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KBS의 전 오락 프로그램
핑클이 출연했었던 가족오락관.
1984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무려 26년이라는 역사와 총 1237회 방송분량을 끝으로 2009년 4월 18일까지 방영된 전 오락 프로그램이다. 주 진행자는 허참. 여성 진행자는 수차례 바뀌어 무려 21명이나 되는데도 막방까지 허참이 바뀐 적은 없으며, 교통사고로 인해 딱 한 번 방송 펑크낸 적은 있다고 한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시초, 다만 초창기에는 열심히 대결해서 최종점수를 확인하는 그런 구도의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버라이어티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가 8개월만에 널리 알려져 있는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이후 연예인을 출연시키기 시작한 후 시청률이 급격히 올라 시청률 35%를 찍었었다. 시대가 시대임을 감안하고 일일연속극, 뉴스시간대와도 맞물렸던걸 감안하면 엄청난 시청률. 1991년부터 1994년까진 저녁 8시 전후,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저녁 8시 30분 전후에 편성되었다.
이후 인간극장의 편성으로 KBS 2TV에서 KBS 1TV로 채널을 이동해서 토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경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시청률을 유지했지만 1150회 정도 시점을 기준으로 급격히 중장년층 시청자를 위주로 한 진행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시청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2009년 4월 18일 방송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허참은 다시 가족오락관을 KBS 2TV로 편성시켜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지만, 타깃이 타깃이다 보니...
사실 가족오락관의 시청률 저하에는 점수 비공개로 인한 대결 구도의 긴장감 감소,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한 패널 구성, 진부한 코너 구성 등을 들 수 있는데, 어느정도 KBS가 관리만 해줬다면 살아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긴 했다. 실제로 성대결 구도를 종영하고 소녀시대, 카라 등의 연예인들을 출연시켰고 8% 선의 준수한 시청률을 보였지만 개편 후 두 번의 방송만에 종영 결정이 내려진 것이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1.1 오프닝
- 1996 ~ 1997 : 트위스트 킹 / 터보
- 1998 ~ 1999 상반기 : Samba de Janeiro
- 1999 하반기 ~ 2009 : My Sitar / Dr. Bombay
1.2 가족오락관 변천사
1.2.1 80년대 초반
- 1983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최초 편성되었으며 1984년 4월 3일 첫 방송을 시작하여 KBS2 화요일 8시 25분에 80분간 방송되었다.
- 형식은 주로 게임보다는 현재의 토크쇼 형식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게임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 MC는 현재와 달리 앉아서, 주로 연예인보다는 스포츠 스타, 사회 각층 인사 등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1.2.2 80년대 중후반~90년대
- 이때부터는 주로 연예인들을 초대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잘 알려진 게임들의 대부분이 이때 만들어졌다.
1.2.3 2000년대 초반
- 2000년에는 수요일에서 목요일, 토요일로 바꿔서 진행되었다. 2000년 10월 개편으로 KBS1 오후 6시부터 60분간 방송하는 것으로 시간대를 옮겼으며, 당시 심의실의 심의로 뿅망치 게임, 내 여자의 남자 등이 사라졌다. 가족오락관 25年 게임 변천사…"뿅망치부터 이구동성까지"
1.2.4 200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렇다 할 인기 게임들을 거의 내놓지는 못하고 1100회대에는 기존 게임들을 다시 선보였다.
1.2.5 2008년~2009년 4월 18일
- 한때 중반 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가족오락관은 2006년 이후 시청률이 하락세를 그리다 종영 직전에는 마지막회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하락세를 면해보려는 의도로 편성이 7시 10분, 5시 10분 순으로 변경되었고 포맷이 완전히 바뀌었으나 시청률이 호전되지 않았던 것이 종영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하지만 실제로는 허참 본인이 무 자르듯이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했고 종영되기 7주 전인 2009년 2월 28일에 '다음 주 토요일 저녁 7시 10분'이라고 자막을 내보냈는데 갑자기 3월부터 오후 5시 10분으로 바꾼 것도 석연치 않았고 게시판에 정연주 전 사장 해임 사태를 비롯한 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는데 삭제가 되어 있었다.
- 2009년 3월 21일부터 포맷을 대규모로 변경했으며 스태프가 카메라 감독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되었고 코너 또한 '따로 또 같이'를 제외하고 모든 코너가 교체되었다.
