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ives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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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집회(저작자: Press Association)

블랙 라이브즈 매터 Black Lives Matter

1 개요

미국에서 2012년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 후로 시작된 사회 운동. 흑인에 대한 미국 정부와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항의로서 시작된 흑인민권운동이다.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와 해시태그가 이 운동의 대표적 상징이다.

이른바 보수진보로 갈려 크게 분열된 현재 미국 사회의 상황과 맞물려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운동이다. 특히 이 "Black Lives Matter"의 해석을 두고도 논쟁이 있으나, 이 것은 "All Lives Matter"로 대표되는 반대 측의 해석인 "흑인 생명 소중하다"가 아닌 "흑인 생명 소중하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온당한 해석이다. 의미의 해석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2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미 1950 ~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 당시 흑인단체 중 급진파에 속했던 흑표당의 10개 강령[1] 중 하나가 “우리는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과 살인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2]였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아버지(Martin Luther King, Sr.)가 백인 경찰의 인종차별적 검문을 겪은 적이 있다고 회고하였다.

... once the car his father was driving was stopped by a police officer, and the officer addressed the senior King as "boy[3]". King pointed to his son, saying, "This is a boy, I'm a man; until you call me one, I will not listen to you."

(... 한번은 경찰이 (검문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운전중이던 차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 경찰은 킹의 아버지를 '꼬마'라고 불렀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 킹을 가리키며 말했다. "꼬마는 얘고, 나는 성인이요. 당신이 날 제대로 호칭하기 전까진 난 당신 말을 듣지 않겠소.")
- 마틴 루서 킹, ≪Stride Toward Freedom: The Montgomery Story≫, 1958년 출처

말콤 X도 생전에 무장하지 않은 흑인들이 냉혹한 경찰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50~60년 전에도 이미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흑인들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공권력 남용 문제는 늘 존재해왔으며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는데,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흑인민권운동 관련 단체들이 지금까지도 경찰에 대한 대응 교육을 회원들에게 실시하고 있다는 것, 미국에 존재하는 경찰 폭력 감시 단체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이전부터 이미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 흑인 무장과 흑인 무장 정당방위를 강조하는 흑인 과격단체들이 그 노선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역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이전에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 등이다. 이런 몇몇 사실들만 보더라도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 문제가 뿌리 깊은 문제임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2.1 구체적 증언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이미 '22년 전'인 1990년 결성된 경찰 폭력 감시 단체 Copwatch[4]의 회원인 재미동포 이동균은 2014년에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증언 출처, 아카이브) 현지인의 1차 증언이며, 흑인 대상 공권력 남용의 근본적 원인인 경제, 사회적 문제들도 같이 짚고 있는 글이다.

시카고에서 흑인들이 모여 사는 사우스사이드를 걷다 보면 가끔 가다가 “파이브-오”(Five-O; 5-O)라고 소리치는 아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도망가기 바쁩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안으로 숨고, 청소년들은 하던 것을 무작정 내려 놓고 도망을 가거나 숨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전쟁 영화에서 적군이 쳐들어온다는 경보음이 올렸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라는 것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5-O”라는 외침은 폭격이나 진군해 오는 적의 군대에 대한 경보가 아닙니다. “5-O”는 경찰을 봤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흑인 도시들에서 경찰들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2012년 트레이본 마틴 살인 사건과 최근 퍼거슨 시에서의 마이클 브라운 살인 사건으로 이런 상황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경찰들의 흑인 살인과 폭행은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 흑인을 상대로 한 폭력은 미국의 건국서부터 존재했습니다 ... 1960년대 이전까지 유색인 분리 정책에 따라 백인과 유색인(특히 흑인)은 사회에서 분리돼 존재했습니다...(중략)

이런 미국에서는 퍼거슨시뿐 아니라 모든 흑인 동네가 비슷한 상황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여전히 인종차별을 무기로 삼아 흑인을 공격합니다. 사실, 28시간마다 한 명꼴로 흑인이 경찰, 혹은 ‘법과 정의를 스스로 실행하겠다’는 백인에게 살해당하기 때문에(2012년 통계) ‘공격’이라는 표현보다는 ‘국가에 의해 테러리즘을 당한다’고 표현해야 옳습니다...(중략)

