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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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성룡(成龍, 청룽), Jackie Chan
본명방사룡(房仕龍, 팡스룽)
출생1954년 4월 7일, 영국홍콩
신체174cm
학력홍콩 공연예술학교 드라마학과
데뷔1962년 영화 '대소황천패'
가족배우자 임봉교, 아들 방조명
딸 우줘린(영화배우 우치리 사이의 사생아)
재키챈닷컴, 트위터

1 개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성룡
JACKIE CHAN
분야영화
입성날짜2002년 10월 4일
위치6819 Hollywood Blvd.
액션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1]
액션 코미디의 1인자.

홍콩 출신의 액션 영화 배우. 표준중국어로는 청룽, 광동어로는 싱룽, 서양에서는 Jackie Chan이라고 부른다. 한국 기자들은 신해혁명 이후의 중국인은 모두 표준중국어 발음을 따라 쓰도록 되어 있는 외래어 표기법 때문에 '청룽'이라고 표기하는데, 성룡 본인은 그냥 재키 챈으로 불러달라든지 아니면 한국 발음인 성룡으로 써달라고 한 바 있다. 성룡을 성룡이라 부르지 못하고 서양식 성 Chan은 후술할 진항생에서 陳씨의 광동어 발음. 재미있는 사실은 버파잭키 브라이언트의 초기 이름이 jackie였다.

다른 액션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상당히 출중한 편이다. 슬픔에 괴로워하는 연기에 특히나 강한데, 그런 성룡의 연기력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영화가 홍금보가 바보 형으로, 성룡이 경찰 동생으로 나오는 《용적심》과, 부하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빠진 진국영 반장 역을 맡았던 《뉴 폴리스 스토리》이다. 그 외에도, 《러시아워 3》의 마지막 에펠탑 결투 등, 눈물을 머금고 소리치는 장면은 성룡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코믹 무술 이미지가 커서인지, 진지하게 나온 영화들은 해외 흥행이 신통치 않다. 《중안조(1993)》라든지, 《뉴 폴리스 스토리》, 《신주쿠 사건》 같은 영화들은 평은 괜찮을지언정, 해외 흥행은 참혹했다. 홍콩 흥행도 마찬가지로 그다지 안 좋았다. 《중안조》로 대만 금마장 영화제 및 홍콩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거와 대조적이다.

물론 액션배우인만큼 전문적인 파이터나 무술가들만큼 뛰어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무술 실력이 제법 강하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워낙 이미지가 코믹하다보니 되려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뛰어난 운동신경과 무술실력이 있기에 액션배우로 이렇게까지 활약하는게 가능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

본명은 천강성(陳港生, 한국어로 진항생, 광둥어로 찬공쌍)[2]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방사룡(房仕龍)'이었다고 한다. 아버지[3]국민당군스파이(!)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명을 숨기고 '진' 씨로 가장했다고[4]. 아들은 공산당에 협조적인데 아이러니 그래서 성룡의 아들은 후명인 '방조명'[5]으로 활동하고 있다. 90년대 대한민국에서 추석, 설날 명절 때마다 만나는 반가운 스타이기도 했다. 명절 특선영화 단골손님이었기 때문.[6] 같은 사정의 외국인 배우로는 미스터 빈을 연기한 로언 앳킨슨이 있지만, 이쪽은 성룡과 달리 배우보다 캐릭터 자체가 더 유명한 편. 2000년대 와서는 많이 잊히고 있다.

소림사에서 영화를 찍기도 해서 흔히 불교도로 잘못 알고들 있지만, 사실 본인은 정작 무종교이다.[7] 진짜배기 불교도는 이연걸로 정확히는 티베트 불교 신자인데 이연걸은 베이징만주 출신이고, 이들 지역은 몽골인의 영향으로 티베트 불교세가 절대 강세이다. 청나라만주족 황족들도 몽골계 종족답게 티베트 불교를 믿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누렸고, 실제로 80년대 일본에서는 성룡 인기의 영향으로 과감한 스턴트 액션 영화가 여려편 만들어졌다. 사나다 히로유키 같은 배우도 이 붐에 편승해 무술신과 스턴트신을 직접 해내는 영화에 자주 출연했다. 일본에 방문도 자주 했으며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성룡에게 상당한 친숙함을 느낀다.

재밌는 것은 성룡은 한국에서 표준중국어(보통화)를 쓰지만(한국 영상) 일본에서는 광동어(홍콩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일본 영상) 이건 중국 영화의 더빙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홍콩 영화가 개봉될 때 한국에서는 주로 보통화 버전으로, 일본에서는 광동어 버전으로 개봉했기 때문. 그래서 양국에서 각각 익숙한 이미지의 언어로 말하는듯 하다.

2 일대기

2.1 어린 시절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보낸 인물로, 집안이 가난해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해 문맹이 되었고, 그로 인해 성룡은 대본을 읽지 못하여 동료가 대신 읽어주는 대사를 외워 연기를 하는 등 많은 고난을 겪었다. 80년대 성룡이 대스타가 된 이후에도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자신은 사인회에서 팬의 이름을 써주지 못하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고백하였다. 부인인 임봉교는 그에게 대본을 읽어주다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후에 문맹에서 벗어났고, 영어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트위터도 하겠지.

이런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 용의 흔적: 성룡과 그의 잊혀진 가족이 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인데 웬만한 성룡 팬들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모른다.

부모님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모두 돈을 벌러 떠나고 혼자 남겨진 성룡은 우점원(于占元) 희극학교(경극 학교)에 들어가 10년 동안 연기와 무술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 훈련이 어찌나 혹독했던지 성룡은 고문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패왕별희》를 보면 경극학교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 수 있다. 구타는 기본이고, 고문에 가까운 벌도 많다. 희극학교 4년 선배가 홍금보고 4년 후배가 원표로, 이들은 훗날 '칠소복'으로 이름을 떨친다. 1988년에 나온 유가위가 감독하고 홍금보가 주연한 영화 《칠소복》이 바로 이 시절을 그린 영화이다. 우점원(于占元)의 이름 끝 글자 원(元)을 성으로 삼아 이름을 만들었고 홍금보는 '원룡' 성룡은 '원루'란 이름으로 이 시절 불리었으나 이후 독립하면서 각자의 이름을 만들게 된다. 홍금보와 성룡과 달리 원표, 원덕, 원태 등은 그 시절 그대로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경극 학교를 졸업한 성룡은 홍콩과 한국을 오고가면서 여러 무협 영화들에서 엑스트라를 연기하면서 연기자의 길로 나서게 된다. 이때 성룡은 그야말로 온갖 엑스트라 및 조연을 맡았는데, 심지어 1974년에는 에로틱 영화인 《금병매》에서 조연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이때 출연한 《여경찰(女警察:영어 제목은 Police Woman)》 같은 경우는 훗날 국내에서 《성룡의 영 타이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는데, 제목도 그렇고 마치 성룡이 주연인양 나와서 멋모르고 빌려보던 이들이 성룡이 얼굴에 점을 붙이고 찌질이 악당 졸개로 나와 주인공인 택시기사(배우는 대만 출신 배우인 친샹린.)에게 맞아 뻗는 모습에 놀란 추억을 겪기도 했다. [8]

성룡이 찌질이 악당 졸개로 나오는 《성룡의 영 타이거》(1973) 국내 비디오 표지. 엉뚱한 사진을 박아놓아 이것만 보면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나마 엑스트라치곤 좀 비중이 높긴 하지만, 주인공에게 맞다가 애원하며 빌고 주인공이 그냥 가자 뒤에서 비겁하게 반격하다가 맞아 나가떨어지며 퇴장한다. 물론 국내외 포스터들이 유명 배우가 이름 없던 시절에 나온 영화도 주연인 양 크게 쓰는 게 흔하기에 이것도 같은 경우이긴 하지만.
RumbleInHongKong_DVDcover.jpg
미국발매판 DVD도 성룡을 주연인양 세우고 전혀 다른 사진을 갖다붙였으니 다를 거 없다....

영 타이거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왼쪽 턱 근처에 큼직한 점을 붙이고 나오는데 정말 악당 그 자체로서 나와 여자도 가차 없이 죽인다.양성평등 밑 사진은 주인공에게 맞아 뻗고 빌면서 애원하던 장면.

2.2 스턴트 맨 시절

이후 경극 학교 선배인 홍금보의 추천으로, 이소룡 영화 《정무문》과 《용쟁호투》에서 스턴트맨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정무문》에서 성룡은 이소룡에게 맞고 날아가 죽는 일본인 관장의 스턴트를 했었는데, 당시 한 사람이 장비 없이 날아간 거리로는 최고였고 《용쟁호투》에서는 이소룡에게 당하는 장면에서는 이소룡의 실수로 실제로 너무 세게 맞아서 부상까지 입자 이소룡이 사과의 의미로 다음 영화에서는 성룡을 꼭 조연이라도 영화에 출연 시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을 정도로 성룡은 뛰어난 실력의 스턴트맨으로 유명해지게 된다. 그러나 《용쟁호투》를 완성한 직후 그만 이소룡이 사망했다. 안습.

