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엽

위서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정욱곽가동소유엽장제유방

劉曄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자양(子揚). 유도의 아버지.

방계 황족으로 광무제의 후손이다. 그의 조상은 광무제의 7남이자 폐후 곽씨의 소생 부풍질왕 유연(劉延)으로 양주 회남군 성덕현 출신이다. 이렇게 한나라 황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조조 휘하의 참모로 활약했다.[1] 흔히 참모나 발명가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정사에 기록된 젊었을 때 일화들을 보면 후덜덜한 무법자의 면모도 보인다.

2 정사

2.1 조조를 따르기 전까지

정사 삼국지에서는 일찍 아버지 유보(劉普)가 죽고 7살 때 어머니 수(脩)는 심한 병중에서도 아버지의 시비를 제거하기를 유언했다. 결국 13살 때 그 시비를 죽이고 어머니 묘에 참배했다. 노숙과 친구였다. 친구 노숙에게 함께 회남에서 수만 명의 무리를 모으고 세력을 떨치고 있던 정보[2]를 섬길 것을 권했고 노숙은 승낙했으나 노숙은 결국 중도에 주유의 권유로 마음을 바꾸어 손책을 섬겼다.

그래서 유엽이 정보와 행복하게 살았냐면 그러지 않았으니, 한편 정보가 주민을 쫓아 장강 남쪽으로 건너가려고 했는데 유엽이 고귀한 집안이며 명사이므로 유엽을 협박하여 이를 주도하게 하려고 했다. 마침 조조가 양주에 사자를 보내었는데 유엽은 사자를 뵙고 양주의 사정을 설명하고 며칠 더 머무르게 했다.

정보가 사자를 맞이하여 대접하자 유엽은 정보가 술에 취한 틈을 타 정보를 모살하려 했다. 그러나 정보가 술을 마시지 않아 정신이 말짱하여 틈을 노리기 어렵게 되자 직접 정보의 머리를 베고 정보의 무리들을 위협하여 달아나게 했다. 나중에 정보의 진영을 찾아가 설득하여 주인을 잃은 정보의 무리들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왕실의 지파이므로 사병을 거느리려 하지 않고, 얻은 무리를 여강태수 유훈에게 넘겨주었다.

손책유훈에게 뇌물을 주어 상료를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유엽은 이것이 유훈이 상료를 공격하러 나간 틈에 여강을 거저 먹으려는 손책의 계략임을 간파하고 유훈에게 이를 받아들이지 말도록 조언했으나, 유훈은 마침 원술의 잔당 등 귀의한 무리가 갑자기 늘어나 식량이 부족했으므로 이를 듣지 않았고 상료를 공격하다가 과연 손책의 공격을 받아 본거지인 환성을 잃고 조조에게 도주했다.

2.2 조조 휘하에서

여강에는 산적 진란이 수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조조가 여러 번 토벌군을 보냈으나 이기지 못했다. 조조가 수춘에 이르자 여러 부하들은 진란을 내버려 둘 것을 조언했는데, 유엽은 조조에게 진란을 무찔러 위세를 보일 것을 조언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맹장을 써 진란을 토벌하고 돌아오면서 유엽을 사공창조연[3]에 임명했다.

이후 별 기록이 없다가 조조가 장로을 토벌할 때 주부로 전임되었다. 한중 땅은 길이 험하고 또 군량이 다했으므로 조조는 철수하면서 유엽에게 후군을 감독하게 했다. 유엽은 장로를 이길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군량을 끊어 퇴각하지 못하게 했다. 과연 조조는 장로를 무찌르고 한중을 평정했다.

유엽은 조조에게 한중 점령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을 촉을 치도록 권하고, 또 촉이 안정되어 제갈량이 재상이 되고 관우, 장비가 지휘관이 되면 그때에는 이미 늦어 근심거리가 된다고 조언했으나 조조는 듣지 않고 돌아갔다. 유엽은 행군장사가 되었고 영군을 겸했다.[4]

2.3 조비 휘하에서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자 맹달위나라에 투항하여 조비의 총애를 받아 신성태수가 되었다. 하지만 유엽은 맹달에겐 충성심이 없고, 또 신성군은 국경의 요지이므로 이를 반대했으나 기각되었다. 그리고 그 맹달이 훗날 배신을 한다.

