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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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의 방위를 담당하는 해상 병력에 대해서는 해상자위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일본군
일본군 육군일본군 해군

일본어 : 大日本帝國海軍だいにほんていこくかいぐん
영어 : Imperial Japan Navy(IJN) - 일본 제국 해군

1 상세


일본 제국 시절의 해군. 정식명칭은 대일본제국해군(大日本帝國海軍)이며, 상징 이미지는 벚꽃, 상징 깃발욱일기를 썼다. 전후 해상자위대욱일기와 주요 간부진을 그대로 계승[1]했는데, 그래서 넷 우익들의 일본군 부활 떡밥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고통수권자는 육군과 마찬가지로 덴노였으며 내각에는 권한이 없었다. 그 아래로는 해군 대신, 군령부 총장,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일종의 과두제를 구성했다. 기본적으로는 해군대신이 군정권을 행사했고, 군령부 총장이 군령권을 쥐고 있었으며,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실전부대를 지휘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셋의 위상은 복잡하다. 해군대신이 명목상 서열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후시노미야같은 황족이 군령부총장으로 있을 경우는 사실상 군령부에 힘이 쏠리기 쉽고, 야마모토 이소로쿠같은 거물이 연합함대를 틀어쥐고 있을 경우는 역시 상급자인 해군대신, 군령부총장도 통제를 못했다. 그런 경우를 빼면 보통은 동급으로 대우받는다.

전시에는 육군과 대본영을 설치했다. 프로이센 육군을 모방한 육군과 달리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을 모방했다.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제해권을 중시하였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으로 잘 알려져있듯 육군과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 미국 육군과 해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합동작전을 실시했지만 일본 육해군이 합동전투를 한 것은 과달카날,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레이테 만 해전 뿐이었다. 인원은 해군이 훨씬 적어서 육군보다 복지가 좋았는데, 그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육군에서 많이 느꼈다고. 대신 국내 정치에서 입김이 강한 것은 육군이었으니 해군도 아쉬운게 있기는 하다. 전통적으로 일본 육군은 러시아와 소련을 가상 적국으로 판단했지만 해군은 미국을 가상적으로 판단했다.

출신 학교와 학교에서의 성적을 따지는 철저한 학력 절대주의 집단이었으며, 해군의 특성상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많다보니 서양인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 해군 장교들에게는 상당한 수준의 교양 교육이 행해졌던 것이 특징. 덕분에 해군의 장교들은 사회 최상류층과 대등한 혹은 오히려 그 이상의 교양수준을 쌓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수도 육군에 비해 적었고.[2]

하지만 이것이 삐딱한 엘리트 의식을 낳아 경직되고 폐쇄적인 조직체계가 갖춰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단 군내부에서의 지위와 대우는 오로지 학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실제 능력은 그 다음 문제. 또한 장교들이 엘리트 의식에 빠져있는 탓에 부사관들은 장교로 진급을 할 수 없었다. 경력이 오래되고 능력있는 인물들을 그대로 하사관에서 썩게 만드는 것은 전력손실이라는 이유로 제도가 개편되긴 했는데, 그렇게 생긴 것이 특무사관이라는 특별 계급. 하사관에서 능력있는 인물들을 특무사관으로 진급시켜 특무소위, 특무중위, 특무대위 등으로 장교 취급을 해주긴 했는데,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었다. 계급장부터가 한눈에 봐도 장교와는 구분되도록 만들어졌으며, 아직 부임조차 하지 않은 견습장교의 지휘권이 특무대위보다 위에 있었을 정도의 위치. 당연히 장교들로부터도 같은 급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이러다보니 하사관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수병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고, 장교계급 외의 군기는 상당히 막장이었다.[3]

전술적인 수준에서는 나름대로 우수한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전략적인 수준은 전술적인 능력에 비하면 좋다고 보기는 어려웠다.사실 친구들도 다를바가 없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보급의 중요성 자체는 이들도 알고는 있었고 잘 갖춰진 기지에서의 보급은 일본의 경제사정에 비해서 제법 괜찮은 수준이었다. 다만 당장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물자를 제 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졌다. 그러나 2차 대전동안 97식 전차, 잘못된 전술, 버마전선을 말아먹은 장군로 대변되는 최약체 수준으로 장비수준부터가 열악했던 육군과는 달리 상당히 활약했는데 태평양 전쟁 중반까지는 미 해군과 그럭저럭 호각으로 싸울 수 있었다. 실제로 개전시 일 해군의 전력은 영국과 미국에 이은 3위였고 초반에 미 해군의 전함 상당수를 전열에서 이탈시키면서 잠깐동안 미국보다 전력이 강해지기도 했다. 1941년 기준으로 총톤수를 단순 비교해도 일 해군이 18만톤으로 진주만 공습으로 13만톤까지 떨어진 미 해군보다 우세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전략적 능력의 부재, 국력의 차이등의 이유로 말아먹고 신나게 얻어 맞았지만..

