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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서울 KIXX No.12 | |
한송이(韓송이) | |
생년월일 | 1984년 9월 5일 |
출신지 | 경기도 오산시 |
출신학교 | 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1] |
포지션 | 레프트, 센터[2] |
신체사이즈 | 신장 186cm, 체중 65kg |
점프 높이 | 스파이트 높이 305cm, 블로킹 높이 298cm |
소속팀 | 구미 한국도로공사 (2002~2008)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2008~2011) GS칼텍스 서울 KIXX (2011~) |
응원가 | 써니힐 - 두근두근 |
2012 KOVO컵 프로배구 MVP | |||||
김선영 (성남 도로공사) | → | 한송이 (GS칼텍스) | → | 김희진 (IBK 기업은행) |
1 소개
대한민국 여자배구계의 미녀이자 광저우 5대 얼짱[3].
별명은 딸기공주[4], 쏭알이, 송송이.
입탈망효과를 모두 경험한 선수이자 현실판 여자 남승우+박민준[5]
대한민국 여자배구에서 큰언니 한유미와 함께 대표적인 자매선수로 유명하다.[6] 여러모로 큰언니 한유미와 많이 비교되는데, 한유미는 털털한 파이터 스타일인데에 비해 한송이는 약간 보이쉬한 면은 있으나 여성적인 면이 언니보다 더 부각된다. 특히 경기가 안 풀릴 때 둘의 성격적인 차이가 드러나기도(...)[7]
한유미-한송이의 수원전산여고 직속 후배인 김연경이 가장 부러워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큰언니가 배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배구선수가 되었는데 정작 큰언니는 배구를 그만두었다는 것.
1.1 구미 도로공사 시절
수원 한일전산여고 출신으로, 200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 할 때 팀의 막내로 있었다.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했으며 2002-03 시즌 슈퍼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언니의 후광을 입은 것도 있었지만 순수한 실력으로도 1984년생 또래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그래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의 막내로 선발되기도 했다. 이후 도로공사의 주포로 활약하며 맹활약, 2005년 V리그 원년 정규리그 1위를 비롯하여 2000년대 중반 도로공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팀이 늘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한동안 콩라인에 속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도로공사의 주축선수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게 된다. 레프트윙 주포로서 경기에서 많은 점수를 올려 2007-08시즌 김연경, 황연주, 그리고 각 팀 용병들을 제치고 득점왕 타이트를 거머쥐기도 했다. 그런데 대개 장신의 주공격수들이 그렇듯 리시브 능력은 바닥을 기었다. 그래서 국내경기는 물론 국제경기에서 목적타 서브의 대상자이기도 했다. 당시 소속팀인 도로공사는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고참들이 대거 은퇴를 하면서 한송이를 보호해 줄 리시버가 없어지는 바람에 본인이 직접 리시브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국가대표 경기에서 리시브 능력마저 출중한 김연경의 대각에 서기 때문에 리시브 능력이 더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한송이는 전담공격수에서 윙리시버로 전환하게 된다. 그런데 간혹 기복이 있는 롤러코스터 플레이를 가끔 보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위의 귀여운 별명과는 달리 여배팬들이 심히 깔 때는 '한기복'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8] 한송이 본인은 리시브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그러니 착한 위키니트들은 한송이 선수가 리시브를 잘 받기를 응원해주자. 그래도 2013-14 시즌에 공격수 최초로 통산 5,000 리시브를 달성했다.
1.2 천안/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시절
2007-08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어 김연경, 황연주 등 고교 후배들이 많이 있는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최고액 연봉 계약을 맺어 이적하게 된다. 이적 당시 높으신 분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라는 외압설[9]이 있었다.
당시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아버지였던 한선택씨가 2008년 5월 13일(당시 FA 1차 협상 기한이 5월 8일 까지였다.)직접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에다가 하소연을 쓸 정도로 당시 도로공사의 병크가 지금 흥국생명 뺨 칠 수준이었다. 현재 검색이 안되니 전문을 몽땅 다 복사해서 읽어보자.
