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한 말의 인물
『오서』 「유요태사자사섭전(劉繇太史慈士燮傳)」 | ||
유요 | 태사자 | 사섭 |
劉繇
(156 ~ 197)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 자는 삼국지 오서 유요전과 후한서 허소전에 따르면 정례(正禮). 정체(正體)라고도 하는데 비슷해서 혼동하거나 혼용하는 듯.
황족 가문으로 전한 한고조의 장남 제왕 유비(劉肥)의 자손. 동래군 모평현 사람. 연주 자사 유대의 동생, 유기의 아버지.
1.1 생애
유요가 19세일 때 종부인 유위가 도적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었는데, 유요가 도적들에게서 유위를 구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고 낭중이 되었으며, 하읍현의 장으로 임명됐으나 군수의 청탁을 받자 관직을 버렸다.
그러나 청주에서 불러들여 제남군위로 삼았는데, 제남상이 중상시의 아들로 탐욕스러워 뇌물로 자기 배를 채우기에 상주해 파면시켰다. 일찍이 형 유대를 무재[1]로 천거한 도구흥에게 무재로 천거되었다가 사공연으로 초빙되고 시어사를 제수받았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그가 회포에서 난을 피하고 있을 때 조정으로부터 양주자사로 임명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는데, 원술이 이미 전임 양주자사 진온이 죽은 후 스스로 양주자사를 임명하고 양주의 치소가 있는 수춘 등 회남 일대를 점거했기에 이를 두려워해서 유요는 감히 부임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요가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려고 하자 오경과 손분이 그를 영접해 유요를 곡아에 두었으며, 원술은 칭제를 기도해 여강태수 육강을 공격하는 등 양주의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유요는 번능과 장영을 파견해 원술에게 대항토록 하고 오경과 손분이 원술로부터 관직을 받은 것을 힐책해 쫓아냈으며, 원술은 양주자사를 새로 임명하고 손분과 오경에게 병사를 주어 번능, 우미, 장영을 공격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면서 유요가 원술로부터 항거한 것으로 인해 조정은 양주목, 진문장군을 더했고 수만의 병졸을 주었다.
194년에 손책이 손분과 오경을 도우러 와 장강을 건너 장영과 번능 등을 격파했으며, 195년에는 우저를 빼앗기자 유요에게 의지하면서 말릉성을 지키고 있던 착융과 설례도 손책에게 격파당했다가 설례, 번능, 우미가 반격해 우저를 되찾았다가 도로 빼앗겼다. 착융이 성을 견고히 지키자 손책은 방향을 돌려 유요를 공격하자 유요는 단도로 달아났다가 예장을 지키고자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팽택에 머물렀다.
처음 손책의 군사와 맞닥뜨리자 마침 태사자가 유요와 동향 사람인 연고로 곡아로 내려와서 유요에게 왔는데, 태사자를 장군감으로 권하는 말이 있었지만 유요는 허소의 비웃음을 사지 않고자 태사자를 임용하지 않았다. 당초 유요는 회계로 달아나려 했으나, 허소가 손책이 회계를 공격할 것이므로 반대하고 예장으로 가면 조조, 유표와 연락하면서 지킬 수 있다고 권해 예장으로 경로를 바꿨다.
당시 예장에서는 유표가 임명한 태수 제갈현[2]과 조정이 임명한 태수 주호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유요는 주호를 후원하여 착융을 파견해 제갈현을 치게 했다. 허소는 착융은 명분을 돌아볼 사람이 아니라서 주호는 사람을 믿으니 마땅히 사람을 보내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착융은 주호를 죽이고 예장을 점거하자 유요는 착융을 쳐서 한 번은 졌지만 마침내 착융을 무찔렀다.
이후 병이 들어 4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손책은 병사한 유요의 시신을 거두고 그의 식솔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태사자 외에도 복양일(복양흥의 아버지)·등탐(등윤의 큰아버지)·시의 등의 중원 선비들이 유요에게 의탁했었고 유요가 망하면서 손책을 섬겨 이후 오나라의 중신이 됐다.
