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 교향곡 제8번 C단조 작품 65
(Sinfonie Nr.8 c-moll op.65/Symphony no.8 in C minor, op.65)
1 개요
쇼스타코비치의 여덟 번째 교향곡. 독소전쟁 개전 초기에 쓰여진 전작 7번에 이은 전쟁 시기의 두 번째 교향곡인데,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이기고 쿠르스크 전투에 돌입하던 1943년 여름에 작곡되었다.
장조를 기본 조성으로 사용했던 전작과 달리 이 곡은 단조를 사용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이 강한 탓에 7번에서 보여준 '고통을 넘어 환희로' 라는 베토벤풍 도식을 느끼기 힘들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곡은 종전 후 안드레이 즈다노프 등 스탈린의 노예추종자들로부터 반동적인 작품이라고 맹렬히 까이고 말았다. 하지만 초연 직후와 전쟁이 한창일 때는 7번 만큼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자주 연주된 듯.
또한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와 깊은 친교를 맺고 있었던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에게 작곡가 본인이 헌정한 곡이기도 하다.
2 곡의 형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중 처음으로 5악장제를 택했는데, 1악장이 전 악장 중 가장 긴 23~27분 가량이나 되는 연주 시간을 요한다는 점에서 6번과도 약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3악장 이후로는 모든 악장이 쉼없이 연주되기 때문에, 크게 3부 구성의 교향곡으로 보기도 한다.
느린 아다지오(Adagio)로 시작하는 1악장은 5번에서처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묵직하고 강한 억양의 부점 리듬이 인상적인 주제를 바로 켜면서 시작한다. 이 주제의 첫 마디에서 음형은 '다(C)-내림나(Bb)-다' 인데, 이 음형은 이 악장 뿐 아니라 전곡에 걸쳐 집요하게 반복되며 곡의 통일성을 높여주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초반부는 거의 이 주제의 변형과 확대, 단축형으로만 진행되는데, 그래서 주제가 아닌 하나의 섹션으로 보기도 한다. 이어 박자가 러시아 민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5/4박자로 바뀌고 템포도 약간 당겨지면서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된다. 비올라와 첼로가 8분음표 위주로 규칙적인 리듬을 새겨주는 가운데 바이올린이 호흡 긴 새로운 선율을 연주하며, 이어 첼로가 대선율로 가세하거나 첫 마디 음형을 곁들여 길게 혹은 짧게 변형시켜가며 진행된다.
이어 플루트가 나지막하게 첫머리의 저음현 선율을 재현하면서 일종의 발전부가 시작되는데, 다른 목관악기들과 비올라, 첼로, 호른 등이 가세하면서 긴장감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 현악기들이 규칙적으로 새겨줬던 리듬을 이번에는 팀파니와 트롬본, 튜바, 스네어드럼 등이 거칠게 연주하고, 트럼펫이 두 번째 섹션에서 바이올린이 연주했던 선율을 변형시켜 세게 불며 첫 번째 클라이맥스가 만들어진다.
그 직후 템포가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 너무 빠르지 않게)로 바뀌고 4/4박자로 변박된 뒤 행진곡풍으로 진행되는데, 주요 소재들은 예전에 나왔던 것들의 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전의 아다지오처럼 길지 않고 일종의 경과구 혹은 이행부처럼 짧게 취급된다.
빠른 연주로 긴장감이 다시금 높아진 뒤 템포가 다시 느려져 맨 첫머리의 주제를 다시 재현하는데, 이 부분이 이 악장 전체의 진짜 클라이맥스다. 스네어드럼과 베이스드럼, 팀파니를 앞세운 관현악의 길고 강한 크레센도(점점 세게)와 심벌즈의 강타, 트럼펫을 앞세운 금관의 강렬한 주제 연주가 연속해 나오면서 거의 공포감까지 조성할 정도인데, 현악기가 거친 트레몰로로 이 부분을 마무리지으면 코랑글레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길고 우울한 솔로를 연주한다.
이 긴 독주 악구가 끝나면 두 번째 섹션의 주제가 역시 코랑글레 솔로로 짧게 재현되며, 이어 첼로가 첫 번째 섹션의 주제를, 약음기 끼운 트럼펫과 트롬본이 맨 첫머리의 저음현 주제를 변형시켜 차례로 짧게 재현하고 여린 음량 속에서 끝난다. 이렇게 처음 나왔던 순서와 역순이 되도록 주제나 주요 선율들을 재현하는 방법은 7번 1악장에서도 나온 바 있다.
