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프 클로제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기록을 차지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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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Scorer of World Championships(월드컵 최고득점왕) 상을 수상했다. (2014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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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라치오에서의 선수 생활

미로슬라프 요제프 클로제
(Miroslav Josef Klose)
생년월일1978년 6월 9일
국적독일
출신지폴란드 오폴레
신체 조건184cm, 84kg
포지션스트라이커
주로 쓰는 발오른발
등번호11번
유소년 클럽SG 블라우바흐-디델코프 (1987 ~ 1998)
소속 클럽FC 08 홈부르크 (1998 ~ 1999)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99 ~ 2004)
SV 베르더 브레멘 (2004 ~ 2007)
FC 바이에른 뮌헨 (2007 ~ 2011)
SS 라치오 (2011 ~ 2016)
국가대표
(2001 ~ 2014)
137경기, 71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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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득점왕
미로슬라프 클로제
Salto-Klose (살토-클로제)[2]
FIFA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자이자,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천재를 넘는다의 표본,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선수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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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였던 독일계 아버지와 핸드볼 선수였던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폴란드 오폴레에서 태어났다.[3][4]

그 업적도 대단해 우베 젤러, 게르트 뮐러, 칼 하인츠 루메니게,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린스만의 뒤를 잇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그리고 독일의 축구 영웅이자 살아있는 전설

월드컵에 데뷔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삿포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발라 버림과 동시에 쫄깃쫄깃한 공중제비로 유명해졌다.[5]

이후 3번의 월드컵을 거쳐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렸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4강전인 브라질에서 토마스 뮐러에 이어 2번째 골을 성공시켜 월드컵 통산 최다 골인 16골의 대기록을 작성하였다. 또한 이 날은 독일브라질7:1로 개박살낸 날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클로제는 36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경기장 전체를 씹어먹으면서 골까지 기록하는 위엄을 보였다. 역시 애국자의 포스는 사라지는 게 아닌가 보다. 김남일, 이영표보다 불과 1살 어릴 뿐이다!!

2014년 8월 12일(한국시간) 독일축구협회는 클로제가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지막 A매치 경기가 월드컵 결승전, 그리고 우승은 덤.
DANKE, Miro

2 유소년기

클로제의 부계 집안은 상부 슐레지엔 지역에 살던 독일인 집안이다. 슐레지엔은 프로이센 시절 이래 독일의 영토였으나 2차 세계대전에 패망하면서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이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인들 다수는 고향을 떠나 독일 본토로 이주했지만 클로제 집안은 슐레지엔에 남았다. 클로제의 부친인 요제프 클로제(Josef Klose)는 축구선수였는데, 클로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폴란드 클럽에서 뛰다가 클로제가 태어난 해에 프랑스 2부리그 AJ옥세르로 이적하여 1985년 선수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프랑스 리그에서 뛰었다. 클로제의 어머니는 폴란드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출신이었다.

클로제는 태어나자마자 프랑스로 이주하여 거기서 7년간 유년시절을 보냈다. 1985년 아버지 요제프는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독일 쿠젤에 영구 정착했다. 어릴 때 독일어가 서툴러 고생했던 클로제는 목공일을 병행하며 독일 7부리그인 블라우바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클로제는 19세인 1998년 FC홈부르크(5부리그)로 이적했고 한시즌 만인 1999년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3부리그)로 이적했다가 그해 바로 카이저슬라우테른 1군에 콜업되어 분데스리가 무대에 데뷔했다.

3 클럽 경력

사람들이 과소평가하고 오해하고 있는 클로제의 커리어[6]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 SV 베르더 브레멘에서의 괴물급 활약[7]

클로제가 본래부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본래 뛰던 리그는 7부리그(…)로, 분데스리가 데뷔를 한건 22살[8] 무렵. 재밌는 사실은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입단 전까지 목수직을 축구와 병행했다고 알려져있다. 국내에는 그가 체조선수 출신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통산 스탯이 287경기 120골 73도움으로, 풀타임으로 뛰기 시작한 10년간 최소 9골을 넣어주며 도움 개수도 만만치 않아 꾸준하면서 이타적인 그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커리어하이는 05/06년 시즌인데 부상을 달면서도 26경기 25득점 14도움 키커 평점 2.38[9]이라는 토나오는 스탯을 찍었다. 이 해에 클로제가 리그에서 7관왕을 차지했다.

26경기 25득점 - 2위는 34경기 21득점의 베르바토프
26경기 14도움 - 2위는 30경기 14도움의 미쿠(사실 공동 1위인데 출장경기 때문에 보통 클로제를 앞에 둔다.)
26경기 39공격포인트 - 2위는 34경기 31개의 베르바토프
평점 2.38 - 공격수 2위는 3.25의 클라스니치
평점 2.38 - 전체 2위는 2.65의 바이덴펠러(독일 평점은 골키퍼에게 매우 후하기 때문에 보통 0.5에서 0.7은 빼주는게 합리적)
엘프 데스 타게스 11회 - 2위는 8회의 루시우
만 데스 타게스 3회

보면 평점에서 2위 클리스니치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참고로 클로제의 저 2.38은 키커지에서 15년동안 평가한 기록 중에 역대 최고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고 리그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던 시절. 그 때문인지 그 시즌과 06년 월드컵 득점왕을 하고난 뒤 FM 2007에서 클로제는 괴물로 나온다. 크로스 올리고 헤딩만 하면 전부 골...

