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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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敬大
1939년 02월 21일 ~

대한민국정치인, 법조인이다.

1939년 제주도(현재의 제주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제주 오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0년까지 검사로 근무하였다.

1981년 검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그리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제주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5월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4년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7년 민주정의당 원내수석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제주MBC개표방송 예행연습이 외부로 송출되는 바람에 부정선거라는 항의가 있어서 그 여파로 낙선하였다. 1989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고 같은 해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역풍에 휘말려 자신의 비서관 출신인 열린우리당 강창일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박으로 분류되어 공천 탈락,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역시 낙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와 재출마 하였으나 이번에도 강창일 의원에게 밀려 3연패를 당했다.

고령의 나이 때문에 20대 총선에는 더 이상 출마가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 중론. 그러나 아직도 제주 정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3년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았으나 19대 총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하자 2015년 12월 1일 사의를 표명했다. #.

'친박 원로',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위원' 이라고 불리는 '7인회'의 멤버 중 한 명이다.

차녀는 현소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맏사위는 이연갑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