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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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1989년 7월 27일
유형조종사 과실
발생 위치리비아 트리폴리
탑승인원승객 : 181명
승무원 : 18명
사망자항공기 : 75명
지상 : 4명
생존자124명
기종DC-10-30
항공사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HL7328
출발지김포 국제공항
도착지트리폴리 국제공항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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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27일, 대한항공의 803편 여객기가 트리폴리 공항에 접근중 추락하였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99명 중 74명, 그리고 지상에 있던 6명 등 모두 80명이 숨졌다.

2 사고 경위


▲ 사고 3년 전에 취리히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 기체.

사고기는 미국맥도넬 더글라스사가 1973년 제작하였고, 1977년 대한항공에 도입되어 운항 중이었던 DC-10-30 여객기(등록부호 HL7328)였다. 사고 이틀 전인 7월 27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태국 방콕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경유하여 리비아 트리폴리까지 운항하는 정기 여객편이었다.

사고기는 트리폴리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접근 중, 동쪽 활주로 끝 3.6km 전방에 있는 지상 장애물과 충돌한 뒤 대파되었다. 당시 활주로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서 시정거리가 240m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후 블랙박스 분석 등을 통해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사고기가 말썽이 많기로 악명높은 DC-10이어서 기체 결함의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조종사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조종사는 기착지인 제다로부터 트리폴리 공항의 ILS가 고장난 상태였다는 항공공시를 수신한 상태였다. 또한 사고 20~17분 전, 트리폴리 관제소로부터 시정이 800m에서 50m로 악화되어 있다는 기상정보를 제공받았으며, 이에 따라 다른 항공기들은 인근 몰타 등으로 모두 회항한 상태였다. 이때는 시정이 1,600m 이상이 되어야 NDB와 육안에 의지하여 착륙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기 조종사들은 일단 NDB 방식으로 착륙을 강행하되, 행여나 ILS가 작동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고도 200피트까지 강하해 본 뒤 여의치 않으면 복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ILS의 작동 여부와 활주로 확인 등에 신경을 쓴 나머지 계기판을 소홀히 하여(...), 정상적인 강하속도인 분당 700피트의 3배에 달하는 분당 2,000피트로 급강하하고 있었고, 어어 하다가 복행할 기회를 놓친 채 지상물에 충돌하여 사고를 낸 것이다.

당시 기내에서는 "안 보입니다. 위험합니다", "좀더 내려가 보자. 그래도 안보이면 돌아가자" 등등의 대화가 오갔으며, 사고 7.7초 전에는 GPWS가 작동하였다 그러나 기장은 이미 착륙강행(..)으로 마음을 정하였으며, 관성이 붙은 비행기가 재상승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보인다.

어떻게 보면 8년 후 같은 회사에서 일어난 참사와 놀랄만큼 흡사한 패턴이다. 이는 물론 조종사 개인의 잘못도 크지만, 근본적으로 당시 대한항공의 기업 풍토에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비슷한 사고를 친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항공업계 총체적 문제인듯...

사고기의 조종사는 이 사고 10년 전에도, 방콕에 비가 퍼붓자 다른 항공기들은 미얀마 등으로 회항했지만 착륙을 강행하여 무사히 착륙을 시킨 전력이 있었고, '역시 베테랑은 다르다'는 박수를 받았다던데... 그 때 규정을 어겨 가면서까지 착륙을 강행한 그를 징계했더라면 훗날 대형 참사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 언론에서는 당시 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민항기를 조종하면서도 군인정신을 못버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임무가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이어야겠지만, 민항기 조종사들은 아무리 적은 위험이라도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하기 때문이다.

3 뒷이야기

승객과 승무원 199명 중 10명(리비아인 7명, 일본인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이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현지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었다.

사고기의 조종사들은 귀국 후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항공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제1심에서 기장금고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부조종사항공기관사도 각각 집행유예 등 유죄를 선고받았고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쳐 확정되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 왜냐하면 사고를 유발한 조종사들은 대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사고의 경우는 적지않은 사상자를 낸 대형참사인데도 조종사들이 생존했기 때문에 처벌받게 된 드문 케이스이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당시 현대건설 전무)이 리비아 발전소 건설 관련으로 전력청 장관을 만나는 출장을 가기 위해 사고기에 탑승했다가 생존했으나, 그 뒤로 한쪽 눈 주위 근육이 떨리는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당시 사고기에 현대건설 직원들도 타고 있었는데, 김 전무가 "현대, 뛰어내려!"라고 외쳐서 직원들이 탈출했고. 그 덕에 직원의 상당수가 생존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정몽헌 회장이 2003년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에 "당신 너무 자주하는 윙크 버릇을 고치세요" 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한 조크(...)였다고 한다.

비행 승무원 출신으로 임원까지 승진한 걸로 유명한, 이택금 전 대한항공 상무도 당시 사고기에 승무중이었다. 당시 의무실장으로 구조작업에 참가한 사람에 따르면, 그녀 역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승객들과 부하 직원들을 먼저 치료하라고 양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평생 가장 잊지못할 일로 이 사고를 꼽고 있으며, 사고 후 비행 업무에 복귀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그나마도 사고기에 탑승했다 생존한 승무원 중에서는 가장 빠른 복귀였으며, 끝내 복귀하지 못한 승무원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하필 같은 날 울릉도를 출발해 경북 영덕 강구 헬리포트로 향하던 우주항공 소속의 S-58JT(등록부호 HL9239) 관광헬기가 추락하여, 승객 13명이 숨지고 6명이 구조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취항한지 3일만에(...)

4 관련 항목

4.1 유사사고

한국 조종사들의 전형적인 착륙 고집이나 권위주의(고압적 상하관계)가 영향을 끼친 사고.

4.2 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