레이건 시절 미국 국가는 더는 흑인들을 교육에서 배제시킬 수 없게 되고, 흑표당의 위협을 느끼자 중남미에서 CIA가 밀수한 코카인을 [값이 싼] 크랙 코카인으로 만들어 흑인 동네들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닉슨이 유행시킨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워 흑인 동네들에 경찰을 배치했습니다. 흑인 동네들을 겨냥한 오늘날의 테러리즘 상황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시카고에 처음 크랙 코카인이 들어온 해는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4년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국가에 의한 테러리즘과 공격을 당한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의 현재 상황을 한번 통계로 보겠습니다. 지난 10년간 학교 10곳 이상이 문을 닫았고, 국가는 50년 동안 꾸준히 학교 지원을 줄이면서 경제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시카고 흑인 청소년 중 92퍼센트가 실업자입니다. 사우스사이드에는 일자리가 없습니다.

흑인 청소년 층의 체포 비율은 7.6퍼센트입니다. 이는 백인에 비해서 10배가 높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체포 사유는 대마초 관련 범죄(소지 혹은 흡연)인데 실제 대마초를 흡연하거나 소지하는 비율은 백인과 흑인이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흑인의 체포율이 10배가 높은 것은 상당히 특이한 점이죠...(후략)

또 다른 재미동포 박상우도 2015년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증언 출처, 아카이브)위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흑인 대상 공권력 남용의 근본적 원인인 경제, 사회적 문제들을 짚고 있는 것 외에도, 특히 같은 유색 인종으로서 한인에게 가해지는 공권력 남용 사례도 증언하고 있는 글이다.

미국에 처음 이주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주변의 한인들로부터 여기 살면서 특히 조심해야 할 대상들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바로 경찰이다.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지시로 차를 세우게 되었을 때는, 두 손을 반드시 핸들 위에 두어서 잘 보이게 하고, 절대로 차 밖으로 나가거나 움직여서는 안 된다...(중략)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두 오랜기간 축적된 한인들의 경험에서부터 비롯된 교훈들이다. 실제로 경찰에게 말하지 않고 손을 자켓 안쪽으로 가져갔다는 이유로 벌집이 될 정도로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 죽임을 당한 한인 교포 2세가 있었다. 내 친구는 경찰의 단속에 걸렸을 때, 부당하다며 이유를 말해달라고 항변했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무릎을 꿇린 채 뒤로 수갑이 채워져 압박을 당하는 일을 겪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갑자기 몇 대의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아세우고는 16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흑인 소년을 건장한 경찰 네 명이 잡아 바닥에 패대기치고 수갑을 채워 체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중략)

프레디 그레이는 2011년 이후 볼티모어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한 111번째 사례이다. 퍼거슨에서 비무장 상태의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에 의해 최소 6회의 사격을 받은 후 사망한 지 불과 일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존 크로포드라는 흑인 남성이 월마트에 BB총을 들고갔다가 경찰에 의해 총격을 받고 사망한 일도 있었다. 타미어 라이스라는 12세 흑인 소년 역시 BB총을 들고 있다가 클리블랜드 공원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 아카이 걸리라는 흑인 청년은 뉴욕 브룩클린에서 어두운 계단을 내려오다 경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 청년에게 왜 총격이 가해졌는지, 어느 경찰이 왜 처음 총을 쏘기 시작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발적’ 총격으로 숨진 것이다...(중략)

경찰로 인한 사망자수를 기록하는 KilledByPolice.net 에 따르면, 2014년에만 미국에서 모두 1,099명이 경찰에 의한 총격이나 폭력으로 사망하였다. 이는 2014년에 매일 3~4명의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참고로 2011년 기준으로 경찰에 의한 사망자수는 독일의 경우에 6명, 영국 2명, 호주 6명, 일본 0명이었다. 미국은 올해 들어서만 4월 2일까지 거의 300명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이 중 115건의 사례는 3월 한달동안에 발생하였다...(중략)

