 데이비드 베컴과 번갈아가며 프리킥을 찰 정도였으며 베컴이 레알로 떠난 후에는 팀의 전담키커였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베컴과 동시에 프리킥을 차는(듯한 훼이크) 영상은 꼭 찾아보길 바란다. 당시 좌긱스 - 우베컴라인은 유럽 전역을 충격과 공포로 밀어넣은 라인이었고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좌우라인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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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긱스 - 우베컴 Before & After.

철저한 자기 관리와 뛰어난 프로정신 또한 유명하며, 수많은 팀의 동료, 후배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선수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다만 맨유 클럽하우스에서 오랜 세월 일했던 어느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때는 친구들하고 놀러다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베컴 같은 절세의 꽃미남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외모에 화려한 플레이스타일, 젊은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것 등 스타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데뷔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긱스에게 "2년간 인터뷰 금지령"을 내렸고 긱스는 당시엔 그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든 후 덕분에 자신은 인기스타가 아닌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자 "몸은 느려지는데 머리는 더욱 빨라진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실제로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고 있다. 포지션을 중앙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바꾸고 풍부한 경험과 번뜩이는 클래스로 여전히 클럽의 핵심 선수 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는 중으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축구계의 명언을 실증하고 있다. 포지션 변경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 극찬을 받았으며, 08-09 FWA 선정 올해의 선수상과 영국 BBC 선정 최고의 스포츠인 상마저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나이 36세(...).

2009-2010 시즌 초반에는 2경기에서만 5어시스트를 하고 발렌시아와 나니보다 더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며 회춘모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포츠머스 FC 원정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프리미어리그에서 개인의 100번째 골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매 시즌마다 득점을 한 유일한 선수다. 그리고 10-11 시즌 첫 경기인 뉴캐슬전에서 득점하며, 이 기록을 이어갔다.

바비 찰튼의 기록을 깨고 맨유 최다 출장 선수가 되었으며, 현재 맨유에서 경기 출장할 때마다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킥에 있어서는 왼발신의 칭호가 아깝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뛰어야 하는 윙 포지션에서는 세월을 이기기 어렵나보다. 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이후 챔스에서 말 그대로 날아다녔고 8강에서는 1, 2차전에서 첼시를 무너뜨리는 어시스트 3개를 만들어보이는 미친 활약을 펼치면서 축구 커뮤니티에서 찬양을 받았다.

샬케04와의 챔스 4강 1차전에서는 전반에 몇 번의 기회를 날려먹으신 후 웨인 루니의 스루패스를 받아 그때까지 엄청난 선방을 보여준 마누엘 노이어에게 알까기를 시전, 선제골을 득점했다. 나이 38살에 2010-11 챔스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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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많아서, 사과나무라는 별명이 있다.[13]사과나무

3.1 클럽에서 세운 각종 신기록

  • 한국시각으로 2011년 1월 17일 토트넘 핫스퍼와의 EPL 경기에 출장하면서 리그 6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1년 3월 17세의 나이로 데뷔한 후 꼭 20년 만에 세운 기록. 2011-12 시즌이 시작된 현재는 바비 찰튼의 잉글랜드 1부리그 최다출장(606경기)을 이미 넘어섰다. 통산 리그 출장 기록은 672경기이며 클럽 최다 출장 기록은 963경기로 역시 맨유 최다 출장자이다.[14]
  • 데뷔 이후 프리미어 리그 출범 원년인 1992-93 시즌부터 2012-13시즌까지 22년간 매 시즌 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 그와 함께 EPL 최다출장 & 매년 출장 & 매년 득점 등등의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13-14 시즌은 골을 넣지 못하고 은퇴했다.
  • 2011년 초, 맨유 구단과 팬들이 동시에 선정한 클럽 역대 최고의 선수에 SIR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등 그야말로 전설들을 넘어서 1위에 선정되었다.
  • 2000년부터 공식집계된 EPL 어시스트 회수는 105번째, 그 전도 포함한 프리미어리그 통산 어시스트 회수는 283어시(...). 얄짤없이 맨유는 물론이요 EPL 역사를 통틀어 최다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이다. 국대 및 각종 참가대회를 합하면 커리어 전체 어시스트 회수는 약 400개에 육박한다는 기록이 있다(...).
  • 현재 UEFA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다 출장 3위(145경기)이며 챔스 역대 최고령 득점 2위(37세 289일[15]). 더불어 챔스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면 이 사람은 챔스 최다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49개). 다만, 공식 기록은 01-02 시즌부터 집계되어서 30개이다.[16]
  • 98/99 FA컵 4강 재경기(VS 아스날)에서 보여준 매직 드리블은 맨유 역사상 최고의 골로 선정되었다.

