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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소속의 공격수에 대해서는 아드리아노 문서를, 베식타쉬 JK 소속의 수비수에 대해서는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본명 | 아드리아누 레이치 히베이루(Adriano Leite Ribeiro) |
생년월일 | 1982년 2월 17일 |
국적 | 브라질 |
출신지 | 리우데자네이루 |
신체 조건 | 189cm, 87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주로 쓰는 발 | 왼발 |
소속팀 | CR 플라멩구(2000~200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01~2002) ACF 피오렌티나(2002)[1] 파르마 FC(2002~2004)[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04~2008) CR 플라멩구(2009~2010)[3] AS 로마(2010~2011) SC 코린치안스(2011~2012) CR 플라멩구(2012)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2014)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2016) |
국가대표 | 48경기 / 29골 |
별명 | L'Imperatore (황제) |
Imperador[4]
한 때 세리에 A의 명실상부 최강 공격수
2004 코파 아메리카 3관왕 (우승, MVP, 득점왕)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3관왕 (우승, 골든볼, 골든슈) 석권
하지만...
전무후무할 비도네 도르 3회 수상자
축구 역사상 최악의 멘탈 중 한 명
만개했던 재능을 축구게임 속에서나 오랫동안 보여준 비운의 탕아(宕兒).
목차
1 개요
유례없던 파워와 누구보다도 강한 무시무시한 슈팅력으로 충격을 선사했던 브라질의 괴물 공격수
호나우지뉴와 함께 당시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브라질의 괴물같은 중앙 공격수이자 호나우두의 뒤를 이을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본좌였던 선수. 괴물같은 피지컬을 가진 공격수이자 브라질 출신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마지막으로 이었던 공격수이며 국내팬들은 힘드리아누, 인테르의 황제라고도 불렀었다. 물론 해외에서의 닉네임 역시 황제지만, 이는 아드리아누의 이름이 옛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비슷하기 때문. 축구게임들에서 엄청난 명성으로 유명하지만 당시 실제 축구계에서도 게임만큼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던 공격수이며 럭비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몸싸움, 밸런스의 파워와 카를로스, 바티스투타 뺨치는 무서운 슈팅력으로 유니크한 스타일과 명성을 보유했었다. 클럽 무대에선 전성기 당시만 하더라도 매년 여름 이적시장이 개방될 때 마다 거론되던 초특급 대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드리아누의 이른 몰락 이후 브라질은 10년이 넘게 세계 최고 수준의 중앙 공격수가 나오고 있지 않다.
브라질 대표팀의 고질병이 된 스트라이커 기근의 시발점이 된 선수이기도 하다. 14년 기준 30대 초반으로 성실하게 선수생활을 했다면 아직 창창할 나이인데 정신력의 문제로 2006년 이후 완전히 져버렸다. 이 바람에 브라질은 호마리우와 호나우두의 후계를 잇지 못한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루이스 파비아누를 최전방에 세워야 했다. 여기에 한때 호나우두의 후계자 중 한명으로 불리던 파투 역시 유리몸+막장 멘탈로 '제 2의 아드리아누'가 되어 몰락하고, 14년 브라질 대회에선 그나마 전임 루이스 파비아누처럼 최소한의 기대치 정도는 충족시켜주던 프레드가 월드컵 직전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 후보 멤버 조는 함량 미달이었던 탓에 처참한 사태를 겪게 되었다. 그나마 이들의 계보를 이어줄 마지막 보루인 디에고 코스타는 스콜라리 감독의 삽질과 더불어[5] 스페인 국대로 빠지는 바람에 결국 브라질 공격진의 몰락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2 클럽 경력
2.1 브라질에서 이탈리아로
커리어도 나름대로 굉장했다.
1999년부터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이름을 서서히 드러내밀기 시작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10대 후반부터 알리기 시작했지만 별 다른 화려한 활약을 보여주진 못 하였다. 그러나 이후부터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고향팀인 플라멩구에 입단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고, 2001년에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루진 못 했지만 뛰어난 활약을 펼쳐 이를 눈여겨본 세리에 A의 명문 인테르가 적극 오퍼를 넣어 인테르에 입단한다. 하비에르 사네티처럼 인테르의 구단주인 마시모 모라티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한다.
2.2 기적을 부르는 사나이
이후 프리시즌 베르나베우컵에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강력한 대포알 프리킥 골을 넣으며 자신의 재능을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시즌 시작 후 미미한 활약[6]으로 피오렌티나로 팀을 옮기는 등 잠시 동안 팀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당시 세리에A 시절부터 자신이 왜 타고난 선수인지 보여주었는데... 자세한 글을 보고 싶다면 이 레포트로
2.3 파르마 FC
유럽 최고의 공격력 아드리안 무투-아드리아누, 굉장히 파괴적이었던 파르마의 4-3-3
첫 시즌엔 기대와 달리 꽤나 부진해서 피오렌티나로 임대되었고, 거기서도 부진하여 다음해에는 파르마 FC로 반값에 이적해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유망주 테크를 타나 싶었다. 그런데 거기서 재능이 제대로 터져버렸다.
