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항공 981편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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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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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전 사진

1 사건 개요

  •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항공사고 중 4위 기록
  • 단일 항공기에 의한 사고 중 2위
  • 346명 사망
  •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사고
  • 터키항공 역사상 최악의 사고
  • 사고 당년(1974년) 최악의 항공사고
  • DC-10 기종 관련 사고 중 최악의 사고

이것이 이 항공기가 가지고 있는 사고 기록이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일까? 이 사고는 병크의 집합체이며 나 하나 쯤이야가 만들어낸 인재(人災)이다. 이 사고로 더글라스 사는 1997년 보잉에게 인수되면서 망했다.

2 대형 항공기 제작을 위한 경쟁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 더글러스, 그리고 록히드 간의 신형 광동체 여객기 개발 경쟁이 시작되었다.

신형 광동체기 개발은 완전 광란의 레이스 수준이였으며 항공시장은 유럽의 전후 복구로 인한 유럽인들의 여행수요 증가와 미국의 경제 대호황으로 인해 서민들까지 비행기 타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기에 가능해졌다. 수요가 종전의 2배, 3배, ... 이런 식으로 늘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보잉 707같은 협동체 비행기로는 한번에 태울 수 있는 승객 수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공사들은 새롭고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를 항공기 제작사들에게 요구했다.

이 경쟁의 성패는 누가 더 먼저 차세대 대형 비행기를 먼저 내놓느냐에 달려 있었다. 나오면 바로 항공사들이 엄청나게 사갈 것은 뻔하니 말이다. 이 광란의 개발 레이스의 산물로 나온게 바로 DC-10이었다.

DC-10이 1번째로 나오고, 그 유명하신 보잉 747 점보기가 2등, 영국 롤스로이스 엔진 장착 문제로 꽤 진통을 겪던 록히드의 L-1011 트라이스타 항공기가 3등으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최초로 나온 대형기, DC-10에 대한 항공사들의 관심은 엄청났으며 여러 회사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아메리칸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같은 곳에서는 여러 수십대를 바로 질러 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광속 개발과 양산 뒤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화물칸 도어(문)의 설계 오류였다.

원래 이 문제는 해결될수 있을 "뻔" 했다. (조종사의 실수를 제외한) 꽤 많은 수의 "기계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 항공사고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즉 제작사가 상상도 못한 이유로 인해 사고가 터지지만 이 일은 아니였다. 더글러스 사에게 하청을 받아 비행기 후부동체를 제작하던 컨베이어[1] 사의 공학자들은 설계도를 읽어보고 "어, 뭔가 문제가 있는데"하며 문제를 알아차리게 된다. 바로 화물칸 문의 설계가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비행기는 화물칸이 안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안으로 열리는 구조는 장점이 많은데 훨씬 튼튼하고 만약 문과 문 틀 사이의 결합에 문제가 생겨도 비행기 안의 기압이 외부 기압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비행기 동체를 밖으로 밀어내는 기압의 힘이 문에도 작용하게 되어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 문은 문틀보다 훨씬 커서 아무리 잠금장치가 고장나더라도 웬만큼 이상하지 않는 이상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중 방어까지 된 이 설계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공간으로 인해서 짐 적재량이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문이 안으로 열린다면, 문이 열리는 공간 확보를 위해 어느 정도를 비워 놔야 했다. 당연한 것이, 문을 닫고 화물을 적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항공수요가 늘어나고, 승객과 그들의 짐이 늘어나고, 항공화물도 늘어난 것을 감안해 보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이 버려지는 조금의 공간도 아까웠다. 따라서 맥도넬 더글러스 사는 항공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DC-10의 화물칸 문이 바깥쪽으로 열리도록 설계하여 제작, 출시했다. 이 설계 덕에 항공사들은 문을 열고 닫는데 낭비되었던 공간이 새로운 이익 창출의 공간으로 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고 이제는 그 버려졌던 공간에 화물 한 박스, 승객 가방 하나라도 더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든지 완벽한 설계는 없었다. 이 외부로 열리는 방식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위에 언급한 안쪽으로 열리는 문의 장점을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보자. 즉, 만약 화물칸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높은 고도에서 비행기 내외부의 기압차로 인해 문이 그걸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서 뜯어져 나간다는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3 참사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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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 12일, 미시간디트로이트를 이륙한 아메리칸 96편(생산 2호기) DC-10가 캐나다 온타리오주 원터 상공을 지나가는 중 화물칸 문이 기체에서 뜯겨져 나가 압력차로 객실 바닥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수직미익에 위치한 2번 엔진이 정지하고, 러더가 오른쪽으로 고정됐으나, 유압이 전부 파괴되지 않아서 조종사의 조종술과 노력으로 승객과 승무원 67명이 전원 생존한 상태로 간신히 회항하여 착륙하게 되었다.