흑인들을 향한 경찰의 폭력, 낮은 교육 수준, 높은 실업률, 극심한 빈곤 상황은 서 볼티모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과를 갖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미국에서 전과가 있는 사람은 투표를 할 수 없다. 또한 전과가 있는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악화시켜온 것이 벌써 수십 년이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며 경찰차와 건물에 불을 지른 흑인 청년들을 비난한다. 폭력 충돌이 장려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2년 전에 볼티모어에서 300여명의 흑인들이 불평등 문제를 호소하며 평화적 행진을 하였을 때 왜 그들은 보도하지 않았는가...(후략)

3 흑인 대상 공권력 남용 사례

밑에 서술된 사건들은 비디오 등의 증거가 공개되거나 명확한 사실 관계가 어느 정도 밝혀진 사건들로, 여기 거론된 사건 말고도 수많은 흑인들이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3.1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

2012년 2월 26일, 플로리다 주 샌포드(Sanford) 시에서 17살 청소년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이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에게 살해 당한 사건. 자세한 내용은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 문서를 참고하자. 이 사건의 결과로 조지 짐머만에 대한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어났다. 무죄 판결에 관여했던 배심원 중 1명도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을 수정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3.2 에릭 가너 살인 사건

2014년 7월 17일, 뉴욕 시에서 백인 경찰이 길거리에서 불법 담배를 팔고 있던 에릭 가너를 제압하던 중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찰이 에릭 가너의 목을 조르는 도중 에릭 가너는 수차례 "I can't breathe."(숨을 쉴수가 없다) 라고 말했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했다. 'I can't breathe'는 'Hands up, don't shoot'과 함께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 운동을 상징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에릭 가너가 살해당했음을 알 수 있는 동영상 증거까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배심원단은 가해 경찰관에 대하여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영어 위키백과

3.3 마이클 브라운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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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4일, 미국의 퍼거슨 시위 당시 촬영된 "Hands up, don't shoot" 시위 구호(저작자: Jamelle Bouie)

2014년 8월 9일, 미주리 주 퍼거슨(Ferguson) 시에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Darren Wilson)은 차도 한복판을 걸어 내려오던 브라운과 그의 일행 1명에게 인도로 올라갈 것을 지시했다. 이후 벌어진 실랑이 끝에에 윌슨과 브라운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어 브라운이 도주하던 과정에서 윌슨이 브라운에게 발포하여 브라운의 몸에 6 발이 명중했고, 그 중 두 발은 머리에 맞았다. 당시 브라운은 비무장 상태였다. 사건 발생 직후 브라운이 “손을 들었으니 쏘지 말라.”(Hands up, don't shoot.)고 외쳤다고 하는 소문이 흑인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이는 언론을 통해서도 전해지게 되었고 Hands up, don't shoot은 사건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으며, 이후 "Hands up, don't shoot" 또는 짧게 "Hands up" 구호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주요 구호 중 하나가 되었다.

브라운의 시신은 네 시간 동안 사건 현장에 방치돼 있었고,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사건 현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곧 추모 활동, 행진을 시작했고 "Hands up, don't shoot" 구호를 외쳤다. 다음날, 추모 활동은 평화롭게 시작됐으나 저녁 촛불 시위가 끝나고 폭력 행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점 약탈과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시내 일부 지역을 봉쇄하려는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날 약 30여 명이 체포되었다. 8월 11일, 경찰은 거리에 모여있는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했고, 이후 돌멩이와 최루탄이 오가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시위 진압 경찰들이 장갑차를 타고 다니며 최루탄을 쐈다. 과거 1965년까지 존속했던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5] 시기 당시 인종차별 정책으로 악명 높았던 야간 통행 금지 조치가 50여 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상황은 주방위군이 출동하는 사태로 발전하기에 이르고, 퍼거슨 시 소요 사태는 8월 25이 돼서야 진정된다. 언론들은 이 번 퍼거슨 소요 사건에서 처럼, 9.11 이후 경찰이 군대와 동급의 장비를 갖추고 시위에 대응하는 현 상황에 대해 분석하는 보도를 내면서, 경찰이 군대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경찰은 마이클 브라운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정서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과잉 대응하므로서, 치안 불안 상황을 조기에 안정시키지 못하고 폭력 사태가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 그러면서도 가해 경찰의 안전을 위한다며 윌슨의 신원은 사건 발생 1주일 넘게 비밀에 부쳤다. 동시에 경찰은 8월 15일, 브라운이 사망하기 바로 전 절도를 저지르는 영상을 공개해, 안그래도 긴장이 고조된 분위기였던 당시 상황에 불을 붙였다. 법무부에서 이미 영상을 공개하지 말도록 호소한 것을 무시한 처사였다. 참고로 윌슨의 브라운 일행에 대한 대응은 브라운의 절도 사실과는 관련이 없었다.