관우가 죽고 유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조비가 묻자, 다른 신하들은 모두 유비가 버로우탈거라고 했지만 유엽만이 유비는 오나라에게 자신이 강대함을 보이려 할 것이며, 유비와 관우의 사이는 겉은 신하의 관계지만 은혜의 베품을 보면 부자 관계와도 같다며(형제가 아니다!) 유비가 반드시 관우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어찌 보면 유비 일파에 대한 스페셜리스트같은 느낌이다. 황족만의 직감

간언으로 공을 제법 세웠지만[5], 아무래도 구 황실의 적파자손이라는 혈통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중용되지도 않았고, 관직은 그리 높진 않았다.

2.4 조예 휘하에서

조비가 죽은 후 조예가 다음 황제가 되었는데, 그 때까지 조예가 워낙 수수께끼의 존재였던 터라, 유엽이 만나서 이야기를 한 후에 다른 신하들에게 조예의 인물평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6]

그런데 어떤 사람이 조예에게 유엽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황상이 뜻하는 바를 잘 살펴 좇아가서 그에 영합한다면서, 유엽을 시험해 보고 유엽이 황제가 질문한 것과 반대되면 황제의 뜻에 합치되는 사람이지만 매번 물어볼 때마다 그렇다고 하면 유엽의 마음이 영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물은 것을 반대로 대답하면 항상 황제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고 매 질문마다 동의하면 아부하는 본래의 심정은 반드시 도망할 곳이 없다고 했는데, 이에 조예가 유엽을 시험했더니 그 심정을 드러내 조예와 소원하게 되면서 유엽은 발광하다가 쫓겨나서 대홍려가 되어 근심하다가 죽었다. 그렇다, 그는 망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젊을 적 노숙과 교류하거나 정보를 토벌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오히려 유엽의 성인 유씨와 그의 자인 자양을 섞어 '유자양(劉子揚)'이란 별도의 인물로 만들어 노숙과 교류하는 것으로 등장시켰다. 결국 곽가의 추거로 조조를 섬겼으며 원소와 싸울 때 발석거를 개발하여 심배의 전술을 무력화시켰다. 이 발석거는 원소 군대에서 '벽력차(번역하면 벼락수레)'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또 관도대전 때 원소의 온갖 공성술을 발석거 등의 물건으로 방어해내었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2,13

전형적인 책사 계열의 능력치를 보이는데 정치는 다른 책사들에 비해 좀 낮은 편인 70대이다. 초기작에서는 지력도 80대 초반에 불과하였으나 지속적인 상향을 통해 최근작에선 90대 초반까지 오른 상태. 연의의 관도대전에서의 일화를 적극 반영했는지 매 시리즈마다 공성(성벽), 기술, 병기 관련 특기를 달고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게임상에서는 전형적인 참모형이지만 정사에서 꽤 껌 좀 씹고 다닌 한가닥 한 면모를 보면 무력이 좀 더 평가되어도 좋을 듯한 인물.[7]

삼국지 7에선 한글화 번역과정에서 이름인 엽(曄)에서 일(日) 자를 떼놓고 읽는 바람에 '유화(劉華)'로 표기되는 병크의 희생양이 되었다.[8] 그나마 PK에선 시정되었다.

삼국지 9에서는 공성숙련도가 600[9]. 능력치는 36/68/88/72로 역대 삼국지 시리즈의 유엽 중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무력이 높게 책정되었다. 공성계 병법외에는 분전과 혼란을 보유하고 있다. 이 게임 자체가 공성계 병법이 정란 외에는 취급이 안습해서 그저 B급 문관에 가깝다. 모략이나 열심히 돌리자.