2 역사

굳이 기원을 따지자면 막부 휘하의 수군일 것이다. 막부 휘하의 수군은 1845년에 이양선이 나타나자 해군으로 정비하였다. 재래식 군선으로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쿠로후네(黑船)를 당할 바는 아니었다. 1866년에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대규모 군제 개혁을 실시해 해군봉행을 설치하고 해군총재를 뒀다. 당시 일본엔 막부 말고도 각 번에서도 해군력을 조직했는데 막부 해군은 영국에서 고문단을 초빙해 본격적인 해군을 양성하려고 하였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그러나 막부 해군은 제대로 세워지기 전에 대정봉환으로 신정부에 흡수되었다. 1870년엔 육군과 해군이 분리되고 도쿄 츠키지[4]에 해군성을 설치했다. 초기에는 사쓰마[5]가 주도했으며 1876년에 일본해군병학교가 세워진다. 서남전쟁으로 사쓰마가 밀려나면서 일본군 내부에서 육군 중심주의가 강해진다. 윤요호 사건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기도 했다.

청일전쟁풍도 해전으로 시작되었으며 황해 해전위해위 전투에서도 이홍장북양함대에게 크게 이겼다. 자세한 내용은 청일전쟁/해군 전투력 비교 참조. 대규모 승전은 지친 러시아 해군 발틱 함대를 궤멸시킨 러일전쟁쓰시마 해전이 대표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요청으로 지중해에서 수송선 호위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U-27을 비롯한 독일 유보트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들에게 피격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칭다오 공격 당시 영국군과 협조하여 칭다오 항을 봉쇄하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과 협력, 태평양에서 일본 해군은 활동을 개시하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미국을 공격했다. 그리고 결과는...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해군성은 제2복원성으로 불린다. 육군과 달리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일본이 저항하느라 연안에 기뢰를 잔뜩 설치해뒀고 이를 제거할 소해부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해상보안청이 이 임무를 위해 1만명 규모로 유지됐고 1952년에는 보안대란 이름으로 해상자위대의 전신이 해상보안청에서 분리되었다. 사실상 해상자위대는 일본 해군을 계승하고 있다.그것도 과거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해군병의 복무기간은 3년이었고 해군 지원병은 5년이었다.

3 편제

2차 대전참전하지 않은 함대는 ☆

4 해군 육전대

해맑

해군 육전대는 해병대 기능을 했다. 일본군에선 초기엔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부대를 설치하는 식으로 운용했지만 1930년대부터는 상설부대로 전환했다. 내부에 공수부대도 설치해서 1942년엔 첫 공수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종전 직전에 인원 규모는 10만 명이었는데 일본군 해군이 워낙에 강한 지휘권을 발휘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뭔가를 수행하진 못 했다. 그 때문에 자위대가 생겼을 때 해병대 기능을 갖춘 부대는 계승되지 않았다. 다만 해군이 아닌 육군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대에 직속으로 보병연대[6]가 도서 지역의 방어를 위해 상륙작전을 실행하며 2014년 기준으로 이들은 수륙기동단이란 이름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육전대의 경우 해군 장교들 사이에선 좌천되는 곳이었고, 사병들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분위기 험악하기로 유명한 일본 해군 내에서도 똥군기 심한 축에 들었고, 사기도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육군한테 질수없다 마인드로 인해(...) 훈련은 빡센 편이었다. 1943년부터 조선인을 지원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해군이 이들을 집중 배치한 곳도 육전대였다.[7] 광복 이후,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되던 시절 해군에 합류한 구 일본 해군 출신 대다수가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면서 몰아넣어졌는데, 선술했듯 함정 근무자가 전무하다시피하여 함정 운용에 도움이 안 되는 대신 육전에는 익숙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때문에, 해병대가 해군에 비해 유달리 일재의 잔재(주로 악습이나 은어 등)가 많이 남아 현재까지 골치를 썩이고 있다.