다만 성룡 본인은 이때 이소룡에게 진심으로 감동받았는지 이후에도 한번씩 이 일화를 회상하곤 한다. 이후 인터뷰 자리나 사석에서 맞은 부위가 하필이면 코라서 지금 코가 이렇게 크다며 본인도 우스갯소리로 그때의 일을 가끔씩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우스개소리이다. 성룡의, 코는 이후 《소림목인항》, 《신 정무문》 등에서 봐도 그 당시와 별 변함이 없다. 영화촬영 중 코뼈가 몇 번 부러졌는데, 이로 인해 치료를 받다보니 커진 것이다.)

결국, 1975년에는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고, 이 해 《花飛滿城春(화비만성춘)》이라는 에로물에 출연하여 베드신 연기를 한 흑역사도 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스로 배우로서 성공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일을 접고 부모님이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가게 된다. 그러나 1년이 채 안 되어, 이소룡의 홍콩 영화 데뷔작인 《당산대형》과 《정무문》의 감독 나유(羅維, 로웨이) 감독이 《정무문》 촬영 중, 이소룡과 불화가 생긴 이래로 이소룡을 대체할 만한 배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턴트맨이 아닌 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홍콩으로 돌아온다. 오디션에 합격한 성룡은[9] 나유 감독과 함께 《신정무문》부터 전형적인 이소룡식 비장함과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작품에 줄기차게 출연하기 시작한다. 1977년작, 《풍우쌍류성》(한국 제목 : 유성검의 대결) 때부터는 쌍꺼풀 수술을 하여 외모도 배우로서 손색이 없이 호남형으로 바뀐다.[10] 성룡이란 예명도 새끼 용(소룡)을 뛰어넘는 어른 용(성룡)이 되라는 뜻으로 나유가 지어줬다. 하지만 당시 쿵후영화는 그야말로 '마구 찍어낸 공장제 쌈마이 영화'였고, 특히 나유와 노예계약에 가까운 조건으로 고만고만한 영화를 찍던 성룡은 회의를 품게 되고 점차 나유와 사이가 벌어진다.

파일:Attachment/성룡/신정무문성룡.jpg
쌍꺼풀 수술 전 《신정무문》에서의 성룡 추성훈 양동근 누구세요????

파일:Attachment/성룡/유성검의대결성룡.jpg
쌍꺼풀 수술 후 《풍우쌍류성(유성검의 대결)》에서의 달라진 모습의 성룡[11]

2.3 코믹 무술 영화로 성공

그러다가 성룡의 커리어를 역전시킨 일이 발생한다. 1978년 당시 액션연기 뿐만 아니라 서구형 외모에 개구장이 + 훈남 인상으로 홍콩에서 대스타였던 배우 부성이[12] 스케줄 문제로 원화평 감독의 《사형도수》(1978) 주연에서 하차하자, 나유가 원화평과 오사원에 대한 의리로 사원영화사에 잠시 성룡을 대여해 준 것(…). 《사형도수》(1978)가 히트하자 곧바로 제작된 《취권》(1978)에서 원화평은 성룡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였고, 《취권》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성룡의 인지도는 수직상승하게 된다.[13]

《취권》이 성공하자 나유와 계속 영화를 찍다간 평생 소모품으로 살다 끝나리란 절망감에 빠진 성룡은 야반도주를 하려다가, 나유 부인에게 들키게 된다. 자초지종을 들은 나유 부인은 '그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 성룡에게 물었고, 성룡은 이에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나유는 성룡의 요청을 흔쾌히 허락했고, 성룡의 첫 감독작인 《소권괴초》(1979)가 제작된다. 《소권괴초》에서 그는 《취권》과 마찬가지로 코믹함을 가미한 액션을 내세웠고, 《소권괴초》도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린다.

그러나 여기서 성룡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던 어릴 때여서 그랬는지 실수를 한다. 나유 감독과의 계약도 있는데, 다른 영화사와 계약서에도 서명해버린 것이다. 몰랐다고는 해도 잘못이긴 했다. 이에 두 영화사는 성룡을 사이에 놓고 대립했고, 관련된 삼합회까지 개입하면서 일이 커진다. 나유 감독은 이에 성룡을 데리고 외국으로 도망가 버린다. 이것이 이른바 “성룡납치사건”으로, 당시 홍콩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이때 삼합회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고, 홍콩의 액션배우, 무술배우 등도 눈치를 보던 왕우(王羽)가 개입하여 이를 해결해준다.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성룡은 왕우가 제작하거나 관계한 영화들에 배역은 거의 상관 않고 출연해주는 것으로 답례를 했는데, 《미니 특공대》(대복성이란 제목으로 개봉하고 비디오 출시, 더빙 방영했다.), 《화소도》 등이 그 예이다.

덕분에 성룡은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하게 되고, 여기서 내놓은 첫 작품이 《사제출마》(1980)다. 이처럼 취권으로 뜨기 전 성룡은 진지한 역 쪽이었다. 코믹 이미지로 성공한 다음에도 《화소도》(1990), 《중안조》(1993), 《신주쿠 사건》 (2009) 등 꾸준하게 진지한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사제출마》는 이전까지의 홍콩영화의 액션연출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며, 홍콩의 영화흥행기록도 경신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 영화에 등장한 무시무시한 악역은 바로 우리나라의 합기도 원로 황인식이다. 이에 성룡은 이소룡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품게 되고, 때마침 골든하베스트사에서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성룡은 《배틀 크리크》(1980)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성룡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었고, 워낙에 완벽주의와 자유로운 스타일을 중시하는 그에게 헐리웃의 액션 영화의 제작 과정 또한 너무나도 답답한 방식이라는 것 등의 여러 이유로, 첫 번째 할리우드 진출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심지어 미국 버라이어티 지로부터 아시아의 듣보잡 D급 배우라며 비웃는 기사로 매도당한 적도 있다. 성룡이 홍콩으로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영화는 《프로텍터》 (1984)라는 작품으로 홍콩 자본으로 만들고, 미국인 감독 제임스 글릭켄하우스[14]가 감독한 작품이다. 참고로 성룡은 역동적이지 못한 액션에 선정적인 장면까지 들어간 미국 편집판을 보고 경악하고[15] 엔딩이나 주요 액션 장면들을 재촬영하고, 자신이 직접 편집한 홍콩판 버전을 따로 만들어서 개봉했다. 이 재편집판 평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다.

1차 할리우드 진출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성룡은 홍금보 감독의 《오복성》(1983)에 출연하면서 홍콩으로 복귀, 골든하베스트의 흥행 삼총사 가화삼보의 중심이 되어 성공적으로 재기하였고 《프로젝트A》(1984)부터는 스스로 감독, 주연을 맡아서 할리우드 체류(滯留) 시절 주변에서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다며 권하기에 접했던 버스터 키튼의 영향을 받은, 과격한 아크로바틱 묘기와 좋은 유머 감각을 결합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1996년, 《홍번구》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할리우드에도 성공적으로 재진출하였다. 버라이어티 지는 12년 전의 그 D급 배우가 이젠 A급으로 할리우드에 왔다고 보도하였다. 다만, 홍콩에서 만든 영화에서는 악동부터 열혈남아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2차 할리우드 진출 작품들은 캐릭터가 '웃기는 동양인 꼰대'로 굳어버렸다. 근래 들어서 나이 탓인지 젊을 때의 그 아크로바틱함이 줄어들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력은 좋다.

전성기 시절 성룡은 홍콩 영화계에서도 감독이 함부로 터치 못하는 배우 중 하나일 정도로 파워가 강했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주의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성룡이 출연한 영화의 도입부분에 成龍作品이란 자막이 뜨면, 감독들이 성룡과의 불화나 여러 사정으로 도중 하차해 성룡이 이어서 연출한 작품이라 보면 된다.한 장면을 무려 1,000번을 반복하여 찍은 적도 있다. 《폴리스 스토리 3》를 찍을 당시 갈등이 많아서, 당계레 감독은 당시 인터뷰로 영화 3편을 찍으며 받는 스트레스를 이거 하나로 받는다고 투덜거렸을 정도이다.

성룡과 감독간의 트러블은 꾸준히 있었는데, 《중안조》를 찍을 때는 황지강(黃志強) 감독과 의견충돌이 있었고, 《취권2》를 찍을 때는 무술 연출에 관해 의견이 갈려 유가량(劉家良) 감독과 대놓고 싸웠다. 유가량은 홍콩 유명 무술가로 아버지인 유심(劉湛)은 황비홍의 제자였던 임세영(林世榮)의 제자였다고 한다. 거기에 의형제인 유가휘(劉家輝, 본명 승금희(冼錦熙))와 유가영(劉家榮)도 무술가로 유명하다. 성룡은 촬영 중 유가량 감독과 싸웠고 감독이 빡쳐서 초반부 격투 장면만 완성시키고 이후 메가폰을 놔버렸다고 한다. 유가량은 이 《취권2》의 흥행에 고춧가루를 뿌리고자 유덕화를 기용해 《취권3》를 찍어 동시기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되레 《취권3》가 발렸다.

