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 홈페이지: [1]
목차
1 개요
노무현(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
노사모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엄밀히 말하면 지역주의에 저항하는 모든 정치인의 지지세력)을 지향하며 만들어졌고, 이후 시민 사회운동을 벌여 나갔으며 노무현이 퇴임, 사망한 이후로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2 노사모의 시작
2000년 4월 13일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낙선한 노무현과 그를 지지하던 정치인들을 안타깝게 여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낸 단체이다.
창립 초기 구성원은 당시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던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을 가졌던 386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청장년층이 대부분이었으며 노무현의 지시나 설득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닌, 정치인 지지 단체로서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순수 자발창립단체였다.
3 노사모의 행보
2002년, 노사모가 벌인 적극적인 선거유세 행동은[1]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효과를 낳았으며, 그 뒤에도 노무현의 정책에 여론적인 지지를 더해주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자발적이고 건전한 정치 활동 집단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던 노사모가 부정적인 집단으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무렵이다. 정확히는 2002년 대선 이후 노사모 해체에 대한 찬반토론이 있었다. 해체파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상황에서 노사모가 존속하면 한자리 해보겠다는 작자들로 인해 노사모가 오염될것이라는 우려[2] 와 이익집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으니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체를 요구했고, 존속파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력의 필요성과 새로운 정치인 발굴에 노사모가 기여할수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결과적으로 노사모는 존속을 선택했고 해체파는 이에 반발해 탈퇴한다. [3]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취임 후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계가 점점 악화됨에 따라 지역주의에 저항을 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던 노사모의 지지 대상이 역시 점차 노무현 개인으로 축소되었으며[4], 당시 정동영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던 열린우리당과의 관계도 틀어져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노무현 재임 당시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계획, 남상국 자살사건, 이라크 전쟁 파병 등은 어찌되었든 노무현과 그 정부의 행보/결정이었고, 저 결정들에 대해 보수/진보(비노계열 등)가 모두 비판을 했었는데도 그때부터 유일하게 노무현을 두둔하던 건 노사모였고, 수 년에서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음모론이 판치고 있다. 그 일들은 이미 오래전에 노무현이 확실히 의견을 피력했었고 결정하거나 발언했었던 일들인데 아직까지도 노사모나 친노 세력이 계속해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도 문제다. 원래 노 대통령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국의 압력이니 한나라당의 압력이니 등.. 아직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을 암살했거나 타살했다는 설을 크게 밀고 강요하고 있으니 일반 사람들 사이에선 '쟤들은 원래 허구헌날 음모론 미는 애들 아니냐' 는 인식까지 붙고 덩달아 진보의 이미지까지 타격을 입는 등 비노계열 진보와의 마찰이 매우 큰 상태다. 오죽하면 비노 진보 계열에선 NL이나 종북주의자, 주사파 다음으로 비판하는 대상이 무조건적인 극친노들일 정도.
이후, 초기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해진 노사모의 구성원들이 각자 비리와 횡령 등에 가담한 일이 벌어지며 구성원의 도덕문제가 대두되다. 특히 2007년 한국을 달구었던 바다이야기 사업에 연관된 구성원(대표적으론 명계남)들을 물갈이 시키며 창립초기의 이미지를 회복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4 노무현 퇴임이후 행보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하게 되자 창립초기의 목적인 지역주의 타파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시민사회 운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후임주자인 이명박 집권시 일어난 각종 시위와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되며 정권의 견제아닌 견제를 당하였고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공적으로 불리기도 했다.