바이에른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며 분노의 영입을 시전한 해, 클로제는 루카 토니와 함께 토나오제 투톱을 결성하며 분데스리가를 정복하고 바이에른에 마이스터 샬레를 가져다 준다. 이 시기 바이에른의 위용은 대단했던 게 리베리필립 람과 더불어 왼쪽 라인을 초토화 시키고 크로스를 올리면 기다리는 건 클로제와 토니. 이타적인 성향의 클로제와 세리에 A에서 무려 3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던 루카 토니의 조합은 그 위용이 유럽 어디에 놔둬도 꿀리지 않는 것이었다.내놓질 못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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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놓으려고 하니, 다음 시즌이 되기 무섭게 루카 토니의 노쇠화가 시작되고 클로제 본인도 작년처럼 루카 토니가 받아먹어 주지 못하자 꼬이기 시작한다. 부상도 찾아오고. 그래도 제법 괜찮은 활약이긴 했다. 리그를 정복하는 정도가 아니었을 뿐, 다음 시즌도 괜찮은 활약이라 다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허나 09/10 시즌 찾아온 큰 부상과 이로 인한 컨디션 난조는 클로제의 커리어에 커다란 암운이었다.

결국 10/11 시즌 클로제는 시즌 초반에는 좀 나왔지만 활약이 좋지 않아 뮐러고메즈에게 주전이 돌아가며 이후 경기에는 체력안배용 교체 아니면 정말 모 아니면 도 식의 경기에 한 번씩 나오고 있다. 나올 때마다 활약도 별로라 사람들에게 아 로제언니 정말 폼 떨어졌구나...하는 탄식을 내뱉게 하고 있다.

그래도 전기가 찾아오긴 하는데,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을 관중 취급하던 반 할 감독이 물러간 이후 교체로나마 꾸준히 기용되며 여러 모로 좋은 듯 나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터지지는 않는. 플레이 자체는 괜찮았지만 감이 많이 죽어서 골이 거의 터지지 않아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바이에른과의 결별이 거의 확정되어 가는 분위기이다.[10] 결국 바이에른이 제시한 1년 계약과 본인이 원하는 2년 계약과의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3.1 SS 라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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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상품인 지금 토트넘, 발렌시아, 세비야, 도르트문트 등등 클로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구단은 많지만 사실 대단히 뛰어나지는 않은 피지컬, 알 수 없는 폼, 생애 첫 해외진출, 나이, 고연봉, 최소 2년 계약은 제시 등등 어느 정도 도박성이 있어서 결단이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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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탈리아 세리에 ASS 라치오로 이적하였다. 이적설 초기 및 이적확정 시기 연봉이 좀 강했기 때문에 라치오 팬들은 으악 그딴 늙다리! 고연봉! 아나 애국자! 어린 애들 놔두고! 등등의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전문가랍시고 네이버에서 내세운 분석가의 분석결과경기 보지도 않으시던 분이 마찬가지로 경기 안 보시는 네티즌들의 추측성 댓글만 서핑하고 쓰셨습니다. 박문성이 맨시티 우승할거라고 하자 폭풍 까임을 당했으나 현실은 우승 명불허전 네이버좆문가 그러나, 같은 시기에 영입된 시세와 투톱을 결성한 클로제는 프리시즌 경기 중 골과 어시의 폭풍을 몰아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결국 시즌 첫 경기 유로파 플레이오프에서 폭풍 1골 3어시...그리고 정규 리그에서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집어넣었다.

시즌 초반 AS 로마와의 더비 경기에서 경기 종료직전 결승골을 뽑아냈다. 바로 전 라운드였던 레체와의 경기에선 혼전 상황에서 흘러온 공을 방향만 바꾸는 골,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순간적인 키핑 후 킬패스로 어시, 골대 구석으로 방향 바꿔 꽂아버리는 헤딩을 성공시키며 팀이 경기력에서 처발렸음에도 불구하고 2골 1어시를 작렬, 개인능력으로 3:2 역전을 이끌었다. 현재 pk를 제외할 경우 세리에 득점 선두, 라치오 팬들은 과연 클래스가 다르네요 클로제님 영입할 때 헛돈이라고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하고 사죄중...이 경기력을 계속 유지한다면 클로제의 첫 해외진출은 성공으로 평가받을듯 하다. 아틀란타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고 공중제비까지 돌아주시는 등 고군분투하였으나 그 후 같이 투톱으로 활약하라고 영입한 시세의 세리에 적응 실패, 베테랑 로키의 부상과 더불어 코파 이탈리아, 유로파리그, 리그를 돌아가며 뛰는 강행군을 지속하다 끝내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라치오는 공격진이 골을 넣지 못하는 끝없는 부진 속에 챔스 존을 끝내 수성하지 못했다.

2012/13시즌에도 계속해서 골을 뽑아내며 팀의 상위권 수성에 큰 힘이 되었다. 라치오는 덕분에 시즌 초중반 나폴리, 유벤투스와 선두권을 형성하며 챔스권을 넘어 우승까지 노렸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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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2월 클로제가 무릎 인대부상으로 8주동안 빠졌고, 2012/13시즌 라치오는 끝내 10/11,11/12시즌에 이어서 3연속 DTD를 하며 DTD의 상징이 되었다. 10위 밖으로 추락했던 AC 밀란을 보면서 비웃다가 인터 밀란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그나마 코파 이탈리아컵을 가져가며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인테르는 그냥 안습...

klosecoppaitaliagetty.jpg뭔가 귀찮아보인다

볼로냐와의 경기에서 5골을 성공시켰다. 팀은 6-0 대승, 클로제는 해당 라운드 종료 기준으로 득점순위 5위에 랭크되기도 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디 나탈레와 노망주 더비중이다. 클로제의 경우에 노망주는 아니지만 넘어가자. 암튼 둘의 나이는 13년 기준 한국나이로 36, 37살이다.[11] 잘하는게 신기하다. 안타깝게도 세월을 견디지 못한 디 나탈레가 은퇴선언을 하면서 노망주 더비는 한때에 바이에른 듀오였던 루카 토니와 벌이게 될 줄 았았는데...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디 나탈레가 후반기에 급 살아나며 은퇴를 번복하였다.
현재 라치오를 대표하는 공격수라 라이벌인 AS 로마의 상징 프란체스코 토티와 함께 로마더비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한동안은 선발 출장을 못하다 2016년 3월 13일 8시 45분(현지기준)에 진행된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풀타임 출전, 2골(!)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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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에는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3-0 대승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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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클로제는 이번 시즌 피오렌티나와의 최종전을 끝으로 라치오를 떠나기로 했다. 차기 행선지는 독일과 미국인데, 현재 뉴욕 레드 불스 행 가능성이 가장 높다. 라치오 팬들은 피오렌티나와의 경기 날을 클로제 데이로 정하고 그의 미래를 축복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소속팀과의 정말 아름다운 이별.

