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쇼크

surachai.jpg

마르세유의 치욕에 이어 터져나온 또하나의 쇼크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에서 당한 충격적인 역전패 경기, 다른 쇼크들과 함께 거론되는 경기로 기록되고 있지만 당년 아시안게임 전체로 따지면 타종목의 선전에 따른 종합 2위라는 호성적 탓에 묻힌것도 있고... 아는 이들이 그리 많지않아서 나름대로는 조용(?)하게 넘어간 쇼크 이지만. 만일 당신이 그때 열렬한 축구팬이었으며 상대가 한수 아래태국이라는 점, 그리고 경기 내용을 고려한다면 넘어갈 수 없는 쇼크라 할 수 있다.

1 개요

1998년 12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13회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시안 게임에서의 선전을 다짐하기 위해 중국, 일본과 함께 많은 선수들을 보냈고 그중 축구 대표팀[1]도 역시 이들과 함께 방콕 현지에 입성하였다. 특히 대회에 나서는 대표팀으로써는 이번 대회가 비교적 남달랐는데.. 바로 그해에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문 이었다.

축구팬들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마르세유의 치욕이 나타나게 된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이번에는 16강에 간다!! 라는 외침으로 개최국인 프랑스에 도착하였지만.. 그곳에서 맞이한 것은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당한 1-3 역전패와 하석주 선수의 퇴장[2] 이었고 이어진 2차전에서는 하필 제대로 삘타다 못해 아예 우승하려고 미쳐 날뛰었던 네덜란드[3] 였고 그런 네덜란드에게 0-5로 대패를 당하며 16강 도전에 실패하였다.[4]

그리고 마지막 3차전 벨기에 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대표팀은 1무2패의 성적으로 간신히 3전전패를 면한채 귀국 하였지만 말이 면한수준이지 경기 내용이나 점수를 본다면 끝까지 투혼을 보여줘 인상을 심어준 바로 전 월드컵 보다도 못나온 수준이어서 한국 축구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조시켰다.

이 때문에 방콕에 들어온 아시안 게임 대표팀은 프랑스에서의 악몽을 떨쳐내기 위한 모습으로 굳은 결의를 다짐하였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열렸던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이후 12년만의 금메달 차지를 위한 여정이기도 하여서 그어느때보다 긴장감을 드러내었다.

무엇보다 조 편성도 나쁘지 않았다. 조별리그 방식으로 1라운드, 2라운드 체제로 하는 방식이 걸리긴 하였지만 상대에 나선 팀들중 일본, 중국 등의 팀들을 제외하면 한 수 아래의 실력을 가졌고 월드컵을 4회 연속[5] 진출한 저력을 가진 팀이었으니 우리로써는 유리함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도 1라운드 조별리그는 무난하게 통과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도 조 1위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표팀의 선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2 불안한 출발

아시안 게임 축구를 본격적으로 알린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 대표팀은 투르크메니스탄, 베트남과 함께 A조에 편성되어 경기에 나섰다.[6]

그리고 첫경기인 약체 투르크메니스탄전과 대결을 펼치며 경기에 임했다,[7] 출발이 좋았다. 전반 1분만에 공격수 최용수가 선제골을 터트려 기선을 제압한데 이어 44분에 다시한번 추가골을 성공시켜 대표팀은 2-0까지 점수차를 벌려 나갔다. 하지만...

후반 59분, 최윤열[8]의 자책골로 한골을 내준 데 이어 후반 85분과 89분에 연달아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주는 모습을 보여줘 충격의 2-3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우리로써는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던 경기 였지만 자책골 이후 무너진 팀플레이를 교묘히 노린 투르크메니스탄의 패기가 그대로 적중한 점에서는 뼈아픈 패배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베트남 전에서 한풀이 하듯이 김은중, 최용수[9], 윤정환의 연속골로 4-0 대승을 거두었고 1승 1패를 기록한채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이후 정신을 잘 잡았는지 2라운드에서 대표팀은 같은 조에 속한 아랍 에미리트, 일본, 쿠웨이트를 연파해 3전전승 5득점 1실점 이라는 눈부신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 8강에 진출하였다. 1라운드에서 보여준 충격의 역전패를 딛고 일어난 모습이었고 숙적 일본을 누르고 진출하였다는 점에서 어느정도는 위안거리를 삼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체인 팀에게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한 부분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분위기였고 다음 상대인 태국도 역시 개최국 이라는 이점이 큰 부담요소여서 우리로써는 태국을 어떻게든 꺾어야 다 살아난다는 상황이었기에 8강전에 임하는 자세는 그 어느때 보다 남달랐었다.

그것이 곧 펼쳐질 최악의 쇼크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3 충격의 12월 14일

한국축구 파이팅을 다시한번 이를 악물고 외쳐보고 싶습니다[10]

무슨 말로는 형용하기 힘들지만... 걍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역전패 씨바...

