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라우피낭

Pulau Pinang(말레이어), Penang(영어)

1 개요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 말레이 반도 서부와 피낭 섬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주도는 피낭 섬 쪽에 있는 조지타운(George Town)[1]이다. 사실 섬과 주 이름뿐만 아니라 이 도시 자체를 그냥 페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잦다. 오히려 풀라우피낭보다 페낭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 인구는 약 115만명으로 이중 75만명 가량이 페낭섬에 살고 있다. 주민소득이 2위일 정도로 경제사정이 꽤 괜찮은 주이다.

말레이시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로부터 서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으며 상당한 부분이 육지에서 떨어진 섬에 위치해 있다. 단, 섬과 맞닿은 말레이 반도 본토에도 풀라우피낭 주 관할 지역이 일부 있으며 크다 주에 약간 끼어있다.

중국계가 다수인[2] 도시란 점이 특이점이며, 역사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점, 그리고 규모는 전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서울에 버금가는 위상을 보면 평양과 묘하게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내륙도시인 평양과는 달리 피낭은 항구도시이며, 실질적인 말레이시아 최대의 항구도시라는 점을 볼 때는 오히려 부산과 비슷한 점도 있다. 그냥 둘 다 짬뽕인걸로

2 역사

15,16세기 말라카 술탄국의 일부였다가, 나중에 이곳을 점령한 포르투갈에 넘어갔고, 나중에는 네덜란드로 넘어갔다.

19세기 영국이 이 지역을 포함해 말라카싱가포르에 해협 식민지를 설치했으며, 지금 말라야(서말레이시아)[3]의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영국화 되었다. 나중에 이 해협 식민지들은 1946년 영국 정부가 설치한 말라야 연합에 반환되었으며,[4] 1948년 말라야 연합을 계승한 말라야 연방 등에도 잔존하였고 1963년에 창설된 말레이시아 시대부터도 계속 잔존 중이다.

3 정치

화교가 다수인 동네라 부미푸트라 정책 등에 대한 반발이 있는지 야당의 우세가 강한 편이긴 하다. 일부는 독립성향도 보이는데 다만 사바사라왁처럼 심한 편은 아니라 다수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말레이시아인"으로 규정하긴 한다. 다만 좀 어색할 뿐.(...) 예전에는 싱가포르와 함께 '화교가 중심인 주'라는 공통점을 공유했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극우주의자들은 걍 꺼지라며 독립을 외치고 있다.

1969년 5.13 사건[5]이 터진 후엔 야당이었던 민중운동당(Gerakan)이 압승했다. 하지만 얼마 후 민중운동당이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에 가입하면서 여당의 텃밭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좌파성향의 야당인 민주행동당(DAP)이 다시 차지해 야당의 텃밭이 되었다.(...) 왔다리갔다리

현 실권자는 부지도자이자 총리인 민주행동당 소속 화교계 림관엥. 하지만 림관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선량한 민주화 인사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참고로 주의 지도자는 얼굴마담 총독이며 본토의 다른 주와는 다르다.[6] 2016년 현재 총독은 압둘 라흐만 아바스이고 총리는 림관엥. 그나마 다행히도 총독은 좋은 사람이라카더라

4 사회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주이다.[7] 하지만 가장 큰 종교는 이슬람이다.(...)[8]

그래도 화교들이 다니는 교회도 많으며 특히 성공회 소속 조지타운 교회는 19세기에 세운 곳으로 영국식 영어표준중국어 미사를 드린다.

그리고 태국인 이민자들도 은근히 많아 거대한 와불상이 있는 태국 사원[9] 같은 태국 절도 많이 보인다.

이러한 중국계 태국인 즉 시노타이들이 만든 절 중에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사(蛇寺) 즉 뱀의 사원도 있다. 내부는 말 그대로 중국풍과 태국풍이 마구 섞여있다. 드나드는 사람들은 태국에서 건너온 중국계 태국인들이며 법회도 태국어를 쓰는 등 태국 분위기가 강하다.

확실히 쿠알라룸푸르코타키나발루 등과는 분위기가 다른데, 영국령 시대에 남겨진 유럽풍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제대로 낡았다. 다만 똑같이 약 70%가 중국계인 싱가포르 생각하고 여기 오면 안 된다. 실제 삶의 질 등에서 좀 떨어지는 편이며, 중국계가 돈이 많아 망정이지 아니면 빈곤에 허덕였을 곳이란 의견도 있다. 다만 주민소득은 말레이시아에서 2번째로 높을 정도로 말레이시아 내에선 경제가 발달한 편이다.