4 국가 대표

애국자 끝판왕
클럽에서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국대는 넘사벽급이다.
있잖아...놈은 여전히 월드컵에 다니며...12년째 골을 넣고 있었어...!

2001년 독일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클로제가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2년 월드컵. 이 대회에서 헤딩으로만 5골을 넣으면서 대회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유로에서는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팀도 조기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다시 5골을 기록하여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4골을 기록하여 월드컵 통산 기록에서 게르트 뮐러와 동률을 이루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자에 등극했다.

SaisonVereinPositionSpieleToreVorl.GelbG/RRot
2001DeutschlandAngriff720100
2002DeutschlandAngriff17120100
2003DeutschlandAngriff1015200
2004DeutschlandAngriff1151000
2005DeutschlandAngriff502000
2006DeutschlandAngriff17136200
2007DeutschlandAngriff531000
2008DeutschlandAngriff1583100
2009DeutschlandAngriff642000
2010DeutschlandAngriff12101010
2011DeutschlandAngriff853200
2012DeutschlandAngriff1341000
2013DeutschlandAngriff310100
2014DeutschlandAngriff530000
Summe13571251010

클로제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국가대표 커리어. 137경기 71득점으로 현재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양민 학살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넣은 골이 16골을 차지한다. 24경기 16골로 경기당 0.66골. 이건 대체...

#선수명활동년도출장경기득점
1로타어 마테우스1980-200015023
2미로슬라프 클로제2001-201413771
3루카스 포돌스키2004-201612948
4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2004-201612024
5필립 람2004-20141135
6위르겐 클린스만1987-199810847
7위르겐 콜러1986-19981052
8페어 메르테사커2004-20141044
9프란츠 베켄바워1965-197710314
10토마스 헤슬러1988-200010111

이미 국가대표 커리어에서 역대 2위이다. 마테우스야 월드컵 다섯번 나온 괴물이니 신경쓰지 말고... 슈바인슈타이거와 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기록 경신 중이라 금새 깨질 거라 생각했지만, 람이 브라질 월드컵 우승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고 슈바인슈타이거는 월드컵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한 노쇠화로 인해 유로 2016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곧이어 클로제의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포돌스키마저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면서 클로제의 기록은 당분간 오래 이어나가게 되었다.

#선수명득점출장경기경기당 득점률
1미로슬라프 클로제711370.52
2게르트 뮐러68621.10
3루카스 포돌스키481290.37
4루디 푈러47900.52
=위르겐 클린스만471080.45
6칼-하인츠 루메니게45950.49
7우베 젤러43720.66
8미하엘 발락42980.44
9올리버 비어호프37700.53
10프리츠 발터33610.54

넣은 골도 골이고 경기당 득점률도 굉장하다. 보면 알겠지만 정신나간 득점률의 게르트 뮐러를 빼면 클린스만, 푈러, 루메니게 같은 쟁쟁한 선배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전 무결의 애국자...2012년 10월 17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두 골을 득점하며 전설 게르트 뮐러의 통산 득점 타이에 한 골만 남겨두고 있다...가 2013년 9월 6일 오스트리아와의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득점하며 드디어 통산 득점 타이를 기록했다. 이후 브라질 월드컵까지 출전하여 득점을 기록하면서 통산 득점을 71골으로 마감했다.

골 수선수명 (국적)
16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15호나우두 (브라질)
14게르트 뮐러 (독일)
13쥐스트 퐁텐 (프랑스)
12펠레 (브라질)
11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코치시 샨도르 (헝가리)
10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헬무트 란 (독일)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토마스 뮐러 (독일)[12]

그 유명한 FIFA 월드컵 득점 순위. 단순히 한 월드컵에 몰아 넣은게 아니라 분산해서 넣었기 때문에, 이렇게 월드컵에서 꾸준한 선수도 드물다. 이래저래 레전드지만 남아공 월드컵 3,4위 전에서 신기록 달성 바로 직전에서 부상으로 낙마.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때 그의 나이는 37살이지만,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한데다 그의 대체자로 손꼽히는 마리오 고메스보다도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으므로 몸상태만 유지한다면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주전을 차지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사실 2010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클로제도 이젠 끝났다는 세평이 많았다. 사실 몇 년간 하락세긴 했고, 특히 09-10 시즌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거의 경기에서도 못 나오며 헤매던 것. 그러나 국대에서는 다르다! 포돌이가 쾰른에서 부활하면서 애국자 타이틀을 벗어던지던가 했더니 클로제가 애국자를 계승했다.

사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그냥 원래 능력 있던 선수고 바이에른에서는 단지 부상 이후에 트레블을 위태위태하게 노리는 팀 사정상 제대로 뛰지 못해 폼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감독의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꾸준히 출장하며 폼을 회복했다는 설명이 가능했지만,[13] 2010 월드컵 이후에서도 소속팀에서 전혀 경기를 뛰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국대는 그냥 붙박이로, 평가전이건 유로 예선이건 미친 듯 골을 꽂아넣는 그 모습을 볼작시면 어쩌면 이러다 정말 다음 월드컵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소속팀에선 한 경기도 주전 출장 못하지만 독일 국대에선 주전 스트라이커...위엄 돋네 그렇지만 소속팀을 라치오로 옮긴 뒤에는 클럽에서도 다시 날아다닌다!