2002 - 2003시즌에 에이스들의 이적으로 힘들어 하던 파르마를 세바스티앙 프레이, 마테오 페라리, 마크 브레시아노, 마테오 브리기, 다니엘레 보네라, 나카타, 아드리안 무투 등과 함께 다시 정상궤도인 5위권까지 이끌며 2002-03 ~ 2003-04 겨울까지 37경기 23골을 넣는 대활약을 기록하고 결국 무투는 첼시로, 그리고 아드리아누는 인테르에서 다시 약 10배 가격에 되사간다.[7]
2.4 인테르 컴백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세계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던 월드클래스 괴물
괴물도 그냥 괴물이 아니었다. 파르마에서 아드리안 무투와 함께 가공할 만한 유럽 최고 수준의 공격력을 보여줬지만, 임페라토레의 짧은 전설은 인테르에서 태어나게 된다. 호나우두도 떠나버렸고, 크리스티안 비에리도 징징거리기 시작하면서 세가 기울 것으로 예상되던 인테르를 아드리아누가 다시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인테르의 황제로 인정받으며 비록 세리에의 3인자지만[8] 인테르와 브라질국대에서 스펙타클한 장면들만 보여주는 간지폭풍의 활약으로 04/05, 05/0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시키기도 하면서 인테르의 간판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유명한 더비 매치인 밀라노 더비만 보아도 AC 밀란의 간판인 카카나 안드리 셰브첸코와 아드리아누의 대결이라고 할 정도였으니...[9]
당시 일각에선 아드리아누가 04-05 세리에A에서 16골밖에 못 넣었다는 등의 이유로 과대평가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게 사실 당시 인테르는 확실한 주전이었던 비에리마저 시즌 초 2달 가까이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 할 정도로 급격한 하락세[10]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런 빈공과 팀내의 든든하지 못 한 지원[11]에도 불구하고 아드리아누의 힘으로 그 정도나 보여준 것이었다. 더욱 대단한 건 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 탈락을 했음에도 9경기 10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보여주며 04/05시즌 클럽기록 42경기 28골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가 무시무시한 임팩트를 남긴 진정한 이유는 바로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였는데,2004 코파 아메리카에서 출전 당시 자국대표팀의 우승과 함께 MVP, 득점왕까지 모두 독식해버리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시즌 후인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조별경기부터 대회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굉장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4강전 독일과 결승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는 2골씩 몰아치며 관광 시켜버리고 역시나 우승, 골든볼, 골든슈를 독식하며 상이란 상은 모조리 싹슬이 해버린다. 지금까지도 메이저 대회에서 연달아 치러진 코파 아메리카와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 3관왕을 해낸 건 아드리아누가 유일하다는 점을 볼 때 당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포스를 풍겨냈는지 알 수 있는 요소이다.
그렇게 만 22세의 나이에 2004년 7월 11일부터 2005년 6월 25일까지 클럽, 국가대표팀 경기 통합 40득점을 찍게 되는데 이 기록은 당시 내로라하던 공격수 호나우두, 앙리, 셰브첸코 등의 득점기록을 넘는 수준이었다. 더 센세이셔널 했던 건, 국가대표팀무대에선 2004, 2005년 두 해 동안만 23경기 19골을 폭격해버리며 "뚱뚱해진 호나우두는 필요없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드는 대단한 골결정력을 보여주고 클럽, 국가대표 포함 코파아메리카부터 시즌 후의 컨페더레이션스컵까지 40골을 기록하는 동안 득점의 70%이상이 역전, 동점, 결승골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이 당시에 아드리아누가 출전했던 경기에서 경기의 흐름이 바뀌는 골은 모두 아드리아누의 골이었다 봐도 무방했다. 특히 경기의 마지막 결승골이나 막판 극적인 골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넣었고 빅 매치에서 엄청나게 강했다. 넣을 때 마다 팀의 승부를 결정짓는 급이 다른 순도있는 골들만 우후죽순 터트렸었던 것. 말 그대로 세리에 진출 초창기에 얻은 별명인 기적의 사나이였던 셈.
그런 화려한 전성기와 찾아온 2006 월드컵, 카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그리고 아드리아누 이른바 판타스틱4를 앞세운 브라질이 우승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를 앞세운 프랑스에게 조련당하면서 8강에서 떨어지게 된다. 말이 좋아 판타스틱4지, 카카는 부상으로 일치감치 밀려났고, 호나우지뉴, 호나우두, 그리고 아드리아누 모두 하나같이 패트릭 비에이라와 클로드 마케렐레라는 미드필더의 산맥에 형편없이 막혔던 것이 패인이었다. 카카는 부상여파로 모습도 꾸준히 보이지 못 하고, 아드리아누는 2005-06 시즌 후반기부터 소속팀에서 잡음이 끈이지 않는 등 결국 대회기간 동안 활약을 조금이나마 해준 것은 호나우지뉴와 뚱뚱한 호나우두 정도였다.
여담으로 월드컵 도중 아이를 낳아 아이를 위한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 아이의 엄마가 같은 대표팀에 있던 호나우두의 전 애인이라고 한다.