안녕하세요 한송이선수 아빠되는 사람임니다 먼저 이렇게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한마음 어찌할바를 모르겠슴니다 그리고 이문제에대해서 많은관심 가져주신데 대하여 깊히 감사드림니다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래프드를 실시하는데 그때는 완전히 개인의 의사는 반영이 안되고 각 구단에서 필요로 하는 순서에 의하여 선수를 선발하고 있슴니다 의무적으로 5년을 좋던 실던간에 생활을 해야 함니다 그후에 얻어지는 혜택이 fa 란제도인데 선수가 원해서 만든제도두 아니고 각 구단과 협회에서 선수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서 그나마 만들어준 제도인걸루 알고 있슴니다 각설하고 저희 부모된 입장에서 처음엔 잔류를 원했슴니다 그래서 시즌이 끋나자 바로 회사하고 접촉을 시도했슴니다 물론 금액두 제시했고 회사에서 다른 부분도 신경써 주셨고 암튼 회사도 노력을 많이 하였슴니다 그런데 1차접촉때 그리고 2차접촉때 계속해서 같은 금액을 제시하며 화사측 논리만 이야기 하시는 검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슴니다 금액을 1억 2천달라고 했슴니다 그러면 회사에서 신경써주신것두 있고해서 절충을해서 빨리 마무리질려고 햇는데 계속 질질끄니가 송이가 마음을 바꾸게된것임니다 그리고 메스컴에서도 일단 송이가 나오면 현대나 케이티엔지나 무조건 잡는다고하니 송이가 마음을 바꾸게된 동기 임니다 무단이탈문제도 감독과 이야기 한상태에서 나온겄이고 5월 8일날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협상을 해 야하니 들어오라구 해서 저는 솔직히 실던좋던간에 네가 5년동안 몸담앗던 회사니까 들어가서 인사드리고 마무리 잘하고 와라 해서 들여 보낸늤데 들어가서 얼마나 심하게 꾸지람과 모욕을 당하고 왓는지 집에와서 펑펑 울더군요 자기 하나놓고 4명이서 집중공격을 했다고 그리고 회사에서 사전접촉을 이야기 하시는데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르며 저희도 코보 홈페이지에 있는 공시사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상황에서 바보짓은 안함니다 여러분 모두가 생각하시듯 한송이가 팀을나오면 어디로 가겠슴니까 그건 거의 현대로 갈것이다 생각하실검니다 현대가 12연패씩하면서 언니가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상황에서 현대로 가는것으로 알고계실검니다 그걸알고 회사에서 제동을 걸었슴니다 물론 회사에서는 아니라고 말씀하고계시지만 회사에서 저한테 농담반 진담반 하신말씀이 있었고 송이에게도 하신말씀이 계셨고 배구계관게되시는분한테도 들었슴니다 물론 입장이 있으니까 아니라고 하신것 충분히 이해함니다 왜 현대가 손을떼고 케티엔지가 손을 뗐겠슴니까 네티즌 여러분들은 이해가 가심니까 회사에서는 그렇게 라도 해놓으면 다시 돌아갈겄이다 생각을 하신것같더라구요 그러면 8일날 들어갔을때 그렇게 몰아세우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함니다 송이가 다시돌아갈수있는길을 완전히막아놓고 다른팀에다 그렇게 하시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저희가 사전접촉을 했다면 8일날들어가서 그러고 나오겠슴니까 저두 그렇고 송이도 그렇고 현대를 못가면 도로공사에 남는것이 최선이라는거 충분히알고 있슴니다 여자배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흥국이나 지에스에 가면 안되는거 다 알고있슴니다 하지만 돌아갈수있는길을 원천봉쇄를 해논 상태에선 어쩔수 없이 두팀중 한팀을 택해야 하는 저희 입장임니다 선수가 남은 배구생활 자기가 꿈을펼쳐서 뛸수있는 팀으로 갈수있게 도와주시는게 옳은일이라 생각 됨니다 제가 컴퓨터를 잘못해서 이 글을 쓰는 데 한시간 두 더걸린거 같슴니다 진짜로 하고십은 말두많은데 생각두 안나고 말주변두없고 하두 답답하여 글을 올려 봄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함니다 |
맞춤법이 틀리다고 뭐라 생각 말아주시길...
