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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체: 許昌
간체: 许昌
현대 표준중국어 발음(한어병음): Xǔchāng
한국 한자음: 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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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의 위치:구글맵)
고대로부터 유명한 중국의 도시이며, 현재 인구는 430만명인데 현재 기준으로도 중국에서 중간규모의 도시.
중국어로는 쉬창이라고 한다. 현재 허난 성(하남성)에 위치해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도시중에서 낙양, 장안과 더불어 가장 유명하다. (거기에 덤으로 성도, 건업 정도가 더 낄 것이다.) 허난성과 함께 예주에 속하는 지역으로, 후한 시절 예주 영천군의 허현이었다.
원래는 주나라 시대 허나라(許) 지역이라서 허라고 불렸다. 서기 196년 군벌인 조조가 헌제를 보호하여 새로운 도읍으로 삼았다. 당시 낙양은 동탁에 의해 불에 타버려 폐허가 되어 있었고, 장안은 이각과 곽사의 난을 겪은 데다 안보에 취약하였다. 또한, 허는 조조 자신의 근거지(연주)와 가깝고 주변 물자가 풍부하다는 이점도 있었기에 조조는 헌제를 이 곳으로 모셔와 새로운 도읍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듣보잡이었던 도시가 명목만 남은 후한의 수도가 되어 유명해졌으며, 이 때 도(都)가 붙어 '허도'라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24년의 건안 연간의 시작이다.
조조가 죽자 조비가 제위를 선양 받고 221년 "魏基昌于許"(위기창우허, 위나라의 기초는 허에서 번창할 것이다)라는 말을 지으며 허창으로 개칭되었다. 그래서 삼국지연의에서 조조 생전에 허창허창 거리면 오류. 역사서 삼국지에서는 허창으로 개칭되기 전에 "허", "허도"라는 말도 자주 쓰인다.
제후 시절 모개가 건의하고 건안 1년 한호가 건의한 둔전제의 가장 큰 효과를 본 동네. 196년 가을 시작해 197년 첫 해에 무려 양곡 백 만석의 식량이 모였다고 한다. 이후 둔전제는 전국적으로 실시되어 조조가 쇠락하지 않고 주변 군웅들을 제압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조비의 시대엔 이미 둔전제가 한계를 보이며 서서히 쇠락하는 상황이었고, 사실 천도는 이런 경제적 배경을 반영한 측면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안 연간에는 장안, 낙양, 업(업군), 초(譙, 조조의 고향으로 흔히 말하는 초현)와 더불어 리즈시절에는 5대 도시라고 불렸으나, 결국 조비는 220년대 낙양을 복원하고 황궁을 지었으며, 이전하며 허창의 황궁은 헐어버렸다. 그리고 인구도 모두 이전하며 허창은 다시는 수도가 되지 못하고 듣보잡이 된다. 결국 오늘날까지 길이 남은 "허창"이란 이름을 지어준 조비는 약주고 큰 병 준 셈(...)
고평릉 사변에서 환범이 조상에게 허창에서 조방을 데리고 농성하라고 진언했으나 조상이 듣지 않았다. 또 한번은 태위 왕릉과 연주자사 영호우가 모의해 황족 조표를 황제로 맞아들이고 수도를 다시 연주의 허창으로 옮기려고 했다. 영호우는 장군 장식(張式)을 파견해 조표와 왕래했지만 흐지부지 되었고, 후에 모의가 발각되자 사마의는 왕릉을 토벌하러 친히 수춘으로 출정, 왕릉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런데 다시 음모가 드러나서 왕릉은 자결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허창은 완벽하게 몰락하고 말았으며, 이후의 역사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2천년이 가깝게 흐른 현재에는 조금씩 발전하는 추세라고 하며, 인근에 헌제의 무덤인 선릉과 헌제가 선양했던 수선대를 포함해서 위나라 유적이 좀 남아 있어서 삼국지 빠들이 좀 오는 모양이긴 한데.. 그래도 낙양(뤄양)이나 서안(시안, 옛날의 장안)에 비하면 유명세로 보나 유적으로 보나 부족한 감이 크다(...). 괜찮아 업이랑 초는 더 크게 망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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