06-07시즌 후반기[12]와 08-09시즌에는 국내팬은 물론 해외팬들에게도 각인되어있는 아들탄조합을 선보이며 굉장히 강력하고 신선한 포스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보여준 출전경기수가 의외로 드물어 축구팬들에겐 게임에서나 보일법한 조합이라 불리웠으나 이래뵈도 역시나 이름값답게 나올 때마다 보통 이상은 해주는 아주 알짜배기 조합이었다. 특히 오히려 강팀, 중요경기에서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만 나가면 귀신같이 못 하던 즐라탄과는 달리 망해가던 아드리아누가 더 좋은 활약을 해줄 정도. 물론 아드리아누의 선수생활 태도와 연이은 구설수로 출전이 줄어들며 그다지 많은 모습을 보이진 못 한 조합이다.[13]
2.5 그리고…
체중 조절에 실패한 아드리아누
갖가지 구설수에 오르던 아드리아누의 또 다른 전설은 2006년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부터 멘탈[14](...), 밤의 황제, 술드리아누, 탕아 등의 별명을 획득하며 부처 메이커로 자리잡는다. 걸핏하면 나오는 돌출행동 및 팀 이탈 등으로 구단주를 부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인테르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이 사람이 정말로 대단한 이유는 당시 인테르는 미하일로비치, 베론, 마테라치, 즐라탄, 크루스, 비에이라 등등 다혈질 적이기로 유명한 선수들도 주장 사네티의 리더쉽과 감독 만치니-무리뉴의 카리스마 아래 모조리 입닥치고 똘똘 뭉쳐서 플레이하는 팀이였기 때문이다. 아드리아누는 이런 팀에서 그 난장판을 놓은 것이었다.
2005-06 시즌 후반기에 훈련장에서 베론과의 마찰에 대해 자신을 협박했다고 징징대며 언론에 누설시키고 자신의 양아버지 같은 존재인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가 베론을 고향으로 강제컴백하게 만드는 공적을 세운다.기사 그리고 아드리아누의 멘탈 전설은 일단 월드컵에서 떨어진 후인 06/07시즌부터 시작하게 된다. 월드컵과 칼치오폴리 이후 상당히 게을러지기 시작했고, 그 공백도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24세 라이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오면서 존재감이 엷어졌다. 호나우지뉴가 월드컵 이후로 나이트클럽 단골에 과음 등을 일삼은 것은 유명하지만 아드리아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심했다. 과음, 폭식, 나이트클럽, 파티로 몸은 망가져 가고, 주전 경쟁에서도 밀려 결국 참다 못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브라질의 상파울루로 그를 임대를 보낸다. 고향에 갔다오면 아무래도 나아지겠지 싶어 취한 조치였으나, 이미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상파울루로 복귀한 뒤, 만치니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로 떠나고 주제 무리뉴 감독이 들어온다. 그리고 08/09 시즌 이때부터 정말 본격적인 난장판 전설이 시작된다. 여전히 놀고 먹는 버릇은 못 고쳤고, 이 무렵 아버지를 여의고 여친한테도 채여 우울증에 빠질만도 했지만, 그렇다고 동정표를 주기엔 도가 지나쳤다. 몸 관리는 점점 더 소홀해져 체중을 101kg까지 기록하고, 주구장창 와인을 마시고, 지각은 밥먹듯이 하고, 게다가 훈련마저 빠지기 일수였다. 초딩도 아니고 독감이라는 핑계를 대고 빼먹은 적도 있으니 말 다했다.기사 이 와중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도리어 태권도 유단자인 즐라탄에게 뭇매를 맞는 일까지 생겼다.하지만 오니우가 출동하면 어떨까? 오!니!우![15] 물론 한 덩치하는 그가 맞아서 정신 차릴 리가 없었다.
놀랍게도 말 안 듣고 불성실한 선수를 엄청 싫어하기로 소문난 주제 무리뉴 감독이 어떻게든 아드리아누를 갱생시키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아드리아누 본인도 무리뉴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때 아드리아누만 이런 게 아니라 훌리오 크루스도 갖은 민폐를 끼쳤지만, 크루스는 그래도 무리뉴에게 사과하고 나름대로 갱생에 성공했다. 사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아드리아누를 쉽게 내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인테르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가 강력하게 실드를 쳐주고 있었다. 과거 호나우두의 장기 부상 때에도 무던히 인내를 발휘했지만 이번엔 여러모로 스케일이 달랐다. 호나우두는 열심히 했지만 유리몸이었던 것이고, 반면 아드리아누는...
모라티 구단주는 "아드리아누에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지금은 굉장히 힘든 때이다", "처음 올 때도 부진했지만 파르마에서 그랬듯이 부활할 것이다" 등 계속 두둔했으며[16] 주제 무리뉴 감독도 이런 모라티의 설득에 아드리아누에게 기회를 끝까지 주려고 했다. 물론 인테르의 동료들도 아드리아누가 재기할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주었다. 특히 막스웰, 하비에르 사네티 등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 아드리아누가 남아주길 원한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희망고문이었다.