5 해군 항공대

일본군은 항공모함 등의 이유로 항공부대를 운용했다. 1904년에 최초 기안이 검토됐고 풍선을 운용하는 육군과 달리 해군은 정찰이 필요하단 이유로 1912년에 해군항공기술연구회가 설치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2,900대의 항공기를 운용했다.

6 일본 해군이 보유했던 군함 목록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군함
전투함
구축함이소카제급, 미네카제급, 카미카제급, 무츠키급, 후부키급, 하츠하루급, 시라츠유급, 아사시오급, 카게로급, 유구모급, 시마카제, 아키즈키급, 마츠급
사쿠라급, 카바급, 모모급, 나라급, 모미급, 와카타케급
잠수함L급, 해중형, 해대 1형, 해대 2형, 해대 3형, 해대 4형 해대 5형, 해대 6형, 해대 7형, 순잠 1형, 순잠 2형, 순잠 3형, 순잠 갑형 순잠 을형, 순잠 병형, 순잠 정형, 센토쿠급, 키라이센급, 갑표적, 삼식잠항수송정
경순양함텐류급, 쿠마급, 나가라급, 센다이급, 유바리, 아가노급, 오요도
중순양함후루타카급, 아오바급, 묘코급, 타카오급, 모가미급, 토네급, 이부키급
순양전함B-40, 공고급, 아마기급, 13호급, B-65
전함카와치급,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 카가급, 키이급, 후지모토 전함 계획안, A-140, 야마토급, 슈퍼 야마토급
경 / 개조 / 호위항공모함호쇼, 류조, 쇼호급(쇼호-즈이호), 류호, 히요급(히요-준요), 치토세급(치토세-지요다), 신요, 다이요급, 카이요, 시마네마루급-야마시오마루
정규항공모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급, 운류급, G18, 다이호, 카이다이호, 시나노
수상기모함노토로, 카모이, 아키츠시마, 미즈호급, 닛신
강습상륙함아키츠마루급, 쿠마노마루
연습함 / 포함카토리급, 하시다테급, 아타다C
어뢰정치도리급, 오오토리급, 제1호형 어뢰정, 갑형 어뢰정, 을형 어뢰정
해방함시무슈형, 에토로후형, 미쿠라형, 히부리형, 우쿠루형, 제1호형, 제2호형
군수지원함
공작함아카시, 아사히
급유/급탄/급병함시레토코급, 온도급, 카자하야, 하야스이, 타카노급, 하리오급, 무로토급(급탄함), 카시노(급병함)
급양함마미야, 이라코
상륙함정신슈마루, 대발동정, 제101호형 수송함
잠수모함진게이급, 타이게이
잡역선아스카C, 아타다C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C: 노획 함선, 윗첨자A: 전후 완공

{{틀:해상병기 둘러보기}}

기타 함선은 해당 항목 참조.

7 관련항목

  1. 육상자위대도 욱일기를 쓰지만 그 쪽은 뻗어나간 빛살이 8개짜리인 8조이고, 해상자위대는 일본군 시절의 16조를 그대로 이어서 쓴다.
  2. 이런 해군 특유의 귀족주의 현상은 일본만 특이한 건 아니고 1인당 소득은 다소 처지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해군에 투자를 좀 한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스페인같은 라틴아메리카쪽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3. 반면 육군의 경우 학력과 성적은 일절 관계 없는 평등주의,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두가 똑같이 개같은 취급을 받았다(…). 장교들 같은 경우는 출신학교에 따라 인맥에 의해 진급에 영향이 있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능력이 중시되었고, 하사관들도 장교 진급이 가능했다. 또 이렇게 진급한 하사관들은 장교들과 계급상 규정된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비육사라고 암암리에 무시되는 건 장교들 사이에서 마찬가지긴 했다.
  4. 어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의 노량진 같은 곳.
  5. 현재의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 남동부를 지배한 곳으로 당시 현 야마구치현 인근을 중심으로 한 조슈 번(나가토국)와 함께 일본 정치,군사쪽에서 강세를 보인 세력으로도 유명함.
  6. 일본어로는 보통과연대.
  7. 소수의 인원이 해군 지원부대나 항공부대에도 배치됐다. 일본 군부는 조선인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함선근무는 시키지 않았다.
  8. 일본 해군 예과 연습생 출신이다. 아마도 전쟁 막바지에 징병투입된 것으로 보임(임관하려고 하자마자 해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