2악장은 3부 형식의 스케르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형식에서 일탈한 간주풍 대목인데, 현악기들이 거칠게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의 음형도 1악장 첫머리와 비슷하게 '내림라(Db)-다(C)-내림라' 로 되어 있다. 이 주제가 짤막하게 발전되고 나면 피콜로 솔로로 악기 특유의 찌르는 듯한 고음역을 활용한 운동성 강한 새로운 선율을 연주한다. 여기에 비슷한 성향의 피콜로클라리넷을 곁들이거나 상대적으로 둔해 보이는 바순과 콘트라바순이 대선율을 연주하게 하는 등 악기 결합 면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 부분 다음에는 첫머리의 현악기 선율을 금관악기가 타악기들의 지원과 함께 연주하며 일종의 재현부처럼 보이는 대목이 시작되지만, 재현부라고 보기는 힘들고 6번 2악장 후반부처럼 기존 선율들을 뒤섞거나 풀어헤쳐 모호하게 만드는 '해체' 효과를 보고 있다. 목관악기 위주로 음량을 줄이며 끝나나 싶다가 갑자기 금관이 크레센도로 갑툭튀한 직후 팀파니가 악장 맨 첫머리의 내림라-다-내림라 음을 강하게 두들기며 끝난다.
3악장은 거의 기계적인 느낌의 대목인데, 비올라가 아주 집요하게 4분음표로만 구성된 선율을 또박또박 끊어서 연주한다. 여기에 저음 현악기들이나 팀파니, 트롬본이 강세를 넣기도 하고, 클라리넷이나 트럼펫이 고함소리 비슷한 효과의 동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이나 트롬본으로 옮겨 연주하기도 하지만 기본 4분음표 리듬 자체의 단순성과 반복은 악장 전반에 걸쳐 계속 유지된다.
이어 중간부에서는 4분음표 리듬을 베이스드럼과 심벌즈가 이어받아 작게 새기는 식으로 연주하는데, 그 위에서 트럼펫 솔로가 다소 신랄하게 변형된 기상나팔 혹은 행진 신호풍 선율을 낭랑하게 연주한다. 이 대목이 끝나면 다시 비올라의 4분음표 리듬이 반복되는 초반부로 돌아오는데, 현악기들에 약음기를 붙이고 몇 가지 악기 조합을 바꾼 것만 빼면 기본 구성 원리는 비슷하다.
후반부에서는 약음시킨 팀파니가 4분음표 음정을 강하게 때려대고, 관악기들이 일제히 고함소리풍 동기를 강하게 불어대면서 곧바로 4악장으로 들어간다. 악장 시작 부분에서는 스네어드럼이 최대한 세게 트레몰로를 하는 동안 탐탐과 베이스드럼, 팀파니, 심벌즈, 서스펜디드 심벌, 실로폰 등 다른 타악기들이 가세하며 이 교향곡에서 최고로 '돋는'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다.
귀청 떨어지는 관현악 총주가 멎은 다음에는 심벌즈의 강타와 트롬본의 주제 제시가 나오는데, 이 주제는 저음현으로 옮겨져 전악장에 계속해서 리프처럼 깔린다. 특정 음형을 집요하게 반복하는 아이디어는 3악장과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그 음형 위에 계속 다른 선율을 얹어가거나 변형시키며 진행하는 변주곡 양식인 파사칼리아(Passacaglia)라고 볼 수 있다.
한층 기계적이고 시끄러웠던 이전 악장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로 일관하며, 호른이나 플루트, 피콜로, 클라리넷 등의 관악기들이 솔로 혹은 중주 형태로 연주하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파사칼리아의 기본 음형 중에도 1악장이나 2악장 첫머리에서 볼 수 있는 3음으로 이루어진 동기도 부여되어 있기도 하다.
4악장도 계속 이어져 5악장으로 들어가는데, 클라리넷 세 대가 C장조의 으뜸화음을 작지만 길게 연주하며 뭔가 밝은 분위기를 암시한다. 바순 솔로가 꽤 길고 고음역 위주인 첫 주제를 연주하는데, 여기서는 아래로 꺾여왔던 3음 동기의 모양이 바뀌어 '다(C)-라(D)-다' 로 언덕 모양이 되어 있다.