4 국대 커리어: 안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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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대회 중에 언제나 나는 늘 작은 방에 틀어 박혀 있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기억해주겠지요. 이 영광의 대회 팬 중에는 영국의 작은 나라의 한 선수,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 라이언 긱스가 FIFA 월드컵의 꿈이 좌절된 소감을 웨일스의 축구 전문지에다 직접 기고한 편지의 내용에서.
"잉글랜드 대표가 되길 희망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질문이 여전히 날 괴롭힌다. 난 웨일스인이다. 이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끝이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내 부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잉글랜드를 위해 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라이언 긱스에게 "왜 잉글랜드 대표가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긱스가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국적을 바꾸라고 권유받았으나 어머니와 자신이 태어난 모국을 위해 웨일즈 국가대표를 선택했다고 넷상에서, 특히 국내에서 온갖 미사여구와 멋진 사진을 곁들여서 훈훈하게 포장지로 싸여진 이야기가 중2병 학생들의 미니홈피 및 블로그에 퍼져 있는데... 그냥 개드립이다.

영국에 나뉘어 있는 네 개의 축구협회를 선택하는 것에서 우선하는 것은 출생지와 부모 및 조부모의 출신지였다. 외국에서 태어나는 등 일정한 특수요건이 있다면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한데 라이언 긱스의 친할아버지는 시에라리온 국적, 친할머니, 외조부모는 모두 웨일즈 출신에 어머니와 아버지마저도 웨일즈 출신이었다[17]. 그나마 긱스 자신의 출생지도 웨일즈의 중심지 카디프. 현재 개정된 영국 국대 선발 규정대로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뛸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잉글랜드 대표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이언 긱스가 프로 데뷔하던 당시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도 그를 뽑으려 했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뽑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긱스는 이전에도 잉글랜드 유소년 국가대표 팀의 주장으로 뛴 적도 있었다. 월드컵 비운의 별 긱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결국 라이언 긱스는 1991년 웨일스 U-21대표팀에서 단 한경기를 뛰고 바로 웨일스 성인 대표팀에 차출, A매치에 데뷔하게 된다. 물론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규정이 있더라도 어차피 같은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니 규정 뜯어 고쳐가며 데려올 수도 있을 위인들이지만, 그것은 라이언 긱스 자신도 그렇게 해서라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영국 현지,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긱스와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잉글랜드 A팀의 왼쪽 윙 자리는 20년이 넘도록 답이 없다(...) 근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가 하는 꼴 보면 긱스가 있어도 잘 나갈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잉글랜드는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게다가 조직력까지 갖춰져 있었던 명실공히 강팀이었다. 맨유가 자랑하던 좌긱스-우베컴 라인이 국대에서도 가동했다면 한 번 정도는 우승을 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레스 베일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웨일스 국가대표 최연소 데뷔였으며, 웨일스 국가대표 역대 최장기간 주장 역임이었다. 사실상 긱스 이외에는 전력이 참... 눈물나는 상황이었으니... 특히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라도 있다치면 베컴, 네빌, 퍼디낸드 등 클럽팀에서 똑같이 우승을 맛봤던 동료들을 상대로 다구리를 맞아야 했던 긱스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긱스는 "분명 내가 공격하고 네빌이 나를 막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모습은 늘 반대였다"고 토로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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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07년 여름, 체코와의 유로08 최종예선 경기를 끝으로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그의 국가대표 경력을 끝냈다. 팬들은 사방에 플랜카드를 걸고 주장 완장을 내려놓는 국가의 레전드의 뒷모습에 박수와 함께 눈물을 뿌렸다. 이렇게 긱스의 국대 경력이 끝났다.

[1]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Team GB)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올림픽 대표팀은 일반적으로 국대라 불리는 A 대표팀이 아니라 U-23 대표팀이고, 긱스가 평생 뛰었던 웨일스 대표팀이 아닌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팀이지만 그의 국제대회 마지막 도전이라 그의 팬들은 은근히 호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주장 자리에도 낙ㅋ점ㅋ! 근데 뻥글이잖아? 안될거야, 아마

본선 조별예선 2차전 UAE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18] 주장으로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8강전까지 나름 승승장구하였으나...

레전드 말디니의 마지막 A매치를 눈물에 젖게 만들었던 동방의 한 국가에게 영국 단일팀이 녹아웃됨에 따라 긱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 대회 본선 도전도 막을 내렸다. 역시 안습의 역사라니까

8강에서 맞대결 했던 박종우에게 까였다.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자신에게 욕만하는 긱스를 보고 박종우가 매우 실망했다고.

