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ot Chili Pe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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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성기로 인식되던 시절의 라인업. 왼쪽부터 플리, 앤소니 키디스, 존 프루시안테, 채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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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기 이후 복귀 라인업. 좌측부터 채드, 앤서니, 플리 그리고 조시 클링호퍼.

1 개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대표 곡 Can't Stop

Red Hot Chili Peppers

미국의 훵크록(Funk Rock)펑크 록(Punk Rock)과는 다르다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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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줄여서 RHCP. 약자인 RHCP로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고춧가루 악단, 고체? 꼬쳬? 어쨌든 고추랑 여러모로 연관이 깊은 밴드(...)

2 이력

1983년 캘리포니아에서 보컬 앤소니 키디스와 플리와 힐렐 슬로박(הלל סלובק, Hillel Slovak)과 잭 아이언스가 처음 결성했다. 1984년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하였다. 이듬해인 1985년 당시 펑크계의 전설적인 뮤지션 조지 클린턴이 프로듀싱을 맡은 <Freaky Styley>로 인디씬에서 명성을 얻게된다.[1] 이후 1987년 3집 <The Uplift Mofo Party Plan>을 발표하고 투어를 하던 중 1988년 기타리스트 힐렐 슬로박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의 사망 직후 힐렐과 가장 친했던 멤버인 잭 아이언스가 힐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헤로인 금단증상으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후 [2] 남은 멤버인 앤소니와 플리는 공개 오디션을 개최하여 18살이었던 존 프루시안테를 (너무 어려서 영입할까 말까 고민했다고..) 드럼에 채드 스미스를 영입하고 1989년 4집 앨범 <Mother's Milk>를 낸다.

이 앨범으로 메이저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다가 1991년 마침내 포텐셜을 터트린 <Blood Sugar Sex Magik> 앨범으로 Funk Rock 분야의 정점에 올라선다. 외설적인 가사와 쫀득쫀득한 사운드가 결합된 이 앨범은 레드핫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알려지고 90년대 명반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단번에 메이저로 올라선 것에 회의를 느낀 존 프루시안테가 1992년 밴드에서 탈퇴해버린다. [3]

이후 밴드는 제인스 어딕션 출신의 데이브 나바로를 영입해 활동을 계속한다. 하지만 데이브 나바로와의 불화[4]로 밴드는 얼마가지 못하고 그의 탈퇴와 함께 다시 팀은 표류하게 된다. 밴드의 이러한 막장 상황을 보다 못한 보컬 앤소니 키디스는 마약에 절어있던 존 프루시안테에게 다시 기타를 잡도록 설득하고[5]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밴드는 1999년을 강타한 앨범인 <Californication>을 발매한다. 전작의 그루브한 면은 줄었지만, 좋은 넘버들이 많았던 이 앨범이 크게 히트하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선다.

이 시기 우드스탁 1999 공연에서 플리가 몇만명이나 되는 관중 앞에서 말 그대로 맨 몸에 베이스 하나 걸치고 연주한 것은 몹시 유명한 에피소드.[6] 이후로도 많은 히트를 기록했다. 사실 이말고도 여러 정신나간(...)퍼포먼스를 자주 했다. 벌거벗고 거기다 양말만 끼우고 공연한다던가(...) 역시 고추밴드(...) 그 유명한 비틀즈의 Abbey Road를 패러디한 앨범 자켓에서도 나타난다. 머리에 대형 전구를 뒤집어 써 혹여 전구가 떨어질까 조심조심 공연했던 1994년 우드스탁 공연도 인상적이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By The Way'와 'Stadium Arcadium'이 잇달아 흥행하면서 상업적으로 최고의 시기를 맞이했다. 특히 'Stadium Arcadium' 앨범은 2006년 그래미 상에서 5개의 상을 RHCP에게 선사했다.