2015년 3월 4일, 미국 법무부는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브라운이 사망 당시 “손을 들고" "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는 물적, 법의학적 증거와 목격자 증언 불충분을 근거로 사실로 확인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영어 위키백과 브라운을 쏜 가해 경찰관은 이후 세인트 루이스 군 대배심(grand jury)과 미국 법무부에 의해 정당방위를 인정받고 불기소 처분되었다. 이 같은 불기소 결정에 마이클 브라운의 유족 및 흑인민권운동 단체들은 정의롭지 못한 결정이라며 크게 반발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한편, 가해 경찰관 대런 윌슨은 불기소 처분되었지만 경찰직에서 물러났다.

가해 경찰관 대런 윌슨에 대한 불기소 결정과는 별개로, 미국 법무부는 퍼거슨 시의 공권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여 인종차별 행위가 만연해 있었음을 밝혀냈다. 밝혀진 인종차별 행위 중 하나는 흑인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범칙금을 부과하고 이를 통하여 재정을 충당한 것이다. 미국 법무부 조사 결과로 인하여 인종차별 행위를 저지른 퍼거슨 시의 공무원 여러 명이 사직하거나 해고되었다. 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미국 법무부는 퍼거슨 시 정부에 법원, 경찰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했으나 퍼거슨 시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퍼거슨 시 정부는 미국 법무부의 개혁안을 받아들였다. 퍼거슨 시 경찰서장도 그동안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결국 2015년 3월 11일에 사직했다. 임시 경찰서장이 8월에 직무정지 처분을 당한 후, 마이애미 주 출신 흑인 경찰인 델리시 모스(Delrish Moss)가 영입되어 정식으로 신임 경찰서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30여 년 동안 경찰 업무에 종사한 베테랑이기도 한 그는 퍼거슨 시 최초의 흑인 경찰서장이다.[6]

3.4 레이콴 맥도날드 살인 사건

2014년 10월 20일, 시카고에서 제이슨 밴 다이크(Jason Van Dyke)라는 백인 경찰이 17살인 레이콴 맥도날드(Laquan McDonald)를 총으로 16발을 쏘았다. 사건은 2014년에 일어났지만 이 사건을 찍은 비디오가 2015년 11월에 뒤늦게 공개되었는데, 미국에서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맥도날드는 당시 도로에서 4센티미터 짜리의 칼을 들고 차들을 훔치고 있었는데 경찰이 오자 경찰 타이어를 칼로 찌르기도 했다. 첫번째로 호출된 경찰관은 그를 무력으로 제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나중에 온 제이슨 벤 다이크는 그를 총으로 쏘고 그가 쓰러진 다음에도 그에게 총으로 계속 쏘기도 했다. 제이슨 벤 다이크는 그 전에도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적이 있었다.영어 위키백과 맥도날드 역시 수차례 청소년 범죄를 저질러 체포된 전력이 있었다. 물론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공권력 남용에는 정당성이 부여되지 못한다. 공권력 남용에 희생된 흑인의 범죄, 비행 전력을 문제삼는 것은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부정적인 보수층에서 구사하는 전형적인 공격 논리 중 하나이다.

