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넬 더글라스의 항공기 | ||
더글라스와 맥도넬 더글라스의 민항기 | ||
쌍발기 | DC-9 ‧ MD-80 ‧ MD-90 ‧ MD-95(B717) | |
3발기 | DC-10 ‧ MD-11 | |
4발기 | DC-8 ‧ | |
군용기 | ||
전투기 | FH 팬텀 ‧ F2H 밴시 ‧ F-4 ‧ F-6 ‧ F5D 스카이랜서 ‧ F-15 ‧ F/A-18 ‧ F/A-18E/F ‧ F-101 | |
공격기 | BTD 디스트로이어 ‧ A-1 ‧ A-4 ‧ AV-8 | |
폭격기 | A-20 ‧ A-26 | |
급강하폭격기 | SBD 돈틀리스 | |
뇌격기 | TBD 데버스테이터 | |
수송기 | C-17 ‧ C-47 | |
공중급유기 | KC-10 | |
훈련기 | T-45 | |
헬리콥터 | ||
군용 | 500MD ‧ AH-64 | |
더글라스의 1945년 이전 모델 | ||
쌍발기 | DC-1 ‧ DC-2 ‧ DC-3 ‧ DC-5 | |
4발기 | DC-4 ‧ DC-6 ‧ DC-7 |
대한항공의 dc-10 |
일본 항공의 DC-10 |
팬암의 DC-10 |
페덱스의 DC-10 |
핀에어의 무민 특별도장 DC-10 |
미 공군의 KC-10 공중급유기 |
목차
1 개요
McDonnell Douglas DC-10. 맥도넬 더글라스사가 아메리칸 항공의 요구에 맞춰 만든 3발 광동체 제트여객기로 주로 중거리 노선을 상정해서 만든 300석 규모의 여객기다. 3발기의 상징적인 기체 중 하나이며, L-1011이나 보잉 727 같은 여타 3발기들에 비해 많이 운용되기도 하고 비교적 오래 하늘을 날아다녔다.
2 개발 과정
하우스컬러 버전(초도비행) 원본
시초는 미국 공군의 신형 수송기 사업으로 보잉과 록히드가 전쟁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1] 도저히 설 자리가 없었던 MD가 C-5A의 구상안에 기초를 두어서 대형 여객기 시장에 뛰어들려는 계획이었다. 2층 구조의 동체로 제작될 이 기체를 회사 내에서는 DC-10이라 불렀다.[2]
이때 아메리칸 항공의 경영진이 제너럴 일렉트릭의 공장을 시찰했을 때 C-5A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 중이던 TF39 엔진을 보았다. 그들은 이 엔진을 여객기용으로 개발해서 탑재하면 250석 규모에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 가능한 대형 여객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새로운 기종 개발을 요구했는데 그 요구 사항이란
1. 추력 4만 파운드의 고 바이패스비 엔진 탑재
2 좌석은 피치 36인치로 250석
3. 승객 1인당 250파운드의 수하물과 5천 파운드의 화물
4. 항속거리는 1,850해리(약 3,426Km)
이었고, 당시 구상중이던 여객기로 이 요구사항을 딱 맞춰줄수 있었던 MD는 "진짜로 발주하면 요구한 사양의 여객기를 1966년 안에 개발에 착수하겠음" 이란 약속을 한다.