2008년에는 2년간의 휴식기(Hiatus)를 선언하면서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의 재충전을 했다. 앤서니는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플리는 음악 공부를 하면서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와 함께 아톰 포 피스(Atom For Peace)[7]라는 실험적인 밴드를 결성하여 같이 활동했다.[8] 존은 틈틈히 해왔던 솔로 활동을 계속 하였다. 채드 역시 "치킨풋"이라는 하드 록
성향의 밴드를 결성하는 등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2009년 12월 존 프루시안테는 두 번째 탈퇴 선언을 했다. 이 때 존은 "이번의 탈퇴는 밴드 내의 문제가 있어 생긴 것이 아니다. 멤버들은 나를 지지해줬고 이해해줬다. 하지만 나는 이제 (밴드의 지향점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말하면서 탈퇴 사유를 말했다.

2010년 가을에 복귀해 라이브 공연을 돌며 다음 앨범을 준비중이다. 다만 존 프루시안테가 탈퇴하여 기타리스트는 이전 투어때 백킹 기타로 참여한 1979년생의 조시 클링호퍼(Josh Klinghoffer)[9]가 대신했다.

그러나 확실히 프루시안테가 빠진 RHCP는 뭔가가 빠졌다는 느낌인데, 앤소니의 독특한 보컬이나 방방 뛰는 플리에 비해 존재감이 없는 것 같지만 RHCP의 대표적인 곡들의 상징적인 특징은 대부분 기타 리프였다. 이 기타리프를 만들고 연주했던 존의 부재는 단순히 RHCP에서 오래 활동했던 기타리스트의 부재 그 이상의 의미로서 조시 클링호퍼가 이 부재를 메워주지 못하면서 무대가 확실하게 변했다. 위 언급한 기타리프도 그렇지만 레드핫의 또다른 전매특허가 바로 앤소니의 보컬위에 얹어주는 프루시안테의 코러스인데 기타야 스타일 문제라 쳐도 이건 어쩔 수가 없기 때문. [10] 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간간히 보이는 골수팬들의 반응인 '조쉬는 좋은 기타리스트다. 하지만 그는 존이 아니다.' 라는 말은 유명하다.

다만 조쉬라는 기타리스트를 딱 때놓고 봤을 때는 아직까지 음악성에서 레드핫과의 융합이 덜 되었다 정도일 뿐이지 실력이 떨어져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어느 밴드가 되었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던 멤버가 교체되면 이전 멤버가 남겨놓은 흔적과 밴드의 성향이 새로운 멤버와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조쉬 클링호퍼의 상징(...)이 되어버린 삑살 보이스 역시 본인이 전혀 개의치 않고 내지르는 패기를 과시하는 덕에 이젠 뭐 그러려니 하는 정도의 수준이고... 실력? 그는 사방 팔방으로 세션활동을 다니며 드럼과 베이스, 키보드연주를 해 왔으며 2자리 수의 악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다른 방향의 사기캐다. 특히 사실상 그의 데뷔앨범인 레드핫10집을 들어보면 녹아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밴드 음악 성향 자체를 뒤집어놨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

201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하지만 행사에 데이브 나바로와 존 프루시안테가 불참해서 아쉬움을 남겼다. 나바로야 플리-앤서니와 안 좋게 깨졌으니 이해가 되지만 존의 경우 멤버들의 초청도 모두 거절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올드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14년 2월 2일 슈퍼볼 공연에서 브루노 마스와 함께 공연했......으나 공연을 핸드싱크로 진행해 논란이 있었다. 결국 플리가 사과를 하며 사건 끝.

2016년 7월 지산밸리록페스티벌 1차 라인업이 공개되면서 내한이 확정되었다! 공식 사이트

2016년 6월 17일 새 앨범 The Getaway가 발매되었다.

3 특징

훵크 락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밴드지만 비단 훵크에 국한되지 않고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에도 기반을 두고 있는 밴드다. 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음악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해왔다.