성룡의 썬더볼트 촬영 당시에도 진가상 감독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는데 진가상이 기획한 시나리오를 성룡이 개입해서 시나리오를 수정했고 기껏 진가상 감독을 기용하고서 정작 레이싱 장면에는 진훈기와 당계레를 영입해서 촬영했고 무술장면은 홍금보 감독이 연출시키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작(多作)에 대충 찍어대는 왕정 감독과 완벽주의의 성룡과는 애초에 상성이 안 맞을 수밖에…. 게다가 《성룡의 시티헌터》로 만난 이들의 결과가 가히 안습이라…. 왕정은 《성룡의 시티헌터》 이후로 소심한(?) 복수를 하게 되는데, 이연걸 주연의 《탈출(1995)》이란 영화에서 장학우가 맡은 역할인 룡위란 인물의 기믹을 외모는 이소룡 짝퉁이지만, 성격이나 사생활(주색잡기와 실제 무술실력이 별로라는 설정), 그리고 아버지와 매니저 진자강까지 모습을 흡사하게 설정해, 누가 봐도 성룡임을 알게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깠다. 한술 더 떠서 아예 스턴트를 직접 한다고 구라치고 대역을 쓰는 장면까지 있다. 그러나 이 룡위가 극중 후반에 아버지가 구타당하는걸 보고 분노하여 멋지게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는 장면을 집어넣은 걸 보면 소송 방지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서로 감정이 안 좋다고 해도, 상관도 없는 성룡 주변인들까지 희화화시킨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성룡은 실베스타 스탤론만큼이나 각본 수정과 제작 과정에 개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근데 재미있게도 둘이 람보 4에 같이 나올 뻔 했다. 하지만 역시나 둘은 각본 문제로 엄청나게 다투고, 결국 성룡이 나오길 거부했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성룡이 악당으로 나와서 람보 덕에 갱생하여 돕는다는 줄거리인데, 성룡은 이 각본을 보고 악역 아시아인이 백인 덕분에 갱생한다니 이건 아시아에 대한 모독이 아니냐며 격분했다고. 그런데 어차피 각본을 바꿨어도, 각본이나 여러 제작을 두고 서로 굉장히 충돌했으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늘 과격한 스턴트 액션을 선보였기 때문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온몸에 부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고 몇 번 죽을 뻔했다고 한다. 《프로젝트A》 (1984)부터 성룡은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계탑에서 떨어지는 스턴트를 했고 (NG모음을 보면 머리부터 거꾸로 낙하하는 장면이 보인다) 《폴리스 스토리》(1985) 한 편 찍으며 척추 골절, 무릎 부상, 고관절 탈구의 부상을 입었다. 1986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용형호제》를 촬영하던 도중에는 성벽에서 뛰어서 건너가는 장면에서 잡았던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머리부터 추락,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성룡은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었고, 머리를 35바늘이나 꿰매고 큰 흉터가 생겼다 한다. 이 사고 장면은 《용형호제》의 엔딩 크레딧에서 여과 없이 나온다.[16] 부상을 치료한 후 성룡은 영화의 나머지 부분을 촬영하여 영화를 완성시켰는데, 사실 성룡은 데뷔 이후부터 긴 머리를 고수해오던 편이었기 때문에 《용형호제》 개봉 시 도입부의 성룡의 스포츠머리를 보고, 성룡이 머리를 깎았다며 놀라는 관객들이 많았다. 이후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회 사장은 성룡의 머리모양을 장발로 유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예전처럼 장발보다는 단정한 커트 스타일을 유지 중. 1994년, 《홍번구》를 촬영할 때 다리에서 호버크래프트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착지를 잘못해, 오른쪽 발목이 90도로 꺾이며 골절됐다. 깁스 자국을 가려야 했기에 운동화모양을 본떠서 만든 특수 양말을 신고 촬영을 마쳤다. 이 역시 엔딩 크레딧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야말로 불사신!

성룡의 영화에는 스턴트 중 사고, NG 등을 총집해서 올리는 전통이 있다. (이는 서구권에서 촬영된 영화에도 남아 있다.) 엔딩 크레딧 NG 영상을 보면 성룡이 NG를 내면서 촬영 스태프들과 성룡이 웃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나오다가, 성룡이 스턴트를 하다가 다쳐서 고통스러워하거나, 촬영 스태프가 다치거나 심지어는 사망자가 아닌가 싶은 사람이 실려 나가는 아찔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성룡은 이를 통해서 실생활에서는 위험하니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함부로 따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17]

다만, 성룡이 와이어나 대역을 쓰지 않는 것은 영화 마케팅 측면에서 과장한 수사일 뿐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룡이 잠시 다치면 영화촬영이 밀리는데, 이는 영화사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이며, 스케쥴이 겹치는 다른 배우 등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줄 수가 있다. 그러니 대역 등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성룡은 가능한 한 절대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영화 《비룡맹장》(1988)의 후반부 발차기 장면은, 극장에서 본 관객도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식겁할 정도로 확 대역 티가 났다. 대역은 전가락이 했다. 그는 전소호의 동생이며 홍가반의 스턴트맨이자 액션배우다. 홍금보, 성룡, 원표가 서로 두들겨 패고 싸운 다음에 나오는 술집에서 엑스트라로도 나왔다.

현재 성룡의 스턴트팀 성가반은 홍금보의 홍가반, 원화평의 원가반과 함께 홍콩에서 손꼽히는 스턴트 그룹이며, 보험회사에서는 아직도 그를 요주의 인물로서 기피하며 블랙리스트 1순위라고 한다. 딴지일보에서는 그의 이러한 대인배 기질을 "내 몸이 특수효과" 정신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네스북에도 현재 살아있는 연기자 중 가장 스턴트 액션을 많이 한 사람(Most stunts by a living actor)라는 제목으로 등재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신종 훈련 파쿠르의 창시자인 세바스찬 푸캉, 다비드 벨등이 인터뷰에서 성룡의 독창적인 액션 시퀀스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밝혔다. 물론 파쿠르에는 성룡식 액션 스턴트 외에도 다양한 움직임이 있고, 무엇보다 파쿠르 창시자인 세바스찬 푸캉, 다비드 벨 등은 전문적으로 파쿠르를 행하는 사람이니 일반인은 따라하지 말자.

2012년 말에는 무려 22년만에 나오는 《용형호제》 3편인 《차이니즈 조디악》(중국명은 십이생초)에 나왔다. 왜 《용형호제 3》가 아닌가 하면, 1, 2 제작판권을 가진 골든 하베스트 영화사가 문을 닫고 이 영화 판권이 미국 워너브라더스로 갔기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지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권상우가 조연으로 같이 나왔다. 가발을 쓰고 나온 이 영화에서 나이 예순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무척 힘들어하는데, 이것이 거의 사실상 액션 코미디물로선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사실 이 말은 스케일이 큰 '초대형' 액션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고, 액션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고 본인이 직접 해명하였다. 현재 《폴리스 스토리》 후속작과 《익스펜더블》 속편도 찍는 중이라 한다. 더불어 《러시아워 4》라든지 여러 후속도 기획 중이라고 한다.

2013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의 프로모션을 위해 한국을 찾아 《무릎팍 도사》와 《런닝맨》에 출연해서 아직 녹슬지 않은 그만의 재치와 인생이야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왜 그렇게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하느냐"고 질문하자 성룡의 답변이 예술이었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위험한 연기를 해야만 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팬들을 즐겁게 해주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죽는 게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냥 한다. 팬들이 즐거워하면 되니까.

2014년 보이밴드 아이돌JJCC를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했다. 멤버들이 죄다 키가 훤칠하다. 멤버 평균신장 182cm에 달할 정도로 체형이 좋다. 실제로 JJCC에서 180cm가 안되는 멤버는 에디 혼자뿐이다. 원래 2014년에 이 아이돌을 결성할 때 5인조로 결성했으나 2015년에 성룡이 직접 오디션을 개최해서 2명을 추가해 7명이 되었다. JJCC의 멤버 상당수가 이미 성가반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2015년 5월 20일 연기학원을 설립했다. 관련기사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는다. #

2.4 감독 및 제작자로서

액션배우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할 경력은 바로 감독으로서의 재능이다. 이소룡 사후 나온 여러 액션스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룡을 우뚝 서게 만든 것은 영화감독으로서이다. 특히 성룡을 스타덤으로 올린 1980년대 초중반 쿵후 프로젝트 A, 쾌찬차, 폴리스 스토리 1,2 는 모두 성룡이 스스로 감독을 맡아 대 히트를 했는데, 성룡의 입지를 일개 액션배우로부터 홍콩 영화계의 거물로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실 프로젝트 A와 쾌찬차 같은 작품들을 활영하던 시절의 성룡은 홍금보원표를 친구삼아 셋이 항상 같이 붙어다니면서 영화를 촬영했고 감독은 셋 중에서 돌려가면서 담당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셋이 서로 상의하고 셋의 의견을 총집약해서 이런 영화들을 촬영한 것이며 감독 이름에는 아마도 제비뽑기 같은 걸로 셋이서 돌려가며 올려준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성룡 감독작은 드물어지고 전문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다른 감독이 성룡표 액션영화 (썬더볼트, 씨티헌터, 빅타임, 액시덴탈 스파이) 를 제작하지만, 그럼에도 그 구성이나 재미는 성룡 초기작에는 영 미치지 모한다. 흥행도 성룡이 직접 감독한 초기작에 미치지 못한다.