망했어요

간신히 체면세우고 다시 나아간 대표팀은 12월 14일, 태국의 수도 방콕에 위치한 라자만갈라 경기장에서 개최국 태국과 운명의 8강전에 나섰다. 당연히 예상을 해도 경험많고 실력이 우수한 대표팀의 완승이 예상 되었지만 홈 이점을 살려 기적을 바라던 태국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에서 대표팀은 심기일전으로 경기를 치뤄야 했지만...

승리는 커녕 그냥 패배를 하는 대 굴욕을 맛보며 아시안 게임 8강 탈락 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내게 된다.

경기 내용은 역전패를 당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의외로 대표팀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경기 초반부터 실력이 우세한 대표팀 선수들을 막기 위해 과격한 수비를 펼친 태국 선수들이 너무 과한 플레이를 한 나머지 한명이 퇴장 당하는 실수를 자초해 경기에 막대한 손해를 받았다.

이어 대표팀 선수들이 유리한 플레이를 펼치며 경기 승기를 잡은듯 보였지만.. 계속해서 대표팀의 공격을 막아낸 태국의 수비가 두껍게 펼쳐지는 바람에 대표팀은 후반 중반까지 이렇다할 득점을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후반 80분[11], 세트피스 상황에서 짧게 올라온 크로스를 태국의 카이티숙 세나무앙[12]이 그대로 득점을 성공시켜 선제골을 터트렸고 이 한방을 내준 대표팀은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연출해내면서 경기를 어렵게 풀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대표팀은 계속해서 공격 기회를 만들어가며 나섰지만 두터운 수비벽을 내세운 태국의 수비벽은 선수들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힘에 겨웠고 경기도 태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듯 보였다 그러나 후반 86분[13] 태국이 또 다시 저지른 과격한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14]유상철이 골로 성공시켜 균형을 맞췄고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도 득점을 내지 못해 어려운 경기력을 보여준 대표팀은 연장 95분[15] 태국의 타와차이 옹트라쿨 선수가 프리킥 골든골[16]을 내줘 경기를 마무리 지었고 그대로 태국이 4강 진출을 확정 지으며 대표팀에게 쓰디쓴 역전패를 안겨다 주었다.

골 장면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프리킥 골 자체가 거의 막기 힘든 각도의 슈팅으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카메라 각도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던 슈팅은 제 아무리 유명한 부폰같은 골키퍼가 와도 못 막을 정도로 어려운 슈팅이었고, 당시의 주전 골키퍼였던 김병지마저도 꼼짝 못하는 슈팅이었으니 말 다한 골이라 해도 무방하였다.

우리로써도 완승을 기대할 것이라는 그 꿈은 다시봐도 환상적인 프리킥 골든골 앞에서 무참히 깨졌고 12년만의 금메달은 커녕 오히려 목메달이라는 성적을 가지게 됨으로써 안그래도 무참히 깨져서 위기였던 한국 축구에 또 한번 큰 시련을 닥치게 만든 패배로 남게 되었다. 더욱이 상대팀 선수 두명이 퇴장 당한 유리한 상황을 잘 활용하지 못한 점과 그러한 부분을 파고드는 전술 운영이 완전히 나타나지 못한 점은 승리를 할 수 있었다는 유리한 고지를 잡지 못한 책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책임의 당사자 이기도 한 허정무 감독의 능력은 평화왕 조광래의 원조격이라 할 만큼 지도력에도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어서 대표팀에게 또 한번 우려의 눈빛을 날리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17]

4 태국 쇼크 이후...

태국에서 발생한 예상 밖의 쇼크에도 축구협회는 허정무 감독을 그대로 신임한채 2년뒤에 열린 2000 시드니 올림픽에 나섰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도 그 믿음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올림픽 축구 본선을 이끌며 잘 되나 싶었지 본선 첫경기인 스페인전 0-3 완패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표팀의 8강진출을 이끄는데 실패하였고 이어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해[18] 대회 3위의 성적을 뒤로한채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하였다.[19]

그리고 이 태국 쇼크도 이후에 나타난 ''들의 영향으로 묻혀지면서 지금은 거의 잊혀진 쇼크로 기록되게 되었다.

그러다 지난 27일, KBS가 대표팀과 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이날 경기 영상을 다시 올리면서 또한번 주목받기도 하였다.

5 중국발 태국 쇼크

한국이 태국 쇼크를 겪은지 15년만인 2013년 중국도 태국 쇼크를 겪었다.