3.5 태미어 라이스 사살 사건

2014년 11월 22일, 오하이오 주 카이어호거 군(Cuyahoga County)의 한 공원에서 12살 흑인 소년 태미어 라이스(Tamir Rice)가 경찰에게 사살당한 사건. 같은 공원에 있던 누군가가 911에 한 남자가 그내에 앉아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는 신고를 했다. 약 2분 가량 이어진 신고 전화에서 신고자는 통화가 끝나갈 때 쯤, "아마도 그 남자는 어린애인 거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지막 정보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2명의 경찰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출동 경찰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이 도착했을 때 라이스가 허리띠에 찬 총에 손을 가져갔다고 한다. 2명 중 한 경찰관이 라이스에게 곧바로 발포했는데, 발포 후에 아무도 라이스에게 응급조치를 실시하지 않았다. 라이스는 이튿날 사망했다. 사건 조사를 통해 라이스가 지녔던 권총은 에어소프트 건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측에서 사건 조사 결과 얻어진 증거들을 대배심(grand jury)에 제출했으나 대배심에서는 기소 하지 않을 것을 결정했다.영어 위키백과

3.6 월터 스콧 살인 사건

2015년 4월 4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노스 찰스턴(North Charleston) 시에서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브레이크 등이 꺼졌다는 이유로 백인 경찰에게 차를 멈추라는 명령을 받았다. 월터 스콧은 이혼한 부인과 자녀들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법적 문제가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신원조회를 받지 않으려고 도망가기 시작했는데 백인 경찰이 그를 쫓아가다 뒤에서 총을 7발 쏘아 그를 살해하였다. 처음에 그 경찰은 월터 스콧이 자신의 전기 충격기를 빼앗으려 해 신변의 위협을 느껴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장면의 목격자가 찍은 비디오에는 그와 전혀 상반되는 사실이 찍혀있었다. 그 비디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은 총을 빼앗으려 한 적도 없고 다만 도망치던 월터 스콧을 경찰이 7발의 총을 쏘아 살해하고, 쓰러진 월터 스콧의 시체 앞에 전기 충격기를 떨어뜨려 사건 현장을 조작하려 했다는 것이다. [1] 영어 위키백과

3.7 프레디 그레이 변사 사건

2015년 4월 19일, 25세의 프레디 그레이(Freddie Gray)가 메릴랜드볼티모어 시에 있는 외상 전문 치료 센터(trauma center)에서 죽었다. 사인은 척추 손상이었다. 일주일 전인 4월 12일, 그레이는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경찰 에 실려서 경찰서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당국은 그레이의 체포와 이송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파악하고 조사에 들어갔고, 그레이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6명을 기소하였다. 기소된 경찰관 중 2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1명은 재판 무효(mistrial)가 선언된 후에 2016년 재공판을 앞두고 있다. 나머지 기소자들에 대해서도 2016년 현재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이다.영어 위키백과 한편, 그레이의 사망 이후 볼티모어에서는 18일부터 항의 시위 활동이 벌어졌다. 몇몇 산발적인 폭력 행위가 있었으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 시위 참가자들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4월 25일부터 시위가 폭력 수위가 상승하였고 이어서 폭동이 발생하면서 퍼거슨 소요 사태와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볼티모어 시의 치안 불안정 상황은 다음달 5월 3일까지 이어졌다.영어 위키백과

3.8 2015년 텍사스 수영장 파티 사건

2015년 6월 5일, 텍사스 매키니(McKinney) 시에서 대부분 흑인인 청소년 100여 명이 한 gated community[7]에서 열린 수영장 파티에 난입하여 소란을 벌이고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12명의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였다. 대응 과정에서 한 백인 경찰이 현장에서 떠나라는 지시에 불응하는 십대 소녀를 밀치고, 비무장 상태임에도 그녀의 머리를 눌러 바닥에 붙들어매서 제압하는 등 불필요하게 폭력적으로 행동했으며, 이를 주위에 있던 흑인 청소년 2명이 말리려 하자 권총을 꺼내드는 것이 촬영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2] 영어 위키백과