3 기타 매체와의 관계

인기를 반영하는 듯 서구에서도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나왔다. 바로 《재키 찬 어드벤쳐》 시리즈. KBS에서 방영했다. 오프닝을 보아도 성룡이 나오며 마지막에 진짜 성룡이 나와 몇 마디 하는 씬도 있고, 주인공 성우가 진짜 성룡이라는 뜬소문이 있지만, 사실 James Sie와 Paul Robert Langdon이 나눠서 했다. 뒤의 진짜 성룡 목소리와 확연히 다르다. 국내 더빙판에선 성룡의 전담 성우들 중 한명인 김일이 맡았다.

철권의 레이 우롱 등 여타 캐릭터에도 영향(4편부터 성룡의 느낌이 강하다.)을 끼쳤다.

성룡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도 가끔 나온다. 2013년 하드코어게이밍 101에서 성룡 특집 기사를 냈으니 여기 언급된 게임 외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 링크(英)를 보자.

몇 개 꼽자면, 패미컴PC 엔진으로 발매된 허드슨의 '성룡' 플랫폼 액션게임 《성룡의 액션 쿵푸》, 성룡이 직접 모션캡처를 담당한 PS1로 나온 《재키찬 스턴트 마스터》가 있고, 제작과정과 인터뷰 영상
스턴드 마스터를 비판한 STAR 영상이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파르탄 X》도 실은 성룡 주연의 《쾌찬차》가 모티브인 게임이다. 정작 분위기는 원작과 거리가 먼 오히려 《사망유희》류의 이소룡 영화스럽게 나왔지만…. 그리고 비공식 해적 게임이기는 하지만, 《홍콩97》에서도 얼굴을 비춘다(…).

그러나 흑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카네코에서 발매된 《재키 찬 - 쿵푸 마스터》라는 실사 격투게임이다. 비슷한 게임으로 《모탈 컴뱃》이 있다. 잔혹한 피니쉬까지 비슷하다. 이 게임에서는 성룡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에 그런다면… 《재키 찬 - 쿵푸 마스터》는 카네코에서 제안해서 나온 것으로, 《성룡의 썬더볼트》에서 자세히 보면 경주차와 유니폼에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게임은 성룡 자신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고 인정한 흑역사다. 마메 롬도 풀려서 직접 해볼 수도 있는데, 뭐라 말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이 게임에서 성룡은 직접 플레이어블로 고를 수는 없고, 중간보스최종보스로 등장(후속작에서는 셀렉트가 가능하다), 3가지 배리에이션이 나오며 코스츔과 무술이 달라진다.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낸) 오형권, 취권, 팔괘장. 코스튬에서 취권은 《취권2》 때의 복장이고, 팔괘장은 《프로젝트A》 때의 복장이다. 근데 성룡 외에는 그렇다 할 임팩트가 없다. 나머지 플레이어 캐릭터를 담당한 배우나 전체적인 게임 분위기가 너무 싼티 나 보여서… 캐릭터의 네임도 담당한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장발의 격투가인 남성캐릭터는 《성룡의 썬더볼트》에서 나온 악당역의 배우이고, 레슬링을 하는 금발 여성은 《폴리스 스토리 3》에 나오며 쿵푸보이와 사자탈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성가반의 스턴트팀 리더이다. 정작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이 게임에 유덕화도 직접 참여했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사실 고전 게임 해상도 상으로 봤을 때, 유덕화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해당 캐릭터의 명칭 및 성씨가 하필 Lau(유)라 발생한 오류이다. 실제 유씨 캐릭터를 연기한 사람은 《성룡의 썬더볼트》에 나왔던 스턴트맨 중 한 명이며, 이 사람은 영화 내 몇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게임 후에 《재키 찬 - 성룡전설》이라는 후속작이 있다. 캐릭터나 그래픽은 그대로지만 의외로 놀랍게 게임성이 엄청나다. 지금 나오는 격투게임 못지 않다. 정말이다. 대회 영상.

철권》의 레이 우롱은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성룡을 오마주한 캐릭터. 현재는 성우 현지화(?)를 추구하는 철권 시리즈답게 레이도 영어를 사용하지만, 전 캐릭터를 일본 성우가 담당했던 3편까지의 레이의 성우는 성룡 전담 성우였던 이시마루 히로야였다.

짱구는 못말려 미방영판의 홍콩편에서도 나온다. 악당의 졸개[18]로 나오지만 실상은 국제경찰스파이였다.

4 한국과의 관계

2000년대 들면서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예전만 해도 추석, 설날 등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만 되면 성룡 영화를 하나씩은 개봉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TV에서도 성룡 영화 하나씩은 꼭 틀어줬다. 사실 지금도 케이블에선 심심찮게 틀어준다.

1980년대 방영판에서는 주로 배한성이 성룡을 더빙했는데 《유성검의 대결》(왕우 주연에 성룡 악역. 재미있게도 더빙이 배한성-양지운 컴비였다)이나 《권정》, 《소권괴초》, 《사제출마》 같은 방영판에서 연기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중반부턴 장세준이 주로 연기하면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나 《미라클》, 《용적심》, 《쾌찬차》, 《용형호제》 같은 영화에서 연기했다. 장세준1997년 8월 불의의 여객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후에는 홍시호(SBS, MBC), 김일(KBS)[19]을 주축으로 가끔씩은 권혁수(MBC), 윤복성(SBS), 이재용(KBS), 박지훈(MBC) 등 여러 성우가 번갈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취권》은 거의 필수요소 수준으로 꼭 집어넣었다.

무명이었던 젊은 시절에 한국에서 머물며 한국 홍콩 합작영화를 여럿 찍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밑바닥 생활을 하며 고생을 많이 했으며, 그 덕에 한국어가 꽤나 유창해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진짜 한국인인 줄 오해할 정도이다. 홍콩 구룡반도에 있는 스타의 거리에 있는 그의 동판을 보면, 핸드프린팅과 함께 그의 사인이 본인이 직접 쓴 4개국어로 적혀있는데, 이중 하나가 한국어의 표기수단인 한글.

MBC의 《영원한 따거 성룡》이란 프로에서 그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줬다. 한국은 불국사[20]창덕궁 등에서 로케 촬영을 하게 되면서 지내게 되었고, 이 당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방송 중 식사로 육개장을 먹는데, 정말 빨리 먹는다.[21] 먹고 나선 휴지로 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이 장면 후에 고아원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고 짜장면을 먹는데, 김치를 달라고 귀여운 투정도 부린다. 근데 자기가 좋아한 배추김치가 아니라 생소한 열무김치가 나오자 잠깐 시무룩해하지만성무룩, 싫은 내색 없이 맛있게 먹는다.

이 당시 한국 여자를 사귀어 8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 당시 정윤희와 열애설이 나기도 했지만 이건 사실무근으로 판명. 후에 폐간된 영화 잡지 《로드쇼》와 인터뷰에서는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었지만, 그녀 집안 반대로 결국 헤어졌단다. 그리고 1984년 이젠 대스타가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몰래 그녀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이미 그녀는 유부녀가 되었지만, 서로 오래전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무릎팍도사》에서도 이때 그 여인에 대해 언급했는데, 만약 그 시절에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계속 연락했을 것이고, 아마도 결혼까지 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이 장거리 연애 덕에 배웠다고 하는데, 당시의 장발 단속에 걸렸다가 한국어가 능숙해 도리어 중국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냐며 경찰서로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과거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의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여러 근검한 생활 태도를 보여줬다. 또한 이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콜렉션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취권은 코믹한 무술을 만들려던 성룡이 에 취한 권법을 만들면 어떨까, 하며 궁리하다가 동작 하나하나를 만들다가 탄생한 무술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미 중국 지공권 계열 무술들 중에 취팔선권이 존재한다. 시조가 수호전의 노지심. 거기에 다른 유파로는 이태백류가 있다는 말까지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 물론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본 취권의 동작과는 많이 다르다. 취팔선에서 '술'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독자적 개량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듯.

