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룡

KBS 코미디대상 대상
심형래
(1988)
임하룡
(1989)
김미화
(1990)
임하룡
(1991)
이창훈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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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임하룡(林河龍)
본명임한용
출생1952년 10월 31일, 충청북도 단양군
신체167cm, 68kg, O형
학력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데뷔1981년 KBS '즐거운 토요일'
가족아들 임영식

1 개요

심형래와 함께 80년대 개그계의 전설

대한민국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 본명은 임한용. 1952년 충청북도 단양군 출신이다. 이북출신도 아닌데 실향민이다. 어린 시절 살던 마을이 충주댐 공사로 수몰되었기 때문.

중동중학교, 제천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1997년 명예학사를 받았다.
고등학교때 오락부장을 맡으면서 좀 놀았...다는 고백을 했는데 이때 경험이 추억의 책가방이다. 열차를 타고 가는데 어린 아기가 너무 울고 하는데 그 앞에서 재롱으로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계속 웃었다는(...) 수준으로 재능이 피어나고 있었다. 입대를 했을 무렵 친척들에게 보증사기 크리로 가세가 기울어서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정신병원에서 사이코드라마를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밤무대에서 사회를 보다가 KBS 특채로 코미디언이 되었다. 이때 밤 무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바로 전유성과 김학래.

코미디언으로 활동했을 당시 심형래와 더불어 개그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활동을 보였다. 초창기에는 애드립으로 라디오 방송에서 북한 군관 흉내를 냈는데 적화통일하면 순자 동무래..운운하는 바람에 80년대 무기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중전 능멸죄 전유성도 비슷한 케이스로 출연정지를 먹은 적이 있는데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후 KBS 하룡서당을 통해 이름을 얻고 출연하는 코너마다 대박을 쳐서, 요즘말로 국민오빠 반열에 올랐다. 이 무렵 KBS 코미디의 4대천왕이라면 단연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 임하룡이었다. 다만 오늘날 다른 세 사람에 비해 인지도나 파괴력이 2% 부족한 면이 있는데, 독자적인 개인기나 애드립 등으로 튀는 스타일이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음으로 양으로 받쳐주는 2인자로 보이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은근히 웃기는 모습.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은 나이도 비슷하고 개그 스타일이 서로 달라, 함께 코너를 한 적이 전혀 없으나, 임하룡은 4대천왕의 큰형답게[1] 그들 모두와 코너를 해 히트친 적이 있을 정도로[2] 어떤 스타일 개그든 상대와 궁합을 맞추는 능력이 탁월한, 실제로는 진정한 1인자였다. 맹구와 오서방으로 유명한 진정한 KBS의 슈퍼 레전드라 칭해지는 개그코너 봉숭아 학당의 선생님도 임하룡[3]이었다. 당시 학생으로 출연한 이창훈이나 오재미 같은 주역의 베테랑 연기자 후배들 뿐만 아니라 단역 학생들이었던 김용만, 유재석, 남희석 등 떠오르는 20대 신예들의 개그도 적절하게 받쳐주어 코너를 최고의 히트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4] 또한 그는 그 전설의 라이벌들도 이룩하지 못했던 업적인 KBS 코미디 대상 2회 수상자이다.[5] 주로 웃겼던 스타일 기믹은 '나이 먹을 수록 젊어지는 오빠'로 실제로 40대 이후 젊었을때 사진을 방송에 가지고 나와 더 젊어진 듯한 모습을 확인시켜 보이며 단순한 기믹이 아니라 진짜임을 보이기도 했다.