삼국지 10의 능력치는 통솔력/무력/지력/정치력/매력 순으로 39/23/93/75/71. 엔간한 군사들보다도 높은 지력이다. 물론 유엽이 주로 소속되어있는 조조군엔 지력 98의 가후부터 시작해서 참모감들이 넘쳐나서 존재감이 옅긴 하지만. 군사, 명사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숨겨진 사기캐이기도 하다. 물론 통솔이 39로 낮고 쓸만한 특기는 반목, 혼란정도라 전장에서 아주 사기까진 아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36/32/92/73/69. 여전히 지력이 높다. 특기는 연의의 일화를 반영한 듯한 사정. 악진공성과 조합하면 악진의 무력/통솔과 유엽의 지력 덕택에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삼국지 12에서는 매력을 제외하여 56/32/92/73이고, 삼국지 12의 전법은 전공성강화로, 보유자 중에서 가장 지력이 높다.

삼국지 13능력치는 12와 동일.중신특성은 공정무사,전수특기는 병기,전법은 적부대의 공격과 사기를 각각 30 10씩 떨어트리는 동요.
보유특기는 상업2.교섭7.변설7.인덕2.위풍1.병기5.귀모4이다.높은 지력과 인덕보유로 재야장수 설득시 시간을 절약할수있다.그 외에 전투요원으로서는 절망적인 병과적성과(올C) 통솔을 지니고 있으므로 전투력이 높지만 지력이 떨어지는 맹장들의 부장으로 출진하는것을 추천.

4.2 영걸전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연의에서의 일화를 반영하였는지 꾸준히 포차게로 나온다. 포차계가 따로 분리되어있지 않았던 영걸전에선 발석차, 이후엔 포차계.

삼국지 영걸전에선 적 문관계 답게 존재감이 없다. 별동대를 보냈을 경우 장안 전투에서 발석차로 등장하나 무력이 낮기 때문에 네임드라 하더라도 별로 무섭진 않다.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이곡도 전투에서 사마의쪽 군대로 등장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건 똑같다. 이때부터 포차계.

삼국지 조조전에서의 클래스는 조조군 내에서 유일한 포차계이다.

처음에 키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클래스 체인지(소포차-중포차-벽력차)하면 매번 사정거리가 늘어나고, 공격 범위 또한 더 늘어나, 사용하기에 따라 매우 강한 유닛이 될 수도 있다. 잉어킹?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포차 무기의 성능은 더 늘어나는데다[10] 한 유닛을 치면 십자로 인접한 다른 유닛까지 동일한 피해를 입는 범위 공격을 하기 때문에 적의 방어라인을 뚫는데 매우 유용하다. 또한 엄청난 사정거리를 자랑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조조전에서 가장 사기급 유닛에 해당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보정인지 유엽의 무력, 민첩성은 매우 낮은 편이긴 하지만, 이러한 무력과 민첩성도 레벨 만땅을 찍은 무기를 팔아 얻는 열매로 커버가 가능하다. 특히 민첩성은 비룡도복을 장착함으로써 커버가 가능하고 만일 유엽의 무력을 90, 민첩성을 70까지 올리고 키웠다면 한 방에 4부대를 쓸어버리는 엄청난 위력을 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걸전(발석차), 공명전(대포차)과는 달리 바람바퀴라는 좋은 아이템을 일찌감치 장착하는 것이 가능해 기동력조차 나쁘지 않다.[11] 오히려 중보병 유닛보다 더 좋은 기동력을 자랑한다.

공돌이공성병기 개발자의 이미지를 살리려고 했는지 퇴각 대사마저도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군. 돌아가서 개량해야겠다!"이다. 연구가 다 안 된 걸 전투에 들고 나왔냐는 생각이 들지만, 게임 특성상 전투가 끊이지 않잖아? 개량은 안될거야 아마. 조조 : 유엽, 상황을 설명해보실까? / 유엽 : 지금이라도 시간과 예산을 더 주신다면…

DC 삼국지 갤러리에서는 합성(?) 게시물중 하나인 삼국지 조조전 배드 엔딩의 꾸준글 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로 유명하다.(…)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제대로 빛을 보며 신평(!)과 함께 포차 계열 장수들 중 쌍톱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유엽은 자체 능력치나 등급에서 가뜩이나 없는 포차계열 장수들 중 원톱이라 많이 쓰이는 편이며 신평은 50레벨때 배우는 물리 필중이라는 고유 효과로 인해 포차계의 영원한 난제였던 명중률을 제대로 보정받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전략편이 주로 다른 곳의 성을 점령하는 것이다보니 확실한 원거리 딜러가 필요한 상황에서 포차계열이 각광받기에 빛을 본 것이다.

