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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 |
본명 | 앨드리드 그레고리 펙 (Eldred Gregory Peck) |
국적 | 미국 |
출생 | 1916년 4월 5일,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
사망 | 2003년 6월 12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
직업 | 배우 |
활동 | 1941–2000 |
신장 | 191cm |
종교 | 가톨릭 |
학력 |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영문과 |
가족 | 그레타 쿠코넨 (1942 – 1955) 베로니크 파사니 (1955–2003) |
- 상위 문서 : 배우/서구권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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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배우들의 위엄있는 아버지. - 스티븐 스필버그
펙은 배우들에게 있어서 성실과 정직의 아이콘이다. - 커크 더글러스
가장 완벽한 신사였다. - 폴리 버건
미남의 기준이 된 Tall dark & handsome[1]의 원조이자 표본
前 미국 영화연구소 초대 의장, 미국 암협회 회장, 미국 영화예술과학협회 회장, 미국 영화 TV 구호재단 이사장
지금이나 예전이나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할리우드의 세계에서, 한 여자만을 바라본 순애보이자 가정적이기까지 했던 완벽하고 도덕적이었던 신사
2 소개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배우.
헐리우드의 고전 미남 배우 중 한 명으로 대표작으로는 《백경(Moby Dick)》,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나바론의 요새(The Guns of Navarone》), 《오멘(The Omen)》 등을 들 수 있다.
주립 샌디에이고 교육대학[2]에 입학했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UC 버클리 영문학과와 pre-med[3]로 편입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던 중 연극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는데 이때 큰 감명을 받아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pre-med 과정은 그만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42년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해 1944년에 영화계에 데뷔했다. 1991년 《케이프 피어》를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거의 물러났다가 2003년 사망했다.
우수한 연기자로서 연기 인생에서 오스카 수상 1회/ 노미네이트 4회, 골든글러브 수상 5회, 노미네이트 3회, 에미상 1회 노미네이트를 비롯해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으며 온갖 구설수가 오가는 할리우드에서도 깔 곳을 찾기 힘든 대인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4]
생전에 가장 좋아한(배우로서) 여배우는 오드리 헵번이었다고 하며 《로마의 휴일》 촬영당시 자신의 명성에 비하면 듣보잡 여배우인 헵번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포스터에 공동 주연으로 그녀의 이름을 올리게 어필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다고 한다. 데뷔 5년차일 때 매카시즘을 반대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 외 핵무기와 총기 무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때문에 닉슨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라왔던 적이 있었다. 리버테리안인 찰턴 헤스턴과도 친하게 지냈다.
한국 배우 남궁원이 활동 당시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는 별명이었다. 당시 평균 신장을 15cm 이상 넘어가는 180cm 라는 큰 키, 짙은 눈썹만 닮았다등 정말 많이 닮았다. 닮기로는 마크 러팔로가 더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이 경우는 마크 러팔로가 남궁원을 닮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