- 또한 양원경
망할만하네, 배기성, 이종원을 고정으로 섭외했고 팀도 혼성팀으로 나누었다.
1.3 역대 MC들
남자 MC인 허참은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을 담당하였다. 진정한 하렘왕
허참과 파트너가 된 여성 MC명단
- 오유경 영화배우 출신 (1984.04.03.~1985.일자 미상)
- 정소녀 87년 허참 교통사고로 인해 단독진행 1회 (1985.일자 미상~1987.10.일자 미상)
- 장혜영 87' 미스코리아 르망, 장은영 아나운서(92' 미스코리아 선)의 언니 (1987.10.일자 미상~일자 미상)
- 김자영 (일자 미상 ~ 일자 미상)
- 김경희 결혼과 동시에 이 프로그램과 아나운서를 그만둠. (일자 미상 ~ 일자 미상)
- 최영미 (일자 미상 ~ 1991.10.01.)
- 김혜영 (1991.10.08.~1992.일자 미상)
- 전혜진 (91' 미스코리아 유림) (1992.10.05.~1994.10.07,)
- 이유리 (94' 미스코리아 선, 20세의 나이로 진행, 최연소, 여자 진행자 중 최단기간 진행) (1994.10.14.~1995.일자 미상)
- 장서희 (1995.일자 미상.~1995.08.30.)
- 오현정 24세 (1995.09.06~1996.일자 미상)
- 오영실 (1996.일자 미상~1997.일자 미상)
- 손미나 (여자 진행자 중 최장기간(4년 ?개월) 진행) (1997.일자 미상~2001.11.03.)
- 변우영 (2001.11.17.~2002.03.30.)
- 윤지영 (2002.04.06.~2003.06.21.)
- 박주아 (2003.06.28~2005.10.22)
- 박사임 (2005.11.05.~2006.03.11.)
- 이정민 (2006.03.18.~2006.11.18.)
- 김새롬 (2006.11.25.~2007.11.03.)
- 김보민 (2007.11.10.~2008.03.29.)
- 이선영 (2008.04.05.~2009.04.18.)
1.4 점수
"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몇 대 몇∼∼∼!!"
- 양 팀의 점수판은 세트장에 좌우 대칭으로 달려 있다. 이전까지는 디지털 점수판을 사용하였고, 게임 도중에라도 화면 속에서 점수를 볼 수 있었지만 2004년 초부터 더이상 점수가 게임 도중에는 공개되지 않도록 바뀌었다.
- 각 게임마다 1점부터 100점까지의 다양한 점수가 미리 설정되어 있고 이 점수를 모두 합산한 점수가 최종점수가 된다.
- 중간점수는 MC가 중간점수를 확인할 때 점수판에 적혀져 있는 점수가 중간점수이다.
- 2004년 초 이후 게임 도중 중간점수를 공개하지 않도록 조정되면서 중간점수는 확인할수 없게 되었다.
- 마지막 게임이 끝나면 주부 방청객에게 인사를 한 다음 최종점수를 확인하기 전 가족오락관하면 떠올려질 정도로 친숙한 구호인 "몇 대 몇~!"을 외치면서 최종 점수를 확인하게 된다.
- 만약 동점일 경우에는 공동 우승으로 처리되며, 90년대에는 눈싸움으로 끝장승부를 보기도 했다.
1.4.1 점수판의 역대 형태
- 초창기 : 점수 체계 없음
- 80년대 후반 ~ : 큰 디지털 점수판 (숫자 3개가 들어갈 수 있고, 각 자리마다 0~9만 출력할 수 있음.)
- 90년대 초반 ~ 2003년 8월 : 작은 디지털 점수판 (숫자 3개가 들어갈 수 있고, 각 자리마다 0~9만 출력할 수 있음. 가족오락관 하면 떠오르는 점수판이 이것이며, 2000년 올림픽 특집때 여성팀 점수가 1000점이 넘어가버려 천의 자리가 0이 되어버린 것으로 계산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음. 또한, 1000점이 넘어가면 999로 표시하기도 했음)
- 960회 ~ 980회(2004 설 특집), 1054회 ~ 1078회 : 작은 디지털 점수판. 도중에 점수를 가리고 가족오락관 로고가 출력되었다.