유대와 유요 형제는 한나라 제효왕(齊孝王)의 작은 아들 모평후의 가계에 속한다. 아버지는 유방(劉方)이고 백부 유총은태위였다. 자식으로는 유기, 유삭, 유상이 있다. 이중 큰 아들 유기는 손권을 섬겨 수려한 용모로 총애를 받아 나중에 광록훈의 직위에까지 올랐으며, 손권의 아들 손패는 아내로 유기의 딸을 맞이했다.
1.2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자신 및 부하 장수 장영, 진횡등의 능력치가 좋은 편은 아니나, 태사자가 부하장수로 있으므로 엄백호나 공주(삼국지)같은 하드코어 진영보단 쉬운 편이다. 다만 9,11탄에선 태사자는 손견이나 공융의 부하로 책정되어서 좀 안습하지만. 그래도 엄백호, 왕랑을 밀어버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중급자 이상이 적당히 어렵게 하고 싶을때 괜찮은 세력 중 하나. 사실 시나리오라면 세력을 일궈 내도 수명이 짧아서 통일하기 전에 죽는 일이 잦다. 생몰년이 확실한 인물이고, 연의에서도 손책에게 패한 뒤 등장이 아예 없기 때문에..여담으로 삼국지 11까지의 일러스트는 좀 찌질하게 생겼는데 삼국지 12에서는 나름 간지나게 나왔다.
삼국지 2 한글판에서는 유엽이라고 요역되는 등 전형적인 클론 문관으로 대처되었다. 심지어 도겸과 비스무리하게 무력이 10대... 하지만 이 보정이 페널티인 대신. 태사자가 항상 유요의 수하라는 점이 강점이 있긴 하다. 근데 옆에 있는 세력이 꿀물황제 자칭 강자원술하고 해전왕 그리고 미스터손견이다! 그래서 컴퓨터가 하면 치고박고 하다가 망한다. 사실 컴퓨터만 플레이 가능한 세력이긴 하지만
삼국지 3에서는 유선보다 더 못한 군주로 표기되며. 퇴각하다가 사로 잡힐 확률이 80%에 육박한다. 유선과 함께 스텟 총합(160) 꼴찌. 쓸만한 능력치가 하나도 없다.(무지정매육지수지 순으로 20/41/53/22/18/6그래도 수전지휘는 유선보다 높다.) 게다가 유요의 유일한 희망인 태사자는 시나리오 2의 경우 손책의 손에 넘어갈 확률이 높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도겸이랑 맨날 투닥댄다. 엄백호는 가끔 건드리는 정도?
삼국지 4에서는 예외적으로 태사자가 북해 미발견 장수로 등장. 이때에도 도적 착융(책융)이 유요처럼 문관으로 나온다.
삼국지 DS 2에서는 수춘과 건업을 가진 세력으로 등장하지만... 시나리오 1에서 그놈의 내정스탯이... 수춘의 유요는 그나마 정치라도 60을 찍지만, 건업의 진횡,진무는 50을 넘지 못한다. 차라리 수춘을 포기하고 건업에서 남아도는 재야세력을 흡수하는게 낫다. 재야가 은근 많다. 시나리오 2에서는 태사자도 있고, 정치가 60대되는 장수가 셋이나 되서 비교적 수월한 편 그리고 아래에 오덕왕 도 있고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54/67/30/71. 군주라는 놈이 성격이 저돌인데다 통솔도 저 모양이라 안습하다. 병법도 돌파, 누선, 충차 뿐... 결국 주로 배 담당이 된다.
삼국지 10에서는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 플레이할수 있는데 방랑군으로 떠돌다 시작후 한두달쯤 지나면 쳐들어오는 손책을 막아내느냐 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태사자가 처음부터 부하로 있고 병력에서 겨우 1만에 불과한 손책에게 앞서니 수성의 이점까지 살리면 막아내는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한번만 막아내면 손책군은 해체되고 그때 그들을 죄다 등용하고 강동을 평정하면 손쉽게 기반을 다질수 있다. 능력치는 64/65/37/73/64로 좀 아스트랄한데 부하로 둘 경우, 농업, 상업 특기가 모두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내정요원으론 쓸 수 있다. 직접플레이시엔 역시 산적이 문제. 명사특기가 있긴 한데 지력이 37로 바닥이라 설전으로 이기기도 힘들고 무력이 65에 일기토 특기가 하나도 없는지라 산적과 만날때마다 피튀기는 혈투를 벌여야한다. 아니면 그냥 금 상납하가
유요하면 태사자라는 공식이 공공연하지만. 삼국지 11 영웅집결에서는 태사자가 공융 수하로 나온다는 점에서 페널티가 상당하다. 유요가 문관 군주에서 무관형 군주가 된 시기는 삼국지 9~11이 가장 큰 변화였다.