한편 신인 시절에 최무룡과 합작영화에서 대결을 펼친 적 있는데, 훗날 《신화》에서 최민수와 대결, 보기 드물게 부자 2세대와 맞겨뤄본 사나이가 되었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 촬영하거나 한홍합작영화에서 여럿 나왔는데, 이 시절 악당 1, 2, 3으로 나오던 배우 가운데 조춘도 나와서 성룡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 방문했을 때, 당시 한국 톱 개그맨이자 무술인이경규와 만나서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다시 방한했을 때, 이경규가 그때완 다르게 너무 늙어서 못 알아봤다며 놀랐지만, 다시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포즈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1989년, 영화 《미라클》 홍보를 하러 한국에 왔는데, 당시 한국민속촌을 한복을 입고 다니다가 때마침 수학여행 온 일본 여학생들과 만나서 여학생들이 성룡의 사인을 받느라 난리법석이 일어난 적도 있다. 이 당시에 KBS2 방송에 나와 유쾌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내가 한국말 많이 잊어서 많이는 못해요." 라고 웃으며 인터뷰를 했었다. 사실 일본에서도 성룡의 인기는 과거 어마어마했다. 유투브에도 성룡의 일본방송 출연 영상이 많이 남아있다. 한국보다 더 한국을 대표하는 연예인이 욘사마라면, 중국은 성룡이라고 봐도 큰 이견은 없을 정도.

2009년에는 전 재산에 대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때 기자가 "아들도 있으면서 왜 물려주지 않고 기부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내 자식이 능력이 있으면 내가 물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많이 벌 것이고, 내 자식이 능력이 없다면 물려줘봤자 탕진할 것이다." 라고 답하였다. 또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김장훈에게 직접 한국어로 편지를 보내(쓴 사람은 스티브 유!) 그의 기부활동을 응원하고, 자신도 4,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게 4,000만 달러란 금액도 금액이지만, 애초에 김장훈은 남에게 돈을 받아 기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실제로 제의를 했더라도 김장훈 측에서 안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적으로도 내한을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도 종종 내한하여 고아원에 기부를 하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무슨 바람이 분 것이지 스티브 유의 중국활동을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2010년 개봉한 《대병소장》(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이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애초에 큰 이슈도 안됐지만, 스티브 유 안티들은 이런 점을 들어 까기도 하는듯.

2011년런닝맨》에서 한 번 영상을 통해서(홍콩 특집) 출연한 적이 있었다. 미션 지령자로서 출연하여 유재석을 메뚜기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2013년 3월 2일 녹화본에서는 실제로 출연한다! 슈퍼주니어 시원과 함께. 그리고 해당 화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요미스러움과 입담, 예능감으로 대호평을 받으며 폭풍 웃음을 선사했다. 나이도 어리고 말도 잘 안 통하는 멤버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토크에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주변 촬영장 정리를 하고 스태프, 출연진을 챙기는 겸손하고 스타의식 없는 모습에 매우 칭찬받았다.

의외로 유창한 한국어 발음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어려보인다는 말에 자신이 40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멤버들이 항의하자 "그럼 41?" 하는 모습이 압권. 결국 45살로 합의를 봤다. 거기다 하하의 폰번호 요청에 "넌 여자 아님!! 여자만 됨!"이라고 하며 송지효를 보다가 월요남친의 견제에 한판 붙자며 결투자세를 취하는 등 출중한 예능감을 뽐내셨다. 은근히 욱하는 기질도 있어, 유재석이 실수를 하자 괴성을 지르며 퍽하고 한대 치다가 다음턴에서 본인이 실수를 하자 "어 미안^^"이라고 사과를 하며, 유재석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동네 친한 옆집 형님 같은 따거… 알람토크 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불리한 질문을 하며 상대팀들을 탈락시키는 등 종횡무진 활약. 막판에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말에 사랑해요 쪽쪽쪽쪽쪽!! 하며 키스를 날리는 모습이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귀요미하다.

한때 한국에선 대박 배우였고, 1979년에 개봉한 《취권》만 해도 무려 서울관객 89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대박(당시에는 서울관객 20만도 대박이던 시절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1,000만 관객을 훨씬 넘어선 거라고 볼 수 있다.)을 거둬들이면서 흥행 보증수표였다. 90년대 후반까지도 기본은 하던 흥행세를 이어 나아갔으나, 2000년대 와선 한국에서도 한풀 흥행이 꺾이면서 《신해혁명》처럼 개봉도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3년 권상우가 나오면서 화제가 된 《차이니스 조디악》 개봉 전에, 한국 방문 및 한국 공중파 방송에 나와 열심히 얼굴을 드러냈지만, 전국관객 27만에 그치는 기대 이하 흥행을 기록했다.

이병헌의 결혼식에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때도 유창한 한국어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후 로맨틱남이 되어버렸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해피투게더》에 성룡은 나르샤, 최시원과 같이 출연하여 야간매점 메뉴 등극까지 성공했다. 다음 영화에 초청하겠다고 해서 출연진들을 포섭했으나, 사실은 그냥 구경 오게 해주겠다는 페이크였다.

성룡의 친한파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로, 홍콩에 가면 할리우드처럼 명예의 거리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성룡의 핸드프린팅과 사인에는 한글로 '성룡'이라고 함께 적어 놓고 있다. 그리고 2014년 1월에는 《폴리스 스토리 2014》의 내한 레드카펫 행사에서 스스로를 半한국인으로 말하기도.#

2천년대 중국에서 우리도 헐리웃과 한류를 넘어서자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가 한류 폄하 발언 [22]을 했다고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한밤의 tv연예에서 성룡 자택으로 직접 취재를 하러가자 그들을 맞이하면서 철저한 오보이자 오해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이때 재미있었던 점은 MC였던 서경석이 성룡팬인지 대놓고 취재화면 내내 성룡 쉴드를 쳤다는 것. 그 정도로 그 나이대 한국 남성들에겐 주윤발과 함께 어린 시절 우상 같은 존재였다.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다. 해저터널이나 미륵산 케이블 카성룡이 직접 쓰레기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4~15년에 성룡 영화들이 우르르르 재개봉이 이뤄졌다...그런데 ....70년대 영화 소권괴초나 비도권운산을 비롯하여 프로젝트A, 쾌찬차, 폴리스 스토리, 대복성 등등등이 재개봉하는 건 좋은데 전국에서 1~2개 정도 상영관에서 1, 2번 정도 대충 상영한 것.. 홍보도 거의 없었고 포스터도 정말로 대충 만들었다.사실 꼼수 개봉으로 대충 상영한 거다. 덕분에 관객이 무려 1명~10명 수준이다.... 그나마 비도권운산은 전국 342명이 보았고 미라클이 전국 5천명을 기록했다.

한국의 아이돌 보이그룹JJCC를 프로듀싱한 적이 있다.

5 지나친 친중국정부성 발언과 구설수

배우로서는 전설급이고, 아시아 영화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평가받지만, 지나친 정치성 행보는 여럿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애국적 발언이야 원래 뼈속까지 가득한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들은 흔히 할 수 있겠지만 [23], 아래 보여지듯이 서방식 자유가 보장되던 홍콩에서 오래 살았던 양반이 난데없이 독재나 인권유린을 합리화하거나 쓸데없는 오버액션이나 어그로성 발언을 해서 비판을 사는것.

2009년 4월 "중국인은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나친 자유는 대만처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망언을 해 큰 비난을 받았다. [24] 홍콩이나 대만 등의 서방식 민주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지역으로부터는 더 강력하게 비난을 받았다.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때는 티베트 유혈진압사태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 등에서 봉송되는 성화를 끄려는 등 크고 작은 시위가 생기자, "성화봉송을 막으려하는 자는 따끔한 쿵푸의 맛을 보여주겠다"라는 중2병스러운 발언을 했다가 각종 시사평론가들의 풍자만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서, 성룡 본인이 중국 본토에도 진출하여 연예활동하는 입장이라, 중국 정부에 밉보이는 발언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란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옹호하는 소리도 있다. 성룡은 다작왕으로 중국 내수용 작품도 만만찮게 다작하므로 어쩌면 이러한 친중공적 정치 행보는 영화를 위한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것. 허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회사를 비롯해 딸린(?) 식구들이 많으니 주윤발처럼 대놓고 공산당 일당독재에 반대하진 못하더라도, [25]이연걸이나 다른 홍콩 배우들처럼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될 거 가지고 왜 그렇게 나서야했는가 하는 의문은 들기 마련.