사건 후 이 사고를 조사한 교통안전위원회 수사관들은 화물칸 문 잠금 장치에 문제가 있다고 결과를 냈고, DC-10의 화물칸 문 잠금 장치 변경과 화물칸이 뚫렸을 때 생기는 압력차로 객실 바닥이 뚫리지 않도록 객실 바닥에 통풍구를 설치하라고 더글러스 사에게 권유했다. 그러자 더글러스 사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량을 하였고, 그리고는 DC-10 화물칸 문 폭발사고는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실상은...

4 참사의 시작

1974년 3월 3일 승객 346명이 탄 터키항공 981편[2]이 프랑스의 파리 오를리 공항을 떠난다. 원래 이 노선은 평소에 이렇게 많은 승객이 탑승하는 노선이 아니었는데 그 당시 영국 국제항공사[3]가 파업중이었기 때문에 국제항공사가 터키항공의 티켓을 구해서 200명의 승객들이 탑승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승객이 탑승한 것이다.

고도가 10,000피트(약 3,000m)에 도달했을 무렵 터키항공 981편의 화물칸 도어가 뜯겨져 나가면서 객실과 화물칸 사이 압력 차이에 의해 객실 바닥이 뚫리면서 6명의 자리가 사라지고, 거대한 구멍이 동체에 뚫리게 되었다. 또한 객실 바닥이 무너질 때 생긴 충격으로 기체 뒤편의 케이블선과 시스템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켜 비행기의 유압을 모두 상실했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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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그림은 당시 상황을 재현한 CG이다.

폭발과 동시에 감압으로 인해 수많은 물건과 승객 및 개인 소지품들이 비행기에서 빨려나가버렸다. 공기가 빠져나가고 승객들의 비명이 들리는 혼란 속에서 기장과 부조종사, 그리고 항공기관사 트리오는 왼쪽으로 기울어서 급하강하기 시작하는 DC-10을 살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실패했다.

물론 화물칸 폭발 후 겨우 16초 후에 두 조종사가 정신을 차리고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는거 자체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앞은 잘 보이지도 않고, 귀를 찢는 소음이 들리고, 온갖 물건들이 조종실 문을 넘어 밖으로 빨려나가는,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운 이 상황에서 패닉하지 않고 정신을 제대로 차린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압을 잃은 981편은 결국 프랑스 국유림인 에메노빌에 추락했다. 추락할 당시 시속 700km가 넘는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기 때문에 온전한 시체가 거의 없었으며 프랑스 당국이 발견한 시체 조각만 해도 2만 조각이 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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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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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THY981편의 문 설계도