3.9 산드라 블랜드 변사 사건

2015년 7월 13일, 텍사스 월러 군(Waller County)의 교도소에서 산드라 블랜드(Sandra Bland)라는 28세의 여성이 목매 죽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 경찰에 체포된지 사흘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블랜드는 운전 중에 차선 변경 신호를 넣지 않은 것을 이유로 경찰의 검문을 받다가 실랑이 끝에 공무원 폭행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이후 교도소 재소자 관리 부실 문제에 관하여 당국의 조사와 관련자 처벌이 있었다. 그를 체포했던 경찰은 사건 발생 후 교통 경찰 업무 수칙 위반으로 행정직으로 돌려졌으며 2016년 1월에는 대배심(grand jury)에 의해 위증죄로 기소당했다. 블랜드의 가족은 '불법 사망'(wrongful death) 소송을 연방 정부에 제기했다.영어 위키백과

4 다른 유색인종 미국인들과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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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민권운동과 다른 유색인종 미국인들과의 연대는 흑인민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1960년대부터 있어왔다. 흑인민권운동 단체 중 가장 급진적이었던 흑표당도 다른 유색인종 미국인들과 연대해왔다.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흑표당이 백인이나 다른 유색인종 미국인들을 적대시 한 것은 아니었다. 흑표당이 설정한 투쟁 대상은 정치, 경제 권력을 잡고 있는 백인들과 그들의 앞잡이인 경찰들과 인종차별주의자 백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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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개된 이후에도 역시 진보적 유색인종 미국인들과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Black Lives Matter 운동 역시 이들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흑인 다음으로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히스패닉계 미국인들과의 연대도 이루어지고 있다.

<흑인의 생명을 위한 편지(Letters For Black Lives)>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포함한 다른 유색인종 미국인들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보내는 지지 영상이 제작되었다.

5 All Lives Matter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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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Lives Matter에 대한 풍자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라는 구호는 들어보면 일단 맞는말이긴 한데, 가만히 따져보면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요점을 전혀 파악못한 (또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요점은 흑인들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 아니라 흑인의 생명이 경찰에게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은 자발적인 참여자들 간의 느슨한 조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개인이 저지르는 온라인상의 문제 발언이나 시위 현장에서의 일탈ㆍ위법 행위를 들어 운동 전체를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자체를 비난하거나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만일 있다면) 누군가 이 운동을 주도하는 중심인물급 인사가 폭력을 선동하거나 혐오와 범죄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는 상황이 와야지만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주장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 구호를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서 제기하는 흑인 인권문제의 '존재 사실 자체'를 말살하려는 행위(act of erasure)라고 비판하고 있다. "Black Lives Matter" 구호가 어째서 "흑인 생명'만' 소중하다"가 아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인터넷 기사가 있으니 참고하자.(영문 기사)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가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지 잘 풀어낸 만화도 있다.(영문 기사)(작가 Kris Straub의 원본 페이지. all houses matter)

6 2016년 댈러스 저격 사건 후의 논란

역대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지 한 달도 지나지도 않아 일어난 총격 사건인 데다, 경찰을 대상으로 한 총격 사건이니만큼 미국은 충격에 빠져있다. 이번 사건을 전후로 미국 각지에서 경찰에 대한 총격 사고가 연쇄적으로 발생하여# 이번 일이 단순 일회성 사고에 그치지 않고, 미국 전역에서 인종갈등이 다시 폭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사고 있다.