당시 항공사 측은 경제적 이유때문에 2발 엔진을 원하고 있었는데, TF39 엔진은 아직 개발 중인데다가 이걸 민수용으로 바꾼 CF6 엔진도 성능이나 신뢰성 면에서 불안하였다. 더군다나 중장거리 노선에도 굴리는 것이 목적이었던 DC-10의 특성상 당시 적용되던 "60분 규칙"을 피할 수 있는 3발 엔진을 채용해야만 했다. 이 의견을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이 받아들이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MD는 국내선용의 3발, 국제선용의 4발기체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4발기체 구상은 이미 보잉 747 덕분에 어느 항공사에서도 흥미를 가지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4발기체는 취소되고 중거리형과 장거리형으로 가닥을 잡고 차분히 개발을 시작하였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하필이면 록히드가 1967년 9월 L-1011의 개발을 발표하면서 MD의 설계가 한창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동년 11월에 무리수를 들이켜서 DC-10의 개발계획을 발표했으나 이 시점에서도 설계 중이었다. 어찌어찌 아메리칸 항공에게 옵션 포함으로 L-1011보다 빨리 50대 발주를 받았는데, 아메리칸 항공은 L-1011도 발주했고양다리 1968년 4월 3일에 L-1011의 런치가 발표되었는데도 아직 기본설계가 다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래서 S덕트를 내장하여 깔끔히 마감한 L-1011과 달리 3번째 엔진 덕트를 수직 미익(꼬리날개) 중앙에 집어넣은 어수선한 모습으로 급조를 하는 등 부랴부랴 설계 마감에 서둘렀고, 그후 동년 4월 25일에 유나이티드 항공에게 옵션 포함 60대 주문을 받고 간신히 런치를 발표했다. 원체 좀더 시간만 더 주어졌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DC-10과 L-1011의 경쟁은 1981년 록히드가 여객기 사업을 철수하면서 DC-10의 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미 MD의 경영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이후 보잉에 합병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나 터키항공 981편 추락사고로 인한 배상 건이 회사를 추락시켰다.
3 특징
라이벌 기종인 L-1011과는 달리 수직미익 가운데에 터보팬 엔진을 쑤셔박는 대범함을 보였다.[3] 물론 이것은 록히드와의 경쟁으로 인해 설계를 급조한 점 때문이었고 이런 이유로 수직미익의 방향타도 작아지고 엔진을 지탱하기 위해 꼬리날개 엔진 노즐(끝부분) 바로 위에 각지게 튀어나온 지지대까지 있다(...) 사진을 보면 엔진노즐 위에 직사각형 같이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마감이 매끄럽지 못해보인다는 평도 들었다.
전체적으로 투박하다는 평이 있었으나 반대로 남성적이고 호탕하게 생겼다는 말도 듣는다. 게다가 비행감이 묵직하고 몰기에 안정적이라 "하늘의 캐딜락 플리티우드"이라는 별명도 있었을 정도다.출처 라이벌 3발기이자 록히드에서 만들었던 L-1011이 되레 여러 요인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L-1011을 비롯한 타 3발기들에 비해 성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고가 많은 기종으로 유명하다. 전술했지만, 설계를 급조한 점 때문에 수직 미익의 방향타도 협소해지고 수직 미익 바로 아래에 엔진이 위치했는지라 엔진이 동체 위에 바로 올려진 형태이기에 평상시에는 괜찮았지만 조금이라고 수틀리면 무게중심 잡기가 힘들었다.[4] 그리고 설계시에 화물 도어의 결함이 발견되었는데 이걸 그대로 방치하고 양산하여 이로 인한 대형사고도 2건이나 일으켰고 희생자도 발생하였다. 그래서 이런 것 때문에 떠벌거리기 좋아하는 언론들에서는 "날으는 관" "사신기" "죽음의 비행기" 등등의 고약한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한동안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고다발 경력 때문에 언론이나 항공계에서는 당시 DC-10을 미국의 Tu-154로 보기까지 했다. 게다가 콩코드의 퇴역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기종이다. DC-10에서 떨어져 나온 부품이 콩코드의 타이어를 터트리고 연료탱크를 치고 지나가면서 불 붙고.... 그대로 콩코드는 역사 속으로...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는 우리의 DC-10
그래도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오랫동안 총 446대를 생산했다.[5] 생산 중단된 이후 사고투성이이던 DC-10을 좀더 손보고 윙렛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개선한 동생격 기종이 MD-11이다. 그러나 MD-11조차도 고질적인 사고에서 완벽히 자유롭진 못했다(...). 상세한건 MD-11항목 참조.
