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대학농구연맹전

1991 대학농구연맹전
춘계 우승: 중앙대
추계 우승: 연세대
1992 대학농구연맹전
춘계 우승: 연세대
추계 우승: 중앙대
1993 대학농구연맹전
춘계 우승: 고려대
추계 우승: 고려대/중앙대

1 개요

1992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대회일시우승팀MVP준우승팀3위4위비고
춘계 대학농구연맹전4월연세대오성식(연세대)중앙대고려대경희대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5월연세대문경은(연세대)중앙대경희대동국대
전국체전10월중앙대-경희대
추계 대학농구연맹전11월중앙대홍사붕(중앙대)경희대고려대/연세대[1]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2] 대표팀은 1992년 한해 소집일정이 없었고, 그 덕분에 1992년 한해 동안 대학팀들은 오랜만에 대표팀 차출로 인한 전력 누수 없이 진검승부를 펼치게 되었다.[3]

2 대회결과

2.1 춘계 대학농구연맹전 (4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남대 1부 12개팀 전체가 참가하였다.

2) 조별 예선

순위A조B조C조
1연세대3 - 0중앙대3 - 0경희대3 - 0
2명지대2 - 1고려대1 - 2동국대2 - 1
3성균관대1 - 2국민대1 - 2한양대1 - 2
4홍익대0 - 3단국대0 - 3건국대0 - 3

3) 결선리그[4]

순위결선리그비고
1연세대5 - 0우승
2중앙대4 - 1
3고려대3 - 2
4경희대2 - 3
5명지대1 - 4
6동국대0 - 5
  • MVP: 오성식(연세대)

2.2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5월)

1992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항목 참조

1연세대
2중앙대
3경희대
4동국대

2.3 전국체전 (10월)

1중앙대
2경희대

2.4 추계 대학농구연맹전 (11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 1부 12개팀과 2부팀인 서울대(!!), 청주대까지 총 14개팀이 2개조로 나뉘어 예선을 진행하였다.

2) 조별 예선

순위A조B조
1중앙대6 - 0경희대6 - 0
2고려대5 - 1연세대5 - 1
3건국대3 - 3동국대4 - 2
4국민대※3 - 3한양대3 - 3
5성균관대※2 - 4명지대2 - 4
6홍익대※2 - 4단국대1 - 5
7서울대0 - 6청주대0 - 6

※ 골득실차로 순위 결정

3) 6강 토너먼트

6강4강결승
-고려대: 패
77 : 85 (OT)
경희대: 승
경희대: 패
70 : 73
중앙대: 승
고려대: 승
91 : 89 (OT)
동국대: 패
-연세대: 패
66 : 72
중앙대: 승
연세대: 승
82 : 58
건국대: 패
  • 최종순위: 중앙대 우승 / 경희대 준우승 / 고려대/연세대 공동 3위
  • MVP: 홍사붕(중앙대)
  • 최근 2년간 중앙대가 연세대보다 대학농구연맹전에서의 우승 횟수는 더 많았으나 이는 연세대 주전들(문경은, 정재근, 오성식)의 국가대표팀 차출 때문이라는 평이 일반적이었고, 연세대가 100% 전력으로 참가한 대회에서는 항상 연세대가 중앙대를 이겼었다. 추계연맹전에서 비록 오성식이 스카웃 파문으로 인해 불참했지만[5] 국가대표 슈터 문경은을 비롯 지난 1991 농구대잔치 4위의 멤버가 건재했기에, 이번 대회에서 중앙대의 승리는 이변으로 여겨졌다.
  • 기아자동차를 농구대잔치 4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고 부상으로 은퇴한 뒤, 1992년부터 중앙대 코치에 부임한 강정수는 기존의 장신군단 이미지였던 중앙대를 수비와 속공의 팀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6] 추계연맹전 종료 후 정봉섭 감독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강정수는 28세의 나이로 중앙대 감독에 부임한다.

2.5 1992-93 농구대잔치 (12월~1993년 3월)

1992-93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팀명최종성적전적비고
연세대4위 (4강 진출)11 - 9
중앙대5위 (6강 진출)10 - 9
고려대9위5 - 8
경희대11위4 - 9
명지대13위2 - 11
동국대14위1 - 12
  • 농구대잔치 개인부문 수상자