그리고 유로 2012, 조별리그 전에서 고메즈가 미친듯이 활약하며 클로제는 제 2의 공격 옵션이 되었다. 하지만 후반 마다 고메즈 대신 투입되었는데 고메즈가 플레이할 때와는 달리 공격 작업에서의 연계플레이나 조직력이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8강전에서는 선발 출장한다. 그 결과는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4골을 퍼부으며 4:2로 그리스를 발라버렸다. 독일 팬들도 고메즈보다는 클로제가 더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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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선발되면서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조별예선 2차전 가나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골을 기록함으로서 역대 득점 공동 1위로 동률이 되었다.[14]

그리고 8강 프랑스전부터는 주전으로 출전하기 시작하더니만 36세 주전 원톱 스트라이커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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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브라질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골을 기록함으로써 경기장에서 이를 지켜보던호나우두를 제치며 역대 월드컵 통산 득점 1위 자리에 올라섰다!이 골을 시작으로 마라카냥의 비극을 뛰어넘는 미네이랑의 비극이 탄생한다. 지못미 브라질. 게다가 후반에 안드레 쉬를레와 교체될때까지 나이를 잊은 듯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어 노익장을 과시했다. 흠좀무.


결승전에서도 원톱으로 출전, 비록 골은 넣지 못했으나 후반 43분까지 열심히 뛰었고, 마리오 괴체와 교체되었다. 교체되면서 괴체에게 오늘 경기는 네가 끝낸다라고 격려하는 훈훈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괴체는 정말로 연장 결승골을 넣어 승부를 끝냈다!!!오오 클로제 월드컵 최다골을 경신하고 우승의 한까지 풀면서 독일 축구의 암흑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부활을 이끈 노익장의 마지막 월드컵은 유종의 미로 마무리하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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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우승이 확정되자 슈바이니와 눈물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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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리 리네커는 2018년에 러시아에서 보자는 트윗을 남겼다. 그 땐 40살인데... 과연 마지막일까?

여담이지만 이 분은 12년의 월드컵에서 우승 1회, 준우승 1회, 3위 2회라는 미친 커리어를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저 성적들이 클로제가 혼자서 쓴 기록은 아니라 해도 실력 면에서도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의 공헌도가 높은 것이 분명하다. 4번의 월드컵에 개근하고 팀의 성적과 자신의 성적 모두 하이 랭킹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점에서 특히나 흠좀무한 기록.

5 플레이 스타일

클로제의 스타일은 사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정통 타켓맨은 아니다. 키도 184cm밖에 되지 않는데,? 뛰어난 공간침투와 뒷공간을 돌아가는 능력, 몸 전체로 골을 넣는 능력, 확실한 찬스 한방에 갑자기 나타나 득점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저 뛰어난 공간침투의 밑바탕이 되어 주는 빠른 주력(走力)이 아주 일품이다. 게다가 클로제가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힌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공간'과 '패스'라는 화두가 최신 조류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해외축구 전문가, 팬들에게는 클로제가 2002년 월드컵에서 넣은 무수한 헤딩골이 그를 구시대적인 타켓맨으로 낙인찍는 근거가 되었고, 그래서 90년대에 나왔다면 일류였겠지만 21세기에는 뒤쳐진 선수라는 평가가 한국 팬덤에서의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였다.(...)[15] 반면 미하엘 발락실제로도 일류지만그 조류에 적합해보였고, 그래서 2002년에 독일이 거둔 성과의 지분을 상당부분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 덧붙여서 2000년대 초의 독일 분데스리가는 해외축구 팬들에게 유럽 3대 리그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그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클로제의 평가는 더 나빴다. 거기에 클로제가 더욱 훌륭한 점은 주력마저도 매우 탁월하다는 것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달리기가 가장 빠른 3명의 선수가 에르난 크레스포, 일한 만시즈, 미로슬라프 클로제였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사우디아라비아전과 2006 독일 월드컵 코스타리카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번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시스트에도 소질이 있다. 클로제가 단순한 골게터에 불과했다면 베르더 시절 그와 함께 한 클라스니치가 공격수 평점 2위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이에른에서 토니와 짝을 이뤄서 득점은 다소 줄은 반면, 뛰어난 패스로 토니의 득점을 도왔다. 연계 플레이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를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보는게 더 적합하다고 하는 평가도 있다.

또한 정신나간 헤딩 능력과 그를 뒷받침해 주는 준수한 피지컬 또한 그의 장점이다. 포스트 플레이란 무릇 헤딩의 정밀함 + 피지컬 + 공간 침투 능력 + 동료를 이용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모두를 일류급으로 갖춘 스트라이커는 정말 찾기 어려우며 00년대의 클로제는 이 부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다..[16]