5 노무현 검찰조사 및 사망 이후 행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대부분의 노사모 회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검찰에 의한 노무현 죽이기로 간주하여 항의운동을 벌이기도 하는 등 당시 많은 인사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접고 비판대열에 합류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검찰 소환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가장 먼저 봉하마을로 모여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것도 노사모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앙된 일부 노사모 회원들이 다소의 격렬한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는데(일반 조문객들이라는 주장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온 이명박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이 보낸 화환은 부서지고 불에 탈 뻔했으며, 정동영 전 의원은 쫓겨났고(다음날 오전에 조문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계란세례를 받고 끝내 조문하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그 다음날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물병세례를 맞고 돌아갔다. 그 밖에도 노회찬 등의 여러 정치 인사들이 찾아왔지만, 이들의 반대에 결국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고인과 당사자들간의 예전 관계를 들면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는 의견과 비록 정치적 입장 차이가 컸지만, 그게 조문을 막을 이유는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장례의 최고예우를 해주겠다면서 일부 타지역 분향소에서 분향하려는 사람들까지 전경으로 막아서자 그에 대응한 입장이라는 의견도 있다.[5] 이건 빠가 까를 만든다랑 똑같은 행동이다. 다른 사람들을 푸대접한 것도 문제지만 노무현과 악연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선 라이벌이고 보수성향 정당에 몸을 담았을 뿐인 이회창에게 계란세례를 한 일은 노사모가 두고두고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노무현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은 한나라당의 짓이다, 이명박의 암살이다 등의 음모론을 양산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미화하는 등, 고인 입장에서도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는 발언과 행동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운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살은 좋은 선택이 절대 아니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여러 논란이나 비리를 직접 맞서거나 해명해야 했다.' 라는 입장을 보였고, 보수나 비노 진보 측에서도 이런 입장을 표명했다. 지금 노사모/친노 세력이나 네티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는 비노, 보수세력이 원인이라면서 복수심을 갖고 대하는 태도 역시 그들의 심각한 배타성으로 이어졌다. 친노 계열이 심지어는 같은 진보성향인 비노 계열, 사회민주주의 계열 등에게도 배타적이고, 후보 단일화 강요, 우리 쪽으로 흡수되어라 등의 패권주의를 휘두르는 것을 노사모는 매우 정당하게 당연하게 취급하는 것 역시 주 비판점이다. 보수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적대적이며 그들을 사회 악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진보 측에서도 노무현이 아니면 안 된다. 라는 식으로 어떠한 타협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점이다. 이는 노무현이 공인한 친노 문재인에게 이어져서 현재까지 깨시민의 형태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노사모를 위처럼 취급하는 것은 극히 편향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으니 판단은 알아서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특히 '패권주의' 관련한 부분에서는 상대파에서 의도적으로 프레이밍하는 부분도 있으니, 그것이 무조건 친노의 부정적 면모라고 일방적으로 서술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6 노사모가 끼친 영향
- 수많은 아류 (정치인)팬클럽의 창설
- 노사모의 창립으로 인해 노무현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어필할 수 있었고 이것이 대선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오자 각정당의 실세와 대표자들은 앞다투어 노사모와 비슷한 형태의 팬클럽을 창설하게 된다.[6]
- 인터넷 여론의 영향력 증가
7 노사모에 대한 평가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이 노사모를 더러 홍위병이라고 했다가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소를 한 명계남 본인이 공개석상에서 “나는 노무현 홍위병이고, 우리는 그의 홍위병이 돼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박의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홍위병이다. 그러나 남이 나를 두고 홍위병이라 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는 것
노사모의 행동과 영향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이들의 행동이 그른 것인지, 이들과 엮인 이들이 그른 것인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끼친 영향은 노사모 자신은 물론 국민들, 당대 고단수 정치인들도 알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었으며 이것이 정치적, 역사적으로 큰 사건임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8 어둠의 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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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경 이후로는 일베저장소에 대해 '어둠의 노사모'라고 조소하는 경향이 주로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퍼져있다. 사실 운지같은 노무현이나 김대중 고인드립 합성은 합필갤이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2009년 이들이 사망하고 나서 반십년이 지나 새로운 소재의 공급은 없는데 기존 자료는 발굴할 수 있는데는 다 발굴된 결과 더 이상 무언가 참신한 소재가 완전히 고갈되어[7] 다른 곳에서는 전혀 관련 창작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일베에서만 노무현 컨텐츠를 왕성히 만들어 다른 사이트들에 퍼뜨리다 보니 "사실 일베는 노무현이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빛의 노사모와 다른 어둠의 노사모다."는 드립이 생겨났다.
