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선

1 前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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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유선
생년월일1988년 12월 1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화곡초 - 서울영남중 - 덕수고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7년 LG 트윈스 1차 지명
소속팀LG 트윈스(2007~2012)
LG 트윈스 등번호 29번
박만채김유선(2007)제이미 브라운(2008)

대한민국사이버 투수 前 프로야구 선수.

1.1 고교시절

덕수고등학교 시절에는 시속 140km 중후반대의 속구를 뿌리는 좋은 체격의 좌완 투수로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덕수고등학교 시절 1, 2학년 합쳐서 6경기에 등판해 5⅔이닝을 투구했을 뿐이었으며, 3학년 때는 아예 마운드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지명타자로만 1경기에 출전했다. 따라서 '부상을 당했다', '투구 밸런스가 붕괴되었다', '프로 구단과 사전 계약을 했다' 등 다양한 소문이 돌았다. 어쨌든 2006년은 김광현, 임태훈, 이용찬, 이원재 등 대어급 투수들이 많이 쏟아져나온 해였기 때문에 김유선의 실종이 큰 이슈는 되지 않았다.

1.2 LG 입단

그런데 2007년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는 김유선을 1차 지명하여 무려 계약금 3억 5,000만 원을 주고 입단시켰다. 팬들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1년 간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은 투수를 거액의 계약금을 줘 가면서 입단시켰느냐는 회의적인 반응과, 그래도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투수라고 하니 기대는 해 볼 만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엇갈렸다.

당시 LG의 선택에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건 사실이다.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수준이지만 당시 서울 지역 팜은 황폐 그 자체였다. 특히 1차 지명에서 선호되는 투수는 더욱 그러했는데, 이용찬과 임태훈을 제외하면 뽑을 인재가 없다는 것이 중론. 당시 2차 지명을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데, 1라운드에는 서울 지역 선수가 없고, 2라운드 가서 두 명 나오는데 모두 야수, 3라운드에야 기껏 이승우 정도가 나오는 수준이었다.

1990년대까지 주사위굴리기로 서울권 1차지명 우선권을 경쟁하던 LG와 두산은 21세기 들어서는 일종의 신사 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A팀이 한 명을 1차 지명하면 B팀이 나머지 선수 중 1차지명 한 명을 고르고, 그 다음해에는 순서를 바꿔서 B팀이 먼저 한 명을 지명하고 A팀이 나머지 중에서 한명을 지명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하필 유난히 서울 팜이 흉작이던 이 해에 뜬금없이 1차 지명이 2명으로 늘어났다.(...)[1] 이러자 당해년도에 1차지명 우선권을 쥐고 있던 두산은 이용찬임태훈 말고는 뽑을 놈이 없다는 판단 아래 일단 먼저 이용찬을 지명한 뒤, 임태훈과도 빠르게 접촉해 속전속결로 두 명 모두 계약을 해버렸다. LG는 두산이 두 투수 중에 하나를 뽑으면 나머지 한 명을 뽑으려고 손놓고 있다가 당했다. 그런데 남아 있던 게 임태훈이니까 지금 와선 잘 된 걸지도 모르지 LG는 부랴부랴 남은 자원 중에 지명하려고 선수를 찾아보지만, 남아있는 투수 자원은 김유선과 김강률 정도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1차 지명을 하려는 그 타이밍에 고양시 출신의 김강률경기고로 전학을 온 사실이 드러나 전학생 1차 지명 금지 조항에 걸리면서 LG가 손쓸 수 없게 됐다. LG 프런트는 망연자실.

그 때 LG 프런트에게 동앗줄이 내려왔는데, 그게 봉중근이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온다고 하자 LG가 만세를 부르며 1차 지명에서 봉중근을 붙잡았고, 그제서야 LG는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1차 지명에서 두산에 형편없이 밀린 상황을 그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1차에서 거물을 붙잡고 나서 느슨해진 LG 프런트가 남은 자리에 될 대로 되라며 지명한 것이 김유선. 김강률이나 김유선이나 제구 안 되는 강속구를 던지는 건 똑같았고, 그나마 좌완이라 선택받은 듯. 그런 김유선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안겨준 것은 우리가 두산에 비해 모자란 선수를 뽑은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자기위안성 퍼포먼스였다. 전학생 규정에 발목잡혀 LG의 선택을 받지 못한 김강률은 그 해 두산 베어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러나저러나 LG는 1차 지명에서 하위 2차 지명급 선수들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는 얘기.

