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더글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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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성 시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에서 머...멋진 주연이다...!! 어 이분 살아계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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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커크 더글러스
KIRK DOUGLAS
분야영화
입성날짜1960년 2월 8일
위치6263 Hollywood Blvd.

1916년으로 미국 뉴욕 주 앰스터댐 출생. 유명 원로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 1920년생 백선엽, 김영주, 1921년생 필립 마운트배튼 왕, 1922년생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이희호, 스탠 리옹, 1924년생 조지 부시, 지미 카터, 김대중 전 대통령,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1926년생 필립의 아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김을분, 1927년생 송해, 심지어 100세를 못 넘기고 사망한 어네스트 보그나인, 알란 영, 오오츠카 치카오, 크리스토퍼 리, 매 영, 페뷸러스 물라, 폴 뉴먼, 레슬리 닐슨, 구봉서, 정애란,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도 고령이신 분.
전세계 주조연급으로 활약한 주요 배우 중 현존하시는 가장 최고령이신 루피타 토바르(1910년생)와 더불어 코니 소여(1912년생), 줄리 깁슨(1913년생), 지젤 카사데수스(1913년생), 노만 로이드(1914년생) 다음으로 100세의 고령자.한국으로 따지면 연예계 최고참인 송해라 할 수 있다.[1]
원조 먹방의 신[2]

1 소개

제정 러시아(현 벨로루시 고멜) 유대계 이민자인 다니엘로비치 부부의 아들로 "이수르 다니엘로비치"라는 이름을 가지고 미국 암스테르담(뉴욕)에서 태어났다. 먼저 이민을 간 형제가 신원 보증인이 되어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를 했다. 그 형제가 사용하고 있던 "뎀스키"라는 성을 본받아 사용했는데 커크도 "이지 뎀스키"라는 이름으로 자랐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에 들어가면서 현재의 이름인 커크 더글러스로 개명한다.

빈민가에 살면서 생계를 위해 어린 시절 신문 배달부터 노점상, 정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학업에 힘썼다. 학비 대출을 이용하여 세인트 로렌스 대학교로 진학하여, 학비를 벌기 위해 정원사, 경비원 등으로 일을 했다. 그는 뛰어난 레슬링 선수였으며, 사육제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여름동안 레슬링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꿈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라고 새삼 인식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 입학하여, 그 재능을 꽃피워 특별 장학생이 되었다. 이때 클래스메이트였던 로렌 바콜은 이후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1년 징병되어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에 종군했다가 1944년에 부상 때문에 제대했다.

1941년 졸업 공연으로 진행된 《봄이여 다시》(Spring Again)에서 노래하는 메신저 소년을 연기하며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제대 후 뉴욕에서 라디오를 중심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고 무대에도 출연했지만, 로렌 바콜의 추천으로 1946년 영화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The Strange Love of Martha Ivers)로 영화에 데뷔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체홉의 《세 자매》에서 안드레이 역으로 출연했고, 더글러스는 무대를 할리우드로 옮겨 활약한다. 이후 강한 이미지를 남긴 여덟 번째 출연작 《챔피언》 이후로, 처음에는 내성적인 성격 배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전사》는 아카데미상 편집상과 골든글로브 촬영상을 수상했거, 커크 본인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리고 서부 영화 《죽음의 모래》(Along the Great Divide)'에 출연해 일약 스타덤으로 등극했다.

그 후, 1955년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독립 프로덕션 '브라이나 컴퍼니'을 세웠고, 1960년 자신이 주연하고, 제작, 총지휘를 맡아 제작비 1200만 달러의 대작 《스파르타쿠스》를 만들었다.

진지한 역할이 어울리는 이미지 외에 《해저 2만리》에서 보여준 가벼운 연기와 창세기의 TV 프로그램 ‘잭 베니 프로그램’으로 뮤지컬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1973년 서부 영화 '내일없는 추격'에서 메가폰을 맡아하면서 주연을 맡았지만, 서부극 자체가 쇠퇴기에 있었기 때문에 큰 평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같은 해 TV 뮤지컬 판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작곡 : 라이오넬 바트)에 주연을 했다.

1943년 11월 2일,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서 만난 동창 여배우 다이애나 딜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장남은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 차남은 영화 ‘코카인 블루스’ 등의 프로듀서 조얼 더글러스이다. 다이애나는 1951년 이혼 후 배우 활동을 계속하였고, 벤 케이시 와 플리퍼 등의 TV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

1954년 5월 29일, 커크는 앤 바이든스와 결혼하여 다시 두 아들을 낳았다. 영화 프로듀서 피터 빈센트 더글러스와 TV 드라마 시리즈로 활약한 배우 에릭 더글러스를 낳았다. 하지만 에릭은 약물 과량 섭취에 의한 입원이나 비행기 내에서 분쟁에 의한 체포를 ​​반복하다, 2004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1991년 헬기 사고를 만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유대주의에 대한 사색이 심화되었다. 1996년 뇌졸중을 앓으면서, 언어 장애가 남아 있었지만, 2006년 종종 파티에 참석하여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2월 가끔 아들 마이클 더글라스랑 같이 부자들끼리 외식을 한다. 참고로 이때 아들의 나이는 71세.

2011년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온 바 있다.

2014년 12월 2일 누군가가 이 분 사망보고서를 실수로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은 아직도 살아있고, 정정하시다. 그리고, 2016 기준으론 101세이다. 주로 이분을 맡은 한국 성우는 황일청, 김정호(성우), 이완호 일본판은 故이시모리 탓코우가 전담했다.

여담으로 김수영의 유명한 시 「하...그림자가 없다」에도 언급되는 미국 배우다. 쓴 시인은 이 분이 오늘날에도 정정하시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하셨겠지

2 출연작

OK 목장의 결투
우정의 건맨
영광의 길
스파르타쿠스
서부로 가는 길
최후의 카운트다운

더글라스 패밀리(아들과 전 부인 다이에나 딜과 같이 가족 전원 출연)
  1. 참고로 공식적인 주연급 배우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요하네스 히스터스다. 1903년에 태어났고, 2011년에 사망했다. 여담으로 여배우로서 같은 1916년생인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멜라니로 나온 배우로 이 사람은 7월 1일생.
  2. 영화 바이킹에서 통닭을 맛있게 뜯어 먹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에서 극 중에서 그 장면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