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

만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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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
위서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족선비족부여고구려옥저읍루예맥마한/진한/변한주호

1

고대쑹화 강 일대부터 함경도, 강원도 북부에 걸쳐 존재했던 공동체. 문헌상으로 보다 후에 나타난다. 본래는 맥과는 구분되는 세력이었으며, 맥보다 동방에 위치하여 은주시대 이전까지 중국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부터는 서서히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국가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부여의 패퇴, 고구려의 확장 등으로 서서히 세력이 미약해지다가 끝내는 맥계의 고구려에 동화된다. 이로 인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한 한국인에게 익숙한 '예맥'이라는 연칭이 완성된다.

이들 종족이 주류인 국가는 부여, 등이다.

2

貊. 고대 만주 지방에 존재한 종족.

은주시대부터 간헐적으로나마 그 기록이 등장하며, 해당 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중국의 정북방에서 동북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삼국지의 기록도 그렇고, 중국 입장에서는 영 고깝게 보였던 듯. 목축 민족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는데, 이는 맹자가 '수확의 2분의 1을 거두면 걸왕과 같고, 수확의 20분의 1을 거두면 맥과 같다(이후 중국 고유의 세제로 10분의 1세를 주장)'고 한 말에서도 (다소 정주를 위한 공동체 예산 및 세제의 정착이 미약했으리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이 고조선 건국을 주도했다는 설도 있으나 논란이 많고, 다만 후에 고구려 건국 및 확장 시에 대두된 것은 확실하다. 물론 고구려 세력이 유일한 맥계 공동체는 아니었고, 고구려 통합 과정에서 대수맥(大水貊), 소수맥(小水貊), 양맥(梁貊) 등이 편입되어 나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세력이었기 때문인지, 북송 시대에 고려 사신의 행패를 소동파가 비난할 때 비칭으로 쓰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맥적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貊賊入貢 無絲髮利而有五害 今請諸書與收買金箔 皆宜勿許。
-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고유 풍습과 관련된 말로 '맥궁(貊弓)'이나 '맥적(貊炙)' 등의 말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맥적은 한국 요리너비아니의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받고 있다.

3 예맥

맥은 후에 계통의 국가들을 흡수하고 '예맥'으로 연칭되는 형태로 발전한다. 요동에서 평안도, 강원도 일대에 분포하던 예맥 세력은 남방의 삼한과 함께 현대 한민족의 원류가 되었다. 북방 예맥계인 고구려인과 남방계인 신라인, 백제인은 민족적 이질성이 강했다. 셋은 정체성이 뚜렷해 고려시대까지도 삼국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며 민족적 차이는 완전히 소멸해 조선인, 한민족으로 단일민족화 된다.

4 표기 문제

이들 세력이나 종족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헌상으로 예와 맥은 '예', '맥'으로만 존재할 뿐 '예족', '맥족'이라 기록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동이(東夷)'의 경우 '동이족'이라는 혈연적 민족이 있었던 게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 동쪽의 이민족들을 총칭했던 용어가 '동이'일 뿐인 것 처럼. 한편 예맥을 예와 맥이라는 특정 혈연 민족으로 보는 경우 이들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헌상에는 姜, 氐, 凶奴라고 나타나는 민족을 강족, 저족, 흉노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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