5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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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의 마술사
맨유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
주특기인 드리블을 이용한 돌파와 스피드, 왼발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왼발 크로스 능력과 패스가 강점이다.맨유 역대 최다득점 8위에비 빛나는 득점력, 전술 이해도, 개인기 등등 윙어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완벽한 선수이다.[19] 심지어 헤딩마저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킥의 정확도 역시 천하의 데이비드 베컴과 번갈아가며 프리킥을 찰 정도였으며 베컴이 레알로 떠난 후에는 팀의 전담 키커였다. 젊은 시절의 긱스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술과 스피드, 판단력, 차분함을 갖춘 선수였다.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이 맞붙은 FA컵 준결승전이 좋은 예.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발이 느려져[20] 더 이상 상대 수비를 따돌릴 수 없었고, 순발력도 떨어지면서 일대일 상황에서조차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긱스는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고, 화려함을 버리는 대신, 영리함과 정교함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은퇴를 바라보는 30대의 나이에 중앙 미드필더로의 변신을 시도한 긱스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 능력, 빠른 두뇌 회전을 무기로 새 포지션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다만 굳이, 굳이 단점이 있다면 반댓발(오른발)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길고 긴 그의 커리어에서 그가 오른발로 넣은 골의 개수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6 불륜 스캔들

커리어도 화려한데다 가족들에게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가장으로서, 모범적인 이미지가 좋았으나 선수생활 말미에 불륜 스캔들을 일으켰다. # 과거 자신이 아버지의 불륜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었음에도, 타 선수들에게 귀감 및 모범이 되었던 선수생활 말년에 벌인 불륜이라 팬들의 배신감은 상당히 커서 넷상에서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타이거 우즈, 존 테리 등과 비교당하고 있지만 불륜 상대가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라, 까임의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긱스의 이런 갑작스런 막장극장을 풍자한 한국 누리꾼의 댓글 원문

2007년경 카카AC 밀란시절 긱스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있어서 까인적이 있었는데 2011년 긱스의 불륜 스캔들이 드러나자 타 팀팬들에게 찬양받았다.(...) 불륜남을 응징하는 혼전순결의 위엄

  • 첫 번째 불륜: 연예계 최고의 모델
언론에 알려진 첫번째 불륜 상대는 이모겐 토마스(Imogen Thomas)라는, 1982년생 웨일스 출신의 유명한 슈퍼 모델이다. 2010-11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EPL에서 오래 뛰고 타이틀을 많이 얻은 웨일스 선수가 불륜을 했고 아내에게 고백해서 결국 아내를 울리게 했다'고 현지 언론 및 신문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건이 워낙 한정적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누군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당사자가 안팎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기에 그냥 뻘루머로 여기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선 이미 널리 퍼질 대로 퍼져나갔고 특히 5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간의 경기를 앞두고 런던 원정에 긱스가 아무런 이유없이 불참하면서 SNS 및 팬포럼에 상주하던 사람들은 사실상 확정짓게 되었다. 결국 더 선이 냄새를 맡고 제대로 터뜨리려고 하자 재빠르게 본인은 아내에게 사실대로 고백하고 법정에 보도 금지명령을 신청해서 막았는데, 자치령인 스코틀랜드에서 보도하는 것은 보도 금지명령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악용한 영국 언론이 거의 대놓고 당사자의 사진을 올리며[21]이 사진 스코틀랜드에서 보도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앞두는 중요한 시점에서 맨유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 터진 상황.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출전은 했고 루니에게 어시스트를 올렸으나 오프사이드 상황이었고, 맨유에서 가장 많이 뛰었지만 멘탈 초토화로 인한 공황사커 끝에 그라운드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축구계의 슈퍼스타에게 젊은 애인이 하나 생겼거니 하는 "쯧쯧쯧" 정도의 시각과, 이머전 토머스란 여성이 과거부터 축구선수에게 자주 달라붙었다는 사실로 인해 "에휴 긱옹 어쩌다가..." 하는 정도의 시각도 있었으나... 솔까말해서 운동계에서 불륜사건은 한두번이 아닌지라 시간 좀 지나고 나면 잊을만 할 때 한두번씩 놀림감되고 마는데...

  • 두 번째 불륜: 동생의 아내
전설(...)의 시작. 폭탄이 제대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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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상대가 동생과 만나기 전부터 나이트에서 만나 관계를 가졌으며, 동생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줬고 그녀가 동생과 약혼한 후에도 8년간 계속 관계를 가져왔다고 한다. 충공깽.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테리: 긱스는 나보다 나은 선수. 나는 동료의 아내였지만 그는 동생의 아내였다.', '긱스 조카가 귀신같은 왼발 드리블을 치기 시작하는데...' 같은 드립을 치면서 긱스를 까고 있다.