2013년 6월 15일, 중국은 태국과의 친선경기에서 1:5 대패를 당했다. 비록 친선경기기는 햇지만 상대는 한 수 아래라고 여겨지는 태국이었고 그것도 중국은 주전급인데 반해 태국은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급이었으며 경기 장소 또한 중국의 홈이었다. 이런 좋은 조건을 등에 업고도 큰 점수차로 패배한 것. 경기가 끝나자마자 중국 축구 팬들은 크게 분노해 중국 선수들의 버스를 가로막고 물병을 내던지기도 하고 욕을 퍼부었다. 안그래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광탈로 입지가 불안하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은 이 패배를 계기로 계약기간을 1년 남기고 목이 달아나 버렸다.

6 관련 항목

  1. 감독 - 허정무, 코치 - 정해성
  2.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선제골, 그것도 프리킥이지만 실제로는 수비수 살짝 맞은 슛으로 넣었지만 골넣고 얼마 안가 퇴장당하였다.
  3. 이 당시 네덜란드는 유로 2016 예선에 탈락했던 현재 선수단 보다 훨씬 무서웠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파트릭 클라위베르트, 데니스 베르캄프, 야프 스탐,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시도로프, 프랑크 드보어, 로날드 드보어, 마크 오베르마스, 에드윈 반 데 사르, 등등 이었고 이들 선수들은 모두 최절정기의 실력을 갖춘 상황이어서 우리로써는 사실상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참고로 이때 감독은 거스 히딩크 였다.
  4. 이때 축구협회는 네덜란드 전 직후 차범근 감독을 중도 해임시켰고 남은 3차전 1경기를 김평석 당시 수석코치로 대체해 나갔다.
  5. (1986, 1990, 1994, 1998)
  6. 당시 축구는 3팀이 한조로 편성되어 대결하는 1라운드 제도와 1라운드에 통과된 팀들끼리 맞붙는 2라운드 제도로 운영되었다.(1라운드 - 2라운드 - 8강 - 4강 - 결승전 또는 3.4위전) 이후 조별리그 방식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바뀌다가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다.
  7. 12월 2일 킥오프
  8. 수비수로 활약한 선수이며 전남 드래곤즈, 안양 LG, 포항 스틸러스, 대전 시티즌을 거쳐 2008년에 프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후 2010년도에 청주 직지 FC란 아마추어 팀에 플레잉 코치로 나서서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중에 있다.
  9. 2골
  10. 아시안 게임 소식 전하던 KBS최승돈 아나운서가 클로징 멘트로 말했던 대사, 진짜 충격적인 역전패를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보여준 멘트이기도 했다.
  11. 영상에서는 후반 35분경
  12. 2016년 현재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다.
  13. 영상에서는 후반 41분경
  14. 물론 해당 선수는 퇴장, 이로인해 태국은 9명의 선수들이 뛰는 상황에 겪게 되었다.
  15. 연장 전반 5분경으로 추정
  16. '연장 전-후반 30분 이내에 골이 터질 경우, 바로 승리로 간주하고 경기를 종료하게 만드는 골'로 선수들의 체력소모를 줄이고 도박성이 짙게 깔려질 승부차기 대결의 잘못된 자세를 잡고자 자리 잡은 규칙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서 나온 안정환의 골든골로 잘알려져 있으며 이후 유로 2004를 끝으로 폐지가 되어 현재는 연장전에서 넣어도 승부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17. 물론 지금도 여전히 지도력에 말들이 많지만 90년대 당시 허정무 감독은 K리그에서도 지도력을 뽐낼 정도로 나름대로는 지도력을 보여줘서 국내 지도자들 중에서는 괜찮게 할 수 있는 감독으로 보여졌었고 이란 쇼크로 완전히 무너진 박종환 빠따박 감독과 중도에 경질된 차범근 감독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어서 선임 된것으로 보고 있다.
  18. 단순히 감독이 잘 못해서 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다르게 보면 억울한 소지도 없지 않아 있었던게 사우디와의 준결승 바로 전에 열린 8강전에서 대표팀은 정말 만나기도 싫은 이란을 또다시 만나 혈전을 펼쳤었다. 물론 이란 쇼크로 비견되는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우리가 탈탈 털렸지만 4년뒤에는 우리가 연장전까지 피말리는 승부를 펼치며 이란과 대등하게 나왔고 마침내 연장전에서 이동국이 승부의 쐐기를 박는 골든골을 터트려 4강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연장승부로 이미 체력이 바닥을 찍은 선수들은 4강전 경기였던 사우디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8강전 여파로 힘을 못썼고 결국 패하게 되면서 아시안컵 정상 탈환을 이루지 못하였다. 만약 그때 이란을 만나지 않고 어느정도 쉬운 상대를 만났더라면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 나온 결승 진출도 앞당겨졌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참고로 이란은 이후 열린 2004년 AFC 아시안컵,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다시 맞붙어 우리와 혈전을 펼치는 명승부를 연출하였다. 이란 :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19. 그러나 2008년에 다시 돌아와 월드컵 여정에 나선 허정무 감독은 대표팀을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무대로 이끄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며 그간 이어진 지도력 논란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