즉, 2007-08 시즌 당시의 성적을 이유로 1차 협상 기간에는 1억 2천만원[10]을 받아준다면 이후 협의 하에 남으려고 했지만, 원 소속팀인 도로공사의 시간 끌기로 카더라성 기사가 퍼졌고, 이로인해 일단 2차 협상에 나가보기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1차 협상 마지막날에 인사나 올라러 도로공사 프런트와 만났는데 거기서 프런트 4명이 그냥 막말에 욕설을 해서 그 날 귀가 후 펑펑 운 것도 모자라 사업권을 무기로 현대건설과 인삼공사 이적을 가로막았고, 그렇다는건 복귀시키겠다는 소리인데 그것도 스스로 거세시키고 당시 강팀이었던 GS칼텍스나 흥국생명 행 아니면 은퇴로 몰아넣었다는 말. 심지어 한유미도 당시 오죽 당시 그 상황에 속 터졌으면 아예 FA제도를 폐지하는 게 낫다고 할 정도였으니...관련기사 그래서 결국 흥국생명으로 이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보상선수로는 이보라. 결국 당시 도로공사 프런트의 뻘짓으로 현대건설에서 5시즌 뒤 맹활약할 선수를 얻을 수 있었던 찬스를 스스로 걷어찬 셈. 물론, 다른 선수를 지명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적 후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아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다. 2008-2009시즌 흥국생명의 우승으로 드디어 콩라인에서 벗어났다. 그렇지만 이 시즌에서는 김연경과 외국인 선수 카리나에게 밀려 거의 뛰질 못했다. 시즌 막바지 황연주가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자 뛸 수 있었다.
2010년 AVC컵-세계선수권대회-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는 국제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서브리시브를 제대로 받는 등 오랜만에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만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갑자기 각성한 2010년 이전부터도 윙 리시버로서 불안정한 리시브가 계속 지적돼 왔다. 심지어 위키백과에서 "배구선수" 중에 가장 리시브를 못하는 선수 1등 한송이 2등 신영수"라는 문장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11]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대각을 받쳐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2010년을 기점으로 리시브 능력도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의문의 1승을 거뒀다 카더라.
2010-11시즌 팀의 주포로서 약간 모자른 활약을 보이고 있다. 레프트윙 주예나와 용병 미아 예르코프가 제때 터져준다면 우승청부사 김사니의 토스웍이 더해여 무시무시한 팀이 될텐데... 우린 안될꺼야 아마. 그래도 기어코 팀을 정규시즌 3위에 올려 놓는 활약을 보였다.
1.3 GS칼텍스 서울 KIXX
2010-11 시즌 종료 후 2번째 FA 자격을 얻어 GS칼텍스 서울 KIXX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김연경의 대각을 맡으며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을 4강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 이후 소속 팀에 복귀하여 팀의 리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GS칼텍스의 2012 V-리그 컵대회 우승과 함께 대회 MVP를 수상했다. GS칼텍스로 이적했을 당시에는 포텐셜은 터지지 않았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 나혜원을 보상선수로 지명한 GS칼텍스는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GS칼텍스의 주포 김민지가 FA 미아가 돼버리면서 약해진 공격진을 훌륭히 메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2-13 시즌 드래프트 전체 1번픽으로 들어온 이소영의 맹활약과 더해 팀의 리시버 라인을 든든히 지키면서 팀이 전반적으로 수비가 견고한 팀이 되는 데 한 몫을 했다. 2013-14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한 라운드를 쉬었지만, 복귀 후에 안정된 리시브를 보여주며 제 역할을 했고, 특히 시즌 막판과 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 때 이소영과 포지션을 스위칭한 게 성공하며 GS칼텍스의 6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종료 후 3번째로 FA 자격을 얻었고 GS칼텍스에 잔류하여 모처럼 팀을 옮기지 않았다. 덤으로 다가올 14-15 시즌 떠난 베테랑 듀오 이숙자, 정대영의 역할을 맡아야 함과 동시에 주장 완장을 받게 되었다.
2014년 여름 국제경기에서 리시브 문제로 다시 팬들의 성토를 받고 있다. 물론 이전에 소속팀에서 수비 잘하는 센터가, 대표팀에서는 배구 사기캐 선수가 같이 있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상기한 대로 국제대회에서의 임팩트 있는 범실 때문에 더더욱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게다가 괜찮았던 공격마저 2013-14 시즌에 부상과 봄배구 때의 이소영-한송이 시프트 이후로 헤매고 있는 실정. 2014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이선구 감독이 "한송이가 리시브를 해야 안심이다."라는 얘기로 홍띵보와 비교하고 있는 판이다.[12]
2014-15 시즌 들어서는 그동안 전혀 뛰어 보지 않았던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013-14 시즌 라이트 전환이 실패로 끝난 것도 있었고, 정대영의 이적으로 생긴 센터진의 낮아진 높이와 만년 까이는리시브에서 면제시켜 수비 부담을 줄여줄 목적인 듯. 이를 처음 시도한 평택 현대건설 전부터 팀의 반전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잘만 하면 이분처럼 선수생명이 연장될 수 있다.