잉여인간으로 한해를 보내고, 대망의 2009년 4월 브라질 대표팀의 월드컵 예선에 나갔다. 그리고 인테르의 연고지인 밀라노로 만시니, 막스웰, 세자르 등은 돌아왔는데 아드리아누가 없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가족들이랑 같이 지내고 있다고. 에이전트는 주중 아드리아누가 돌아온다 했지만,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돌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잃었습니다'라고 선언하며 은퇴하기로 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모라티 구단주도 더 이상 붙잡지 않기로 결심하고, 상호해지에 합의해서 아드리아누를 방출한다. 그렇게 아드리아누는 세바스티안 다이슬러처럼 조기 은퇴한 비운의 천재가 되었...훼이크다 병신들아! 결국 아드리아누는 브라질의 플라멩구에 입단한다. 그럼 상호해지할 때 받은 돈은? 당연히 먹튀했다. 결국 인테르의 간판 스타였던 아드리아누는 인테르를 포함하여 세리에 A 팬들에게 한낱 쓰레기로 전락했다.
2.6 CR 플라멩구
선수로서 마지막 활약 시기
브라질 리그 득점왕
이제 선수로서 끝난 줄 알았지만, 그나마 남은 클래스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였다. 아드리아누는 플라멩구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리그 득점왕 + 리그 베스트 11 + 리그 우승 업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 둥가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아드리아누를 탈락시킨다. 브라질 축구가 아니라는 비난조차 들을 정도로 브라질 팀에 조직력을 강조한 감독인만큼 썩어빠진 근성으로 팀 분위기나 깨는 선수는 질색이었으니 당연했다.[17]
그리고 빈자리는 아드리아누에 비하자면 한낱 1부리그 주전 선수에 불과했던 루이스 파비아누가 메꾼다.[18] 이후 아드리아누는 틈틈히 유럽으로 복귀한다는 뉘앙스를 던졌고, 유럽으로 복귀하면서 그 많은 팀 중에 하필이면 AC 밀란으로 복귀하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폭풍처럼 비난 받았다.
2.7 AS 로마
그러더니 AS 로마로 진짜 돌아왔다. 인테르팬은 얼굴도 보기 싫겠지만 모라티 구단주는 "아드리아누가 로마에서도 잘 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대인배임을 인증했다.
아드리아누의 전성기 기량을 생각해보면 탁월한 영입일지도 모르지만, 여태까지 저지른 짓들을 보면 아무리 자금이 딸려도 너무나 무리한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라니에리 감독도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아드리아누가 또 사고를 치면 '남은 주급없이 방출한다'는 조건을 걸고 있기에 딱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과연 재기하여 토티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 자리에 오를지, 아니면 변함없는 밤의 황제로 끝날지는 모두 아드리아누 자신에게 달렸다. 일단 본인은 갱생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호나우지뉴가 밀란에서 열심히 다이어트할 때 아드리아누 본인은 꼴랑 1킬로그램을 뺀다. 게다가 시즌이 시작하기 전, 부상으로 한 달간 못 나온다고 한다. 로마는 급한 김에 비슷한 스타일의 마르코 보리엘로를 밀란에서 임대 영입했다. 하지만 2010년이 다 가도록 체중 감량 실패, 부상으로 벤치 신세에 오히려 보리엘로가 주전으로 떠올랐고 아드리아누는 벤치에 앉아 있기도 힘겨운 시즌을 보내면서 22%의 득표율을 기록, 12%로 2위에 오른 아마우리를 제치고[19] 최초로 비도네 도르[20] 3회 수상자가 되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징징거리는 중에 보다 못한 호나우두가 '그냥 브라질로 돌아오라'고 인터뷰에서 언급도 하고 아드리아누 본인도 '이런 식이면 나가겠다'고 호소를 해보았지만 라니에리 감독은 '불만 있으면 브라질로 돌아가라'라고 못 박아서 한동안 얌전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콰밥만훈과 함께 엮여서 오호대괄호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저들을 아드리아누에 견주는 게 굴욕일 정도이다[21]. 적어도 이들은 먹튀라고 욕은 먹었어도 다른 팀으로 이적하여 그 오명을 씻으며 맹활약하고 있으니 말이다. 만시니만 빼고... 최근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또 부상으로 한달 끊었다. 게다가 몸무게가 105kg[22]으로 세리에 A에서 가장 무거운 선수로 기록되었다.
결국 로마에 가서도 성격을 못 고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코리치안스로 이적하면서 브라질 무대로 돌아왔다.
2.8 SC 코린치안스
하지만 여기서도 부상으로 6달이나 쉬다가 복귀해선 4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는 부진을 보인다.
게다가 2011년 12월 23일에는 장난으로 총을 쏴 여자를 부상시켰다는 총기사고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기사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 코리치안스로 이적해서도 여전히 성격을 못 고치고 또 쫓겨났다.
2013년 말엔 소속팀 없이 개인 훈련에 매진하기도 하였다. 현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있다.
축구팬이라면 그 시절의 짧은 임팩트보다는 그 이후 길게 늘어진 온갖 막장 행보~~는 잊지 못 할 것이다.
