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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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현대건설 주식회사
영문명칭Hyundai Engineering & Construction Co.,Ltd.
설립일1950년 1월 10일
업종명도로 건설업
상장유무상장기업
기업규모대기업
아파트 브랜드힐스테이트(HILLSTATE)
상장시장유가증권시장 (1984년 ~ 현재)
종목코드000720
편입지수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홈페이지

1 개요

대한민국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대기업.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舊 계동 140-2번지) 현대건설빌딩에 위치해 있다.[1]

왕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간판기업으로, 사실상 모든 범현대그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현재 재계순위 7위인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가 그 출발이었으니.. 현대家의 엑스칼리버

2 역사

1947년 5월에 이 회사의 전신인 현대토건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주식회사가 아니었고,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2]과 합병해서 주식회사로 전환, 현재의 현대건설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군 숙소 등을 지으며 세를 확장하기 시작하여, 한강 인도교, 경인고속도로, 소양강댐, 고리 원자력 발전소 등을 지으면서 급성장했다. 1965년에는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어서 대한민국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건설공사를 수주한 회사가 되었다.

뭐니뭐니 해도 이 회사의 역작은 1970년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태국 고속도로 시공 경험 덕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시공사들 중에 가장 많은 공구를 따내게 된다. 197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는데, 참고로 사우디 산업항 공사로 벌어들인 돈은 9억 3000만 미국달러로,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도 중동, 특히 이라크에서 많은 공사를 수주했는데, 걸프전이 발발하고 이라크가 경제제재를 당하면서 1조원 이상의 공사대금이 미수금으로 남게 된다.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던 이명박은 이 상태에서 회사를 떠나고(...) 현대건설은 이라크 미수금을 대손 처리하지 않은 채 숨겨오다가 2000년 2조 9천 8백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부도를 냈다.

결국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별세한 후 정몽헌 회장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소유, 경영하는 회사가 되었다. 그 후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면서 구조조정을 이행하여, 2006년 5년 2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2010년 산업은행이 매물로 내놓았는데, 서로 왕회장의 적통임을 내세우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입찰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에 매각되었다. 당시 현대그룹은 프랑스의 모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인수자금을 마련하려 했는데, 채권단이 이 대출에 대한 대출계약서를 요구했으나 현대그룹이 대출확약서니 뭐니 하며 이상한 서류를 들이대다가 결국 대출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하여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 때 현대그룹과 현대차 그룹이 신문 1면 광고를 도배하면서 벌인 키배디스는 여러모로 유명했다. 한겨레경향신문에서도 서로 비난하는 광고가 나갔을 정도. 병림픽이라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2011년 3월에 공식적으로 현대차 그룹에 편입되었고, 현대차 그룹은 정주영시절 현대그룹의 정통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현대차 그룹은 이를 기념하여 그룹 명칭을 공식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바꾸었다.기아차 안습

3 인식 및 평가

2000년대만 해도 과거에 잘나가던 시절과 달리 이빨빠진 호랑이 같은 그저그런 건설회사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고 할 정도로 사정이 많이 다르다. 건설 회사들의 성적표와 같은 건설회사 도급 순위에서 2009년에 대우건설을 꺾고 도급순위 1위를 탈환하여 2013년까지 유지했다. [3]

거기에 탄탄한 자본력을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이고, 그룹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기업으로서 그룹 내 비중이 매우 크다. 사실 왕자의 난 이후 정몽헌 회장 쪽이 현대그룹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다름아닌 현대건설의 존재 때문인데, 이제 정몽구 회장이 현대건설을 먹었으니 왕회장의 적통을 자처할 수 있게 된 셈. 그래서 정몽구 회장은 현대건설 본사가 위치한 계동사옥 15층의 왕회장이 쓰던 집무실을 쓴다.

4 아파트 브랜드


초창기에는 브랜드 그런거 없이 '現代' 두 글자를 한자로만 쓰다가 1990년대 들어 건설사 로고를 새로 만들어 붙였다. 현대 자체가 최고의 브랜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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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아파트 브랜드 열풍에 맞춰 1999년 12월부터 '현대홈타운'이라는 브랜드를 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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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힐스테이트로 바꿨다. 이 브랜드는 "당신의 H는 무엇입니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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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디 에이치(The H)H는 영어 모음도 아니면서 왜 디(The)지?라는 브랜드가 런칭되었다. '상류층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표방하며 실제로 평당 분양가 3500만원 이상 고가 아파트에만 붙여질 예정이라고 한다. 반포동 삼호가든 재건축 사업이나 개포동 주공 등 강남권 일부 재건축 아파트에 이 브랜드가 쓰인다.

다만 현대산업개발의 '현대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해서 2000년대 이후, 이곳에서 짓는 아파트는 특유의 現代 한자표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왕자의 난 이전 현대그룹이 쪼개지기 전에 현대그룹 내의 주택건설은 이곳이 아닌 현대산업개발 전담이었으며,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이 쪼개지고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남남이 되자 이곳에서도 현대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건설을 시작하게 된 것. 따라서 현대산업개발아이파크와는 건설사 자체도 아예 다른 브랜드이다.

5 기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퇴직금을 지급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바로 2000년 지급된 정주영 회장의 퇴직금이 그것.

당시 현대그룹 24개 계열사에서 총 217억이 지급되었는데, 그 중 현대건설이 지급한 액수가 157억이다. ㅎㄷㄷ. 퇴직금은 퇴임 직전 3개월 평균 월급여에 연간 상여금을 12로 나눈 금액을 더한뒤 총 근속 연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계산하고, 대표이사의 경우 근속연수에 4배를 곱해준다. 정주영 회장은 1947년 5월 창립 때부터 53년간 대표이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평균월급(상여금포함) 7천4백만원에 가산근속연수 2백12년(53x4)을 곱한 1백57억원의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보통 재벌총수들은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퇴직금 지급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자금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 더군다나 당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여억원을 지원받은 현대건설의 입장에선 더더욱 부담이 되는 금액일 수밖에 없어서 내심 퇴직금 수령을 SKIP해 주시길 바랬으나 그런거 없엉.

이 퇴직금은 당시 현대자동차를 사이에 두고 정몽구 회장과 경쟁하고 있던 정몽헌 회장을 지원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주식의 매입에 사용되었으나, 현대자동차가 정몽구 회장 쪽으로 정리되고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현대자동차 주식은 모두 매각되어 현대건설의 회사채 매입에 쓰여졌고, 그 회사채는 출자전환되어 현대건설 주식으로 바뀌었다. 이 주식은 정주영 회장이 사망하면서 현대건설에 증여된 후 감자되었다. 결국 돌고돌아 제자리..

  1. 이게 웃긴게 현대건설빌딩(별관)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입주해있고 현대건설은 현대빌딩(본관)에 있다. 왜냐면 IMF때 본관 지분을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에게 팔고 별관으로 갔걸랑... 그리고 입주해있던 보건복지부가 세종시로 내려가고 다시 본관으로 컴백
  2. 현재의 현대자동차가 아닌 일제시대부터 운영하다가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일진공작회에 강제합병된 자동차정비업체 아도서비스를 해방후 반환받아 이름을 바꾼것이다. 현대 라는 명칭은 여기서 처음 쓰였다.
  3. 2014년 1위는 삼성물산
  4. 실제로 강남구압구정 현대아파트의 경우 압구정 현대아파트 자체의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라는 이미지나 사회적 위상이 워낙 높다보니 시공사에서 아이파크 브랜드로 도색해주겠다고 요청했지만 주민 대부분이 반대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