조폭 보스 '쉰옥수수'로 철없는 2인자 '밥풀떼기' 김정식과 똘마니들을 거느리고 소동을 벌이는 '도시의 천사들'이나, '장군'으로 심형래를 비롯한 당나라 군대 얼빠진 병졸들과 투닥거리는 '변방의 북소리'에서 이런 강점이 잘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자신보다 서열(상하관계)이 낮은 '주인공(중심)' 역할을 맡은 개그맨에게 딴죽를 거는 역할. 임하룡이 개그계를 떠난지 거의 이십여 년이 흘렀지만 찰진 츳코미를 거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개그맨은 임하룡 이외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주역급으로 활동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추억의 책가방'이나 '내 청춘을 돌려다오', '귀곡산장' 같은 코너에서 양아치 학생이나 노망젊은 오빠(…) 같은 확실한 컨셉을 잡은 캐릭터를 그럴싸하게 연기해냈다. '귀곡산장'에서는 산장주인 부부 중 할머니 역할을 한 이홍렬의 남편인 할아버지로 나와 좋은 궁합으로 히트를 이뤄냈다. 더불어 짱구는 못말려를 상당 부분 베꼈다가 금세 사라진 <두통이는 못 말려>라는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 적도 있으나 이건 알려지지 않았다.

이미 전성기가 다 지나가던 그 후의 시절, 예능에서 슬슬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던 시점에서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요리대결 프로그램인 '요리천하'에선 '코미디언은 웃기는거 밖에 못한다'란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그 프로에서 임하룡은 매주 당대의 소문난 요리사들과 요리대결을 했는데, 비록 승리를 한 적은 한두 번 남짓이었지만, 관중과 세 명의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켜 3포인트(맛, 음식의 모양, 창의력) 중 한 포인트라도 따내면서 자신의 열정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6]가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책임졌던 가수는 NRG의 전신인 '하모하모'(이성진, 천명훈)였고, 심사위원 중 한명은 야구계 은퇴 후 잠시 예능계에 몸담았던 롯데의 수호신 최동원이었다.

아직도 임하룡 별명이 젊은 오빠로 통하고, 개인기다이아몬드 스텝으로 기억하는 것도 이때 활약상 덕분이다.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 스텝을 신승훈에게 전수했다 카더라.

간간히 영화 쪽에 얼굴을 내밀었고, 어린이 영화 뿐 아니라 조재현이 나온 <얼굴> 등 나름대로 정통파 연기를 좀 했고 SBS 개국 이후에 기존의 코미디 쇼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와 후배 코미디언들의 득세로 코미디 쇼에서의 자리를 잃은 후[7] 코미디언 최초로 프리랜서 선언을 해서 MBC를 평정했고 이후 사실상 배우로 전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인터뷰를 통해 코미디언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는 걸 과시했다.

어떤 의미로 심형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만 감독이 아닌 배우의 위치를 고수했고 연기력도 좋아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하는 등, 코미디언 출신으로 영화계에 진출한 인물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다. 게다가 드라마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데 최강칠우에서는 주인공 칠우의 양아버지 역을 하기도 했다.

여담인데 심형래를 혼내주는 스승이나 상관으로 하도 많이 나와서[8] 심형래 어머니가 임하룡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인품 좋은 선배로도 연예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듯. 8~90년대 군기 잡기가 일상이었던[9] 코미디 계에서 동료들이 후배 상대로 똥군기를 잡고 있으면 말렸고, 오히려 후배들을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이혼경력이 있던 이경애의 인터뷰에서, 당시 루머에 시달렸던 자신을 변호해줬던 유일한 인물로 임하룡을 꼽았고 박수홍도 감자골 4인방 영구제명 사건 때 자신들을 변호해줬던 유일한 선배라고[10] 임하룡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야말로 모두에게 존경받는 코미디언계의 '어른'으로 런닝맨에 출연했을 당시 유재석지석진 역시 깍듯이 대접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연예계에서 경조사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별로 안 친한 사람이더라도 경조사가 있으면 꼬박꼬박 참여한다고 한다. 본인은 무슨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인간으로서 해야할 마땅할 도리라고 생각하는듯. 그렇게 경조사를 잘 챙기다 보니 임하룡 아들 결혼식 때 워낙 하객들이 많이 와서 줄을 섰다고 한다. 임하룡의 인망이 얼만큼 두터운지 알 수 있는 좋은 예.