고로 이러한 상업적인 면을 배제하더라도 성룡 스스로가 친중국정부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로 보인다.아버지는 국민당, 아들은 공산당 성룡 본인이 무리수 돋는 발언까지 해가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나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도 보수적인 중화민족(혹은 한족)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견해외 모순되지 않는다는 식의 오해도 보이는데, 중국 국민당이나 중국 공산당이나 모두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국공내전에서 피터지게 싸웠던 이들은 현재는 이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어쨌든 전인대의 정협 의원으로까지 활동하는 걸 보면, 정치적으로는 확실히 베이징 정부인사들과 뜻을 같이 하는 듯.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도 시위대의 자제를 촉구하는 등 친정부적인 건 확실해보인다. 시위대를 지지한 주윤발과도 여러모로 비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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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남부 분원 완공 기념식에 마잉주 당시 총통 등과 함께 참석했다. 중화 문화의 총본산으로서 국립고궁박물원의 위상[26]이나 마잉주 정부의 친중 성향 등을 고려한 듯 보이지만, 과거 대만의 민주주의를 비하했던 전력을 생각하면 엇갈릴 수 있는 행보. 덤으로 진품이 아닌 모조품을 분원에 부조 작품으로 기증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마잉주 또한 중국 국민당의 입장에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기 떄문에 성룡이 마잉주의 주도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6 개인사

  • 전성기 시절 영화에 나온 성룡의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21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성룡의 목소리를 듣고 음색이 의외로 묵직한 저음이라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사실 80년대 영화에서 나온 성룡의 목소리는 성룡이 아닌 전문 성우가 더빙한 것으로 진짜 성룡의 목소리가 영화에 나오는건 90년대 이후부터다.물론 그의 진짜 목소리는 영화에 아예 안나온게 아니다. 엔딩 크레딧의 주제가에 성룡이 부른 노래가 나온다.
  • 탈모가 있다. M자 탈모인데, 장발은 가발을 쓰고 다니는 듯 하다. 지금껏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지만, 영화 《대병소장》의 NG영상에서 공개되었다. 진행 정도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탈모가 있었던 듯. 홍콩에는 성룡이 모델로 나온 발모제 및 샴푸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허위 광고 논란에 휩싸이면서 관련 광고에서 했던 대사도 훌륭한 네타 소재가 되었다. 심지어 바이두에서 'duang'이라고 입력하여 검색하면 특수 효과가 뜬다.
  • 성룡은 골수 폴더폰 마니아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폴더형 스마트폰인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 SCH-W213, SM-W2014의 광고 모델을 자청했다고 한다.
  • 홍콩에서는 뒷세계에 연루된 사생활 및 난잡한 여성 문제[27]로 인해 그다지 평이 좋지 않다. 삼합회와 관련된 루머를 홍콩인들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일 정도. 자신의 개인 경호원이기도 했고, 《취권2》에서 굉장한 발차기 실력의 악역으로 나오기도 했던 노혜광과 사이가 틀어지자, 퇴직금도 주지 않고 내쫓아서, 의리없는 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2016년 4월 파나마 조세회피처 자료 분석 결과 6개 이상 페이퍼 컴퍼니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발표되어 더욱 이미지를 구겼다.(...)
  • 중국에서는 성룡이 광고를 찍거나 홍보하는 상품/회사는 망하거나 악재가 겹친다는 징크스가 있다. 특히 2014년, 성룡의 아들인 방조명이 대마초를 피우다가 잡힌 일로 유명한데, 정작 성룡 본인은 중국의 마약금지 홍보대사였다.(...) 그래서 반공주의 성향을 가진 중국 네티즌은 "성룡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해야한다."는 드립을 치기도 한다. 근데 이미 전인대 정협 의원으로 활동 중이니 반은 걸친거 아닌가
  • 2014년 8월 22일엔 성룡의 호화빌라에서 아들 방조명이 대만배우 가진동과 함께 대마초를 피우다 걸려 세간에 큰 충격을 줬다. 성룡도 상심이 큰 듯 추측성 기사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마약류에 엄격한 중국인만큼 사형설부터 시작해서 온갖 루머가 다 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실제론 사형은 커녕 6개월 복역 후 출소했으며, 2016년 1월엔 부친의 항일영화로 복귀설까지 돌고 있다.12 중국도 생각보다 널널하군 문제는 성룡이 마약퇴치 홍보대사라서 더 큰 논란이 있었다는 점. 여담으로 같은 달에는 한국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이 군내 가혹행위집행유예를 받았는데 남경필 지사가 군대 간 자식 걱정하는 칼럼을 신문에 바로 며칠 전에 써서 논란이 되었다. 아버지의 걱정과 염려에 아들이 찬물을 끼얹은 두 사례가 너무나 절묘하게 비슷하다.
  • 한때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사망설이 떠돌았으나 곧 루머로 밝혀졌다. 성룡은 2011년 9월에 개봉한(해외) 영화 《신해혁명》에 제작, 공동 감독 겸 주연으로 참여했는데, 로튼토마토 점수가 20점도 안 되는 악평에 시달리고 흥행도 참패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100번째 영화라서 이 영화의 악평이 가슴 아플 듯. 한국에선 2012년 3월 15일 개봉했으나, 시사회도 없이 잠깐 개봉한 탓에 관객 수치도 집계되지 않았는데 전국 5만도 안된다고 한다. 그리곤 DVD로 나왔다.
  • 영화 《포비든 킹덤》 홍보 당시 국내 개봉을 맞이하여 이연걸과 함께 《연예가중계》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리포터가 "두 분 다 무술 배우로서 최고로 쳐주는 분들인데, 실제로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냐?" 라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에 잠시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연걸이 재빨리 "성룡 형님이 형님이니 아마 저한테 양보해서 져주실 것 같다." 라며 농담하며 선수를 쳐버렸다. 그리고는 특유의 순진무구 소년미소로 헤헤헤거리며 씨익 '이 형님이 대인배셔서 져주실 거임' 이라면서 치켜세워 주며 한 말이다 보니, 성룡은 뭐라고 대꾸할 거리도 생각이 안 나고 해서 그냥 같이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넘어갔다. 성룡: '마… 맞받아 칠 드립이 생각이 안나…' 이연걸: '계획대로…헤헤헤'
  • 현재의 모습을 보면 동안이라 말하기 어렵겠지만 8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의 모습을 보면 나이에 비해서 엄청난 동안이였다. 90년대에 40대가 되었지만 20대 후반이나 30대처럼 보인다.

7 성가반

성룡이 만든 스턴트맨들과 같이 작업했던 무술가들의 집단. 홍금보의 홍가반과 함께 홍콩 영화에서 고난도의 스턴트들을 작업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무술을 선보이는 홍가반과 달리, 이쪽은 모두가 하나 되어 큰 그림을 그리는 무술을 시도하고 있다.

일원들은 다음과 같다. 다만, 위키백과의 정보를 가져온 것이라 영어 이름이기도 하지만, 중국이름을 알더라도 얼굴이 안 알려진 사람이 많고(…), 한국인도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 이전 멤버와 현재 멤버 모두 포함되어 있다.

  • Michael Tse(마이클 체, 謝天華) - 前 홍콩 TVB 소속 배우로, TVB 연예인 훈련반 출신으로, 곽부성, 등췌문, 여미한 등과 동기. 대표작은 《잠행저격(潛行狙擊)》.
  • Colin Flora
  • Brad Allan (브래드 앨런, 풀네임은 브래들리 제임스 앨런(Bradley James Allan)) - 스턴트팀 리더. 성가반에서 최초로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 《빅타임(Gorgeous)》에서 성룡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날렵한 액션 장면을 연출했다. 이 영화에는 후술할 노혜광도 나오는데, 앨런을 고용한 부호의 보디가드 역할. 두 번째 싸움 중간에 앨런에게 "괜찮지?(Are you Okay?)"라고 물었다가 앨런이 노려보자 "괜찮대, 괜찮대!" 라며 좋아하는 모습이 압권.
  • Paul Andreovski - 《나이스 가이》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 출연. 성룡의 개인 복싱 코치.
  • Anthony Carpio
  • Chris Chan (Chan Sai-Tang)
  • Chan Man-ching
  • Chan Tat-kwong (Chan Daat-Gong)
  • Andy Cheng (Cheng Kai-Chung)
  • Johnny Cheung (Cheung Yiu-Wah)
  • Danny Chow (Chow Yun-kin)
  • Joe Eigo
  • Fung Hak-on (Fung Hark-On)
  • Hon Chun
  • Dani Hu(Fok Chan Keung)
  • Louis Keung (Mak Wai-Cheung)
  • Benny Lai (베니 라이, 중국식 이름은 여강권.(Lai Keung-Kuen)) - 《폴리스 스토리2-구룡의 눈》에서 폭탄 테러범 3인방 중 한 명인 벙어리로 출연했으며, 공중 3연각을 날리는 등 발차기만으로도 성룡을 압도적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 2》, 《미라클》에도 출연했다. 국내에도 출시된 《폴리스 스토리 2》 DVD 서플먼트에 이 사람의 최근 인터뷰가 실려 있다. 촬영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Rocky Lai (Lai Keung) - 록키 라이, 중국식 이름은 여강근. 여강권의 동생. 국내 출시된 《프로젝트 A 2》 DVD 서플먼트로 수록된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실려 있고, 《성룡의 시티헌터》 DVD 서플먼트에는 최근 인터뷰가 실려 있다.
  • Sam Wong (Lai Sing-kwong / Wong Ming-Sing) - 스턴트팀의 리더. 《폴리스 스토리3-초급경찰》에서 성룡과 대련을 하는 공안 대원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성룡이 등장하는 격투게임인 《재키 찬 - 쿵푸 마스터》에도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한다. (사자탈의 캐릭터도 그가 연기했다.)
  • Ben Lam (Lam Kwok-Bun)
  • Chris Li (Li Kin Sang)
  • Lee Chun-kit – Project A Part II, Police Story 2, Miracles
  • Nicky Li (니키 리, 본명은 이충지(Li Chung-Chi)) - 스턴트팀 리더.
  • Ken Lo (켄 로, 본명은 노혜광(Lo Wai-Kwong)) - 전(前) 성룡의 개인 경호원.프로젝트 A 2》 초반부의 호텔에서 성룡과 맞서 싸우는 범죄자(진혜민 분)의 대역을 했다고 한다, 《취권2》의 마지막 싸움에서 화려한 발차기를 보여준 사람. 이연걸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한국영화 《조폭마누라3》에도 출연. 《초급학교패왕》에서 바이슨 장군 역을 맡은 그 사람이다.
  • Mars (화성. 본명은 Chiang Wing-fat / Feng Sing) - 성룡의 최고 대역배우. 성룡 초기작인 《용소야》에서는 준주인공 급으로 등장했다. 그 밖에도 초기작 여러 편에서 조연급으로 자주 나온다. 못 생기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스턴트 실력만큼은 뛰어나서 성룡과 오랫동안 작업했다. 최근에는 젊은 날에 했던 수많은 스턴트의 후유증으로 스턴트맨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간간이 무술감독으로는 활약하고 있다. 참고로 《프로젝트 A》의 시계탑 추락 장면은 테이크를 세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많이 찍었다. 그 대역은 이 사람이 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철 감독의 《독비도》에서 왕우의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었고 《금연자》에서도 아역으로 출연하였었던 아역배우 출신이다.
  • Frankie Poon (Poon Bin-chung)
  • Pang Hiu Sang
  • William Tuen (Tuan Wai-Lun)
  • Wan Faat
  • Paul Wong (Wong Kwan)
  • Jon Foo (Jonathan Patrick Foo) - 중국계와 아일랜드계의 혼혈인 배우. 토니 쟈의 《옹박: 두 번째 미션》에서 그를 상대로 화려한 검무를 보여주었다. 《철권》의 실사판에서 카자마 진으로 출연했다. 프로모션 영상 토니 쟈와의 대결
  • He Jun (Hoh Gwan)
  • Ng Kong (Wu Gang)
  • Park Hyun Jin - 성가반에 소속된 한국인. 《신화》, 《BB 프로젝트》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 Lee In Seob
  • Han Kwan Hua
  • Ron Smoorenburg - 《성룡의 CIA(Who Am I?)》에서 노혜광과 함께 1대 2 옥상 결투를 벌인 사람. 위키백과 쪽 명단에는 없다. 본인 사이트에 의하면 성룡을 비롯한 홍콩영화인들이 자신을 노동력 착취 내지 과소평가했다고 징징대고 있다. 생긴 건 이 분 닮았더만
  • Eddy - 성룡이 특별하게 키워서 아이돌로 만들어낸 가수. 성룡이 키운 아이돌 JJCC의 멤버이다.

