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58 10.jpg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다
鬼頭 莫宏[1]
1 소개
자유분방한 것으로 유명한 만화잡지 애프터눈에서도 가장 색깔이 뚜렷한 만화를 그린다 하여 토미자와 히토시, 우에시바 리이치와 함께 애프터눈 3대 괴작가라고도 불린다.
아이치 현 나고야 출신으로 나고야 공대를 졸업하고 샐러리맨으로 활동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삘 꽃혀서 동인 활동 시절부터 알던 주간 소년 챔피온의 편집부장의 소개로 상경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키토의 만화는 거의 무조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SF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현대 무기에 대한 고찰도도 높은편이고 묘사도 동종업계의 작가보다 충실한 편이다. 또한 나루타루부터 우리들의까지 원주민 신앙의 개념을 쓰는 등 고대 신앙같은 오컬트적인 묘사도 많이 들어가있다.
예전부터 동인활동 및 단편 투고등으로 만화를 그려왔던 내공덕에, 처음으로 시리즈로 그렸던 '반데미엘의 날개'가 해당 잡지의 연간 작품상에 2위로 입상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작품 내에 비행기(공군)와 자전거라는 소재를 빠짐없이 넣는 경향이 있다. (ex. 나루타루의 타마이 시이나의 아버지 타마이 슌지, 지어스의 아노 마키, 타나카 미스미) 특히 공군 대접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육군에 대한 취급은 나쁜 편.
공식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듯이 취미는 싸이클과 스포츠카라고 한다.
에반게리온: 파의 제3사도와, 데빌 서바이버 2의 셉텐트리온의 디자인을 맡았다.
나루타루 6권에 실려있는 전원 일러스트에서 노리오가 입고 있는 후드티를 보면 미국 록밴드 R.E.M.의 팬인듯 하다. R.E.M. 아래에 적혀있는 글귀인 Chronic Town은 R.E.M.의 데뷔 EP 제목이기에 빼도박도 못하고 확정.
R.E.M. 말고도 음악을 상당히 듣는 편인지 지금은 사라진 홈페이지 음악란에다가는 처음 산 CD는 티어스 포 피어스의 Song From The Big Chair였고 XTC의 Nonsuch와 Apple Venus를 작업때 듣는다고 적어놨다. 이외 슈퍼카, ASIAN KUNG-FU GENERATION, 뮤, 프로펠러헤즈도 좋아한다고 한다.
척추협착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2 특징
그의 작품 세계관은 세카이계와 코즈믹 호러들의 요소로 넘쳐 흐른다. 특히나 죽음에 대해 미화 시키는 경향이 강한 일본 만화계에 일갈을 날리듯, 사정없이 매우 현실적인 사생관을 과장없이 적나라하게 풀어 놓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내성이 없는 독자들은 죽음의 의미에 대해 독설에 가까울정도로 잔인하게 묘사하는것에 충격을 받고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 이러한 그의 사상은 시나리오 작가 우로부치 겐과 비슷하다.
또 하나의 주제로 현대 일본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묘사등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초, 중학교 학생들에 대해서나 부유함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폐점에 대하여 강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전체적으로 시니컬 하고 인간의 내면묘사를 은유나 과장없이 하는 경향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우울하게 만드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작가라 평할 수 있다. 이런 시니컬한 내용이지만, 그림 자체는 상당히 귀엽다.