댈러스 저격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 번 사건을 계기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보수 성향의 언론과 백인 등은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구호를 내세우며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의 엄연한 현실을 물타기하거나, 몇몇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지지자들의 과격한 발언을 근거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전체를 싸잡아 폄하하고 있다. 사실 이들 반대 세력은 이번 총격 사건 전에 있었던 트레이본 마틴과 마이클 브라운 등의 사건 때부터 희생자들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으며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자체를 비난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에 대한 반대 여론 자체가 늘어났다기 보다는, 이미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거부감을 보이거나 반대하고 있던 보수층이, '노골적으로 (백인) 경찰을 목표로한 공격'이라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호재로 삼아 더욱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경찰 저격범이 흑인민권운동에 관심을 가졌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그가 가입하려고 했던 단체들은 흑인 무장과 흑인의 무장을 통한 정당방위를 강조하는 흑인 과격단체들이었다. 게다가 그의 개인적 전력 때문에 흑인 과격단체들로부터 조차도 가입을 거부당했다.(출처1, 출처2, 출처3) 따라서 이번 총격사건의 원인이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있다는 관점이나, 총격사건으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비판받아야 한다는 관점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층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폄하에 맞서 흑인과 진보 성향의 언론과 백인 등은,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으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이 싸잡아 폄하당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이번 사건은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과 총기 소지 제도의 문제점 등이 빚어낸 예상치 못한[8] 비극적 결과라고 하면서 맞서고 있다. 또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주장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 구호를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서 제기하는 흑인 인권문제의 '존재 사실 자체'를 말살하려는 행위(act of erasure)라고 비판하고 있다. "Black Lives Matter" 구호가 어째서 "흑인 생명'만' 소중하다"가 아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인터넷 기사가 있으니 참고하자.(영문 기사)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가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지 잘 풀어낸 만화도 있다.(영문 기사)(작가 Kris Straub의 원본 페이지. all houses matter)

국내에서는 제목으로 '영웅인가 악당인가'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올라와 이번 사건을 정당화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받았다.

7 정치 관련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공식적으로 어느 대선 후보도 지지하고 있지 않다. 대선 경선 때에 여러 후보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고 대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후보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운동 참가자들 대부분은 민주당이나 제3당이나 무당파 성향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적대적이다.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에 맞서 All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도널드 트럼프처럼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적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도 아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하고 수용할 만한 요구가 있으면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녀의 남편 빌 클린턴은 한 유세장에서 Black Lives Matter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대선 경선 후보들 중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그나마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가장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2015년에 사망한 에릭 가너의 딸이자 흑인 인권 운동가인 에리카 가너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9]

그럼에도 Black Lives Matter 지지자들이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연설을 중단시키고 그가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 더 얘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샌더스 본인도 Black Lives Matter 지지자인데 이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 사건 후 샌더스는 Black Lives Matter에 유감을 표하긴 했지만 Black Lives Matter에 대한 지지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이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대선 운동에는 호재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흑인의 투표율은 비교적 높은편인데 경합주에서 더욱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이렇게 휘발성 있는 이슈가 터져 흑인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쁠 게 없다. Black Lives Matter 지지자 상당수도 도널드 트럼프와는 달리 자신들과 대화하고자 하는 클린턴을 지지하는 분위기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외에 제3후보까지 포함한다면, 질 스테인 미국 녹색당 대선 후보가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가장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후보라고 할 수 있다. 공식적인 대선 후보에 지명되기 전부터 Black Lives Matter 시위에 참가했었고, 대선 후보로 지명된 후로도 Black Lives Matter 시위에 참가했다.

8 관련 문서

2014년 퍼거슨 소요
2016년 댈러스 저격 사건
마약과의 전쟁
마틴 오맬리
버니 샌더스
인종차별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
  1. Ten-Point Program 영어 위키백과
  2. We want an immediate end to POLICE BRUTALITY and MURDER of Black people.
  3. 당시 boy는 흑인에게 사용될 경우 단순히 소년을 뜻하는 게 아니라 모든 흑인을 가리키는 비하 명칭이었다. 100%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하인'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로 boy는 서양 뿐만이 아니라 인도, 한국 등에서도 하인, 급사 등을 호칭할 때 사용되었다. 당장 일제시대 문학을 찾아보자.
  4. 영어 위키백과
  5.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존재했던 주(州) 정부 또는 지방 정부의 인종 차별 법
  6. 출처
  7.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는 주거지역. 중상류층 거주 지역에서 많이 볼수 있다.
  8. 경찰, 그것도 백인 경찰만을 대상으로 한 저격 사건은 전례가 없었다.
  9.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