4 파생 기종
4.1 DC-10 Twin 컨셉트
만들어질 뻔했던 DC-10의 컨셉 중에선 767처럼 생긴 쌍발 단축버전을 반들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DC-10 Twin. 물론 시제기만 만들어지고 시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 근데 생긴게 원래 3발기 버전보다 균형잡혀보인다?
4.2 MD-10
사진에서는 맥도넬 더글라스가 이미 보잉의 자회사가 된 시점이라 보잉마크를 붙이고 있다.
DC-10의 업그레이드 옵션으로 MD-10이 있다. 콕핏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항공기관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전자계기 표시장치인 글래스 칵핏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글래스 칵핏을 사용하는 MD-11과의 호환성을 높임으로서 FedEx와 같이 DC-10과 MD-11을 둘 다 가지고 있는 회사의 조종사 훈련기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4.3 KC-10
미공군 KC-10 초기도색 |
미공군 KC-10 후기도색 |
네덜란드 공군 KC-10 |
군용 공중급유기 버전인 KC-10은 미국 공군과 네덜란드 공군이 운용하고 있다. 단 미국 공군 사양은 신제기이고, 네덜란드 공군 사양은 기존의 여객기용 기체를 개조한 것으로 차이가 있다. 그외 상세내용은 KC-10을 참조하자.
4.4 하늘의 소방차 : DC-10 Air Tanker
개조 모델 중 유명한 것으로는 B747마냥 소방 비행기로도 활용되는 것이 있다. 이름은 DC-10 Air Tanker 이며 이중 제일 많이 활약하는 기체로는 "10 Tanker 910"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날때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광범위 화재진압작업을 한다. 참조 피 뿌리는 거 아닙니다
5 여담
3발기 중에서도 가운데 엔진 덕트가 직선이라 정면에서 각도만 잘 잡으면 터보팬엔진의 제트팬(프로펠러)이 3개가 돌아가는 위용을 볼 수 있다. 비슷한 3발기인 L-1011은 S덕트라 아쉽게도 저런 3엔진팬의 진풍경을 보긴 힘들다.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이용한 알리탈리아의 특별기가 DC-10이었다. 이후 1989년에 대한민국에서 열린 성체대회를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한 뒤 출국할 때 이용한 대한항공의 특별기도 DC-10이었다.
6 사고
앞서 개발 비화 항목에서도 봤듯 이상하게도 굵직굵직한 사고가 적지 않다. 물론 이는 화물칸 문제나 협소한 수직미익 방향타 같은 DC-10의 결함만이 아니라 부주의도 있었으니 무조건 DC-10이 "Tu-154급의 고물 비행기이다", "급조해서 만들었으니 사고투성이다" 라고 단정짓기에는 어폐가 있다. 아무리 급조했다지만 날림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지킬 건 다 지켜서 만들었기 때문. 되레 기장이나 부기장들은 운행할 때 묵직하게 나가는 맛이 타 비행기들에 비해 몰기 편했다는걸 보면 여러 요인이 같이 합쳐져 대형사고를 친 사례가 많다.
DC-10의 주요 항공사고로는 터키 항공 DC-10의 파리 추락사고와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사고 등이 있고 대한항공도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1대 해먹었다.
콩코드 유일의 사고도 앞서 이륙했던 DC-10의 파편이 콩코드 타이어에 구멍을 냈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6.1 1974년 터키항공 981편 추락사고
1974년 터키항공 981편 추락사고는 위에서 말한 화물실 도어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도어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상승 중에 기압차가 발생해 기내의 공기가 도어를 날려버리고 동시에 위에 자리한 객실의 바닥까지 날려버려 조종계통을 손상시킴으로써 결국 조종불능에 빠져 추락했다.