8 영화 목록

※ 출처 - Daum 영화, 영문 위키피디아. 엑스트라, 카메오도 포함되어 있다. 각 정보에 대해 추가바람수정바람.

1962대소황천패
1963양산백과 축영태
1964진향련
1966양호십팔표, 대취협
1970황강여협
1971도불유인, 귀노천, 협녀, 광동소로호
1972정무문, 흑연비수(합기도), 당인객, 향홍과객
1973용쟁호투, 소노호, 북지연지[28], 분노의 주먹, 여경찰, 철왜, 마두대결투, 매복, 석파천경, 기린장
1974제패, 금병쌍염[29], 사왕일후, 악호촌
1975화비만성춘, 이소룡여아, 말잔치, 밀종성수
1976신정무문, 소림목인항[30], 소림문, 유성검의 대결
1977삼십육미영권, 이소룡 일대기 생과 사, 신 당산대형
1978사학비권, 비도권운산, 사형도수, 취권, 금강혈인, 오룡대협(소권), 흑대한
1979소권괴초, 당산비권(용권), 조수괴초
1980사제출마, 배틀 크리크[31]
1981캐논볼
1982용소야
1983대복성, 소권괴초2-용등호약, 오복성, 프로젝트A
1984쾌찬차, 캐논볼2, 신용쌍향표
1985프로텍터[32], 복성고조[33], 폴리스 스토리[34], 복성고조2, 용적심, 닌자 썬더볼트
1986용형호제, 유계잡패군
1987프로젝트A 2
1988비룡맹장[35], 폴리스 스토리 2-구룡의 눈
1989미라클
1990액션 진기명기, 용형호제2, 화소도
1992폴리스 스토리 3-초급경찰[36], 쌍룡회[37], 성룡의 시티헌터, 서장소자
1993프로젝트 S, 중안조
1994취권2
1995성룡의 썬더볼트
1996폴리스 스토리 4, 홍번구
1997나이스 가이, 알란 스미시 영화
1998러시아워, 성룡의 CIA
1999젠 엑스 캅, 희극지왕[38], 빅타임
2000이소룡-전사의 여행, 엑시덴탈 스파이, 상하이 눈
2001러시아워2
2002아트 오브 액션, 턱시도
2003트윈 이펙트, 메달리온, 상하이 나이츠
2004트윈 이펙트2, 뉴 폴리스 스토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대료애미려
2005신화-진시황릉의 비밀
2006사대천왕, BB프로젝트
2007러시아워3
2008쿵푸팬더(목소리), 포비든 킹덤-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2009건국대업, 성룡의 쿵푸 마스터, 신주쿠 사건
2010대병소장, 쿵푸팬더 홀리데이 스페셜(목소리), 스파이 넥스트 도어, 베스트 키드, The Legend of Silk Boy(목소리)
2011쿵푸팬더 2(목소리), 신해혁명, 샤오린 : 최후의 결전
2012진바오의 모험(목소리)
2013차이니스 조디악, 개인 맞춤 제작, The Unbelievable
2014폴리스 스토리 2014[39], 구화영웅
2015드래곤 블레이드[40] 몽키킹: 영웅의 귀환(목소리)
2016스킵트레이스[41]
2017넛잡2, 더 레고 닌자고 무비

