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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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강도의 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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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紅端크고 붉은 단군이 아니다 대홍단감자도 아니다

1 개요

북한 양강도의 군 중 하나. 광복 당시에는 함경북도 무산군의 삼장면, 삼사면에 속해 있었다. 현재 대홍단군 지역은 삼장면의 절반, 삼사면의 북쪽 1/5 지역에 해당한다. 대홍단이라는 이름은 지역 이름 중 하나인 대홍단벌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지역을 흐르는 하천 이름은 소홍단수이다.

2 역사

1952년 12월 북한이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무산군의 연사면 등을 떼어 신설한 연사군에 편입되었고, 1961년 3월에 지역 일부가 보천군과 연사군의 일부를 떼어 신설한 양강도 삼지연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78년 8월에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1] 양강도 삼지연군의 북쪽 7개 노동자구(5호, 신덕, 서두, 농사, 신흥, 흥암, 대홍단)와 함경북도 연사군의 원봉노동자구, 삼장리, 삼하리를 떼어내어 현재의 대홍단군을 신설하여 오늘에 이른다.

3 지리와 교통

군 면적의 거의 전부가 감자의 산지이다. 지도를 봐도 군의 북쪽 절반에만 그나마 마을이 있고 남쪽 백무고원 지역에는 마을이 없이 텅 비어 있다.

단군이 강림한 곳으로 알려진 천리천평이 있다.

도로는 10번 국도가 소홍단수를 따라 동서로 지나가며, 철도는 없다. 과거 보천선 보천역에서 분기하여 삼지연읍과 대홍단읍을 경유해 흥암역에서 백무선에 접속하는 철도를 계획한 바가 있으나 나라 꼴이 막장이 되면서 저 먼 곳으로.... 사실 여기저기에 감자밭이 워낙 넓게 퍼져 있으니 이걸 읍까지 실어나르는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이 철도라는 게 고작 762mm 협궤인지라 감자 수송에서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군의 최동단인 삼장로동자구에 삼장세관이 있으며 강 건너편 중국과는 다리로 연결된다.

4 둥글둥글 왕감자 대홍단 감자

북한판 아일랜드[2]
잘못 들으면 배에 혹난 감자로 들린다 배!혹!난! 감자!! 감자 혹나면?

감자가 특산물이라고 한다. 이를 주제로 한 북한의 동요 '대홍단 감자'가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채널A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링크1 링크2링크3 내가 대홍단 고자라니야하~~~~~감자!!!감자!!!왕감자!!!!!참말참말 좋아요효홍 못다 묵겟쵸오[3] 심지어 SNL 코리아 시즌7 샤이니 종현 편에서 코너 3분 친구에서 동무를 선택했더니 대홍단 감자를 부르는 종현이 등장했다

남자아이랑 여자아이랑 고자아이가 부른 버전이 있으며, 자막테러된 영상이 2013년 6~7월에 유행하기도 했다. 다만,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내용이 살짝 있는 관계로 해당 부분을 포함한 영상 전체를 위키에 직접 올리면 코렁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위의 내가 고자라니 패러디 영상에서는 시작 부분에 김씨 3대 부자를 욕하는 자막을 달아놓고, 장군님 부분을 장포스로 대체했다.

그런데 사실 대홍단 감자에 얽힌 이야기들은 북한답게 그다지 흥겨운 것은 아니다. 1998년 김정일이 대홍단을 현지지도하면서 이른바 감자혁명을 내세우고 대홍단에 대규모 감자농업단지를 조성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좋긴 뭐가 대홍단에는 이 엄청난 감자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었다.어? 결국 만만한 게 제대군인. 1999년에만 제대군인 1천여명과 경공업 근로여성 40여명을 여기에 무리배치시키고 대규모 합동결혼식도 치러줬다.기사[4]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강제배치를 한 건 아니고, 어쨌거나 국가에서 내세우는 식량기지니까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원한 군인들도 제법 되었다고 한다.

다만 언뜻 보면 저 북한군인들이 멍청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건 농촌이 공동화되고 있는 남한의 상황을 생각해서 그런거고(...)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엉망이었던 북한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의외로 괜찮은 생각이기는 했다. 당시에 일반적인 북한의 도시 노동자들은 꼴랑 몇백원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5] 식량배급도 잘 나오지 않는데다가 공장도 잘 안돌아가서 결국 언발에 오줌놓듯이 기기를 뜯어팔거나 별 수 없이 장마당에 죽치거나 하루벌어 하루사는 생활을 보내야 되는데 그에 반해 대홍단군에서 농사를 지으면 흉작만 아니라면 식량배급을 그럭저럭 받을수 있기는 하고, 더군다나 철만 되면 감자를 적당한 값에 장마당에 팔아치우는 식으로 어느정도 벌어먹고 살 수 있기 때문. 물론 이 얘기는 일단 주민들이나 제대군인들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라는거지 타 지역으로 가는 식량이 풍부해진 것까지는 아니라서 감자혁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감자 수확량이 아주 늘어났다는 얘기는 아니라서 감자혁명이라고 하기에는 좀 초라한게 현실이기는 하다.

5 기타

대'흥'단이 아니다! 대'홍'단이다! 몇몇 교과서나 지리부도에 대흥단으로 잘못 나온 경우가 있다.

꽤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장군님이 대홍단을 현지지도했을 때 한 제대군인이 자기 아내가 임신중인데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자 장군님이 말하기를 아들이면 대홍이, 딸이면 홍단이로 지으라. 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 놈의 장군이 누구의 집 아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당시 임신했던 사람들은 자기보고 그런 가보다라고 생각해서 모조리 그걸로 해버리는 사태가 터진 적이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의 해적감자 빠와로 때려잡은 것으로 유명한 대홍단호의 이름도 대홍단군에서 따왔다고 한다.
  1. 김일성이 여기서 군사정치활동을 했다는 명분이라 한다. 물론 믿으면 곤란하다.
  2. 여담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도시와 시골의 관계를 종종 종주국과 식민지의 관계로 정의하기도 한다.
  3. 부른 아이는 신미성 이다. 김솔매는 뽀뽀송(...)을 불럿다.
  4. 이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결혼 할 짝을 일일이 배정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남자 1줄 여자 1줄을 쫙 세워놓고 좌우향 우를 시킨 다음에 마주본 상대와 결혼시켜줬다고 한다(...) 그런데 제대군인은 1천명에 여성은 40명이라고? 근데 북한은 남녀 모두 군복무 하니 크게 상관없긴 하다. 뭐 남군 520명에 여군 480명+경공업 근로여성 40명 이런 식이었겠지.
  5. 물론 90년대 초반까지는 상당한 금액이었기는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말 그대로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