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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n Rand in Manhattan in 1957. Credit Allyn Baum/The New York Times
1 개요
Ayn Rand. (1905년 2월 2일 - 1982년 3월 6일)
본명은 '알리사 로젠바움(Alisa Zinov'yevna Rosenbaum)'. 미국의 러시아계 미국인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이며 철학자이다. '아인 랜드'라는 필명으로 자유의지주의 소설인 '움츠린 아틀라스(Atlas Shrugged)'를 비롯한 여러 소설을 썼다. 1905년 러시아 제국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러시아 혁명을 거치는 와중에 가세가 기운 뒤 1926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후 작가가 되었다.
이성의 가치와 극단적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사상으로 유명하며, 매우 극단적인 팬덤을 지니고 있어서 1960~1970년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생전에 본인 스스로는 자유의지주의와 리버테리안을 경멸하고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리버테리안의 기수로 불렸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자유의지주의를 혐오하던 사람의 손에서 가장 대표적인 자유의지주의 소설로 꼽히는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팬덤의 존재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덕분인지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작가이며 유명한 무신론자이기도 한 마이클 셔머가 자신의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에서 한 챕터를 할애하여 이 작가의 악성 팬덤에 대해 대차게 까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리버테리안이라고 자칭하는 단순한 극우파들을 깔 때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아인 랜드가 여자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면 미국 내에서 리버테리안들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할 정도다[1].
2 소설가로서의 평가
아인 랜드의 소설들은 가장 대표적인 자유지상주의 소설가로서 잘 알려진 SF 문학의 거장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과 비교해도 한층 더 명확하고 선명한 이념적 방향성을 지향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주의 사상을 다룬 픽션의 진정한 시초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아닌 아인 랜드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만큼, 아인 랜드의 소설들에 대해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보다도 좋게 말하자면 한층 더 과감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한층 더 과격하다고 평가되는 것이 평론가들과 대중의 보편적인 평가인 듯. 또한 위에서도 언급된 이야기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자유의지주의 소설로 꼽히는 작품인 '움츠린 아틀라스'를 탄생시킨 작가가 실은 자유의지주의를 혐오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인 랜드의 소설들이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대단한 인기를 자랑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 소설로서 추앙받지만, 미국 외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자유지상주의 사상을 다룬 픽션을 접하기 위한 입문작으로서 아인 랜드의 소설들보다는 오히려 로버트 하인라인 등의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을 추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아인 랜드의 어떤 의미로는 지나칠 정도의 과감함과 과격성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독자들이 읽다가 주화입마를 해서 사상이나 이념의 타락과 흑화를 하기가 너무나 쉬운 작품들이란 것. 당장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만 해도 비슷하게 주화입마의 위험성이 높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지라 읽기를 꺼려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인데, 그보다도 한층 더 강도가 센 아인 랜드의 소설들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철학
그녀는 자신의 사상의 중심이 되는 "객관주의(objectivism)"를 통해 개인주의와 시장자유를 주장하였다. "이성(Fundamental Principles)"이 직관과 본능, 선험적 지식보다 우선시되는 입장이다.
다음 문단은 그녀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권리의 근원은 신성한 법도 입법부의 법도 아니며 동일률 law of identity이다. A는 A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권리는 인간의 적절한 생존을 위해서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생존의 조건이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며,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당하며, 자신의 가치를 위해
서 일하고 자기노동의 산출물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정당하다. 지구상에서의 삶이 인간의 목적이라면 이성적 존재로 살아갈 권리를 인간은 가지고 있다. 본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비합리적이지 못하게 한다.”
"내 삶과 내 삶에 대한 사랑에 걸고 서약하노니, 나는 결코 타인을 위해 살지 않을 것이며, 타인에게 나를 위해 살 것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3.1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견해
Above all, do not join the wrong ideological groups or movements, in order to “do something.” By “ideological” (in this context), I mean groups or movements proclaiming some vaguely generalized, undefined (and, usually, contradictory) political goals. (E.g., the Conservative Party, that subordinates reason to faith, and substitutes theocracy for capitalism; or the “libertarian” hippies, who subordinate reason to whims, and substitute anarchism for capitalism.) To join such groups means to reverse the philosophical hierarchy and to sell out fundamental principles for the sake of some superficial political action which is bound to fail. It means that you help the defeat of your ideas and the victory of your enemies.
『무엇보다도, 단지 '무언가를 하기위해서' 그릇된 집단이나 정치운동에 참가하지마라. '이념에 의한것', 애매모호하게 정의되지도 않은 (보통 뒤집히고 모순된)정치적 신념들을 부르짖는 집단들이다(이성보단 맹신을 위에두고 자본주의보다 종교를 대신하는 보수정당들, 아니면 변덕스럽고 자본주의보다 아나키즘을 대신하는 리버테리언 히피들) .이런 집단들에 참가하는 것은 본디 철학의 범주에 벗어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정치운동으로 현실을 팔아먹는 짓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당신의 사상을 져버리고 적들의 승리를 돕는 것밖에 되지않는다.』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아인 랜드 회고록, 1권 7장 中
아인 랜드는 자유지상주의 운동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그녀 본인은 자신의 철학이 이용당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더불어 자유지상주의를 '우익 히피들'라 부르며 혐오하였다. [2]
3.2 고전적 자유주의자
- 아인 랜드의 고전적 자유주의 설명(영문)
아인 랜드의 철학은 고전적 자유주의로 분류될 수 있는데, 그녀의 철학과 고전주의의 공통점은 세가지로 예를 들 수 있다.
