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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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한 말의 인물 1

許劭
(150~195)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자장(子將). 여남군 평여현 출신으로 허정의 사촌동생이다. 정사나 창작물에서는 장중경처럼 이름이 아니라 성과 자를 합친 허자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주로 허자장으로 알려져 있다.

회계 출신으로 후한서에서는 허생(許生)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후한서 효영제기, 정사 손견전, 자치통감 등에 나온다.

1.1 생애

매달 초하룻날마다 향리의 인물을 골라 비평해 여남의 월단평이라 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허소가 여남태수 서구에게 기용되어 군의 공조가 되었을 때 허정을 배척해 봉록을 얻을 수 없게 해 허정은 혼자 힘으로 살아야했다고 한다.

교현조조에게 허소를 만나볼 것을 권해서 조조와 만나게 되었다가 허소는 조조가 난폭한 자로 소문난 지라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다가 재촉하자 대답하는데,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奸賊)이요, 난세의 영웅(英雄)이라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웃었다고 한다[1][2][3]

조조와 양표 등 여러 사람이 초빙하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으며, 중원에서 일어난 전란을 피해 양주 땅으로 피신했다가 유엽을 보고 세상을 보좌할 만한 인재라고 평했다. 자신은 유요에게 몸을 의탁했으나 손책이 공격해 유요가 패하자 같이 달아났는데, 회계로 도망가려고 하는 유요에게 회계는 부유하고 실한 곳이라 손책이 곧 탐낼 것이기 때문에 예장으로 피할 것을 제안했다.

유요와 함께 예장으로 피난하지만 46세에 허소는 곧 풍토병으로 사망한다.

어떤 사람이 유요에게 태사자를 써보라고 권하자 유요는 "내가 그를 썼다가는 허자장이 나를 비웃을 것이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인물의 평에 대해서는 이름있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소는 태사자가 배신을 할 상이 보인다고 평했는데 유요는 그 말을 듣고 태사자를 기용하지 않고 홀대해서 배신당한다(...).

예장기엔 허소의 귀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심계가 예장태수로 있을 때 대낮 대청에 어떤 사람이 나타났는데, 무사복을 입고 노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여남 평여현 사람인 허소 자장이라 밝히며 장례를 다시 해달라고 한 뒤 사라졌다. 심계는 그의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어서 초혼제를 지내 주었다.

1.2 관상쟁이?

후한 말기의 향거리선제를 잘 모르는 현대 작가들은 허소의 월단평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관상쟁이로 왜곡되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 제도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타난 오해이다. 당시에도 관상은 존재했는데 종요의 기록에 이런 사람이 인상견(人相見)이라고 나오지만 허소에는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

위에서 나온 월단평을 관상이라고 보면 크나큰 착각이다. 과거 제도가 완성될 때까지 관직에 오르는 것은 세습과 구매, 천거로 크게 나뉘었다. 특히 후한 말기에는 환관에 대항하는 청류파가 강조되면서 평판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그 과정에서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평판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데, 허소와 허정이 특히 유명해진 것이다. 현대로 치자면 인기 높은 시사평론가가 대권후보나 유력한 정치주자라고 꼽아주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이 오해 때문에 신문 기사에도 흔히 허소를 관상쟁이로 나타내고 있으며, 관상학계에서는 허소를 오래 전의 관상 명인으로 보고 있다.

1.3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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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0,11

삼국지 시리즈에는 조조의 재능을 알아본 것 때문에 관상장이 도인 이미지로 등장해 주로 NPC로 여러가지 특기를 전해주는데, 그래서 실제 수명보다 오래사는 것 뿐만 아니라 말년에 의탁한 유요와의 관계도 무시된다.

삼국지 5에서는 특수인물로 등장. 이름은 허자장으로 나온다. 하지만 사기기술인 환술, 요술, 도술중 하나도 가지고있지 않고, 잉여인 점술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력이 94로 높긴해도 전투시 활용도는 미묘. PK에선 군주로 써볼수 있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삼국지 6에서는 가끔 나타나서 재야의 인재에 대한 얘기나 어떤 장수가 불만을 품고 있다는 얘기를 알려준다.

도사가 별로 없는 삼국지 7에서는 실제로 유요의 부하 장수로 나오며 유요가 죽었을 경우 후계자 1, 2순위가 된다.

삼국지 10에서는 교현과 더불어 관상을 봐주는 사람. 특기 명사를 후천적으로 획득하려면 명성 700 이상을 쌓은다음 이 사람과 열심히 친목질을 해야한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허자장으로 맨 처음부터 등장해 위에서 나온 조조에 대한 평가를 들려주는데, 이에 따른 대답에 따라 가상, 현실 수치가 바뀐다. 영천 전투에서 레벨을 올려주면서 만약 모든 보물을 다 모았다면 보물도감을 처음부터 얻고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도사 같은 관상쟁이 영감으로 나와서, 조조의 관상을 본 다음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여 피를 토하고 죽어버린다.

2 후한 말의 인물 2

許韶
(? ~ 172)

후한 말의 인물. 허창의 아들.

172년에 회계에서 아버지 허창과 함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때 허소는 스스로 대장군을 칭했다가 양주자사 장민과 단양태수 진인의 공격을 받다가 174년 11월에 이들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다.

정사에서는 아버지 허창과 함께 구장에서 봉기한 것으로 나와 여러 현을 선동해 그 무리가 수만이었다고 하며, 이 때 손견이 오군에서 사마를 지내면서 용맹한 자들을 모집해 1천여 명의 군사로 공격하자 토벌되었다. 손견이 허창, 허소 부자를 토벌한 공적을 장민이 조정에 상주하자 손견은 염독현의 현승이 되었으며, 1천 명으로 진압된 것으로 볼 때 송건과 비슷하게 큰 세력을 보유하지 않다가 토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주 지방이 워낙 혼란해서 오랫동안 토벌되지 않던 송건과는 달리 손견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급속도로 망해 손견의 명성만 올려줬다.

2.1 미디어 믹스

일본의 소설인 吳 삼국지에서는 아버지 허창이 양명황제를 칭할 때 허소는 황태자로 세워졌으며, 손견이 출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 허창에게 5천의 병사를 달라면서 그들의 배후로 돌아가 단번에 무너뜨리겠다고 했지만 허창은 손견의 기세가 등등해 농성하는 것이 좋다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손견에 진압될 때 허소는 어떻게 죽었는지 나오지 않았지만 무사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죽었다고 언급된다.

삼국지를 품다에서 게으름 피우다가 손견에게 기습을 받아 도망쳤으며, 손견이 허창을 공격하자 이 사실 때문에 아버지 허창에게 못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기지 못하면 아들도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손견과 싸우러 나갔다가 전사한다.
  1.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삼국지가 울고 있네'의 저자인 리동혁은 이것은 후한서의 허소전에서 나온 평이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
  2. 하필이면 연의에서 난세의 간웅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대사를 뒤바뀌어 알게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 대사는 아무리 악인일지언정 평범한 범인이 아니라 천하를 떨게만들 인물이 된다면 만족한다는 조조의 야망과 그릇을 보여주는 서술적 장치로 사용되었다.
  3. 어짜피 장차 천하에 난세가 도래할 것이 뻔했기에, '간적'이라는 평은 빈말에 불과하였고, 따라서 남아있는 '영웅'이라는 평이 조조의 맘에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