형에게 NTR을 당한 긱스 남동생이 2006년 태어난 자신의 아들 친자 확인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만일 검사 결과 긱스 남동생의 아들이 긱스 아들로 밝혀진다면 역대 스포츠 스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불륜의 전설로 등극할 것이다. 사실 지금 터진 것만 따져도 충분히 역대급 전설이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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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긱스와 8년간 외도한 나타샤가 긱스와 사귀면서 긱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와도 불륜을 저질렀다고 한다. 나타샤가 긱스가 아닌 다른 맨유 선수[23]와 사귄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니티샤가 긱스와 남편 로드리, 또다른 맨유 선수와 동시에 만날 수 있었을까 매우 궁금해 했고, 특히 긱스는 나타샤가 자신의 팀동료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나타샤 긱스가 드와이트 요크 이외에도 맨유 선수 출신 2명과도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상대는 필립 바슬리(선덜랜드), 대니 심프슨(뉴캐슬)이었다고.
그리고 놀랍게도 나타샤가 뉴스 오브 더 월드에 충격적인 고백을 했는데, 나타샤가 긱스의 아이를 임신하자 낙태를 종용했다는 것, 그리고 낙태의 확인만을 했을 뿐 곁에 있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것으로 인해 긱스는 안 그래도 힘든데 언론들에게 집중포격을 받고 있다. 또한 나타샤는 그 외에도 긱스의 동료들과는 잠시 만났을 뿐 그들과의 관계는 언론이 부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24]#
  • 장모 유혹설, 장모 불륜설
파문 와중에 타블로이드지인 미러에서 나타샤의 어머니.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부인과도 일이 있었다는 기사가 터졌다. # 긱스가 가족 모임에서 장모까지 꼬시려고 했고, 심지어는 장모와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찌라시인데 이걸 국내 정론지에서 인용하여 기사들을 쏟아내는 바람에 [25] 일반인들에게 팩트로 각인되어버렸다. 하지만 국내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해외의 모든 긱스의 장모 유혹설을 언급한 기사들의 출처가 위의 미러 지 기사 딱 하나인데 축빠라면 알겠지만 미러 지야 더 선과 더불어 갖가지 찌라시 소설들을 매일 같이 업데이트하는 황색언론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 더 이상의 후속보도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상 장모 유혹설의 신빙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리고 다시말하지만 절대로 증명된 것 이 아니다. 문제는 국내 정론지임에도 타블로이드 찌라시들을 분별없이 인용하는 기레기들
  • 세 번째: 과거 최고 모델
이번에 나온 상대는 과거 미스 카디프 출신 모델인 리사 제인스. 본인이 데일리스타에서 폭로했다고 알려졌다. 위의 이머전 토머스처럼 웨일스 출신의 인기 모델에 금발이고 유명 리얼리티쇼 '빅브러더'의 영국판에 출연한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의 관계는 13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사실 이건 불륜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것이 당시 긱스는 물론 제인스 역시 싱글이었다. 1년 정도 만남을 가지다 헤어졌다고 하는데, 영국 현지에서도 "10년도 지난 일을 이제 와서 꺼낸다는 건 긱스 스캔들 여파에 물타기로 돈이나 뜯어내려는 수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다. 그나마 실드를 칠 수 있는 부분... 이지만 이미 상황이 상황이라..
  • 계속 되는 막장 드라마
긱스와 스테이시는 지난 11일 맨체스터 근교 워즐리의 한 중화요리 레스토랑 밖에 나타샤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봤다. 이들은 지난 6월 나타샤가 긱스와의 불륜을 폭로한 뒤 이날 처음 만난 뒤 말싸움으로 번졌고 이 와중 긱스는 "난 네게 신경도 쓰지 않아. 그저 잠자리 상대였을 뿐이야"라고 나타샤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오오 패기# 결국 로드리 긱스에게 벌레(bug)라고 욕을 먹으면서 라이언 벅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종합해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넘어 EPL의 출범과 함께 그 시작을 함께 했던 레전드 중의 레전드지만 불륜 스캔들 한방에 모든 영광을 싸그리 날려버렸다. 만약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하는 안타까운 반응이 많다.게다가 축구 관련 웹툰에서도 종종 등장하여 동료들의 아내를 탐하는 모습(...)으로 자주 비춰지기 때문에 선수 말년에 그리고 수석코치가 된 지금도 사람들의 웃음거리로서 불려지고 있다.