- 개인주의
- 시장자유
- 중앙집권에 대한 의심
랜드는 사유재산 보호를 위한 자본주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유지상주의를 무정부주의라 규정하고 정부가 없으면 사유재산을 지킬 수 없으므로 "객관"이 서지않는 최악의 사상이라 생각하였다.
다만 그녀의 주장은 자유지상주의와 무정부주의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녀의 철학은 작은 규모의 정부 공동체가 존재하는 최소국가론(야경국가)에 가깝다 볼 수 있지만 그녀는 최소국가론의 구상자인 노직의 견해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유재산이 지켜질 수 있는 아나코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4 기타
"스키너는 인간의 정신과 미덕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있다. 그의 증오는 너무나 강하고 소모적이어서 그 자체를 태우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회색 재와 냄새나는 석탄 몇 조각 뿐이다."
랜드는 현대의 학문 중 유물론적인 심리학과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철학적 비판을 하였고, 위에 적힌 스키너에 대한 내용은 그 중 한 구절로 보인다. 랜드의 저서 중 "자본주의의 이상"에 수록된 The Objectivist Newsletter 1965년 11~12월호에 수록된 다음의 글은 랜드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철학이 19세기에 분리되고 20세기에 붕괴됨에 따라 비록 진행속도가 대단히 느리고 조금은 불명확한 점이 있지만, 현대의 과학들도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오늘날 기술분야의 급속한 발전은 1929년 경제공황 이전의 날들과 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과학의 이론적인 설명이 길어지고 과학의 이론분야에서 자신의 자료조차도 해석하거나 통합 할 수 없게 된 과학자들이 과거의 여세에 편승하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인식론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잔류자에 편승하여 원시적인 신비주의의 부활을 선동하고 있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인문학에서는 붕괴는 과거의 일이고 침체가 시작되었으며 과학의 붕괴는 거의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향의 명백한 증거는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학문인 심리학과 정치경제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자각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심리학에서 볼 수 있다."
객관주의자 나다니엘 브랜던이 쓴 글에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저술가들, 특히 프로이트 학파, 또는 융학파 성향의 사람들은 현대 산업사회의 복잡성으로 인해 인간은 '지나치게 문명화' 되었고, 인간존재의 깊은 뿌리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되었고, 인간의 '본능적인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주장한다."
나다니엘 브랜던은 반대 사례로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글을 통해서 반박한다. (에리히 프롬이나 프로이트 학파나 현재의 학풍에서는 큰 비중을 가지지 못한다. 다만 이러한 논의에 대한 사실을 적는다.)
"에릭 프롬은 인간은 "우주의 기형이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의 모든 글들을 통하여 중요하고도 중심되는 주제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모든 다른 종들 과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자연과 '소원하게 되고' '소외되고' '고립'과 '격리'의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다. 인간은 진화과정 속에서 다른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조용한 평온을 잃어버렸고, 인간은 동물, 새, 또는 벌레가 즐기고 있는 자연과의 '인류 이전의 조화'를 상실했다. 이러한 인간저주의 근원은 인간이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롬은 '자신을 위한 인간'에서 "자각, 이성, 그리고 상상이 동물적 존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조화'를 깨뜨렸다. 그것들의 출현은 인간을 이형과 우주의 기형으로 만들었다"라고 적고 있다. 인간은 동물처럼 살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환경에 자동적으로,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적응 할 수 있도록 갖추어져 있지 않다. 동물은 맹목적으로 '종들의 양식'을 반복하고, 동물의 행위는 생물학적으로 규정되고 정형화되며, 동물은 '적응하거나 사멸한다'. 그러나 동물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고, 동물은 삶과 죽음을 문제로 의식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삶과 죽음을 문제로 의식한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이성은 인간의 축복이면서 저주이다."
이전 문서에서 아인 랜드가 스키너에 대해서 한 발언을 두고 과학적인 사실을 모독하였다느니 하는 글들이 있었지만 과학철학적으로도 반증 가능성의 원리를 무시한 비과학적인 비방(작성자는 스키너라는 개인을 과학이라는 학문과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오류을 기입하였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철학적 인식론과 심리학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한 경험이 있다면 쓰기 어려운 일방적인 입장의 편협한 글이다.)이다. 아인 랜드의 발언은 그녀의 철학의 입장에서 적힌 것이고 Objectivism에 대한 이해없이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이전 작성자는 그녀를 반공이라는 프레임으로 일방적으로 매도 하였으나, 후술된 나다니엘 브랜던 등의 글에 나오는 에리히 프롬은 사회주의적 사상가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애당초 Objectivism은 Anarcho Capitalism에 더 가깝다. (정확히는 로버트 노직과 더불어 최소국가주의로 분류되지만 사상의 흐름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