- 981회 ~ 1053회 : 대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디지털 풍의 폰트를 사용하여 점수를 출력했다.
- 1079회 ~ 1187회 : 대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디지털 풍의 폰트를 사용하여 점수를 출력했다.
- 1188회 ~ 1237회 : 소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기울어진 디지털 풍의 폰트를 사용하여 점수를 출력했다.
1.5 역대 게임
1.6 에피소드
1.6.1 배일호
신토불이, 99.9 등으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배일호는 이 프로그램의 FD겸 보조진행자로 보조진행자 활동을 하다가 트로트 가수로 데뷔해 스타가 되었다.
1.6.2 가족오락관을 통해 유명해진 사례
가족오락관에 거쳐가는 연예인은 대부분 진정한 연예인으로 거듭나는 사례가 있다. 조용필, 유재석, 이효리, 고수, 비, 김제동 등이 대표적이며, 심지어 2013년에 MBC 진짜 사나이로 뒤늦게 연예계에서 빛을 보는 샘 해밍턴은 인기가 없던 2008년에 가족오락관에 두 번 씩이나 출연했다.
그 뒤 진짜 사나이에서 참수리호 방향타 수동조절시 선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통신 훈련이 가족오락관의 '고요속의 외침'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점을 착안하여 제작진이 샘의 가족오락관 출연분을 KBS에서 자료화면으로 퍼와서 확실하게 인증.
또한 가족오락관에 나오지 못해서 약간 후회가 되는 연예인도 몇몇 사람이 존재하며 김태희, 손담비, 한예슬 등등... 그 중에서도 아마 제일 후회가 되는 연예인은 JK김동욱일 것이다. 그는 2005년 11월 쯤 첫 예능 프로그램이 가족오락관과 스타 골든벨이 겹쳐있어서 가족오락관을 버리고 스타골든벨에서 처음으로 예능에 도전했지만 워낙 임팩트가 없었던 터라 결과는..... 그 후로 그는 예능 증후군으로 7년간 속병을 앓기도 했다. 웬만하면 예능 나오지 말고 가족오락관부터 예능준비를 했어야지...
1.6.3 유명한 일화
예전 토크박스에서 김학래가 언급한 얘기 중에 하나다. 개그맨 김한석과 관련된 얘기였는데, 김한석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할 때는 주변인으로 자주 나와 개그맨과 리포터를 전전하면서 활동했었다. 그 뒤 사랑의 스튜디오 객원MC로 뜨고 나서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에 섭외전화를 받았는데 가족오락관 녹화하는 시간이 코미디 프로그램 회의하는 날하고 겹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김한석은 임하룡에게 "저 오늘 친구 병문안 있어가지고 병원 좀 갔다오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임하룡은 "안돼! 인마!"하고 단칼에 거절하자 김한석은 "제 친구가요,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다리를 다쳤거든요. 친구 좀 도와주겠습니다."라고 구라를 얘기하자 임하룡은 '그래, 그럼 갔다 와!'라고 허락해서 김한석은 '가족오락관'의 녹화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어느 개그맨이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그가 나오는 방송분을 우연히 보는 바람에 김한석은 6개월 출연정지를 먹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카더라. 그 당시에 같이 출연했던 연예인이 이범수와 故 장진영이었다.
1.7 패러디
종영 이후에 MBC의 전 일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79회에서 허참이 특별출연하여 '가족오락관'을 펼친 바 있다.
2011년 1월에 상상오락관이 공식 후속 프로그램으로 부활했지만 4개월만에 종영되었다.
2012년 5월에 JTBC의 신화방송에서 신(新) 가족오락관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했으며, 허참이 직접 출연하여 MC를 맡았다. 여자 파트너는 박지윤 아나운서.
2013년 추석특집 때 맘마미아 맘마오락관으로 리메이킹되었다.
2014년 2월 16일에는 1박 2일에서 패러디했으며, 허참이 직접 출연하여 MC를 맡았다. 여자 아나운서 파트너는 이슬기 아나운서.
2 투니버스의 전 프로그램
1번과는 무관하며, 한때 투니버스에서 매주 월~금 밤 8~10시에 방송했었던 전 프로그램. 주로 가족과 관련된 테마로 된 만화들 중 방송분을 임의로 선정해서 방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