9 성룡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1. 실제 홍콩 액션 영화는 이소룡-성룡-이연걸-견자단 계보로 이어진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가 안 나와서 문제지.
  2. 홍콩에서 태어났다 하여 지었다고 전해진다다.
  3. 방도룡(예명 진지평, 산동성 출신, 1914 - 2008).
  4. 공교롭게도 아내가 진씨다. 아마도 아내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예상된다.
  5. 본래는 진조명이었으나 조부의 과거문제로 인해 성이 갈아진 케이스. 1990년대 모광고에서 성가는 내기를 하다가 결국 성을 갈아버린 그분이 생각나네.
  6. 요즘에는 케이블에서 방송한다.
  7. 사실 홍콩인은 50%가 무종교인이고 이들 중 10% 이상은 아예 무신론자다. 무종교인데 신을 믿어? 종교인은 불교도교인이 많고 그담 기독교, 그담 일부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바하이 등 소수종교가 공존한다. 젊은 세대는 으레 그리스도인이거나 무신론자.
  8. 미국에서는 《Rumble in Hong Kong》이란 제목으로 개봉. 《성룡의 영 타이거》라는 제목은 일본에서 토에이가 《ジャッキー・チェンのヤングタイガー》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발매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9. 나류 감독 부인이 《소림문》에 출연했던 성룡의 실력을 보고 추천했다고 한다.
  10. 여기에도 비화(祕話)가 있다. 한 유명 무협소설작가이자 각본가가 성룡의 외모에 대해,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얼굴이라며 외모를 혹평한 것이다. 성룡은 그 작가와의 설전을 피하고, 조용히 성형외과를 찾아 수술을 했다고 전해진다.
  11. 참고로 유성검의 대결은 85년쯤에 명절특선으로 국내에서 MBC로 더빙 방영했는데 왕우는 양지운, 성룡은 배한성이 더빙을 맡았다. 더불어...악역으로 나온 성룡이 그야말로 허무하게 골로 간다.
  12. 안타깝게도 부성은 1983년, 29살의 나이로 영화 촬영장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요절하는데, 만약 그가 계속 활동했었다면 80년대 성룡의 위상은 지금 같지 않았으리라 평가받는다.
  13. 이 당시 영화 《취권》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서울의 단성사 한 곳에서만 상영을 했는데도, 너무 많은 관객이 계속 몰려와 장기상영(8개월을 상영했다. 대충 설 에 개봉 해서 추석때까지 라고 할 정도 의 기간이다.)을 했고, 집계된 관객은 서울에서만 89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1970년대에는 10만 명만 넘어도 성공이라고 했다. 이는 요즘으로 환산하면 1,500만 명 정도에 가까울 것이다. 이 기록은 이후 서편제의 전국 100만 명 동원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14. 1950년생의 제임스 글릭켄하우스는 1975년부터 영화 제작, 각본, 감독을 맡아 20년 동안 활약하던 미국 영화인으로, 집안이 엄청난 부자라서 누구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제작하던 인물이다. 세계적으로 페라리 광으로 유명하며, 무려 80대가 넘는 페라리, 그것도 개인 디자인으로 주문한 세계에서 1대뿐인 페라리가 수두룩하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부자로 페라리 수집광으로 활약 중. B급 액션물 《솔져》라든지 《엑스터미네이터》(제목만 보면 《터미네이터》 아류 같지만 완전히 다르고, 화염방사기를 주무기로 싸우는 액션영웅을 다룬 작품) 같은 액션물은 흥행에 꽤 성공했고, 아들인 카메론 미셸 글릭켄하우스가 주연을 맡은 스릴러 《지옥의 슬로터》나 모험물 《타임마스터》까지 감독하고, 1995년 이후로 영화 관련 일을 안하고 있다.
  15. 국내에서도 이 미국 편집판으로 개봉했는데, 여성의 앞부분 나체가 등장하는 부분과 NG장면은 잘린 채 개봉되었다. 다행히도 1989년에 세경문화영상에서 출시된 비디오판은 성룡이 편집한 홍콩판으로 출시되었다. NG장면은 일본 개봉판 및 나중에 재편집판에서 나오고, 유튜브를 찾으면 볼 수 있다.
  16. 1986년 국내 신문 광고로 성룡이 용형호제를 찍다가 몇 바늘을 꿰맸을까'라는 퀴즈를 내기도 했었다(…).
  17. 스태프 중 한명이 사망하여 실려 나가는 장면은 영화 《폴리스 스토리4 간단임무》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다. 《용형호제》 1편 엔딩 크레딧의 경우 성룡이 얼마나 위험한 부상을 당했는지를 보여준다.
  18. 스포일러 짱구엄마일행을 구한 제임스 본즈인데, 실상은 노인일 뿐...
  19. 다만 김일이 SBS 폴리스 스토리4에서 딱 한 번 맡은 적도 있다.
  20. 이 시기 홍콩 쿵후 영화들을 보면 불국사가 소림사 간판을 걸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보탑과 석가탑 사이에서 와이어로 휙휙 날아가면서 액션을 벌이는 장면이 있기도.
  21. 여기서 성룡은 육개장의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건져 먹고, 그 뒤 밥을 살짝 적셔서 후루룩 먹는다. 혹시나 성룡식 육개장 먹기를 하고 싶다면 참고하시길.
  22. 이 성룡이 김희선이 연기력이 형편없다고 맞는말 아닌가 디스하고, 한류가 별볼일 없다고 말한 소위 한류폄하발언(2006)의 출전은 대만언론인데, 대만언론의 신뢰도는 참으로 문제가 많다. 쯔위 사태를 일파만파로 키운 것도 황안의 어그로를 대만언론이 과장해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성룡은 김희선의 결혼식에도 축하 영상을 보내기도 했고, 환갑잔치에 초대했다고 한다.
  23. 홍콩인들은 스스로 중국인임을 부정한다고 생각하거나 중화사상이 없는 것처럼 보는 사람이 있는데, 적어도 성룡세대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 식민경찰에 소속된 홍콩인들의 활약을 그린 프로젝트 A의 주제가인 <동방의 위풍(東方的威風)> 가사만 보더라도 중화주의-국수주의적 내용이 가득하다.
  24. 성룡입장에서 실드를 치자면, 이당시 대만은 마잉주천수이볜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국회 공성전이 계속 벌어지는 등, 정국이 엉망진창이었다. 한국에서 국회 공성전이 벌어지면 일부 정치혐오증 환자들이 "국회의원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성룡이 저런 소리를 한 것도 이해가 될 듯. 여담이지만, 한국의 친미 보수세력들이 빨아주는 리콴유 조차도 "동양인에게 민주제도는 필요 없고, 강력한 정부가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5. 파룬궁 계열 대기원시보의 보도로, 한국의 중까들에게 잘못 알려져 있지만, 주윤발은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반대한다고 주장한 바 없다. 단지 홍콩 우산 시위에서 좀 더 민주적인 선거를 주장하는 민주파(반중파)를 지지했을 뿐이다. 홍콩 내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는 반중국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중국 자신이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고 내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했기 때문에 주윤발의 발언은 중국의 속내는 거스르겠지만, 딱히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과 모순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윤발은 홍콩 시위 지지 성명을 발표한 2014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대륙에서 잘만 활동하고 있다. 만약 정말로 반중공적인 발언을 했다면 대륙에서 활동 못한다.
  26. 장제스가 대만으로 도망갈때 값어치 좀 나가는 문화재는 싸그리 챙겨가서(...), 문화재 규모나 양이 엄청나다.
  27. 오죽하면 본명인 房仕龍을 비꼬아 房事龍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28. 《금병쌍염》과 마찬가지로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염정영화라 성룡 본인이 흑역사 취급 한다. 참고로 염정영화는 우리나라로 치면 에로영화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3류 포르노는 아니다. 《북지연지》와 《금병쌍염》은 홍콩의 손꼽히는 거장인 이한상 감독의 대표작이다.
  29. 무대랑을 도와주다 서문경에게 밉보여서 서문경 패거리에게 끔살 당하는 단역으로 출연했다.
  30. 소림목인방이라고도 한다.
  31. 첫번째 헐리웃 데뷔작. 그러나 헐리웃 영화 제작 스타일은 성룡과 맞지 않았고, 헐리웃 영화 스탭들은 홍콩에서 넘어온 동양배우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때로 액션신을 찍었다. 결국 영화는 밋밋한 액션장면으로 흥행에도 실패했다.
  32. 촬영은 1984년, 개봉은 1985년
  33. 《폴리스 스토리》 촬영준비로 바빠서 성룡이 출연한 영화 중 유독 대역 장면이 많은 작품.(《복성고조》의 개봉일은 1985년 2월이었고, 《폴리스 스토리》의 개봉일은 1985년 12월이었다.) 영화의 초반부에 홍금보(극 중 자고채 역)가 동료 죄수들에게 임청하의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고, 영화 마지막 장면은 놀이공원과 놀이공원 유령의 집 내부에 있는 악당들의 아지트에서 펼쳐지는데, 홍금보(극 중 자고채 역)가 칠복성 형제들과 원표를 구하기 위해 성룡(철력위/계골초, 2가지 이름으로 나옴)의 지시에 따라 악당들과 접선하면서 성룡의 사진을 보여줄 때 성룡의 모습이 《폴리스 스토리》 극 중에 경찰으로 분한 성룡이다.
  34. 이 영화야말로 성룡 본인과 성룡 팬들이 최고의 수작으로 꼽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 숨은 비화가 있는데 이는 바로 한국 개봉 문제다. 1985년 12월 홍콩에서 개봉한 후, 예정대로라면 1986년 새해나 설 연휴에 개봉했어야했는데, 당시 5공 정부 심의에 걸려서 1988년 7월이 되어서야 개봉했다. 이유는 사실적인 폭력(격투)장면과 비리경찰이란 주제를 들어서 개봉을 미루다 정권이 6공으로 바뀌고 나서야 겨우 개봉했다. 한국 개봉일이 7월 23일인데, 하필 하루 전날 개봉한 《영웅본색 2》에 밀려서 흥행성적은 서울관객 19만 명으로 끝났다. 《영웅본색 2》는 서울관객 26만 명
  35.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인 마약공장 격투 장면에서 성룡의 대역장면이 떡하니 나온다. 베니 유키데즈와 1대1 격투에서 성룡이 사이클론킥으로 베니를 무력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조금만 자세히 보면 성룡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극 중반부 온미령과 유람선 선상 데이트 장면에서도 격투 장면이 나오는데, 유람선 야외 계단에서 몸을 뒤로 돌려 뒷발차기 하는 장면도 성룡이 아닌 대역이다.
  36. 촬영은 1991년, 개봉은 1992년
  37. 홍콩 영화감독협회 기금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서극과 임영동이 공동감독했다. 서극은 후반부 자동차검사장 격투 장면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회사원으로 나오는데, 중간에 수염 나고 마른 사람이 바로 서극 감독이다. 이외에도 여러 감독들이 카메오로 나오는데 왕정, 오우삼, 유가량이 나오니 잘 찾아보는 것이 좋다
  38. 카메오 출연.
  39. 원제는 《폴리스 스토리 2013》이고 원래 2013년 개봉 예정이었지만 연기.
  40. 로마 병사들이 중국에 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로마 황제 역은 자그마치 에이드리언 브로디에, 로마 병사 역은 존 큐잭. 최시원도 출연한다! (《해피투게더》에서의 약속을 지킨 모양.),
  41. 잭애스》의 쟈니 낙스빌과 판빙빙과 함께 하기로 한 작품. 연정훈도 출연한다고 한다. 원래는 2014년 말이 목표였으나 한참 연기되었고, 2014년 11월 28일 현재 홍콩 촬영을 마치고 마카오에서 촬영 중이다. 2016년 개봉. 감독은 다이 하드 2,클리프행어, 컷스로트 아일랜드,딥 블루 씨로 알려진 레니 할린.
  42. 레이 우롱과 마찬가지로 성룡의 전담 성우인 이시마루 히로야가 목소리를 담당했다.
  43.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