2015년 긱스의 동생이 한 인터뷰의 내용이 화제가 되었는데, 자신으로 인해 친동생의 가정이 완전 파탄났음에 불구하고 이에 전혀 뉘우치는 기미 없이 뻔뻔하게 "단지 성관계였을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대응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더욱 파문이 일고있다.[26]기사 소시오패스

그러다 얼마 후, 동생과 화해했다는 기사가 떴다. [2] 로드리가 나타샤와의 관계지속에 실패하고 이혼절차를 밟고 난 후, 라이언이 로드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이후 형제간의 관계가 서서히 회복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2016년 결국 아내와 이혼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긱스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에게 작업걸다가 이걸 아내에게 들켜버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세월도 있고 그 사건 전후로부터 누적된 것이 폭발하여 더 이상은 못참겠다며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나선 것. 결국 지버릇 개 못줬다. 현재는 그냥 집에만 같이 사는 사이라고 한다. 아내나 긱스 본인도 주위 친구들에게 사실상 결혼관계는 끝났다고 얘기하는중. 진작에 이혼하지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지금까지 이혼 안하고 참은 긱스 아내가 대인배다.

7 그리고 2011-12 시즌

선수 본인이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떠난 상황에서 이상의 스캔들이 미친 듯 터져나온 탓에 사실 여부를 떠나 긱스 본인의 마음고생은 장난이 아니었던 듯, 공항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10년은 더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자업자득이라면 할 말 없지만 팬들로서는 "긱옹 제발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줘요"라며 피눈물을 흘렸으나 당사자 긱스와 구단 측에서는 일언반구 없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아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 맨유 그 자체이자 EPL 최고의 전설이라 불리던 선수의 말년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에 대해 맨유 팬들은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고 타팀 팬들은 아주 신나게 까고 있다. 때마침 폴 스콜스에드윈 반 데 사르의 은퇴가 겹쳐 일각에서는 "그냥 조용히 은퇴나 하셈"이라며 까고 있으나 2011-12 시즌이 개막된 현재까지 맨유 1군 스쿼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사생활이 깨끗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으나 경기장에서만큼은 프로 선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긱스였기에, 최소한 경기장에서라도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떠나는 것이 남아있는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가 될 것이다. 그리고...

2011-12 EPL 2라운드 토트넘 핫스퍼와의 경기에서 후반 80여분 교체되어 들어오더니, 들어오자마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띄운 로빙크로스로 웨인 루니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하는 위엄을 보였다. 10분뛰고 1어시 오오 3라운드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도 교체투입되더니 애슐리 영의 마무리골을 어시스트했다. 이어서 챔스 조별예선 VS 벤피카전과 칼링컵 리즈전에서 2경기 연속 전성기 빙의모드 골을 만들어내는 위엄을 보여주고 바셀 전에서도 촌철살인의 킬패스로 2어시를 찍어주는 활약을 보였다. 내일모레 마흔인 사람이 6경기 2골 4어시를 터트리고 있으니 보는 사람은 그저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시즌 초반의 활약상만을 두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경기장 밖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것과는 달리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변함없을 것 같아 팬들은 그나마 미소를 머금고 있다 카더라.

7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제라드의 프리킥을 자신의 가운데다리(...)를 지키기위해 몸을 틀었는데 덕분에 긱스와 수비벽의 벌어진 틈새로 공이 지나가서 실점하고 만다.아직 쓸데가 많다!! 어디다?

경기장 밖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그래 까라. 난 축구하련다"라는 철판모드인 듯 경기장에만 서면 클래스 인증샷을 찍었고 전 시즌부터 이어진 전성기 빙의 활약으로 2011 골든 풋을 수상했다. 그리고 맨유 측에서는 1년 재계약 떡밥을 뿌리고 있다. 이제 그만 뛰게 만들어 내일모레 마흔이야

그러나 11월 들어서며 팀의 중원과 수비진이 부상 크리 및 컨디션 난조로 대붕괴되는 상황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아무래도 긱스 자신의 부상재발과 로테이션으로 돌려야 할 노땅체력에 몇 경기를 풀타임 출전하다보니 무리가 간 듯. 단적인 예가 챔스 조별예선 최종전 바셀 전이었고, 풀타임 출전하여 피를 토할듯 뛰어다녔으나 별다른 성과는 올리지 못하고 팀의 패배 및 챔스 탈락을 지켜봐야 했다. 그날의 경기는 로이 킨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제일 나이많은 긱스가 제일 뛰어다니더라".[27]

그리고는 분노 폭발했는지, 17라운드 풀럼 전에서 풀타임 출장하며 1골 2어시를 찍어버렸다. 넣는건 참 잘해 22라운드 아스날 전에서도 선발출장해, 전성기 빙의 드리블로 아스날 수비진 4~5명을 순식간에 농락하더니만이 와중에 깨알같은 김동완 해설의 스태미너 드립 전반 내내 크로스 띄운다고 삽질하던 나니를 보다 짜증났는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올린 크로스 한방에 차도남발렌시아의 헤딩골을 만들어보이는 위엄을 보여줬다. 이로서 이번시즌 3골 10어시. 어시스트 수가 팀내 2위. 이 양반 한국나이로 39세(...). 다만 리버풀과의 FA컵 경기에서는 그답지않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팀내 워스트 3인방(데 헤아, 웰백, 긱스)에 꼽히는 굴욕도 당했다. 확실히 매 경기 날아다니지는 못하는 듯. 그럼 그게 인간이니 메시도 아니고