3 시즌 결산

4 그때 그 선수들

4.1 연세대

시즌 2관왕(춘계연맹전, MBC배), 농구대잔치 4위

4.2 중앙대

시즌 2관왕(추계연맹전, 전국체전), 농구대잔치 5위

4.3 고려대

춘계연맹전 3위, 추계연맹전 3위, 농구대잔치 9위

  • 윤호영(4학년,G,180cm): 휘문고 졸. 삼성전자-수원삼성(97)-창원LG(97-99)-서울SK(99-01)
드리블과 어시스트 능력이 뛰어난 정통 포인트가드로 고교시절 청소년 대표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였으나, 피지컬과 득점력이 아쉬어 실업 및 프로에서 두각을 내지 못했다. 현재 KBL 심판으로 활동하며 선수시절에 받지못한 유명세(?)를 제대로 떨치고 있다.
  • 박세웅(3학년,G,180cm)
  • 김병철(1학년,G,185cm)
  • 정인교(4학년,F,182cm)
  • 이지승(2학년,F,188cm)
  • 박권우(4학년,F,190cm): 휘문고 졸. 산업은행 입단.
90년대 초 고려대 골밑을 지키던 꼬꼬마 센터군단[7]의 마지막 세대. 당초 박한감독이 스카웃했던 장신 센터들[8]이 이탈하면서 190cm 박권우가 전희철과 함께 골밑을 지켜야했다. 졸업후 산업은행에 입단, 고려대 1년선배 강병수(191cm)와 함께 산업은행의 골밑을 지켰으며, KBL 출범 시 산업은행 농구단이 나래이동통신에 매각될때 합류하지 않은채 산업은행의 일반 은행원으로 남았다.(그깟 공놀이 따위!!)[9]
  • 박준영(1학년,F,195cm)
  • 전희철(1학년,C,198cm)

4.4 경희대

전국체전/추계연맹전 준우승, 농구대잔치 11위/14팀

  • 최명도(2학년,G,180cm)
  • 김광운(1학년,G,181cm)
  • 김현국(4학년,F,188cm): 목포상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 플라망스(97-99)
대학시절 작은신장으로 4번까지도 커버하던 전천후 포워드였으며 실업 및 KBL에서는 수비가 좋은 선수로 유명했다. (프로 원년시즌 수비 5걸) 1999년 당시 IMF 사태로 인해 모기업 나산의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광주나산 플라망스 농구단의 매각이 추진되었고, 이 과정에서 김영주, 이민형 등 노장 및 후보선수들이 정리되었는데, 당시 29세로 98-99 시즌을 주전으로 뛰며 한창 전성기이던 김현국도이때 은퇴를 택했다. 은퇴 후 모교 경희대에서 오랜기간 최부영 감독 아래서 코치로 있다가 최감독이 현직에서 물러난 2014년부터 감독을 맡고 있다. 최부영 감독의 스카웃으로 김철욱(중국이름 우띠롱)이 처음 한국에 왔을때, 빠른 귀화를 위해 김현국 감독의 양자로 올리면서 김씨성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 김도명(3학년,F,190cm)
  • 박영진(1학년,F,191cm)
  • 장창곤(2학년,C,194cm)
  • 구장환(1학년,C,191cm)

4.5 동국대

MBC배 4위, 춘계/추계연맹전 6강, 농구대잔치 14위/14팀

  • 정성조(1학년,G,181cm)
  • 봉하민(3학년,G,190cm)
  • 박재현(4학년,F,189cm): 대구계성고 졸 현대전자-대전현대(97-99)-광주골드뱅크(99-00)-울산모비스(00-01)
1991년 이상백배 출전 대학선발팀에 뽑히기도 했으나 현대전자 입단시까지 거의 무명이었고, 1년만에 조용히 상무에 입대한다. 1994-95 농구대잔치 당시, 전대회 준우승의 주역들(정재근, 김상식, 이창수, 표필상, 남경원)이 대거 제대하면서 오성식, 이상범 외에김현주(G,178), 박재현, 이병률 등 무명 선수들만 남은 상무였지만, 오성식을 중심으로 똘똘뭉쳐 약한 전력임에도 정규리그 6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고, 이때 박재현은 189cm의 단신임에도 수비에서 4번으로 뛰면서 포스트를 지켰고 공격시엔 정확한 3점을 연이어 꽂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KBL 출범후에도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대전현대의 키 식스맨으로 뛰면서 97-98, 98-99 시즌 대전현대의 KBL 2연속 우승에 일조했다. 은퇴 후 수원여고 농구팀 코치로 있던 도중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1년 6개월간 투병하다 2004년 11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이병률(4학년,C,195cm): 대전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여수골드뱅크(97-01)

4.6 명지대

춘계연맹전 6강, 농구대잔치 13위/14팀

  • 조성훈(1학년,G,185cm)
  • 고상준(3학년,F,182cm)
  • 조성원(3학년,F,182cm)
  • 장기명(2학년,F,186cm)
  • 정재헌(1학년,C,193cm)
  • 박상관(4학년,C,200cm)