3 정치적 성향
작품에 정치적인 성향이 꽤 많이 들어가 있는데 작가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싶어서 이런 것은 아니고 작품 자체가 집단과 개인간의 관계, 사회의 구조 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편인데 그래서 군데군데 정치사상적으로 보이는 면들도 많이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키토 모히로의 주된 정치적 성향은 적자생존에 가깝다고 평하기도 한다. 나루타루부터 우리들의에까지 적자생존적인 모습을 굉장히 많이 보이고 있는데, 작품의 주된 논지는 사람의 권리는 평등할지라도 그 가치는 평등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나에게 있어서 가치없거나 관심 없던 사람이 죽으면 별 관심이 안 가지만 반대로 가치있고 관심 있던 사람이 죽으면 크게 혼란스럽기에 우리는 남들에게 있어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큰 논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작품 맥락을 너무 표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나루타루 같은 경우 그러한 사상을 스도라는 캐릭터로 제시하는데, 작중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사상에 극단적으로 심취해 이를 실천하기까지 한 그 여파는 오히려 세계멸망과 자멸이라는 점에서 비판적인 논조가 강하게 드러난다. 또는 이러한 성향의 근거로 나루타루 마지막 권의 글귀에 쓰인 '둘도 없는 목숨'. 그런 것에 구원을 추구해도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없어도 크게 곤란하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없어져도 전혀 곤란하지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없어도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작가의 가치관을 액면 그대로 드러냈다기보다는 강렬한 반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와 여길 참고. 어찌보면 전체주의에 대비되는 개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성향이 여전히 적자생존적 의식구조에 맞닿아있다고 여길 수 있다. 어찌됐든 세계 전체보다 그 개인 하나가 소중할 수도 있고, 따라서 우리는 보다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를 위해 누군가에게 가치있는 '개인'이 되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요지로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어떤 작품에서든 일관되게 생명이나 삶보다 죽음의 문제에 더 집중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라 한들, 그렇게 되기 위해 계속 힘써온다 한들, 희생되고 소비될 수밖에 없는 생명의 한계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이는 그럼에도 그렇기에 더욱 가치있게 되라고 노력하라는 논지가 아니다. 적자생존의 옹호라기보단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희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이렇듯 죽음과 맞닿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는 거라 볼 수 있다.[2] 허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변의 환경은 풍요롭고 인간이라는 종은 계속 연명하기에, 소비문화에 경도되어 이러한 필연적인 생의 본성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그 업을 당연하다고 여겨 외면하는 것을 계속 지적하는 것이다. 즉 대국적인 맥락에서 지나칠 수 있는 개체 저마다의 가치를, '죽음'과 '소멸'이라는 테마로 조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생명의 가치가 갖는 상대적 차이점을 들어 이에 차등을 나누거나 자신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그러한 구조 속에 사라지는 평등한 생명 하나 하나의 존재를 깨달아야 한다는 입장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의를 통해 보여준 주제의식을 더욱 확장한 소설판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3] 본작에서는 선민사상, 적자생존식 사고관이 깊이 배어있어 생명의 가치에 차등을 나누다가 막상 현실에 직면하자 무너져버린 코다마가, 소설에 들어서는 생명에 가치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그 존엄함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지키려 하는 "위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성장한다. 이는 앞서 말한 적자생존적 생명관과는 대비되며 나아가, 스도와 코모리를 위시한 '검은 아이들'의 사상을 부정하는 격이다. 실제로 작중에서 코다마는 자기의 우주를 살려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도, 적성 우주의 존재라 자신이 이기면 어차피 소멸되어버리는 모 인물이 싸움에 휘말려 죽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지켜낸다. 이는 '죽음'과 '소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싸움을 통해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버리는 개체들의 가치를 똑바로 직시하고, 비록 상대적 차이에 의해 '자신에겐 소중하지 않는' 생명이라 해도 그 생명을 평등하게 지키려한 위선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위선'이야말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소설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원작 만화에서 카나가 한 대사인 "지금 전 세계에서 2초 후에 한 명꼴로 아이들이 굶어 죽는대요. 2초에 한 권씩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구요. 그런 흔하디 흔한 뻔한 일이겠거니 여기세요. 내가 죽는 게 누군가의 눈에 슬픈 이야기로 비춰진다면 다른 아이의 특별할 것 없는 죽음에도 모두가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쥰이 한 대사인 "마찬가지잖아. 누가 죽어도 죽어. 카나나 타나카 씨나 칸지나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생판 모르는 남이라구. 내가 살려고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를 죽게 한다면 그때는 그 사람을 아는 누군가가 슬퍼질 거 아냐.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주인공이잖아. 그 사람 역시 부모나 형제들에게는 소중한 사람일 거라구." 같은 것만 하더라도 키토 모히로가 적자생존식 생명관을 가졌다는 건, 작품들의 다소 시니컬한 전개 방식을 너무 피상적으로 받아들여 그 속뜻을 놓쳐버린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상술한 나루타루 12 권의 글귀는 이런 부분과 연결시키면 '아무리 생명이 평등하고 저마다 둘도 없는 목숨이란 가치를 지니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또한 그것이 때론 불합리하더라도 세상은 그런 생명들이 사라짐에도 계속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을 포함한 각각의 개체들이 더할나위 없는 가치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를 키워가야 한다.'는 논지로 분발하라는 반어적 표현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키토 모히로는 적자생존적 사고관이나 전체주의를 옹호하기보단, 대국적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거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 구조나 병폐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관료제에 굉장히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극우로 분류할 수는 없고, 오히려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에 매우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4] 자유주의 우파로 분류할 수 있다. 자유의지주의나 신자유주의로 분류하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에 가깝다. 아인 랜드의 작품과 닮은 면이 있을지도? 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연재할 때마다 확장되는 주제의식을 보면, 그런 전체주의적으로 흐르는 현실 속에서 외면 받는 개개인을 조명하던 전작들에서, 나아가 전체주의나 국가주의 속에서도 그 개체 하나 하나에 집중해 그 존엄성을 평등하게 지키려하는 가치관이 (비록 현실적으론 한계를 갖더라도) 중요하다는 것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아 좀 더 진보적 성향으로 변한 것 같다.