4.1 배타성

원래 말레이시아 자체가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있어 제노포비아가 정치적으로까지 이어진 상황이라 이로 인한 외교적인 추태도 심심찮게 일으킨다. 그러나 배타성도 지역마다 다르며, 동말레이시아에 비해 본토격인 서말레이시아가 훨씬 심하다고 한다. 그리고 서말레이시아 내에서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인데,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판치는 클란탄이 가장 배타성이 심하다고 아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이곳 피낭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론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툭하면 타국과 타국민에게 추태를 부리고 예의도 안 지키는 UMNO 독재정권과 그의 심복인 이민국이 친말레이인 성향이라 이에 탄압받던 화교들은 다소 개방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화교들의 배타성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통수 소위 "Bangla"와 같은 인종차별적 용어들도 화교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하튼 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풀라우피낭은 '퀘티아우 고렝'과 같은 볶음국수의 고장인데다가 아시아의 진주로 불리던 곳이라 소위 '음식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인데 그 때문인지 외국인들이 현지음식을 요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제노포비아의 영향으로 외국인들이 요리한 현지음식을 두고 '맛대가리 없다' 따위의 편견을 갖게 되었고,블라인드 테스트 해보면 알거 아냐 그것이 오히려 현지의 고유 풍토를 망친다는 생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전부터 있었다. 피낭소비자보호협회 의장이자 천하의 개쌍놈인 코리스 아탄은 지속적으로 "외국인들의 요리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기득권들이 해당 악법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곤 했었다.

결국 2014년 정부는 주민투표를 부쳤고, 여기서 80% 이상이 찬성하면서 2016년부터 외국인들의 요리가 금지되었다.(...) 당장 유사 기사들을 읽어보면 피낭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외국인 혐오증이 만연한지가 보인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국민요리사이자 셰프 완(Chef Wan)으로 알려진 레주아완 이스마일도 "그냥 외국인에게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면 될 것을 갖고 별 이상한 법을 만들어 나라망신시킨다"며 강력하게 비판했을 정도. 망신인건 아니 다행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외국인이 현지에서 집을 사는 것조차 막겠다고 난리다. 이 역시도 명분은 '우리 고유의 토지를 보호하고 지킨다'라지만, 이것은 그저 말도 안 되는 핑계일 뿐이다. 머지않아 이런 식의 핑계를 들어서 '우리 국민의 취업을 보장한다'며 외국인 취업을 금지시키고,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지킨다'며 유학까지 금지할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외국인 요리 금지법 참조.

5 교통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두 개의 피낭대교가 존재한다.안타깝게도 두 다리는 체제선전을 위한 흑역사일 뿐 다리 외에도 배를 통해서도 연결된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태국까지 이어지는 국영철도가 이 곳을 관통하는데 버터워스 역에서 내리면 이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처럼 전철역을 만든다는 소리도 들린다.

공항으로는 말레이시아 제3의 공항인 피낭 국제공항이 있다. 한국에서는 화물편(대한항공 화물기 주 6회 운항) 외에 직항은 없으며,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또는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을 거쳐야 한다.

6 트리비아

한국창원시와 자매결연도시를 맺었다.

7 출신인물

  1. 말레이시아의 제12의 도시로 현재는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한참 못미치지만, 그래도 위상만큼은 쿠알라룸푸르 다음이라고 한다. 정작 제2의 도시는 조호르바루이지만 신도시인데다 싱가포르의 위성도시격 느낌이다 보니 아직까지 사람들은 쿠알라룸푸르 다음하면 조지타운을 주로 떠올린다고. 그래도 12도시는 아니지 않나 제3의 도시는 비교적 페낭과 가까운 이포.
  2. 수치가 조금씩 다 다르긴 한데, 2010년대 기준 대략 중국계 70%, 말레이계 18%, 인도계 12% 정도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전체로 보면 인도계도 제법 사는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말레이시아 본토, 즉 말라야 반도 지역을 의미
  4. 단 싱가포르는 예외였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유무역의 거점지였던 점에서 경제적 이득을 보려 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한다. 1963년 말레이시아를 통해 다시 돌아왔으나 결국 2년 뒤... 망했어요.
  5. 1969년 5월 10일 선거에서 이긴 중국계가 말레이시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로 축하 행진을 하다가 5월 13일 말레이계 지역인 Kampong Baru를 지나갔고, 거기서 말레이계와 충돌이 일어났다. 혹자에 의하면 한 중국인이 빗자루를 들고 나서 KL에서 말레이계를 쓸어내는 어그로 시늉을 했다는 소리도 있다. 여튼 여기에 빡친 말레이인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차와 상점을 불태우고 사망자도 났다. 공식적으론 2백명, 언론에선 2천명까지 사망자를 추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폭동은 오로지 Selangor 지역에 국한됐고, 중국계가 많이 사는 페낭이나 이포 같은 지역으로까지 번지진 않았다. 해서 시골 같은 지역은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6. 이쪽은 지도자가 술탄.
  7. 주로는 유일할지 모르나, 도시는 쿠알라룸푸르, 이포 등 몇 있다. 다만 쿠알라룸푸르의 경우 2010년대 들어 말레이계에 추월당했다. 또 사라왁, 사바 같은 동말레이시아의 경우 현지 원주민이 제일 많고 중국계, 말레이계가 그 다음을 이룬다.
  8. 은근히 중국계 무슬림들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참고로 중국인은 주로 불교나 기독교를 신봉하며 50%는 불교, 15%는 도교, 10%는 기독교를 믿는다. 그리고 회족 출신 중국인들은 무슬림인데 말레이시아는 그 특성 상 광둥 성의 회족들이 대거 건너왔다. 취소선 드립대로 회족은 이슬람을 믿는 중국인을 일컫지만 드립과 달리 원래 몽골 제국의 후예들로 몽골계이며 중국 한족과는 많이 달랐다. 한화된 몽골계라 보면 된다.
  9. 중국계 태국인들이 만든 곳으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짬뽕된 분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