4.7 건국대

추계연맹전 6강

  • 설왕진(4학년,G,180cm): 기아자동차 입단.
농구대잔치 시절, 최강팀이었던 기아자동차가 -- 트리오의 활약속에 점수차를 압도적으로 벌리고, 이후 천정열, 허기영, 조현일 등과 함께 등장하여 남은 시간을 보내던 '가비지타임' 멤버 중 한명이었다.
  • 정진영(1학년,G,184cm)
  • 김용식(1학년,G,187cm)
  • 황준삼(2학년,F,179cm)
  • 김승환(4학년,F,190cm): 부산동아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97)
울산무룡고 코치, U-18 대표팀 코치 등을 지냈으며 16-17 시즌을 앞두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코치로 임명되었다.
  • 이일웅(3학년,C,195cm)

4.8 성균관대

  • 박규훈(2학년,G,180cm)
  • 배상우(1학년,F,192cm)
  • 박상욱(3학년,C,200cm)

4.9 한양대

  • 정진안(4학년,G,179cm)
  • 김동철(2학년,G,180cm)
  • 김재열(4학년,F,191cm): 용산고 졸. SBS-안양SBS(97-98)-대구동양(98-99)-서울삼성(99-00)
고교시절 센터였으나 한양대 재학시절 외곽슛을 장착, SBS팀의 전문 3점슈터 자리를 차지했다. KBL 출범후엔 크게 활약하지 못했고 은퇴 후 배우 최민수의 로드매니저를 하는 등 특이한 이력을 보냈다. 98-99 시즌 대구동양의 32연패 당시 멤버이다.[10]
  • 최호(2학년,F,193cm)

4.10 국민대

  • 이환우(2학년,G,184cm)
  • 장윤섭(4학년,F,187cm): 명지고 졸. 산업은행/나래이동통신-원주나래(97-99)
KBL 원년시즌 원주나래 돌풍 당시 KBL 최고의 식스맨으로 대학시절 받지못하던 주목을 받았고[11], 당시 부산기아 엔터프라이즈의 김유택과 식스맨 상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다. 원년시즌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후 체육교사로 임용되었고, 동일여중 농구부 코치를 맡기도 했다.
  • 김성환(2학년,F,194cm)
  • 조승민(3학년,C,192cm)

4.11 홍익대

  • 문필호(4학년,G,182cm): 송도고 졸. SBS-안양SBS(97-01)
오성식과 함께 89학번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꼽혔다. KBL 원년 포함 총 5시즌간 안양SBS에서만 뛰었으며, 커리어 내내 오성식, 홍사붕 등의 백업 포인트가드였다.
  • 유동혁(4학년,G): SBS 입단.
KBL 출범직전 은퇴하여 SBS 카메라기자가 되었다.
  • 이무진(2학년,F,186cm)
  • 김대현(2학년,F,190cm)

4.12 단국대

  • 위성우(1학년,G,185cm)
  • 이창욱(3학년,F,188cm)
  1. 공동 3위
  2. 1년전 열린 1991 고베 아시아선수권에서 준우승 하면서 1장뿐인 티켓을 중국에 넘겼다.
  3. 사실 정재근, 표필상이 졸업하면서 대학생 국가대표는 연세대의 문경은, 오성식 뿐이었다.
  4. 예선에서의 상대 전적을 가지고 간다.
  5. 오성식 항목 참조
  6. 기존 정봉섭 감독 시절의 팀이 정경호(4년, 202cm), 조동기(3년, 197cm), 안병익(2년, 196cm) 등을 더블포스트로 기용하는 전술이 주였다면, 강정수 코치는 싱글포스트에 김영만-양경민의 두 포워드를 주로 이용해 전방위 디펜스 및 속공을 주 전력을 삼았다. 이에 따라 싱글포스트 자리는 기동력이 좋은 조동기가 중용되기 시작했다.
  7. 강병수(191cm, 산업은행), 정한신(192cm, 현대전자), 노정현(193cm, 은퇴)
  8. 양정고 출신 90학번 정구근(200cm)은 강압적인 훈련에 반발하여 미국 유학을 택했고, 전희철의 고교 선배였던 이익수(2학년,203cm)는 부상으로 아예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바람에 4번 시켜준다고 해서 고려대를 택했던 전희철은 1학년 내내 센터로만 뛰어야했다.
  9. 이때 산업은행에 남은 선수가 안세환(전 구리 KDB생명 감독), 이도용 등이고, 박희성, 정인교, 강병수, 장윤섭, 이인규, 최호, 지형근 등이다.
  10. 정락영-이인규-존 다지-이훈재-자바리 마일스 주전에 김재열, 신현식, 이현주 등이 주로 뛰었다.일반 팬들은 알만한 이름이 별로 없다. 제일 유명한게 가나 왕자 존 다지와 야반도주한 그레그 콜버트
  11. 당시 원주나래 주전멤버가 칼레이 해리스-정인교-이인규 or 김영래-강병수-제이슨 윌리포드였고 장윤섭은 2-3번 포지션의 식스맨이었다. 장윤섭이 뛸때마다 경기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고, 곱상한 마스크로 항상 웃는 모습 때문에 원주팬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