카이저슬라우텐에서 뛴 2000년부터 2004년 까지의 동영상을 봐도 클로제가 전형적인 타겟맨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이 시기로만 보면 헤딩에 뛰어난 포쳐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베르더 브레멘[17]와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면서 팀 공격수를 살리는 플레이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클로제하면 떠오르는, 골을 넣은 뒤의 공중제비 세리머니는 일품이지만 부상 위험때문에 이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18] 그지없 그래도 20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를 대파한 경기에서 오랜만에 공중제비가 나왔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가나 전에서도 나왔는데, 한 바퀴를 완전히 다 돌지는 못하고 엉덩이로 착지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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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우초 세레머니 논란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포함한 5명의 선수[19]들과 '가우초는 이렇게 걷지, 독일인은 이렇게 걷지' 라고 외치며 패자를 조롱하는 춤을 췄다고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이 춤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인종차별과는 관계가 없다. 분데스리가의 전통을 모르는 기자의 오해가 빚은 사태로, 이 응원 자체는 각국의 응원을 소개하는 네이버 페이지에도# 실려 있는 굉장히 유서깊은 응원으로 'XX는 이렇게 걷지, 독일인은 이렇게 걷지' 라는 후렴구를 되풀이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와 싸워 이겼을 경우 Osis라고 붙이는 식.
이런 논란이 일파만파 퍼진 원인은 역시 기레기들 탓. 자국 리그 문화도 잘 모르는 슈피겔지(紙)의 애송이 기레기 하나가(우리나라로 치면 K리그 문화에 대해 엿도 모르면서 트집잡아 까는 기레기) 쓴 기사가 해외로 퍼지며 뜬금없이 인종차별과도 연관되고 나치 전범문제까지 언급하며 아주 실제와는 다르게 와전되어 클로제를 아주 천하의 개쌍놈을 만들어놓았다.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레머니는 오래전부터 분데스리가와 독일국대에서 경기 종료 후, 혹은 팬들과의 축제에서 행해진 한 가지 문화와 같은 세레머니이다.[20] 방법은 간단하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힌채 전반부를 부르고,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며 후렴구를 외치며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So gehen die 상대나라/상대팀, die 상대나라/상대팀 gehen so - So gehen die 독일/자기팀, die 독일/자기팀 gehen so!

상대팀 이름 자리에 나라이름이나 상대 클럽만 넣고 부르면 되는 간단한 노래다. 그냥 경기에서 져서 고개를 떨구고 집에 들어가는 상대팀 모습과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승자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애초에 아르헨티나는 백인 인구가 대다수인 국가로, 독일에 대한 국민 정서도 좋은 편이다. 가우초(Gaúcho, 가우초 내지는 가우슈, 남미 카우보이)가 아르헨티나 비하 단어라는 것도 억지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마스코트가 가우초를 본뜬 가우치토(Gauchito)이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인 호나우지뉴의 별명도 가우슈인데, 비하 단어라면 굳이 별명으로 부를 이유가 없다. 독일인도 Jerry나 Kraut라는 멸칭으로 불리지만 이걸 인종차별이라 시비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좀 더 겸손했더라면, 아예 안해서 논란의 여지나 오해받을 거리를 사전에 만들지 않는것이 좋았을텐데 맥주를 들이키고 올라간 상황이다보니 역시 아래에서 말하듯 술이 웬수...

앞뒤 사정을 아는 독일 축협이나 관계자들도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있으며 아르헨 축협도 그러려니 쿨한 반응이다.[21] 월드컵 후 잡힌 뒤셀도르프에서의 독일과의 친선경기도[22][23] 문제없이 진행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동안 쌓은 멘탈갑, 덕장 이미지가 이미 보이는 대로 믿는 악성 해충들 때문에 많이 안 좋아졌다. 지못미.

독일 축구협회 회장의 반응#이나 슈피겔# 등 독일 언론의 비판 역시 인종차별이 아니라 겸손하지 못한 선수단의 행실에 초점을 맞춰 비난하고 있다. 빌트 지 칼럼의 마지막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Der deutsche Gaucho-Dance war eine Schnapsidee. Die Nationalspieler werden kritisiert, weil sie bei der WM-Feier einen fragwurdigen Tanz auffuhrten. Eine Petitesse und Harmlosigkeit, wie sie in Fußballstadien hundertfach schlimmer vorkommt, meinen nun die einen. Die anderen sprechen von einem unentschuldbaren Fehlverhalten, welches die Feierlichkeiten, ja gar die ganze WM zu einem gigantischen Eigentor werden ließe. Tatsachlich war die Vorfuhrung keine Glanzleistung. Man muss aber auch nicht ubertreiben.(가우초 춤은 바보같은 아이디어였다. 국대선수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춤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장에서는 그것보다 더한 것들이 일어나기에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용서돼서는 안되고 전체 월드컵을 망치는 행동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대선수들의 쇼는 잘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 지나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

다만, 이와 별개로 클로제와 독일 선수들이 저 춤을 춘 것은 나치와 전범국의 이미지를 아직 벗지 못한 독일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솔한 행동이었다. 누구보다 행실에 조심해야 할 국가인 독일 국가대표팀의 맏형으로서 비하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렇게 보일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또한 브라질 전 이후때는 브라질에게 위로했었으면서 우승했다고 패배한 상대를 비꼬는 것도 좋은 행동은 아니다.

7 그 외

팀에서는 부진하지만 국대에서는 날아다니는 애국자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여러 가지가 겹쳐서 10년 즈음에 발생한 견해로 일단 포돌스키가 국내에서 이 기믹으로 굉장히 흥했던 선례가 있어서 국내에서 독일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두 그렇다는 선입관이 있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분데스리가는 다른 유럽리그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기때문에 한국 축구팬들이 평소에 눈에 안 띄던 독일 선수들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24] 큰 대회가 있는 해에는 독일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보여주기 때문에 분데스리가에 관심이 전혀 없으면서 독일 국가대표 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진다는 해석은 국내팬들에게 흥미로운 기믹이다. 그런데 이 시즌 애국자의 대표 포돌스키가 클럽에서 극적 부활하는 바람에 또다른 독일 선수가 제물이 되기 딱 좋았고 사실 필요했는데, 마침 클로제가 그 시즌 클럽에선 못 보여주던 솜씨를 국대에서는 귀신같이 발휘하며 새로운 타겟이 되었다.