바순에 이어 바이올린이 주제를 받으며 한층 더 편안하고 밝은 느낌을 주며, 플루트와 트라이앵글 등의 경쾌한 악기들도 부선율을 연주하며 거든다. 하지만 마냥 밝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일관하지는 않고, 중간부로 가면서 템포가 더 당겨지고 바이올린이 개방현[1]의 음을 곁들인 약간 불가사의한 댄스 리듬의 악구를 연주하기도 하는 등 점차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있는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한다.
다소 중구난방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되다가 팀파니가 트레몰로를 연주하면서 1악장 후반부에서 보여준 가공할 만한 클라이맥스가 재현된다. 하지만 그 때보다는 다소 단축되고 변형된 형태이며, 임팩트도 그리 크지 않다. 흥분이 진정된 뒤에는 베이스클라리넷과 바이올린 솔로라는 상반된 음색의 악기들을 조합해 이행부를 연주하고, 첼로 솔로나 바순의 고음역 듀엣 연주도 이어지면서 밝은 분위기로 다시금 전환된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장대한 결말로 이끌어지지 않고 작은 음량 속에서 바순 솔로의 첫머리 음들인 다-라-다 음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조용하게 끝을 맺는다.
악기 편성은 플루트 4(3~4번 주자는 피콜로를 겸함)/오보에 2/코랑글레/피콜로클라리넷/클라리넷 2/베이스클라리넷/바순 3(3번 주자는 콘트라바순을 겸함)/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심벌즈/스네어드럼/베이스드럼/탐탐/트라이앵글/탬버린/실로폰/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플루트족과 클라리넷족을 네 대씩 쓰는 변칙 3관편성 스펙이다.
3 초연과 출판
1943년 11월 4일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초연되었고, 악보도 초연 직후 소련 국립음악출판소에서 간행되었다. 7번과 마찬가지로 출판된 악보는 서방에 전해졌고, 미국과 영국, 멕시코 등지에서 순차적으로 공연되었다.
4 평가
하지만 꽤 장대한 관현악 총주로 끝나는 '뽀대나는' 7번에 비하면 이 곡은 아주 여리게 끝맺는다는 점에서 뭔가 조루같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특히 소련의 높으신 분들이 그랬는데, 쇼스타코비치가 하필이면 소련군이 독일군을 쳐바르기 시작한 반격기에 이렇게 내면으로 침잠하는 어두운 곡을 썼다고 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레닌그라드 교향곡' 다음인 이 곡에 '스탈린그라드 교향곡' 이라는 영웅적인 표제를 붙이려던 이들도 곡을 들어본 뒤 버로우타고 말았다.
결국 1944년에 열린 소련음악가동맹의 작곡 분과 토론회에서 이러한 점이 비판을 받았지만,[2] 진정한 관광은 전후 안드레이 즈다노프를 위시한 소련 문화예술계의 권력자들이 주도한 보고 대회(라고 쓰고 맘에 안드는 사람 대놓고 까기라고 읽는다)때 공론화되었다. 사실 이 때 가장 심하게 까인 쇼스타코비치 작품은 후속작인 9번이었지만, 이 곡도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작품이라고 만만찮게 욕을 먹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지인들도 소련 정부와 견해는 비슷하지만 그 방향성은 다르게 곡을 평가했는데, 이사크 글리크만이나 이반 솔레르틴스키는 이 곡을 서사적인 고대 그리스 비극풍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해석을 좀 더 반체제적으로 끌고나간 솔로몬 볼코프 등의 망명 음악학자들은 이 곡을 당시 전쟁의 참화와 스탈린 정권의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곡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가하기도 했다.
지인들이나 후배들이 긍정적인 의미의 비극이라고 평했건, 소련 정부가 반동적 비극이라고 평했던 간에 이 곡의 어두운 삘은 듣는 이나 연주하고 지휘하는 이나 피해갈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5번 만큼 논쟁이 강하게 오가지는 않지만, 이 곡을 쓴 쇼스타코비치의 진정성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마찬가지로 온갖 의견이 나올 수 있을 듯.
- ↑ 지판에 손가락을 짚지 않은 상태의 현을 말함. 같은 음이라도 손가락으로 짚어서 내는 소리와 개방현을 그냥 활로 그어 내는 소리는 확실한 음색차가 있으며, 짚는 손가락이 아예 없는 개방현에 긋는 것이 한층 울림이 강한 소리를 낸다.
- ↑ 참고로 이 비판을 주도한 이는 쇼스타코비치의 선배인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였다. 하지만 그도 전후 즈다노프의 관광 때 같이 까였다.
누굴 까려면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