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자위대의 역대 육상막료장 | ||||
11대 미요시 히데오 | → | 12대 구리스 히로오미 | → | 13대 다카시나 다케히코 |
자위대의 역대 통합막료회의의장 | ||||
9대 사메시마 히로이치 | → | 10대 구리스 히로오미 | → | 11대 다카시나 다케히코 |
栗栖弘臣. 1920-2004.
1 개요
2 생애
일본육군사관학교가 아닌 도쿄대학 출신이다. 1920년에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구레(呉) 제1중학교, 도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43년에 도쿄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고등문관시험을 수석 합격해 내무성에 들어가게 됐지만 일본 해군 단기장교를 지원해 군법무관이 되었다. 종전 당시 계급은 대위였고 전범 재판 등에서 변호인을 맡았다.
귀향 후에 변호사로 근무하던 중에 1951년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주프랑스 일본방위주재관, 제13사단장, 동부방면대 총감 등을 거쳐 1976년에 미요시 히데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올랐다.[1] 1977년에 육막장은 다카시나 다케히코에게 이임하고 사메시마 히로이치에 이어 10대 통합막료회의의장에 올랐다.
의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지금의 자위대 관계법으로는 침략한 군대가 자위대원들에게 발포를 하게 되어도 총리의 출동명령이 내려올 때까지는 자위대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즉각응전조차 할 수 없다. 결국 자위대원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초법규대응으로 전투를 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할 유사법제의 제정의 필요하다"라고 발언하여 초Fuck You법규 대응 문제를 일으켰다. 자위관이 정견을 밝히는 것은 문민통제에 중대한 도전이었기에 자위대의 장관급 장교들을 두둔하던 가네마루 신 당시 방위청장관은 그를 사임시켰다. 후임자는 육막장과 마찬가지로 다카시나 다케히코였다.
어쨌거나 2003년에 관련 유사법제는 정리되어 이 문제는 일단락 되었고 자위대 관련 주요 이슈로 유명하다. 구리스는 방위청장관을 방위대신으로 격상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2007년에 북핵 실험의 여파로 방위청은 방위성이 되었다. 그전에 죽어서 본인은 못 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