2월 26일, 노리치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900번째 경기에 출전했고, 결국 91분에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기념비적인 출장기록을 자축했다. 이제 남은건 1000경기 돌파

8 2012-2013 시즌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제 슬슬 스쿼드 멤버로써 후반 교체나 로테이션 멤버로 쓰이는 듯 했으나, 시즌 중반을 넘어서며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며 거의 대붕괴 수준으로 추락한 맨유 미들진을 마이클 캐릭과 함께 먹여살리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나이 마흔하나 먹은 아저씨가 경기장 헤집는 모습을 보며 해설자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 시즌 초반에 잠시 보여줬던 경기력 하락으로 이제 정말 은퇴할 때가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어느새 싹 사라져 버렸고(...). 2013년 3월 1일, 팀과 1년 재계약을 하면서 2014년까지 올드 트래포드에 선수로서 남게 되었다. [3] 이러다 2020년 까지 1년 재계약 오피셜 뜰 듯

3월 15일. 본인의 성인무대 커리어 1000경기 및, 라울 곤잘레스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출장 공동 1위(144경기)를 달성하는 대기록의 역사를 세웠다. 상대는 챔스 16강 2차전 레알 마드리드. 본인도 선발출장하여 풀타임 소화하면서 공수 양면에서 그 후덜덜한 레알 미들진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팀에 해가 되는 행동은 그 어떤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선수의 이단옆차기로 인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는 2014년 11월 27일 바르셀로나의 챠비 에르난데스가 아포엘 니코시아와의 경기에서 61분 이반 라키티치와 교체되며 깨진다. 샤비는 총 151경기 출장으로 1위로 올라섰고, 이에 대해 긱스는 "사비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단독으로 보유했던 기록이 깨진 건 아쉽지만, 그 기록을 깬 주인공이 사비여서 아픔이 덜한 게 사실"이라고 했지만....

시즌 종료와 동시에 은사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예토전생당했던 폴 스콜스의 은퇴,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과 필립 네빌마저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수놓았던 "퍼거슨의 아이들"은 이제 정말 긱스만 남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합류했던 긱스가 가장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남는 모습은 축구팬들에게 상당한 아이러니함을 가져다 주었다. 데이비드 모예스 체제로 재편될 13-14시즌 맨유에서는 플레잉 코치를 맡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나 현재로서는 확정된 것이 없는 상태. 하지만 팬들로서도 아마 다음 시즌이 "선수" 라이언 긱스를 보게 되는 마지막 시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퍼거슨의 OT 고별전이 끝나고 스승에게 바치는 노래를 불렀다. 믿으면 골룸

9 2013-2014 시즌

7월 1일자로 데이비드 모예스 체제로 재편된 맨유에서, 필립 네빌과 함께 정식으로 맨유 코칭스탭 라인에 합류, 플레잉 코치(선수 겸 코치)를 맡게 되었다. 경기 안풀리면 자기가 뛰쳐나갈듯

공식적으로 맨유의 코치진에 합류하면서 경기 출전을 보기 힘들 듯... 했는데 가끔씩 뜬금없이 출전해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신다.(..)답답하니 내가 들어간다체력 문제 때문에 풀타임은 불가능하지만 킥력은 여전해서 출전할 때마다 걸레버리톰 클레버리, 0레기애슐리 영 따위들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신다... 흠좀무. 긱스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다름아닌 챔스 조별예선 레버쿠젠전과, 16강 2차전 올림피아코스전. 그날 레버쿠젠의 미드필드진은 나이 41살 긱스 한명에게 완전히 관광당했고, 1차전을 승리로 가져갔던 올림피아코스 또한 미들진에서 긱스에게 휘둘리다 네덜란드의 모 축구선수에게 해트트릭을 얻어맞고 침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금 과장 섞어서, 경기 한번 나올때마다 시즌 내내 파멸적으로 눈 썩는 경기력을 보여준 맨유 미들진에서 제일 훌륭한 활약을 보여준다 할 정도. 1년 더 해도 될거같은데

시즌 말미, 데이비드 모예스감독이 경질 당하면서 임시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긱수겸경기지면 바로 가정방문 들어가는거다
37라운드 헐시티전에서 후반 25분 교체선수로 친히 출장하여 반 페르시의 득점을 도우는 등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하였다. 이 참에 한 시즌 더

10 2014-2015 시즌

2014년 5월 19일 맨유의 차기 감독으로 루이스 반 할 감독이 선임되면서 수석 코치에 내정되었다. 아무래도 구단 차원에서 차차기 지도자를 맡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키우는듯. 감독 유망주 반 할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구단에 정식으로 합류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마침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러나 맨유와 EPL을 통틀어 역대 최고였던 선수의 현역생활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맨유 통산 963경기 출장. 안돼 1000경기를 못 채우다니

은퇴 후 그의 등번호는 유망주 아드낭 야누자이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묘하게 아까운 느낌. 그리고 역시나 11번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11 2015-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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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저 놈만 나가면 감독인데... ???: 감독은 천천히 하는게 좋다 친구야..