1.3 사이버 투수가 되다

그러나 김유선은 입단 후 1군은커녕 2군 경기조차 등판하지 못했다. 원인은 부상도 아니고 그냥 못 해서... 투수로서의 기량이 완전히 함량 미달이었다는 것. 제구, 구속 어느 것 하나 실전에서는 쓸 수 없는 수준이어서 당시 LG 트윈스의 2군 투수코치였던 김용수도 포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신사 중의 신사로 불리는 노송 김용수한테서 “저 새끼 던지는거 보면 돌아 버릴 지경입니다”라는 명대사가 터졌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구리구장 관리인[2].

여기에 입단 2년차인 2008년에는 경기에 등판하지 못하는 와중에 싸이월드에는 '놀러가고 싶다' 등의 글을 올렸다가 뚜껑 열린 LG 팬들과 충돌하기까지 했다. 일단 본인은 재빨리 사과했으나, 정작 친구들이 어그로를 끌어 갤진용 사건을 촉발시키는 바람에...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복무를 마치고 신고선수로 팀에 남아 있다가, 2012 시즌이 끝난 후 신고선수 계약이 해지되어 방출되었다.

1.4 방출 이후

방출 후 LG 팬들은 이 선수의 지명에 대해 온갖 썰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프런트 내 고위직 자제설부터 해서 심지어 구씨 가의 숨겨진 자손이라는 드립까지 나왔을 지경. 당시 LG 트윈스스카우트였던 이효봉은 김유선 지명때문에, 지금도 LG팬들에게 까이곤 한다.[3]

그러다 2013년 중순, 뜬금없이 광나루역 인근에 있는 최원호 피칭연구소를 찾았다는 글이 엠팍에 올라왔다. 이후 강창주와 함께 2013년 9월 kt wiz 공개 트라이아웃에 지원하였으나, 1차 트라이아웃에서 탈락하였다.관련기사

2014년 1월 고양 원더스의 피칭 테스트를 봤으나 탈락하였다.

2014년 3월 일간스포츠의 베이스볼긱에 전 LG 투수 김유선 인터뷰가 올라왔다.

인터뷰에 따르면 알수 없는 이유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블래스 신드롬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야구에서 멀어진 이후에야 그 두려움을 극복했고, 과거 LG 시절 인연이 있던 최원호의 조언을 받아 재기에 도전했던 듯하다. 150km/h를 던졌다는 증언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제구가 완전히 무너졌던 듯하다. 또한 팔이 말리는 증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니 공을 제대로 던질리가...물론 의도하지 않게 숨긴 본인 책임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반짝 활약한 선수에 선뜻 지명한 스카우트들이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KT와 고양 원더스 테스트에서 연달아 탈락한 이후에는 야구를 완전히 관두고 조선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근데 요새 조선업 경기가 시망이라...

2 시인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 화답하는 방식으로 '김광섭 시인에게'라는 시를 썼다. 다만 김광섭 시인이 비둘기를 다뤘다면 김유선 시인은 닭둘기를 다뤘다.
  1. 이 해에만 잠깐 부활했다 바로 폐지됐다. 당시 지역연고지 문제로 1차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하던 현대 유니콘스를 물먹일려는 의도였다는 썰도 있다.
  2. 당시 LG 2군 홈구장 및 클럽하우스 소재지가 구리였다. 다른 LG 및 GS 소속 구단과 함께 쓰다 LG 트윈스만 이천으로 이전.
  3. 다만 김유선 지명은 유지홍 팀장의 독단이었고, 이효봉은 힘없는 말단이었다는 썰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