2.9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2014년 1월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와 다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훈련 불참으로 또 쫓겨났다. 아드리아누의 현역생활은 사실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갱단과 마약거래에 연루되어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방출 뒤 자택에서 근신중이라고 한다. 이후 프랑스 리그 2 소속 르아브르 AC와 계약 협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다시 축구 생활을 이어 갈 것이라고 보았으나...
2014년 11월 4일 마약 조직과 거래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브라질의 주요 언론들은 현지 검찰의 말을 인용해 “아드리아누가 리우데자네이루 검찰에 기소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최대 징역 10년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2부리그 르 아브르로 복귀를 한다는 기사가 나왔었으나 구단 측이 자금 부족을 이유로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입단이 불발되었다.
그러다 2016년 1월에 미국 프로축구 4부리그 격인 NPSL(National Premier Soccer League)의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FC에 입단[23]하며 겨우 소속팀을 찾았다.
그리고 재계약에 실패하며 현재 브라질의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축구 역사상 손꼽힐 정도로 빠르게 몰락한 선수가 아닐지...는 무슨 SNS 만 찾아봐도 얼마나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지 알수있다.
3 플레이 스타일
데이터 주의 어차피 영상은 이미 떳다 골라서 보기 취향존중
게임에서나 나올 것 같은 '어거지'가 가능한 괴물[24]
적수가 없는 엄청난 파워[25]
무시무시한 왼발 슈팅[26]
프로필에서 볼 수 있듯이 말도 안되는 무적의 피지컬[27]을 타고 났다. 전례 없던 유형의 충격적이었던 브라질리언 공격수는 무지막지하게 막강한 피지컬을 이용하여 타겟터로 출전하였지만 테크닉 또한 워낙 뛰어나 심심하면 돌파도 시도하였다. 거기다 환상적인 신체조건으로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수비수가 거칠게 견제해오면 본인의 힘으로 더욱 거칠게 압도하여 공격하는 뭐 이런 미식축구에서나 볼법한 괴물같은 공격을 자주 보여주었다. 딥라잉 스타일도 보여 2선으로 내려와 공격을 진두지휘하기도 했으며 수비에 틈이 생기면 직접 개인능력으로 수비진을 초토화 시키는 그야말로 즐라탄이 연상되는 파워풀, 스킬풀한 스타일의 공격수[28]였다.
극단적인 왼발 플레이어였으며 강력한 왼발 프리킥과 대포알 중거리 슛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왼발잡이의 약점을 오히려 극대화 해 오른발슈팅의 궤적마저 만들어 내는 강력한 아웃사이드 슈팅을 기가 막히게 잘 구사하였다. 거기다 볼을 다루는 기술도 너무 좋아서 드리블돌파는 기본에 바디페인팅, 맥기디 스핀, 백힐, 알까기(Nutmeg)등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인기들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다. 다행히(?) 축구지능은 준수해도 피지컬만큼 뛰어나진 않아서 말디니, 네스타, 칸나바로 등의 수비수가 전술적으로 최대한 봉쇄하면 어떻게든 막아지긴 하였다.[29] 단, 그의 이러한 장점들은 최소한 프로선수로써의 '적극성'이 기반되야 하는 것인데, 2006년 몰락할 때부턴 그라운드 안밖의 사건사고와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었고, 경기에선 승부를 신경쓰지도 않고 발로텔리 같이 설렁설렁 뛰는 아마추어적인 태도가 일관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장점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신체적으론 목 근육, 허리 근육 둘레와 어깨가 굉장히 넓고 헤비급 격투선수 같은 큰 체구를 지녔으며 공식 프로필 상으론 189cm에 80대중반의 몸무게를 지닌것으로 기록되 있으나 항간엔 운동 꾸준히 하던 전성기시절조차 95kg에 육박했다는 루머 아닌 루머도 존재 한다. 무리뉴도 첼시 1기 시절 드록바가 기대에 못 미치던 2005년에 아드리아누 영입을 위해 접촉한바 있으며 인테르 감독 때 아드리아누를 첼시시절 드록바를 활용했듯이 써먹으려고 한걸 보면 답이 나온다. 이 선수가 정말 괴물공격수로 평가받았던 이유는 축구선수로써 갖춰야 할 신체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선수들만이 가지고 있는 경기를 뒤엎을수 있는 크랙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첩성에 대해선 자신보다도 체구가 빈약한 상대선수를 바디페인팅으로 제쳐버린다. 또한 밸런스에선 그리스전 골 장면 같이 상대수비수의 백태클을 다리힘만으로 버텨내고 드리블을 이어간다. 점프력도 뛰어나 타겟 공격수로 출전하여 밀라노더비 헤딩결승골을 집어넣는등 모자람이 없었다. 거기다 스피드마저 뛰어나서 움짤들과 같이 스피드를 이용하여 드리블돌파도 능수능란해서 2004-05 세리에A 6라운드 우디네세전에선 자기팀 진영부터 상대팀 박스까지 3명의 선수를 제치고 골을 넣기도 하였다. 전성기 시절엔 체력조차 걱정 없어서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제대로 활약을 못 해주던 인테르의 공격을 혼자 2년동안 캐리했다.[30]
그 중 역시 파워와 슛팅력이 너무나도 강력했다.