피지컬적으로도 테크닉으로도 몹시 빼어난 정도는 아니라 스페셜로 엮거나 주목받을 만한 플레이 같은 게 별달리 나올 게 없었던 것, 옛 소속팀인 베르더와 카이저슬라우테른이야 챔스 진출할 일이 없거나 진출해도 크게 대단할 게 없었던 것, 바이에른에 입단하고 나선 첫 해 유로파, 두번째 해 국내의 무관심 속에 득점 1위를 달리며 드디어 빅 매치라 할 수 있는 바르샤 전에서 팀 전체가 줄부상에 시달리고 본인도 득점 1위가 무색하게 병원행 티켓을 끊으며 바이에른이 안드로메다에 갔다왔고 이 여파로 또 챔스 진출에 실패한 것, 09/10 시즌 다시 챔스 티켓을 끊은 바이에른 뮌헨이 챔스 결승까지 진출했는데 클로제는 코빼기나 좀 보였던 것, 이를 다 취합해 보면 클로제의 전성기 8년 동안 분데스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월드컵이나 유로 때문 눈에 띄던, 그것도 아주아주 크게 띄던 것, 특히 10년 월드컵은 대기록 달성까지 겹치며 이에 시기하고 조바심 내는 호돈빠들의 음해와 분탕질까지 겹치며 애국자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한편 클로제는 존경스러운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번은 클럽 경기에서 클로제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넘어졌다. 심판이 오심으로 상대편에게 페널티킥을 선언하자, 클로제는 상대편의 반칙으로 넘어진 게 아니라 바닥이 패여 있어서 내 실수로 넘어진 것이라며 페널티킥 거부, 곧바로 필드골로 당당하게 골을 넣었다. 동료는 물론이고 상대 선수들에게도 좋게 대하고, 심판에게도 크게 소리치는 법 한번 없다. 성실하고 착한데다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아직도 다른팀에선 주전으로 뛸법한데도 벤치에만 앉아있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꾹 눌러오다 감독이 떠나자 가벼운 인터뷰 한 번으로 넘기는 인품을 보면 참 점잖은 사람이다. 다만 페널티킥의 경우는 이건 한 경기에서의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팀 사정이 급하면 어쩔 수 없이 넘어간다. 인터뷰에서 ~~던 것 같다, 는 식으로 시인은 하지만...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착각이고 이런 경우는 오프사이드 오심이다. 왜냐면 직접 뛰는 선수는 오프사이드 오심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클로제 본인이 시인하는 경우도 오프사이드인 거 같긴 한데 선수가 직접 아니라기도 뭣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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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라치오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코너킥을 핸드볼로 골을 넣은 다음, 핸드볼 사실을 시인했다. 독일에서처럼 골 넣고 이겼다 해피엔딩~이 되진 않고 0:3으로 패하긴 했지만 참 보기 드문 페어플레이 정신. 이로 인해 상대 팀이었던 나폴리 선수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클로제가 바이에른으로 떠나올 당시에는 이적에 관한 잦은 언론플레이와 바이에른과의 불법접촉으로 인해 팬들과의 관계가 정말 최악이었다. 또한 클로제의 부인이 팀동료였던 패트릭 오보모옐라와 그렇고 그런 관계였고 임신까지 했다는 악성 루머까지 돌았다. 그런데도 클로제는 고소 한 번 않고 그냥 조용히 떠나갔다.

물론 불법접촉을 했고, 이적문제로 팀을 뒤흔들어놨던 클로제의 잘못도 있지만 팬들의 대응과 언론의 반응이 너무 저질이었다. 그런데도 묵묵히 덮어버린 클로제를 깔 수가...처음에 바이에른 팬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아니 바이에른 팬들 상당수도 '이런 충성심이라면 필요 없다' 라는 소리까지 했는데 나중에는 클로제를 옹호해 줬으니...참 클로제는 저때 이적 관련해서 처신을 잘못한 거 말고는 깔 거리가 없었다. 아니 그때 욕 먹던 이유도 '저렇게 하면 팀이 이적료도 제대로 못 받으니 문제가 있다'였는데 결국 바이에른이 베르더에게 매우 후한 금액을 줬으니 감정적인 게 아니고서야 깔 게 없기도 하다. 뭐, 아직도 베르더 팬들은 클로제 이적 얘기 나와도 복귀는 없었으면 한다고들 할 정도지만.

이렇게 신사스럽고 점잖은 사생활과 팀의 승리를 위해 사심없이 정열을 다하는 플레이 덕분에 한국의 분데스 팬들로부터 미로 형, 로제 언니라고 불리며 많은 호감도를 쌓고 있다. 허나 왠지 베르더 팬이나 바이에른 팬들로부터는 알게 모르게 경원시되는 면도 많다. 베르더 팬들에게는 이적 소동 때문에 바이에른 팬들에겐 부진 때문에...베르더 팬의 경우 뉴비면 이적 소동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바이에른 팬들의 경우 뉴비면 최근의 부진 때문에 클로제를 탐탁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올드비들은 베르더의 경우 이적 소동의 앙금이 있고, 바이에른의 경우 잘 해 주던 시즌의 기억이 있어서 비교적 관대하다. 어차피 바이에른이 클로제 없다고 시즌 망한 것도 아니고 올리치, 뮐러, 고메즈가 다 땜을 해 줬기 때문에.

