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永時
대한민국 육군의 제3야전군사령관 | ||||
5대 유학성 | → | 6대 황영시 | → | 7대 정호용 |
대한민국 육군의 참모총장 | ||||
23대 이희성 | → | 24대 황영시 | → | 25대 정호용 |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 24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전임자는 이희성 대장이었고 후임자는 정호용 대장.
2 생애
1926년 11월 6일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1950년 육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했고[1] 1951년에 임관해 수경사 참모장, 주월한국군사령부 참모장, 3사관학교장을 거쳤다.
이후 1군단장 재임 중 12.12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쿠데타 가담자 중에 전두환보다 상급자는 그와 함께 군수차관보 유학성 중장,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이 있었는데 이 중 반란 작전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황영시 혼자였다고 한다.
반란 직후 논공행상에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추천되었지만 최규하 대통령이 반대했고 이희성 중앙정보부 부장 서리가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대신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해 이희성을 견제했고 곧 대장으로 진급하여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을 거쳐 1981년,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전두환이 5공화국을 세우던 참모차장 시절 군내 강경 분위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무력진압을 지시했다. 육군 기계화학교장 이구호 준장에게 "전차에 철조망을 달고 돌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철조망을 달고 가면 궤도에 꼬이는 건 물론이요, 전차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드러눕는다"라고 하자 "전차포를 쏘고 밀고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1]
5공화국의 개국공신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권위 의식이 강한 편이라 참모총장 재임 시절 전두환이 속으로 그리 탐탁치 않아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1983년, 임기를 2년 채운 후 본인이 1년 더 유임할 줄 확신했으나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전두환의 동기 정호용이 참모총장이 되어 육사 11기 참모총장이 탄생하게 된다. 4개월 후, 자기 편 사람을 철저히 챙기는 전두환에 의해 제11, 12대 감사원장을 지냈다.
이후 12.12 반란 가담자로서 재판을 받게 되고 1997년에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나 12월에 사면되었다.
부인 최옥영 여사(1931년생)와 2남 2녀가 있으며, 이 중 장남은 육사를 졸업하였고, 황영시 장군이 육참총장 취임 당시 대위였다.
독실한 개신교도라서 박정희가 주는 술잔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돈다.- ↑ 11기부터 4년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