밀라노더비에 출전할 때마다 그의 전담마크를 맡았던 선수는 야프 스탐이었는데, 그 스탐조차 아드리아누를 상대로 힘에서 제대로 압도한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드리아누의 파워가 얼마나 강력하냐면, 2004-05 세리에 A 3라운드 아탈란타전에선 195cm가 넘는 거구의 상대수비수를 치달후 돌파하는 과정에서 어깨로 그냥 밀어뜨리고 박스 근처에서 강력한 슛으로 키퍼 손을 맞추고 결승골을 넣는다. 뿐만 아니라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 독일전에선 현 레스터시티 돌풍의 주역이자 당시 독일의 차세대 유망주 수비수였던 그 단단한 로베르트 후트를 영혼까지 털어버리기까지 하였다. 당시 활약에 대해 독일대표팀 에이스였던 미하엘 발락은 Youtube FIFA채널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리뷰에서 "그는 브라질대표팀의 강렬했던 월드클래스 선수"라 평가하기도 하였다
근데 그의 슛팅력은 그의 괴물같은 파워마저 별로 돋보이지 않게 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간단히 말해 제자리에서 바로 차거나 한 걸음 정도 디디고 차는데도 키퍼가 몸도 못 던질 정도. 드록바나 즐라탄이 골키퍼의 손이 닿기도 전에 꽂아버리는 슈팅력을 가졌다면 아드리아누는 골키퍼가 반응하고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박아버리는 믿을 수 없는 슈팅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슛팅 파워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 바로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그리스전 중거리슈팅인데 측면에서 중앙으로 세번정도의 스텝만 밟다가 90도가 넘는 각도에서도 가까운 포스트로 대포알 슛을 때려버린다. 더욱 무서운건 이게 수많은 강슛들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결승 아르헨티나전 골에선 상대 선수의 슬라이딩태클을 뛰어넘고 2번의 스텝만 밟은 채로 역시 90도 각도에서 키퍼가 손을 뻗기도 전에 골대에 미사일을 쏴버린다. 또한 세리에A 경기에선 25미터 지점에서 144km/h강슛을 쐈는데 크로스바를 맞은 공이 다시 25m가량 튀어나오는...이 영상을 본 알X의 어느 네티즌은 되돌아 오는 공이 이청용 슛보다 쎄다는 망언도... 2002년 파르마 FC시절 세리에A 모데나와의 경기에서는 150Km/h가 넘는 제자리 레이저 슛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2004-05 세리에 A 1라운드 키에보전에선 145km/h가 넘는 속도의 땅볼슛 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골키퍼가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골대로 슈팅이 꽂혀버리는 골를 보여준 장면만 해도 수십가지나 된다. 게임에서도 그렇지만실제로 파워와 밸런스, 그리고 슛팅력이 너무나도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선수였다. 전성기 때의 이 선수에게 슈팅찬스를 내줬을땐 최소 골대로 향하는 엄청난 강슛은 헌납해야 한다고 봐야한다. 피지컬적인 면에선 역대 어느 축구선수와 비교해봐도 절대 꿇리지 않는 괴물이었다.
어찌보면 현 시대 축구에서 가장 귀중한 스타일로 대접받는 완성형 공격수(컴플리트 포워드)같은 유형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던 공격수였다. 어렸을 땐 브라질대표팀 전 감독 레앙의 말마따나 1982 브라질 황금4중주시절 대표팀에 세르징요 출라파 같은 스타일을 이을 고공폭격기로 예상되었으나 2004년부턴 어느 역할이나 완벽무결점하게 소화해내는 기량으로 유럽 현지 전문가들에겐 현대적인 포워드라 평가되었다. 꾸준히 성장하여 지금까지 활약했다면 즐라탄과 함께 강한파워, 테크닉으로 대표되는 공격수의 양대산맥을 이뤘을것이다.
이 정도면 호마리우와 호나우두 같은 신급으로 평가하긴 이르더라도 최소한 한시대를 풍미할 괴수임에 틀림없다고 평가받았었다.