상술되었듯 비교적 유명한 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서 클로제의 업적이나 실력이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2000년대 들어 독일은 단 한번도 역대 최강 팀이라고 부른 적도 없고 오히려 최악의 팀이라는 이야기만 많이 들었다. 그런 팀을 일으켜 세운게 미하엘 발락, 올리버 칸, 미로슬라프 클로제 세 사람으로 02년 결승전으로 팀을 보냈고[25] 유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06년에는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힘으로 부숴서[26] 기적적인 동점골로 팀을 4강으로 보냈다. 10년에는 잉글랜드에게 일격을 먹이는 선제골로 팀의 대승을 가져왔으며 탁월한 위치선정으로 아르헨티나를 또 다시 침몰시켰다. 유로컵 준우승, 월드컵 준우승, 월드컵 3위 2회 그러나 끝내 유로컵과 월드컵 어느 쪽에서도 우승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인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다시 나갈 확률을 이미 70% 이상으로 잡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스웨덴전에서 두 골을 넣는 등 2013년에도 만 35살의 나이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독일 축구협회에서도 그렇고 클로제는 거의 무조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다시 나간다고 봐야 한다. 클로제의 실력이 하향곡선이 된다 해도 독일 축구협회에서는 클로제를 후보로라도 해서 무조건 국가대표 엔트리에 넣을 것이며 조별리그에서 실력이 약한 팀을 만나면 100% 클로제를 선발 출전시킬 것이 확실하다. 두 골만 넣으면 역대최다득점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4년 독일 국대 엔트리에 최종선발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약한팀이 브라질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담으로, 독일 국가대표팀은 클로제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27] 수호신

또한 클로제는 펠레의 저주 최고의 수혜자이다. 펠레가 FIFA 100을 선정할 때 클로제가 2002년 월드컵에서 아주 인상깊은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로제를 FIFA 100에서 제외시켰는데 클로제는 이후 세 월드컵에서 5골, 4골, 2골을 퍼부으며 총합 16골로 현재 월드컵 본선 득점에서 호나우두의 기록을 깨고 최다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호나우두는 자신의 기록이 갈아치워지고 조국이 굴욕적인 대패를 당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펠레가 클로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가 아니라고 부정하자...펠레의 말은 정반대로 된다는 것을... 대신 뽑힌 사비올라는...ㅠㅠ...

브라질 월드컵 이후, 호나우두 팬들의 극딜을 받고 있다. 월드컵 통산 득점 기록을 깼을 뿐인데, 위에 언급된 애국자 드립을 치면서 클로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무리뉴도 16골 달성 이후 '지난 20년간 호나우두가 최고다.'라고 했고 이에 클로제를 인정하는 축빠 및 호나우두 안티들(정확히는 팬들의 무차별 찬양에 질린 축팬들)이 반격을 하면서 점점 떡밥이 커지는 중. 24경기 vs 19경기 4번의 월드컵 vs 3번의 월드컵

다만 호나우두의 악질빠들은 2번의 월드컵에서 12경기 14골을 기록한 게르트 뮐러나 단 한 번의 월드컵에서 13골을 넣은 쥐스트 퐁텐의 사례를, 그러니까 호나우두보다 월드컵 경기당 득점률이 더 뛰어났던 이들 선수들의 사례를 언급하면 월드컵에 더 오래 나오는 것도 실력이고 어쨌거나 골도 더 많이 넣었지 않았냐고 하는 바람에 이중잣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득점은 현대의 압박수비가 나오기 전의 기록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 참고로 게르트 뮐러는 경기당 2.97골 나오던 시절이고, 쥐스트 퐁텐은 경기당 3.6골 나오던 시절. 호나우두는 경기당 2.52골 시절에 1978년 이후로 최다 8골. 참고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저 악질적인 변명일 뿐이다. 동시대의 경기당 득점률을 따져도 퐁텐 시절의 기록은 호나우두 시절의 1.42배 정도이지만 쥐스트 퐁텐의 월드컵 기록은 경기당 무려 2.17골로 호나우두의 0.79골의 무려 2.74배나 된다. 이것은 명백한 이중잣대이다. 애초에 다른 선수들의 기록을 무조건 깎아내리면서 특정 선수의 기록만을 찬양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인 것.

굳이 비교하자면 클로제는 팀 커리어와 월드컵 득점에 대해서는 앞서고 호나우두는 개인 커리어(발롱도르 등)와 스타성에서 앞선다고 볼 수 있다.[28]

15골 타이기록때 비교한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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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록