4 연재 연혁
반데미엘의 날개를 성공적으로 다 그리게 된 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루타루를 97년부터 그리기 시작하게 되는데, 특유의 암담한 분위기와 비현실적 소재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인 인물들의 부조화로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전 12권까지 연재하면서 소년만화계에 입지를 굳힌다. 해외에도 진출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루타루 연재 후, SF와 메카물을 비틀어 현대 사회상을 꼬집는 우리들의를 연재하였다. 나루타루 연재 후 잠시 쉬는동안에 결혼을 해서인가, 나루타루에 비해 꽤 독기가 빠지고 지독한 염세주의도 많이 죽어 매 에피마다 긍정적인 교훈을 던진다. 11권으로 완결하였고 이 역시 애니화돼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오프닝인 uninstall이 상당한 명곡.
우리들의 연재 종료후 격월지인 굿 애프터눈에 무언가잘 못되어 있나요, 격주간지 이브닝에 노리린을 연재하였다. 무언가잘...은 학원물이지만 '나루타루'나 '우리들의' 같은 어두운 노선으로 진행중이며, 노리린은 사이클을 소재로한 밝은 분위기의 만화로 이제까지의 작풍을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다만 두 작품 모두 2015년 3월에 갑작스럽게 소드마스터 야마토식으로 완결됐다.
아오키 우메처럼 사진마다 자신의 얼굴을 가려놓기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잘 생겼다.
5 작품 목록(연재순)
- 잔서 (데뷔작을 포함한 단편집. 2004년 발매)
- 반데미엘의 날개 (1996년~1997년)
- 나루타루 (1998년~2003년)
- 신나 1905 (1999년, 웹연재)
- 껍질도시의 꿈 (2003년~2005년)
- 우리들의 (2004년~2009년)
- 끝과 시작의 마일스 (2006년~)
- 무언가잘 못되어 있나요 (2009년~2015년)
- 노리린 (2009년~2015년)
- 쌍둥이의 제국 (2015년~)
- ↑ 성(姓)을 우리식 한자로 발음하면 귀두
한자 전체를 읽으면 귀두 막굉이 되버린다(...)이게뭐야 - ↑ 개인과 개체의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자원과 식량을 통해 타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모든 소비 행위.
- ↑ 집필한 작가는 '오오키 렌지'로 다르나, 원작에 기반해있고 원작자인 '키토 모히로'로부터 충실히 감수를 받았기에 사실상 메시지적인 측면에서는 원작자의 주제의식과 같다.
- ↑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 자기가 싫다는 것이지 현실에서 전체주의가 없을 수는 없다는 가치관이다. 앞서 말한 대국적 흐름 속에 희생되는 개체들을 조명해야 한다는 부분이 그것. 우리들의의 다소 극단적인 세카이계 설정도 6 권에서 나온 대화를 보면, 사실 상 살아있으면 반드시 다른 생명을 희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업을 상징적으로 끌어낸 거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