4 축구게임의 전설
위닝일레븐의 황제
아드리아누가 전성기이던 시절이 세리에 A의 마지막 전성기이자 동시에 위닝일레븐의 황금기가 겹쳐 막대한 시너지, 즉 게임상 능력치가 지존급으로 설정되며 무시무시한 인게임 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당시에 포스가 너무 강력해버렸던 탓에 10년이나 지난 아직도 유투브에 아드리아누 관련 영상의 댓글 중에는 외국팬, 국내팬을 안 가리고 PES와 관련된 댓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피파 온라인 1의 포스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긴하지만 아드리아누는 위닝일레븐에서 사기성의 정점을 찍었다. 몸싸움 90대후반, 슈팅파워99의 전설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위닝일레븐 시리즈에서 아드리아누는 보디 밸런스(몸싸움) 능력치가 90대 후반으로 최상급인 장신 공격수인데도 불구하고 스피드까지 빨라서 공을 잡고 그냥 달리기만 해도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슈팅력이 그 어느 축구게임에서도 느껴보지 못 한 파괴적인 수준이었는데 어느정도[31]냐면 역대 위닝일레븐 시리즈에서 선수 전성기동안 게임상 슈팅파워 스텟이 99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 아드리아누가 능력치 99를 받기 시작한 후부턴 호베르투 카를로스마저 슈팅파워가 98로 다운됐고, 이후 제라드가 96, 호날두가 97을 역대 슈팅파워 최고 스텟으로 기록한 적을 보면 당시 실축에서 아드리아누의 슈팅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러한 스텟은 인게임에서 공포스러운 체감으로 상대방에게 다가왔고, 컨디션 발딱이면 중거리슛만 차도 무조건 골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만약 막았어도 기본능력치인 슈팅파워 99의 위력으로 튕겨져 나와 클럽팀이나 국대 투톱이던 크리스티안 비에리, 에르난 크레스포, 오바페미 마르틴스, 호나우두, 호비뉴가 골.
세계 최고의 풀백이었던 반 브롱크호르스트마저 게임에서의 아드리아누에겐 소용 없었다.
신체 능력치나 드리블등의 능력치도 뛰어나 피파 온라인 3에서 호즐드라 불리며 찬양하는 즐라탄이나 호날두, 드록바는 이 시절의 아드리아누에 비하면 하위호환에 불과하다. 위닝 일레븐, 피파 시리즈는 물론이요 풋볼 매니저에서도 그 사기성은 여전했는데다가 FM에서는 인터밀란 시절 그의 투톱 파트너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다른 게임보다 더 사기적으로 나와서[32] 이 투톱을 쉽게 막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드리아누는 2006년의 전설이였다.
- ↑ 임대
- ↑ 공동소유
- ↑ 은퇴번복
- ↑ 두 시즌 남짓한 기간 동안 이견 하나 없는 인테르와 세리에A의 황제였다. 실제로 당시 세리에 팬들 사이에선 아드리아누가 루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넘사벽으로 지배적이었다. 지금도 구글에서 Imperador로 검색할 경우 adriano가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
- ↑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아 선수 본인의 불만을 샀다. 하다 못해 서브 엔트리에라도 넣었으면 나았을 것이다.
- ↑ 절대 아드리아누가 못해서 이런게 아니었다. 당시 인테르는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의 굉장한 공격수 욕심으로 FW포지션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의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호나우두, 비에리, 하칸 쉬퀴르, 니콜라 벤톨라 등..
- ↑ 한화로 약 495억원이었다고 한다. 그 전에 파르마에 팔때는 50억 정도(...).
- ↑ 이게 다 칼치오폴리 때문이다!는 우스갯소리고 당시 유벤투스나 밀란의 스쿼드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일단 두 구단에 비해 미드필더 진이나 수비진이 상대적으로 가벼웠고, 벤치 또한 라이벌들에 비해 너무 가벼웠다. 밀란의 공격수 후보엔 필리포 인자기, 욘 달 토마손, 아모로소등이 버티고 있었고 유벤투스 또한 델 피에로와 아드리안 무투 등 세리에 정상급 선수들이 후보에 득실거렸는데 인테르는 기껏해야 당시 유망주 수준이였던 오바페미 마르틴스나 재능이나 클래스는 확실하지만 유리몸이였던 알바로 레코바나 먹튀 반 더 메이데가 대기하고 있었다(...).
- ↑ 혹은 레전드급은 말디니와 사네티의 대결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 ↑ 비에리는 결국 다음 시즌부터 엄청난 폼 저하를 보여줬다.
- ↑ 앞서 서술했듯이 인테르의 미드필더, 수비진은 AC밀란과 유벤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웠는데, 미드필더진은 두 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원장악력이 별로 였고, 특히 수비진은 이 시절 인테르의 제일 고질적인 문제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즌 중후반만 가면 이길 경기도 비겨 버리는 수비집중력 저하가 심각했었기 때문이다.
- ↑ 전반기엔 부상으로 이탈
- ↑ 06-07 시즌부터 슬슬 멘탈이 터지기 시작하여 크레스포와 크루스가 번갈아가며 주전을 꿰어찼다.
- ↑ 매번 재기에 성공할 것 같이 보여지다가 망하는 무한 루프를 보여주는 심각하게 약한 정신력 때문에 생긴 별명. 이젠 아드리아누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 ↑ 오히려 덩치 탓인지 아드리아누는 싸움을 잘하면 잘하지 못하는건 아니다. 이건 유명한 사실이지만 즐라탄은 팀내에 마테라치도 이길 정도의 한주먹하는 유명한 싸움꾼이다. 그래서 비에이라가 즐라탄이 감정 조절을 잘 할수 있게 마인드 컨트롤을 자주 해주기도 했다.
- ↑ 모라티 구단주가 원래 선수들에게 너그러운 편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아드리아누를 데려온 당사자라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 ↑ 호나우지뉴 탈락 같은 경우는 둥가 감독이 꽤나 욕먹었지만, 아드리아누 만큼은 누구나 수긍했다.