가면 갈수록 나날이 발전하고 늘어나는 노무현 합성 사진/음악/동영상에 대해 "이건 노무현에 대한 애정이나 집착이 없으면 못할 짓이다.", "진짜 노사모도 이렇게 까지는 못할 것", "노무현 합성음악이 계속 나오는 것은 MC 무현이 사실 살아있어서 국정원 지하에서 음반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베충들은 어느 누구보다 노무현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 것 일까?"같은 드립이 나오기도 하고, 메갈리아에서 노무현 욕을 하면 일베에서 "니들이 뭔데 우리 노짱을 욕하냐?"[8]는 반응을 하는 듯 애증어린 대상이 된 듯 하다.
그리고 일베저장소 이용자들이 열심히 노무현을 가지고 고인드립과 각종 합성을 일삼은 결과, 욕 안 먹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자유롭게 언급할 수 있는 사이트는 일베저장소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물론 동급선에서 까이는 김대중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욕설로 도배가 되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베저장소와 각을 세우는 친노 성향의 커뮤니티 오늘의유머는 반대로 '빛의 노사모'라 불린다. 진짜 노사모이면 그냥 노사모라고 부르면 되지 뭔
사실 일베가 있기전에 이와 유사하게 노무현에 대한 비난성 집착(?)을 보이던 이가 한때 있었으니 바로 조선일보 만평가 신경무.
그러나 잘알고 있듯이 , 이런 행동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고인을 욕되게 하는것이란 점에서 상식적으로 봐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9 노사모 출신 유명인
- ※ 정말로 노사모 회원으로 확인된 유명인만 적어주세요.
10 기타
이 트윗이 발견되면서 정말 대대적인 비판을 받았다.
- ↑ 단순히 열성적인 선거 유세 및 지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 외곽의 거대 조직으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이때 활약을 한 사람이 이상호, 인터넷 필명 '미키루크'이다.
- ↑ 실제로 노사모 출신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한자리 해먹은 사람들 많다.
- ↑ 원래 노사모는 회원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2002년 초 까지만 해도 5000명 남짓하던 회원수가 2002년 대선 바람을 타고 십만단위로 늘어난것이다. 해체파들 대부분은 초기부터 활동하던 사람들로 정치욕심이 없던 순수한 일반인들이었다.
- ↑ 간단히 아이돌 팬클럽을 생각하면 된다. 주체적으로 가치 판단을 하는게 아니라, 가치 판단의 기준을 노무현에게 일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모순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노무현 재임시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이들의 논조를 '노무현이 이 일을 안 했다'라는 전제에서 판단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옳다고 믿는 바의 차이.
- ↑ 다만 워낙 노사모가 이전부터 워낙 호전적이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다소 급하게 대응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 단, 이 아류 팬클럽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노사모와 같은 부류로 볼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 ↑ 일베의 악명이 높아져 노무현과 조금이라도 연관되었거나 연상하게 만드는 발언을 하면 일베충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5년 넘게 합성하다 보니 새로운 소스가 완전히 고갈한게 근본원인이다.
- ↑ "마치 나는 부모욕 해도 되지만 남에게 부모욕 들으면 화나는 기분이다."고 평한 일베저장소 유저도 있었다.
- ↑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지지연설도 해주고 심지어 당시 인기 프로였던 고스트스테이션 진행도 중단하고 민주당 캠프 DJ를 맡았을 정도로 엄청난 지지자였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하자 자신이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추모 콘서트에 등장해 '그대에게' 를 열창했고 마왕답게 독설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