덧붙여 前기타리스트였던 존은 BBC에서 '지난 30년간의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었었다. 플리도 베이시스트 중에선 '신' 취급 받을만한 뛰어난 연주자이다. 드러머 채드 스미스도 마찬가지 오디션에서 플리에 베이스를 따라가다 못해 압도하는 드럼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들의 곡은 슬랩을 연습하고 싶은 베이시스트들에게 자주 카피되기도 한다.

이들이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데, 수많은 밴드들이 직ㆍ간접적으로 스타일이나 가사에서 언급할 정도다. 특히 플리는 거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며, 예로 맥시멈 더 호르몬의 베이시스트 우에하라는 거의 숭배하고 있다. 가사에서도 플리바보플리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묘사될 정도면...

흑인 음악 외에도 갱 오브 포미니트맨 같은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플리가 가지고 있는 60 재즈베이스의 브릿지 위에도 미니트맨의 보컬 얼굴이 프린팅 되어 있다.

4 기타

특이한 점은 본래 영화 제작자들이 그들이 부른 노래를 OST로 사용할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는 엉터리 글이 버젓이 이 항목에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당장 imdb만 찾아봐도 참여한 사운드트랙 엄청 많고, 대표적으로 콘헤드의 Soul to squeeze와, The fighter의 Strip my mind가 있다. 데스노트는 2006년 영화, 콘헤드는 1993년(...) 하여튼 데스노트가 영화화 되었을 적에 쇼브라더스에서 의뢰를 하자, 만화 데스노트의 내용을 대충 살피고는 허락했다.



극장판 비비스와 벗헤드-미국을 먹어치우다 뮤직비디오에 애니메이션으로 본인들이 나온다. 이 노래는 이 애니에서 나오는데 비비스와 벗헤드가 라스베가스 도박장에 가서 춤추는 장면에서 나온다.

장발일 때의 존은 심하게 예수스러워서 한미일 공통으로 관련 별명이 있다. 심지어 예수 컨셉으로 사진을 찍은적도 있다. 예로 유튜브 노래 영상에는 꼭 예수쟁이들이 한둘씩은 나타나 이런 사탄의 노래 말고 예수를 찾으라는 둥, 댓글을 달고 하는데. 그에 대한 포스 넘치는 베댓 한마디. '너의 프루시안테에 대한 사랑은 잘 알겠지만, 조용히 노래 좀 들을 수 있을까?'(...)

들어볼만한 존의 솔로곡으로는 긴 기타리프를 좋아했다던 요리사 친구에게 바치는 장장 10분 30여초 간의 절절한 기타 솔로곡 Wayne이 있다.

드러머인 채드 스미스는 코미디 배우인 윌 페럴과 매우 닮았다. 둘이 같이 출연한 토크쇼 영상도 있다!

다재다능한 플리는 영화에도 자주 출연 하곤 하였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쳐'와 코엔 형제의 '빅 레보스키' 등에 출연하였다.

2015년 중 새 앨범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플리가 로키 산맥에서 스키를 타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연기되었다. (...) 해당 앨범의 발매일은 그 다음 해 6월 17일로 결정되었다.

사실 사탄의 밴드라 하더라. 물론......

5 멤버

5.1 현재 멤버

  • 앤서니 키디스 (Anthony Kiedis) – 리드 보컬
  • 플리 (Michael "Flea" Balzary) – 베이스, 트럼펫, 보조 보컬
  • 채드 스미스 (Chad Smith) – 드럼, 퍼커션
  • 조시 클링호퍼 (Josh Klinghoffer) – 기타, 키보드, 보조 보컬

5.2 과거 멤버

  • 힐렐 슬로박" (Hillel Slovak) - 기타
  • 클리프 마티네스" (Cliff Martinez) - 드럼 [11]
  • 잭 아이언스" (Jack Irons) - 드럼
  • 존 프루시안테" (John Frusciante) - 기타, 보조 보컬
  • "데이브 나바로" (Dave Navarro) - 기타