- ↑ 물론 파비아누가 전성기 아드리아누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속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덕분에 인지도는 꽤 높은 편이다.
- ↑ 참 굉장한게... 아마우리는 2010년 1년동안 리그에서 한골밖에 못넣었다!
- ↑ 황금쓰레기통 상. 그 해 세리에 A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수상되는 상이다. 아드리아누는 2006, 2007년 2년 연속 수상했고, 2008년은 3위. 2009년은 이탈리아에 없어서 못 받았고, 2010년에 복귀하면서 탈환했다.
- ↑ 비도네 도르 기준이면 콰레스마가 1위 한번 2위 한번 차지한 것이 끝이다.
- ↑ 타겟맨답게 189cm로 키는 큰 편이지만 축구선수란 걸 감안하면 정말 심각하다. 디디에 드록바가 189cm에 91kg,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195cm에 95kg이다.
- ↑ 해당 기사에는 NASL소속 마이애미 유나이티드라 써져 있지만 명백히 오타다. 아드리아누가 입단한 클럽은 4부리그 NPSL소속 마이애미 유나이티드 FC다.
- ↑ 과대포장된 해석이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파르마부터 인테르 초반까지 20대 초반동안 힘으로는 당해낼 자가 없었고, 어떠한 선수를 대인마크 붙여도 힘으로 압도해버려서 전성기의 이 선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지역방어를 하며 그림자 수비를 붙이고 공 소유를 차단하는 것'이 유일할 정도였다.
- ↑ 왠만해선 두 명의 선수가 밀착마크해도 밀어내버릴 만큼 힘이 장사였다. 그래서 당시에 강력한 피지컬로도 유명했던 AC밀란 야프 스탐, 유벤투스 비에이라, 그리고 드록바, 발로텔리 등의 천적으로도 유명했던 맨유 비디치 같은 선수들과의 파워 대결에서도 밀려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파워의 소유자였다.
- ↑ 아드리아누가 전세계,국내 축구 팬들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심어준 가장 큰 이유. 보통 슈팅 좀 한다는 프로 축구선수들의 슛속도가 평균 130km/h안밖인데 아드리아누는 140km/h이상의 슈팅을 한 걸음만 디디고도 심심치 않게 보여줬다. 호베르투 카를로스나 리세와 같은 선수들의 슈팅파워와는 다른 느낌의 파워였는데, 카를로스나 리세의 슈팅이 맞으면 죽는 슛팅이라면 아드리아누의 슈팅은 공이 날라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다른 선수들이 많은 스텝을 밟고 날릴만한 슈팅을 가뿐한 자세로도 쉽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분명한건 슈팅 상황에서 발을 공에 닿을 때의 감각과 발목 힘이 엄청 공포스러운 수준이라는 것. 실제로 비에리는 2001-02 프리시즌의 베르나베우컵 레알마드리드와의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아드리아누 같이 강력한 슈팅은 본적이 없다"라고 극찬했을 정도.
- ↑ 미식축구판에서나 볼법한 미친듯한 운동 능력과 파워를 보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피지컬이 굉장히 강력한 선수들도 운동능력 상으로 한 두가지 약점은 갖고 있기 마련인데, 아드리아누는 모든 능력에서 막강했을 뿐만 아니라 왠만한 브라질리언보다 민첩하고 빨랐다! 몸매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 두꺼운 골격근을 지녔는데도 말이다! 괴물같은 피지컬과 환상적인 테크닉이 아우러졌을 때 어떠한 선수가 탄생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 ↑ 실제로 그의 인테르 시절 등번호도 10번. 그러나 즐라탄이 신체 조건에 비해 오히려 쉐도우스트라이커 성향을 지녔다면 아드리아누는 철저히 센터 포워드의 영역을 벗어나진 않았고 젊었던 즐라탄과 달리 거친 공중볼 싸움마저 짐승같이 즐기곤 하였다. 한마디로 둘은 보유한 강점과 스타일은 비슷하였으나 선수 개인의 성향은 완전 다른 유형이었다. 레반도프스키, 벤제마 같은 완전형 공격수의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에 시대를 앞서간 플레이를 보여줬던 것.
- ↑ 실제로 AC밀란과 아드리아누의 대결들만 봐도 야프 스탐 같은 파이터형 수비수보단 말디니, 네스타 같은 뛰어난 기술과 지능으로 막는 수비수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막아내었다.
- ↑ 물론 마르틴스나 훌리오 크루스도 있었지만 아드리아누가 없을 땐 공격진의 무게감이 달랐다.
- ↑ 이 당시 브라질은 아드리아누를 비롯해 호나우두와 카카, 호나우지뉴 등 세계 올스타급 선수진을 보유해서 거의 치트 팀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과방에서 처음으로 패드 잡아보는 여후배한테 아드리아누의 뽀록 중거리슛 얻어맞고 1:0으로 진 유저도 있다고.
- ↑ FM2006에서는 너무나 사기적인 성장력 때문에 지랄탄이라 불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