2013년 3월 3일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 김학래, 최양락, 장두석, 이봉원, 이경래 등 올드 개그맨들과 함께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올랐고, 레전드 '다이아몬드 스텝'을 알린 '추억의 책가방' 에서 열연을 보여주며 죽지않은 개그감을 선보였다. 이 때 임하룡을 패면서 혼내는 선생님 역을 맡았던 까마득한 후배 박영진은 비록 연기였지만 때리면서도 심장이 벌렁벌렁 했을듯... 그리고 깨알같은 임하룡의 대사 "선생님! 몇 년생이세요?", "선생님! 아버님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왠지 저는 알고 싶어요~"

그리고 SNL 코리아 시즌2의 4화 '크루 스페셜'에서는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 김슬기와 부부기믹을 보였다. 이 때도 나이를 이용한 드립과 코믹연기가 일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과 함께 단 넷뿐인 KBS 연예대상 2회 수상자이다. 그를 제외한 셋의 위상을 생각해볼 때, 그의 전성기 시절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정말 최고였다

1.1 주요 출연작

  1. 최양락보다 10살이 많고, 김형곤이나 심형래보다도 5살 이상 많았다.
  2. 심형래의 레전드 꽁트 중 하나인 변방의 북소리에서 바보병사 역할의 심형래에게 당해주는 장군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임하룡이다. 물론 주로 심형래가 웃기는 역할이었지만 임하룡의 적절한 받쳐주기 능력이 없었다면 최고 히트코너가 될 수 없었다는 건 심형래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3. 물론 1대 선생님이 김형곤이고, 2대 선생님이 임하룡이었지만 임하룡이 더 오래 맡았으며 그때가 봉숭아 학당의 전성기였고, 바로 그 시기에 맹구 이창훈이 코미디 대상을 탔었다.
  4. 알다시피 봉숭아 학당의 선생님 역할은 개그계에서 급이 높던 거성들만 했던 역할이다. 당해주기만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성강한 개그 캐릭터들이 순서에 맞게 웃음포인트를 살릴 수 있도록 조화로운 진행을 해야 하기에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개그콘서트에서 코너가 부활했을때에도 선생님 역할은 김미화, 박미선, 이병진, 박준형 등 베테랑 코미디언들만 했던 역할이다.
  5. 후에 KBS 연예대상으로 바뀐 뒤,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과 같은 기라성같은 후배 3명이 2회 수상을 했다.
  6.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냉장고를 부탁해김풍과 같은 기믹이다.
  7. 이때 코미디 쇼에서 자리를 잃고 낙향한 코미디언들은 김창준, 박세민, 신경숙, 이하원 등이 있다. 김성은(미달이 아님)은 그나마 다행인 축에 속하는데 코메디언으로 얻은 인기를 이용하여 TV유치원 하나둘셋(현재의 TV유치원 파니파니)에서 깔깔마녀로 캐스팅돼서 현재까지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활동중이다. 물론 이경규와 박미선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대성하긴 했다.
  8. 변방의 북소리말고도 X특공대라는 코미디 코너에서 임하룡이 특공대장으로 나오고, 얼간이 부하인 심형래가 나온다든지 임걱정이란 코미디 코너에서 임꺽정을 패러디한 임걱정으로 나오는 임하룡을 골탕먹이는 부하로 역시 심형래가 나왔으며, 내일은 챔피언의 복싱관장과 연습생 등 정말 많은 코미디 코너에서 단짝으로 나왔다.
  9. 군부 독재가 길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이런 경향이 있었다.
  10. 감자골 4인방을 몰아세우며 공격하던 희극인들에게 '이 친구들이 어린애도 아니고 군대도 다녀온 친구들인데 왜 이렇게 어린애 혼내듯 혼내고 몰아세우느냐'고 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임하룡은 이미 40대 베테랑이라 그 희극인들 대다수보다 선배이긴 했다.
  11. 이때는 단역으로 나왔다. 영화계 입문 초기였기 때문이다.
  12. 왜 그런지는 가사를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