8.1 우승 기록

  • 베르더 브레멘 (2004/05 - 2006/07)
    • DFB-리가포칼 (1) : 2006

8.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9/00카이저슬라우테른독일 분데스리가200000000
2000/01카이저슬라우테른독일 분데스리가29902020122
2001/02카이저슬라우테른독일 분데스리가3116240----
2002/03카이저슬라우테른독일 분데스리가329544----
2003/04카이저슬라우테른독일 분데스리가2610311--21
2004/05베르더 브레멘독일 분데스리가32159401082
2005/06베르더 브레멘독일 분데스리가262513322094
2006/07베르더 브레멘독일 분데스리가2710161020123
2007/08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71086521125
2008/09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610743--87
2009/10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53152--81
2010/11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01143--21
2011/12S.S 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2713520--63
2012/13S.S 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2915120--51
2013/14S.S 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257200--31
2014/15S.S 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3413663----
2015/16S.S 라치오이탈리아 세리에 A247010--41
  1.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2위, 역대 최다 득점 1위 기록. 자세한 것은 아래 후술 참조.
  2. 살토(Salto)는 독일어로 공중제비라는 뜻이며, 이는 당연히 그의 덤블링 셀레브레이션에서 따온 별명이다.
  3. 독일어 도시명으로는 오펠른. 독일의 상실영토 오버슐레지엔 주의 주도였던 곳이고, 현재 폴란드에 잔류한 독일인 다수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 2세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얻은 지역이며 철광석등이 풍부해 당시 중요 산업 거점이었다. 2차대전 이후 독일 국경은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귀결되어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클로제는 독일계 부모 사이에 태어난 선수이고 포돌스키는 오버슐레지엔에 살고 있던 폴란드계 출신 후손이다.(그래서 같은 욕을 먹어도 포돌스키가 더 많이 먹는다.)
  4. 참고로 폴란드에서의 현지 이름은 미로스와프 마리안 클로제(Mirosław Marian Klose)였다.
  5. 여담으로 이 공중제비는 골 넣는다고 무조건 하는게 아니다. 월드컵에선 여태까지 7번을 하였다.
  6. "클로제는 월드컵에서만 괴물이지 클럽에선 빌빌거렸다."라는 오해
  7. 카이저 시절 01/02 시즌 31경기 16골, 브레멘 시절 05/06 시즌 25경기 26골 16도움, 그 해에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 1위를 차지했다.(2위가 반 더 바르트 3위가 베르바토프이다) 유럽 4대리그에서 한 시즌당 15-15(15골 15도움)를 넘게 기록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시, 호날두가 너무 눈을 높여놨다
  8. 만으로 20세
  9. 독일의 평점은 타 국가와는 달리 낮을수록 좋다. 10점 만점에 2.38을 다르게 환산하면 거진 8이 다된다. 키커의 평점은 1점이 최고 6점이 최하이다. 8은 절대 안 된다. 이를 제대로 환산해보면 10점 만점에 7.7이다.
  10. 클로제의 경우 막바지에 폼이 상당히 좋았음에도 골을 제대로 넣는 것에 실패해 많은 바이에른 뮌헨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는 클로제의 폼이 잠시 죽었던 이유도 있으나 본질적으로 클로제의 플레이스타일이 볼 순환이 바른 팀에 최적화되어있음에 원인이 있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에는 로벤을 필두로 탐욕이 넘치는 선수로 가득했고, 이는 부진의 큰 원인을 제공했다.
  11. 13년 은퇴한 베컴이 한국나이로 39살이다.
  12. 유일하게 현역이다. 클로제는 국가대표에선 은퇴했다.
  13. 팬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일을 낼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평가전의 경과를 보면 그야말로 서서히 폼을 회복해 나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14. 참고로 말 그대로 '들어가자마자' 골을 넣었다. 골 넣고 나오는 선수 스탯 화면에 '뛴 거리 0.08km, 슈팅1, 유효슛1, 득점1'이라고...
  15.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클로제는 동시대의 디디에 드록바와 같이 득점력뿐만 아니라 2선과의 연계플레이에 있어서도 뛰어난 상당히 현대적인 타입의 공격수였다. 이는 당시 국내에서 분데스리가의 인기가 전혀 없었던 이유로 생긴 편견이다.
  16. 이전 서술에서는 게르트 뮐러를 공간 창출에만 뛰어나고 연계나 피지컬 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공격수처럼 묘사되어 클로제와 비교하는 식으로 서술이 되어 있지만, 게르트 뮐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세간에 잘못 알려진 이미지대로 평가한 것이다. 필리포 인자기라면 모를까... 게르트 뮐러는 오히려 스트라이커로써 리그에서 453경기 동안 398골을 기록하는 동안 11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연계도 뛰어났고 강력한 슈팅 능력을 가졌으면 기술과 피지컬으로도 완벽한,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 가까운 완성형 공격수이다. 자세한 것은 게르트 뮐러 항목 참조.
  17. 클로제가 뛰던 시절 베르더의 공격수 넬슨 발데스,클라스니치, 아론헌트, 모하메드 지단은 커리어하이의 득점을 이뤘다.
  18. 당시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아가호와의 9회전 공중제비 후에는 초라해 보이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더라 카더라.
  19. 마리오 괴체 , 토니 크로스, 안드레 쉬를레, 로만 바이덴펠러, 슈코드란 무스타피
  20. 알싸인들께서도 이 사건 후에 친히 사이트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셨다.
  21. 물론 아르헨 언론들은 잠시 발칵 뒤집어졌지만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냥 묻히고 있는 분위기.
  22. 다만 이건 월드컵 결승전때문에 복수전 치르려고 잡은게 아니라 월드컵 한~참 전부터 친선경기를 잡은것이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사정이 그렇다보니 자존심싸움이 될 수도 있는 상황.
  23. 참고로 독일이 아르헨티나에게 월드컵에서는 4승1무1패로 엄청난 우세지만 A매치에서는 아르헨에게 호구이다.
  24. 손흥민이 잠시 분데스리가에 있는동안 이런 현상은 잠시 해소되었다.
  25. 조별리그에서 클로제의 활약은 돋보였다. 승점자판기였던 사우디를 제외하면 아일랜드와 카메룬과의 경쟁인데 아일랜드와의 1-1은 클로제의 골이었고, 카메룬 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보이며 승리를 이끌었다.
  26. 진짜로 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아본단시에리는 클로제와 접촉 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갔다.
  27. 골을 넣은 48경기에서 39승 9무
  28. 클로제의 활약이나 커리어 등을 보듯이 한국에서 평가받는 것 처럼 저평가 받을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또 분명한 것은 클로제가 시대의 공격수들을 나열할때 반드시 언급되는 수준의 스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호나우두는 과하게 칭송받는 것도 있고 과하게 깎이는 것도 있지만, 분명히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축구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수많은 스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띈 2중 한 명이었던 만큼 현재에도 역대급 스트라이커를 뽑을때 확실히 언급되고 최고로 추앙받기도 한다. 그에 비해 클로제는 클럽에서의 활약도 확실히 좋았다고는 하나 그 활약 장소와 팀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가장 빅클럽이라 할 수 있는 뮌헨에서의 미묘한 활약과 말년을 보내는 세리에A의 현재 위상 등이 얽혀 묘하게 리그에서의 임팩트가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분명히 말해둘 것은 실제로 클로제가 클럽에서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호나우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팩트와 스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