저번 시즌에 이어서 판 할의 수석코치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번 시즌은 작년과 다르게 판 할 감독이 훈련장과 경기 당일에서의 권한을 부여했고[28] 전술적인 부분에서 긱스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과 스완지 전에서 2:1로 승리한 것. 이 경기 모두 긱스의 전술로 경기를 했다.
이번 시즌 판 할의 부진으로 다음 시즌 무리뉴와 함께 감독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판 할이 경질되고 무리뉴가 맨유 감독에 선임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긱스가 수석 코치 직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주제 무리뉴가 감독으로 공식 선임 되었다. 팀은 긱스가 U-21의 감독이 되기를 원하고, 긱스는 판 할의 후임 감독이 되기를 원했으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긱스가 떠난다고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 무리뉴는 어떻게든 긱스가 남게 하기 위해 원하는 어떤 자리든 내주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실망시키지 않는 댓글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무리뉴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7월 2일, 자신의 야망의 위해 맨유를 떠났다. 29년간 오로지 맨유만을 위해 헌신했던 마법사도 끝내 막을 내렸다.

12 라이언 긱스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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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칸토나는 훌륭한 선수다. 하지만, 라이언 긱스만큼은 아니다."

- 요한 크루이프

"나는 내 현역 시절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라이언만큼은 결코 넘을 수 없었다."

- 마크 오베르마스

"판타지스타? 그 말은 라이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긱스가 프랑스 사람이였다면, 나는 벤치에 있었을 것이다."

- 지네딘 지단

"축구장 왼편은, 긱스의 영지다."

- 루이스 피구오른쪽은 내 영지

"절대자란 말은 함부로 쓰는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라이언은 왼쪽라인의 절대자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가 하는것을 모두 해낼 자신이 없다. 라이언이 체코선수였다면, 벤치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선수는 다름이 아닌 나일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 파벨 네드베드

"프리미어리그를 11번 제패한 선수를 두고 무슨 잔소리가 필요한가? 그 경력이 그를 증명해주고 있다."

- 주제 무리뉴

"그는 놀랍고 또 놀랍습니다. 단지 17세의 소년으로 믿을 수 없는 재능을 보여줬던 그 때부터 36살의 노장으로 필드에 오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경이로움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 알렉스 퍼거슨