2016년에도 센터로 계속 출전하고 있다.
2 이야깃거리
서브시에 공을 돌리면서 입김을 부는 듯한 특유의 동작을 취한 뒤에 서브를 넣는데, 이 동작이 마치 군고구마를 호호부는 것 같다고 하여 한송이의 서브는 배구팬들 사이에서 군고구마 서브나 호호 서브라고 불리고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개콘 불편한 진실에 김연경과 함께 나와 황현희의 신발깔창을 벗기고 이렇게 일갈했다.
한송이 : 운동하는 여자가 뭐 어떻다고?? |
그리곤 황현희가 가지고 있던 메달을 뺏어 그 큰 키로 황현희를 농락했다.
주의사항으로, 검색창에 한송이를 그대로 치면 예전에는 그라비아 모델 한송이가, 2012년 이후로는 화성인 바이러스 출연자 한송이가 제일 먼저 뜬다.[13] 검색창에 반드시 한송이와 배구를 반드시 같이 치기 바란다.
언니와 함께 SNS를 자주 한다.
신발, 특히 농구화[14]를 많이 모은다고 한다.
이하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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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2013년에 개명했다.
- ↑ 14-15시즌부터는 실질적으로 센터로 뛰고 있다.
- ↑ 그밖에 이슬아, 정다래, 차유람 등
- ↑ 일본 팬들이 지어준 별명
- ↑ 안 좋은 쪽만 합쳐서. 남승우의 케이스와 비교한다면 첫 FA 이적으로 인해 포지션이 과도하게 중복되는 피해를 입힌 점과 당시 고액 연봉 수령, 무릎과 발목 부상, FA당시 원 소속 구단으로 인한 반강제적인 이적(남승우는 세대교체 목적으로, 한송이는 타팀 물 먹이기라는 차이가 있지만)+박민준의 경우는 첫 단추 안 풀리면 지독하게 안 풀리고 주 포지션인 레프트에서 수비 문제가 불거지며 센터로 전향한 것이 겹친다. 그래도 주포놀이를 한 점은 유일하게 좋은 면.
- ↑ 한때 한유미-한송이 사이에 있는 작은언니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유언비어로,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극성팬이 퍼트린 낭설이다. 실제로는 한유미-한송이 두 자매이다.
- ↑ 한유미는
제빵의 명장답게시원시원하게(?) 신경질을 부리는데 비해 한송이는 무한 실책 루프에 빠지게 된다(...) - ↑ 한송이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1세트부터 잘 풀리는 날은 공격-수비 범실이 적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 당시 도로공사 측에서는 아무래도 공사의 한계 때문에 FA 시장에서 한송이를 잡기 어렵게 됐으니 자신들의 사업인 고속도로와 관계 있는 팀으로는 보내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나머지 5개 팀 중 고속도로와 무관한 팀은... 답이 뻔하지 않은가.
- ↑ 첫 FA시즌이었던 2007년 당시 최고 연봉 수령자인 언니 한유미와 같은 액수이다.
- ↑ 어느 반달리스트가 올려놓은 비방성 글로 위키백과에 버젓이 올라 있었다. 물론 현재는 삭제 된 상태.
- ↑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선구 감독이 사실상 임시 대표팀 감독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전임 차해원 감독을 해임한 이후 사실상 V-리그 우승팀 감독이 돌아가며 보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대표팀을 전적으로 맡아야 할 전임감독 선임과 일관성 있는 대표팀 운영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지원 따윈 없는 대한배구협회에 비난을 돌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김연경+자기팀 선수들 중심으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문제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부분. - ↑ 2012년 들어서는 항목 2의 한송이가 활동을 중단했고, 항목 6의 한송이가 더 유명해져 항목 5가 먼저 뜨는 경우가 많아졌다.
- ↑ 소장 목적도 있지만, 배구 선수들 중에 농구화를 신고 경기에 뛰는 선수도 있을 정도. 농구화의 접지력 때문에 무겁더라도 배구화 대신 농구화를 신는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가빈 슈미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