6 발매 앨범

  • The Red Hot Chili Peppers (1984)
  • Freaky Styley (1985)
  • The Uplift Mofo Party Plan (1987)
  • Mother's Milk (1989)
  • Blood Sugar Sex Magik (1991)
  • One Hot Minute (1995)
  • Californication (1999)
  • By The Way (2002)
  • Stadium Arcadium (2006)
  • I'm With You (2011)
  • The Getaway (2016)
  1. 하지만 멤버들은 너무 펑키한 사운드로만 채워진 앨범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2. 중증의 헤로인 중독자였던 다른 멤버들 또한 힐렐의 사망이후 충격을 받아 5년동안 마약을 끊었다고 한다.영영 끊었으면 얼마나 좋아
  3. 일본에서의 콘서트 직후 바로 사라졌다. 프루시안테는 공연 직후 자주 앤서니에게 "우린 너무 유명해졌어. 난 이 정도의 명성은 원하지 않았다고. 나는 2년전에 (그러니까 메이저에서 주목받기 이전의 시절) 클럽 같은 곳에서 연주했던 시절이 좋았어." 라고 따졌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앤소니와 폴리에게 형들이 원하는 밴드의 미래가 이런거였냐며 따진적도 많았다고...
  4. 빠듯한 투어일정을 견디지 못했다는설, 양말꽂는 미친 퍼포먼스를 싫어했다는설(첫공연이 전구공연이였는데 나바로의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뒤 2번째 공연에 여자친구의 친척이 30명가까이왔는데 그게 하필 양말공연이였다고)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나바로의 헤로인 중독과 그와 밴드 사이의 음악견해 차이 때문일것으로 추정된다. 밴드의 전 기타리스트였던 존 프루시안테가 당시 유행하던 메탈의 날카로운 톤을 배제하고 보다 감정적인 톤과 즉흥연주를 특기로 하는 기타리스트였다면 (Mother's Milk앨범에 수록된 Stone Cold Bush라는 곡을 녹음하던 중 프로듀서가 메탈의 날카로운 톤을 요구하자 빡쳐서 녹음실을 박차고 나와 잠적한 일화도 있다.) 데이빗 나바로는 메탈의 날카롭고 빈틈없는 기타톤에 다양한 형식의 연주를 접목시키는 것을 특기로 하는 기타리스트이기 때문이다.
  5. 마약산다고 기타도 다 팔아치우고 얼굴도 엉망이 돼서 성형까지 시키고(정확히 말하자면 얼굴 통째로 뜯어고친게 아니고, 작살난 턱 교정이랑 부러진 코 수술.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94년도의 존 프루시안테 단독 인터뷰를 보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있다.) 앤써니가 펜더사의 62스트랫을 사주었다
  6. 우드스탁'99 DVD에 수록된 인터뷰 : "우리가... (홀딱) 벗고 나와서 연주하면 이목이 집중되고 그럴까요?" "글쎄요? 지금 여기에도 (상반신을) 벗은 사람이 꽤 많으니까 그렇게 주의를 끌진 못할 것 같은데요." 이 인터뷰 후 플리가 홀딱 벗고 나와서 Fire를 연주하는 영상이 이어진다. 오오 플리신..
  7. 톰 요크의 솔로앨범인 The Eraser에 수록된 동명의 곡에서 따왔다.
  8. 후에 2013년엔 AMOK라는 앨범을 출시했다. 전반적으로 일렉트로니카가 주가 되는 앨범이다. 라디오헤드 후기 음악이 취향에 맞는다만 추천.
  9. 레드핫의 투어에도 함께하였으며 존 프루시안테의 솔로 앨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10. 실제로 투어에 세션으로 참가했을 당시에도 삑살을 내기도 했으며 공연 중간중간 팬서비스 차원에서 노래를 할때도 엄청난 삑살이 난무한다.
  11. 참고로, 이 사람은 파 크라이 4의 OST를 만든, 현재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