4.3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벽력거 개발은 이전에게 양보하고 적벽대전이후 조조가 합비를 방문할때 함께 가는 것으로 처음 등장. 조조의 후기모사진(유엽, 사마의, 장제 등)중의 필두라고 언급된다. 초기의 순욱처럼 조조가 종종 곁에두고 대화를 하기도 하며, 조조의 장로토벌때 종군하여 이대로 군세를 이끌고 유비까지 토벌하자는 진언을 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위나라 전체의 불온한 움직임을 포착, 처리하는 첩보임무를 수행.

4.4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서는 적은 등장 회수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는 캐릭터. 황숙 신분이자 유씨 문중의 손꼽히는 실력자로, 황실에 해가 되는 자들을 음지에서 견제,제거하는 흑막계 인물이다. 원술이 제위를 참칭하기 직전 이미 그를 꿰뚫어 보고 같은 유씨인 유표,그리고 손책과 내통해 그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이후 손책이 야심을 드러내자 이번에는 조조, 우길(!!)과 내통해 손책 암살을 배후에서 조율했다.

대부분의 유씨 인사들이 친 유비/반 조조 성향을 보이는데 반해 이상할 정도로 친 조조 성향을 보이며 심지어 자기 친척들을 무력으로 협박까지 하며 강제로 조조 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분명 조조가 의 충신이라는 점은 작 중 대부분의 현자들이 동의하고는 있지만 정작 조조 본인은 언뜻언뜻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4.5 삼국지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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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삼국지대전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위나라의 강력한 간파요원으로 대활약. 저렴한 코스트+높은 지력+복병보유+간파의 프레셔라는 완벽한 4박자로 사용률도 엄청나게 높다

4.6 삼국전투기

유엽(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1. 여담으로 후한의 황족 유우와 먼 친척 뻘인데 그의 조상은 광무제의 장남이자 폐후 곽씨의 소생이었던 동해공왕 유강(劉彊)이었다.
  2. 잘 알려진 손씨 3대를 섬긴 막료 정보와는 동명이인이다.
  3. 일종의 사공의 비서라고 보면 된다.
  4. 주석 《부자》에 따르면, 7일 후 촉에서 온 투항자가 유비가 두려워하는 자들을 참했음에도 촉 사람들은 불안해 한다고 전했고, 조조는 유엽에게 촉을 쳐도 좋은지 물었는데 유엽은 이제는 안정되었으니 칠 수 없다고 답했다. 고작 일주일만에 상황이 바뀐 것이다.
  5. 의외로 정사에서는 발석거 일화도 안나오고 조조군에 투신한 후 한중전까지 별 기록도 없는 인물인데 연의에서 정욱, 곽가의 뒤를 잇는 조조군 참모진처럼 각색되었다.
  6. '진시황이나 한무제와 비슷해보이지만 자질은 부족해보인다'라고 평했다. 다만 이 일화는 훗날 지어낸 이야기라는 의견도 있어서 맹신하면 안된다.
  7. 그나마 삼국지 4에서는 그나마 무력이 66인데. 따지고보면 정사에 반영되었지만, 위에 언급되어있는 것처럼 지력이 80대이고, 삼국지 4의 능력치 배합이 뻥튀기이라서 좀 묻힌다.(...)
  8. 이 엽 자가 드물게 쓰는 한자도 아니다. 사람 이름에 '엽'이 붙으면 曄 아니면 燁을 쓰는데, 두 글자 모두 '빛날 엽'으로 새긴다. 야구선수 이승엽의 경우 燁을 쓴다.
  9. 나머지 제갈량, 마균 이 셋의 공통점은 상병 병법이 없다.
  10. 철투석기 만렙시 공격력 +100, 금화관포 장착시 독속성 공격.
  11. 공명전은 아군 장수 오의로 대포차가 되면 무려 주변 9명을 공격할 수 있는 성능이 있지만 성 내에서의 기동력이 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