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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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信
1904년 10월 05일 ~ 1977년 11월 12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언론인이다.

1904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 대학 정경학부 2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주오 대학 졸업 후 신간회에 참여하였다. 신간회가 해체된 이후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경상남도 마산부에서 기업을 경영하였다.

8.15 광복 이후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45년 10월 미군정 일본인 재산 관리소장에 임명되고 동양 주정 공장 관리인이 되면서 우익 정치인으로 변신하였다. 1946년 5월 남선신문(현 경남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고 이후 마산상공회의소 회장, 마산약주 사장, 동양주류 사장, 소화주류 사장을 지냈다. 또한 국민회 마산시지부 회장도 지냈다. 1950년경 민간인 학살을 주도하였다.

1952년 자유당 마산시당 초대 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초대 마산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선 마산시장 간접선거에서도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자유당에서 공천 탈락한 무소속 권태욱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허윤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10월 자유당 마산시당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여 중앙상임위원이 되었으나 공천 탈락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11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9년 경남신문 및 경남방송 사장에 취임하였다. 1972년 마산문화방송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선여부비고
19521952년 지방선거 (마산시의회 의원)자유당-당선
1954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마산시)자유당-당선
1958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마산시)자유당-낙선
1963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제11번)자유민주당-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