삼국지 11에서는 특기가 없으나. 능력치는 전작보다 다소 상승하였다. 원래 왕랑군 쪽에 있던 주흔이 이번작에서는 유요군에 와 있는 것이 특이점. 영웅집결 기준으로는 컴퓨터가 잡아도 건업이 워낙 생산력이 좋다보니 생각보다 오래 버티며, 오히려 손견이 시상에 고립되거나, 원술이 관구검에게 뒷치기 맞고 멸망한다. 플레이어가 잡아도 이번 작에서의 옆동네 엄백호는 다른 작품보다도 훨씬 더 암울한 허깨비 수준이라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태사자가 있는 군웅할거 시나리오라면 더욱 쉬워서, 초반에 병력 좀 뽑고 동맹 파기하고 바로 쳐들어가면 된다. 극 S, 기 S, 극신 특기, 무력 92의 태사자를 엄백호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재야 장수 수색이나 등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시피 하기에..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마방어강화. 상재와 명사가 모두 있으니 시장에 넣어놓으면 된다. 서주변천 시나리오부터 군주로 등장하며, 초반에 병력이 적은 편이기에[3]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는 편. 그래도 전체적으로 궁병으로 이루어져 있고, 태사자가 워낙 이번 작품에서는 강력하기 때문에 태사자의 힘으로 수성하면서 초반 열세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이다. 태사자를 보좌해줄 발탁무장 한두명만 들어와줘도 상당히 쉬워진다. 병력 숫자만 처음에 5배 차이나는 것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쉬운 편에 들어갔을 듯. 영웅집결이 오히려 더 쉬운데, 태사자가 없기는 하나 손견과 바로 동맹을 맺는 것이 가능하고, 동맹도 쉽기 때문이다. 손견과 동맹만 맺으면 시상, 오, 회계를 편하게 점거할 수 있다. 그리고 동맹이 끝난 뒤 시상과 건업에서 전병력을 몰아서 여강을 칠 수 있으면 사실상 끝.
삼국지 13에서는 농업 2, 훈련 1, 설파 2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설파는 지력이 낮은 편이라 의미는 없지만.... 플레이어가 잡는다면 어차피 건업에 재야도 마땅치 않으니, 빠르게 공세로 나가는 것이 팁이다.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간혹 손견이 유요에게 망해버리는 경우도 가끔씩 보인다. 컴퓨터가 장수는 마구잡이로 등용하면서, 자원 관리를 잘 하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일.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광릉의 장초는 대부분 유요가 접수한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클론 무장으로 손책에게 태사자를 헌납하는 셔틀 역할. 그래도 총대장은 맡고있다.
2 삼국시대 촉나라와 서진의 인물
劉瑤
(? ~ 311)
삼국시대 촉나라와 서진의 인물로 촉한의 황제 유선의 차남으로 정사 후주전에서 유선의 아들들이 허봉 제도로 준 왕들의 봉작을 나열할 때 잠깐 나오며, 238년에 유선(劉璿)이 태자로 책봉될 때 안정왕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유요가 받은 지역은 허봉 제도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유요가 지배한 곳이 아니라 유요가 허봉으로 받은 안정은 옹주 서쪽에 있는 지역 중에서 하나이며, 263년에 촉한이 멸망하자 위나라로 옮겨져 후(侯)의 지위를 받고 지냈으며, 311년에 유종, 유찬, 유순, 유거 등과 함께 영가의 난으로 유요, 왕미 등의 공격을 받아 피살되었다고 한다.
유영의 손자인 유현만 살아남은 것으로 볼 때 후손은 남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