위에서 언급했던 아메리칸 96편 DC-10 사고의 수사관이었던 척 밀러가 조사에 참여하자마자 그는 AA96편과 비슷한 사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랑스의 조사관들도 그 의견에 동의했고 조사관들의 초점은 981편의 카고 도어에 맞추어지게 된다. 비행기의 화물칸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AA96편과 똑같은 사고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잘 닫힌 것처럼 보였지만 화물칸 도어는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실제로는 아예 반쯤 열린 상태였던 거였다. 조금만 압력이 가해져도 그냥 툭 열리고 날아가는 정도로 약하게 닫혔던 것이다. 오히려 그간 DC-10으로 했던 여러 비행에서 단 한 번밖에 문제가 안 생겼다는 것이 더더욱 기적으로 보이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왜 맥도넬 더글러스 사는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 그들이 개선한 것은 단 한 개로 밖에서 문이 잠겼나 쳐다볼 수 있는 조그만 아크릴 창, 이거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이 창은 별 쓸모가 없었다. 지상근무 직원들 중에 이 창을 보라고 교육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거니와 심지어는 수사관들이 화물칸 도어에 난 창이 무엇에 쓰는 건지 혹시 아냐고 묻자, "이 창이 뭐하는데 쓰는 겁니까?" 라고 되물은 사람도 있었다. 지상 직원들 중 화물칸 도어의 잠금상태를 확인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 창 옆에 써져 있던 안내문은 오직 "영어"로만 되어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나타나게 된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 중, 승객을 직접 마주치거나 승무원/조종사를 직접 대하는 직업을 가진 노동자는 영어를 잘 하지만, 반대로, 짐 싣고 옮기는 일을 하는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 길거리에다 태국어로 주의 표지판 붙여놓은 격이다.

게다가 설계 과정에서 컨베이어 사가 압력 실험을 한 결과, 화물칸 문이 일정한 기압차에서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맥도널 더글라스에 화물칸 설계가 잘못됐다는 메모를 보냈지만, 더글라스 사는 이를 알면서도 무시했다는 것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비난의 강도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6 사고 후

사건 발표가 끝나고 모든 책임이 더글러스 사로 돌아간 이후, 더글러스사는 최악의 시기를 겪었다. 미 연방법원에서는 당시 돈으로 6천 5백만달러로, 현재 돈으로도 700억이 넘는데, 당시 돈이면 ㅎㄷㄷ한 돈이다. 삼풍백화점 때랑 비교된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유족들이 건 엄청난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해서, 수많은 유족들에게 거액을 배상하게 된다.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책임은 더글러스에게 있었다. 터키항공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그냥 잘못된 비행기를 속아 산 죄, 그 뿐.

이 사건으로 인해 더글러스의 주식은 반토막나게 된다. 항공사들의 불안감으로 더글러스는 꽤 오랫동안 재정위기를 겪게 된다. 다행이도 부랴부랴 내놓은 개선된 DC-10이 경제성 있고 조종하기 편한 항공기로 평가되어 여러 곳으로 팔리는 선전을 거두긴 했지만[4], 결국 보잉 B747의 아성은 꺾지 못하고, 마지막 회심의 역작으로 출시한 후계기 MD-11마저도 보잉 777과 신흥강자로 떠오르던 에어버스A330에 완전히 관광당하면서 1997년 비실거리던 맥도넬 더글러스(맥도넬사와 합병 했었음)는 보잉에 합병되어서 그 긴 긴 역사를 끝내게 된다.

지금도 파리 근교의 항공기가 추락했던 그 숲에는 무고한 346명이 희생당한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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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비
"1974년 3월 3일에 있었던 대참사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하지만 이 비극은 이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가 그 것. 다른 회사의 다른 기종의 사고이지만 원인은 잘못된 화물칸 도어 설계로 동일하다. 같은 예로 애버그린 17편 사고도 있다.

현재도 상당수의 항공기가 화물칸 문이 밖으로 열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지금은 잠금장치도 매우 안전한데다 객실 밑에 통풍구가 뚫려 있어서 이런 사고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1. Convair, CV-880/990의 제작사로 유명하다.
  2. 이스탄불 출발 런던행으로 파리를 중간에 경유했다.
  3. 영국항공의 전신
  4. 이 회사 중에는 대한항공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15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