  1. 85년부터 긱스가 맨체스터 시티의 유스에 속해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당시 시티의 스카우트였던 데니스 스코필드의 딘스축구클럽에서 뛰었던것일뿐 정식유스계약은 아니였고 상주하는 유스선수도 아니였다. 결정적으로 긱스는 유나이티드 팬이였고 당시 학교에서 럭비선수로도 뛰고있었다. 14세 생일날 정식유스계약이 공식적인 유스커리어의 시작이다.
  2. 모예스 경질 후 2013-2014시즌의 남은 경기를 감독대행으로 수행했다. 답답하니 내가 뛴다 맨유의 김수겸
  3. 원래 영상 자체가 있었으나, 차단당하여 바꾸었다.
  4. 이때 현 맨유의 주전 수문장인 다비드 데 헤아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5. 그래서 풋볼 매니저시리즈 할때 긱스 프로필을 보면 이중국적란에 시에라리온이 적혀있다. 만약 웨일즈 국가대표도 안가고 시에라리온 국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웨일즈보다 더 안습의 국가대표 경력을 쌓았을수도 있다. 어쩌면 조지 웨아의 시에라리온버전이 될지도. 공교롭게도 하필 둘이 이웃나라다(...)
  6. 우리가 얼핏 보기엔 그냥 백인으로 보이지만, 서양인 눈에는 백인의 혼혈 구분이 다 간다고 한다. 긱스옹과 혼혈로 인한 케이스로 줄리엔 강 역시 인종차별을 받았다.
  7. 그 때문인지 경기장에서도 인종차별 느낌이 드는 제스처가 발생하면 표정이 급 안좋아진다. 단적인 예로 2009년 맨유 방한경기 당시 논란이 됐던 마체다의 골 세레모니. 선수단 짬밥 No.1인 긱스가 정색을 하고 달려와서 마케다를 뜯어말렸다.
  8. 클럽 월드컵의 전신인 도요타 컵 포함
  9. 24년 동안 방영한 최고 인기 드라마에서 첫회 방송부터 종영까지 계속 주연배우로 출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10. 베컴의 경우 러닝크로스는 전문이 아니었다. 베컴은 잠시 키핑-> 택배배달이 메인
  11. 맨유 역대 최다득점 8위다.
  12. 이 정도 극찬을 받는 윙어로는 루이스 피구가 있다. 그 역시 본좌에 전혀 손색이 없다. "좌긱스 - 우피구"는 그야말로 꿈의 조합.
  13. 제대로 보고 싶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선정된, 99년 FA컵에서의 아스날 전을 보자. 긱스가 셔츠를 벗고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지금은 보기 어려운 흥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14. 참고로 오로지 클럽 출장 경기만이다. 국대까지 합치면 선수 통산 출전 기록이 1000경기를 넘어간다! 이에 버금가는 레전드는 오로지 파올로 말디니만이 비견된다.
  15. 2014년 9월 30일 프란체스코 토티가 만 38세 3일에 득점하며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는 역대 최고령 기록이었다.
  16. 이 기록 또한 2016년 10월 21일 호날두가 통산 31도움을 기록하며 갱신되면서 2위로 밀려났다.
  17. 아버지인 대니 윌슨이 잉글랜드 출신 또는 대표팀이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사실 대니 윌슨은 웨일즈 럭비 대표에 뼛속까지 웨일즈 사람이었고, 잉글랜드 럭비 리그에서 뛸 때도 자신이 웨일스 출신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18. 이 득점은 올림픽 축구 역대 최고령 득점으로 기록. 1924년 파리 올림픽 당시 이집트의 헤가지가 보유했던 기록(27세)을 갈아치웠다. 깨질 일이... 있으려나.
  19. 이 정도 극찬을 받는 윙어로는 루이스 피구가 있다. 그 역시 본좌에 전혀 손색이 없다. "좌긱스 - 우피구"는 그야말로 꿈의 조합.
  20. 젊은 시절의 긱스는 가레스 베일 부럽지 않은 주력을 갖고 있었다.
  21. 눈을 가렸지만 딱 봐도 긱스인지 알 수 있는 수준의 사진을 실어서 보도했다.
  22. 긱스 동생이 둔기를 들고 긱스에게 쳐들어가려 했었다는 뉴스가 떴다. 이런 상황에서 친자확인 결과 긱스 남동생의 아들이 알고보니 긱스의 아들로 밝혀진다면 그 다음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3. 긱스와 함께 맨유에서 100경기 정도 출전했으며 세번의 정규 리그 우승을 함께 만들었고, 아직 미혼이라는 이 선수는 맨유를 떠난 상황이라고(former teammate)하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력한 용의자였는데 알았는데 알고보니 드와이트 요크였다.
  24. 하지만 나타샤가 일방적으로 "자신은 피해자다"라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현지에서는 "나타샤 역시 가해자이다"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긱스 한 명과의 밀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은 수의 선수들과 원나잇 스탠드를 가진 것을 비롯하여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 이머전 토머스의 등장으로 자폭하는 심정으로 일을 터트렸다는 것으로 인해 현지에서는 긱스만큼이나 '미친 년'으로 까이고 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나요? 긱스의 아내인 스테이시 역시 "나타샤가 긱스를 망가트리고 빼앗기 위해 터트린 폭탄이다"라며 "내 남편을 빼앗기지 않겠다"라며 긱스를 용서하겠다고 한 것으로 인해 더욱 더. 이렇게 되니 이제 찌라시들은 스테이시 여사를 까더라. 된장녀라고... 이쯤 되면 단순한 불륜극이 아닌 치정극이다. 아침드라마.
  25. 조선일보, 동아일보, YTN, 한겨레, 연합뉴스
  26. 그래도 로드리는 아직 이혼을 하지않고 있는데 이는 자기 아버지 이혼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겪은걸 아이들에게 물려주고싶지 않다고. 또한 형 라이언은 이혼당시 14-15세라서 맨유 유소년 클럽 동료들과 축구를 하거나 놀면서 고통을 잊고, 아버지같은 존재인 알렉스 퍼거슨이 있어서 안정을 찾았지만 훨씬 어린 자기자신한테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라이언이 동생한테 신경을 좀 써줬다면 어느정도 상처는 덜했을지도...
  27. 알고 보면 2010-2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맨유에서 가장 많이 뛴 선수로 기록되었다. 당시 2위는 마이클 캐릭이었고 박지성은 3위.
  28. 훈련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선수들이 불평하던 판 할의 반복적인 훈련 방식 대신 퍼거슨 시절의 훈련 루틴을 도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