터키 항공 사고는 사실 예견되어있던 사고로서, 1972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윈저에서 아메리칸 항공의 DC-10이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물칸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기체 내부와 외부의 압력차로 주요 케이블이 있던 윗층 승객실 바닥까지 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압이 완전히 나간게 아니었기에 기장이 기지를 발휘해 착륙할 수 있었고, 당시 관계자들은 MD에게 화물칸 도어를 고칠 것과 화물칸과 객실사이에 통풍구를 뚫을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MD는 아주아주 간단한 조치만 취한 채 방치했고 윈저 사건과 똑같은 원리에 의해 터키 항공의 DC-10은 추락하고 만다. 윈저와는 다르게 터키 항공의 DC-10은 유압 자체가 박살이 난 상황이라 조종사들이 어쩌해볼 도리가 없었다.
후에 이 사건으로 열린 청문회에서 MD는 윈저 사건보다 훨씬 전, DC-10을 설계할 때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을 낳았다. 이후 벌어진 손해배상 소송은 미국 법정 역사상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이 때문에 MD는 큰 재정적 타격을 입었다. 후에 DC-10을 완전히 개수하기는 했으나 이미 신뢰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6.2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사고
미국 최악의 단일 항공기 사고로, 사상 최악의 참사와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다루었다.
자세한건 항목 참고.
6.3 웨스턴 항공 2605편 사고
1979년에 일어난 사고
추가 바람
6.4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1989년 7월 29일 짙은 안개 속에서 리비아 트리폴리 국제공항에 접근 중 조종사 과실로 추락, 지상인원 포함 80명이 숨지고 124명이 생존하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6.5 가루다 인도네시아 865편 추락사고
최근에 일어난 사고로 1996년 후쿠오카 공항에서 일어난 가루다 인도네시아 865편 추락사고가 있다. 이 사고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이륙중이던 기체의 3번 엔진이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자 기장은 이륙중단을 결정하고 이륙을 멈추려 했는데, 이미 기체는 하늘에 떠있고 속도를 줄였지만 그대로 활주로를 이탈해 활주로 끝의 녹지에 불시착했다. 이 때의 충격으로 오른쪽 랜딩 기어가 연료통을 관통해 화재가 일어났으며 275명의 탑승 인원 중 3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구조활동에 참가했던 소방사와 기타 민간인들이 장시간 제트 연료에 노출되어 화학화상을 입었다. 당시 기체는 후쿠오카도 45번 후쿠오카 공항선을 완전 관통했는데 기적적으로 지나가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다.
6.6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
1989년 7월 19일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가 기체결함으로 2번엔진이 파손되면서 유압계통이 작동불능이 되면서 오로지 남은 2기의 엔진의 출력조절만으로 조종하여 공항에 겨우 비상착륙후 대파된 사건. 296명 중에 185명이 생존했지만 111명이 목숨을 잃었다. 2번엔진의 파손 이유는 엔진 팬블레이드의 결함으로 인한 피로파괴...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이쯤 되면, DC-10이 여러 모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냥 사고를 부르는 기체
6.7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사고
1979년 11월 28일 뉴질랜드 항공 소속 DC-10 여객기가 남극의 에레부스 산에 추락해 승객 237명, 승무원 20명등 총 257명이 전원 사망했다.원인은 화이트 아웃과 조종사들이 바뀐 경로를 알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7 참고 링크
- ↑ 이때 록히드에게 패배한 보잉에서 자신들의 모델을 여객기형으로 만든 것이 대형 4발 여객기 역사에 남을 베스트셀러인 보잉 747이다.
- ↑ A380을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MD-11 다음으로 MD-12라는 4발 2층구조 여객기 개발 계획도 있었으나 보잉과의 합병으로 나가리.
- ↑ L-1011은 제2엔진을 동체에 넣고 s자로 굽은 덕트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는 구조였다. 이 덕에 생김새도 DC-10에 비해 꽤 균형잡혀 보인다고.
- ↑ DC-10과 후속인 MD-11은 가끔 화물하역이나 이동 시에 무게중심을 잘못 잡으면 엉덩방아처럼 비행기가 내려앉는 현상이 가끔씩 생겼다고 한다. MD-11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대한항공도 이런 사례가 있다.
- ↑ 60대는 미 공군을 위한 공중급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