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왕

(김우징에서 넘어옴)
75px
신라의 역대 국왕
44대 민애왕 김명45대 신무왕 김우징46대 문성왕 김경응
시호신무왕(神武王)
김(金)
우징(祐徵)
생몰년도음력?[1] ~ 839년 7월 23일
재위기간음력839년 1월 24일 ~ 839년 7월 23일 (181일)

1 개요

신라의 제45대 왕이다. 할아버지는 원성왕의 차남 예영, 아버지는 상대등을 지낸 김균정이다. 역시 희강왕이나 민애왕처럼 원성왕의 증손. 그리고 태종 무열왕 이래 나타난 신라 왕실의 복수귀.

2 생애

헌덕왕 때 아버지 균정이 시중에 임명되고, 김헌창의 난을 같이 진압하게 된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828년 시중에 임명되었다.

흥덕왕 때인 834년에 아버지 균정이 상대등에 임명되자 부자가 같이 재상이 될 수 없다하여 물러나게 되었고,[2] 그 자리를 김명(후에 민애왕)이 이어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희대의 삽질로 드러났으니...

흥덕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사촌인 제륭(후에 희강왕)과 그를 지지하는 김명 등이 아버지 균정과 왕위다툼을 하게 된 것. 여기에서 패하면서 아버지 균정은 살해당하고 자신과 김주원계의 김양청해진으로 도망가 장보고에 의탁하였다. 이때 그 유명한 사돈 약속을 한 모양.

이후 김명이 희강왕을 주살하고 왕위에 오르자 청해진의 군대와 김주원계인 김양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839년 1월 23일[3]에 민애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지 얼마 안되어 종기로 죽고 말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시중 이홍의 귀신이 그를 꿈에서 로 쏘아 그 맞은 곳이 종기가 났다고 한다. 여하간 아버지의 복수[4]도 이루었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지만 그런 복수귀스런 인생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에 비해선 왕답게 살아보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간 인물. 무열왕은 그래도 복수도 하고 나라라도 발전시켰지 그리고 뒤를 이은 문성왕이 장보고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장보고의 명도 단축시킨 셈이 되었다.

참고로 신라 역사상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왕이며 한반도 역사 통틀어서도 사반왕, 고려 순종에 이어 세번째로 재위기간이 짧은 왕이다. 안습 흔히 7개월 재위했다고 알고 있는데, 순수 날자로 따지면 6개월... 그다음이 조선 인종의 9개월.

KBS드라마 <해신>에서는 길용우가 열연했다. 작중에선 이사도의 난 진압 때 산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린 정화를 산 후 그녀의 후견인이 됐으며, 그 인연으로 장보고와도 알게 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 외는 실제 역사와 같다.

3 삼국사기 기록

一年春閏一月 신무왕이 즉위하다
一年春閏一月 조부와 아버지를 추존하고, 어머니를 태후로 삼았으며, 아들 경응을 태자로 세우다
一年春閏一月 궁복을 감의군사로 삼다
一年春閏一月 이홍이 달아났으나 잡혀 죽다
一年秋七月 치청절도사에게 노비를 주자, 황제가 불쌍히 여겨 돌려보내다
一年秋七月 왕이 이홍의 저주로 병에 걸리다
一年秋七月二十三日 왕이 붕어하다

삼국사기 10권은 원성왕부터 시작하여 신무왕에서 끝난다.
  1. 자신의 오촌 당숙이 되는 흥덕왕이 777년생인걸 감안할때 800년대 전후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김균정이 흥덕왕과는 4촌이 된다.소성왕,헌덕왕,흥덕왕,김충공 형제와 김균정은 할아버지(원성왕)가 같은 4촌지간이다.
  2. 거꾸로 말하면, 이 시기 권력이 얼마나 왕족 일가에게 집중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일화.
  3. 삼국사기》에는 1월 19일, 『민애왕석탑사리함기』에서는 1월 23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와있다.
  4. 사실 신무왕의 원수는 희강왕이긴 하지만, 희강왕을 죽게 하고 왕위에 오른 민애왕도 처음에는 희강왕을 지지하여 김균정과 대립했었다. 사실상 민애왕도 신무왕의 원수. 그거슨 골육상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