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항의 조선소에 정박되어 있는 랴오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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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함의 로고. 아래 쓰여진 함의 구호는 "보위조국 용쟁제일"
그러나 취역식 나온 로고에는 다른구호가 나왔다.
"영원충성 영쟁제일(永遠忠誠, 永爭第一)
경하 배수량 | 55,000톤 |
만재 배수량 | 67,500톤 |
전장 | 300m |
선폭 | 73m |
흘수 | 11m |
Liaoning
辽宁/遼寧[1](함번호 CV-16)
목차
1 개요
2013년 6월 5일, (MBCNEWS)'해군력 증강' 중국,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 내부 공개 |
랴오닝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최초의 실전 배치 항공모함이다. 원래는 소련에서 건조하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의 2번함이었는데, 소련의 급작스런 붕괴로 인한 재정난 탓에 공정율 70%에서 건조가 중단되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유화했고, 이것을 홍콩의 작은 회사를 앞세운 중국이 다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마카오의 해상 카지노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2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러나 중국은 기존의 도입 취지와 다르게 이것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여 탄생한 것이 랴오닝호 항공모함이다(...). 사실상 랴오닝급이 아니라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랴오닝함이 맞지만 공정이 덜 끝난데다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에 팔면서 각종 장비를 철거했고 나머지 부분을 중국제 장비로 넣었기 때문에 틀만 같지 사실상 다른 배다.
2 중국의 항공모함 보유에 대한 의지
중국과 대만간의 긴장관계가 심화 될 때마다 미 항모전단이 무력시위를 하며 중국을 압박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항공모함에 대한 관심은 1950년대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전형적인 연안 해군인 중국은 항공모함을 건조할 기술도 없었고 자금 또한 없었기에 항모 확보를 위한 행동에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실제로 항공모함 확보 노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소련 유학파 출신인 류화칭이 등장하면서이다. 1970년대부터 항공모함 보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마오쩌둥을 직접 찾아가 항모 보유를 건의하던 그는 1982년 해군사령관에 임명되자 상하이에 해군 연구소를 창설하고 항공모함 건조에 대한 연구를 지시했고 해군학교에 항모운영과정을 개설하여 항모의 필요성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며 타당성 연구를 주도하였다.
미국 항모를 방문한 류화칭 상장(중국 군복 입은 이)[2][3]
류화칭을 중심으로 한 항공모함 보유파는 단순히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항공모함을 입수하여 연구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시도는 1985년에 호주로부터 구입한 HMAS 멜버른이었다.
호주군의 3번째 항공모함이자 마지막 항공모함이 된 멜버른은 2차세계대전시에 건조되던 마제스틱급 항공모함 중 하나로 전쟁이 끝나면서 건조가 중단된 것을 1947년 자매함인 HMAS 시드니와 함께 275만 호주 파운드에[4] 호주가 구매하게 되었다. 멜버른은 1983년 퇴역하게 되었고 후속함으로 1981년 영국의 HMS 인빈시블을 175,000,000 파운드에 구매하는 협상을 진행해 1982년 2월에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그해 4월에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 이후 영국의 군사정책이 변화하면서 인빈시블을 계속 보유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호주군의 후속함 계획은 좌절되었고 83년 호주 선거에서 집권한 노동당에서 후속 항공모함 계획을 중단시킴에 따라 후속함 없이 퇴역하게 되었다.
멜버른은 전시관이나 해상 카지노 등 다양한 활용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어떤 것도 확실하게 구체화 되지 못하였고 결국 1984년 1,700,000달러에 고철로 판매되었으며 1985년 2월에 다시 1,400,000달러에 중국선박공업사(中国船舶工业集团公司)로 재판매되었다. 당초 스크랩용으로 판매된 멜버른은 같은 해 6월에 중국 황포항에 도착했으나 스크랩되지 않고 1994년까지 정박하며 9년간 중국 해군에 의해 철저하게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다. 해군의 조사는 그중에서도 항공모함용 증기 캐터펄트에 집중되었고 멜버른을 해체할 때에도 증기 캐터펄트만은 회수하여 지금도 보관중인 걸로 알려져 있다.[5] 단, 호주해군이 운영하던 캐터펄트는 20톤급의 2차대전 직후의 물건이기에 현대의 함재기에 사용할 수는 없다.
1990년대 들어와서는 소련이 무너지면서 해군도 감축되었고 이로 인해 함선들이 퇴역하여 예비역으로 전환되거나 해체, 고철로 판매되었는데 그 중에 키예프급 항공모함도 있었다. 중국은 1번함이 키예프와 2번함인 민스크[6]의 스크랩과 해상카지노 명분으로 구매에 성공하여 철저하게 분석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또한 1994년에는 러시아의 항공모함 전담 설계소인 네브스키 설계국과 협력하여 키예프급을 기반으로한 Type 9975를 공동으로 설계하기도 했다.
중국은 분석과 연구를 통한 자체건조만 시도한 것이 아니라 80년대에는 영국과 접촉하여 항공모함을 건조하려 했으나 비싼 가격과 기술이전의 문제로 실패하였고 1990년 키예프급을 구매할 때는 러시아에서 재개장을 통한 현역 항공모함으로 판매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키예프급을 개장할 시의 비용과 당장 탑재 가능한 항공기 확보도 쉽지 않는데다가 개장 후 항모의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7] 또한 프랑스는 퇴역하는 클레망소급 항공모함을 제안하였으나 가격과 수리비용, 클레망소급의 완전한 기술이전에서 서로간의 이견으로 이 또한 성사되지 못하였다.[8]
3 그렇지만 우리에게 항모는 과분하다!!
류화칭은 1988년까지 해군 사령관을 역임하였고 이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재임하였으나 항공모함 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항공모함 확보에 반대하는 세력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첫째로 중국의 항공모함 확보는 주변국에 위기감을 주어 중국위협론을 부추길 것이며, 둘째로 항공모함을 방어하기 위한 대공 대잠 무기가 부족하고 호위전력이 부족해, 항공모함이 떠다니는 관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였고 셋째로 안정적으로 항공모함을 운영하려면 최소 3척이 있어야 하는데[9] 이는 중국의 경제력과 국방비에 심각한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은 항공모함 확보보다는 네트워크전에 국방비를 투장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항모 보유파는 유엔 상임이사국 중 항모 미보유 국가는 중국뿐이며 점차 에너지자원이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주요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항모가 필요하고 차후 대만과의 통일시 방해 세력이 될 수 있는 미국의 개입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안해협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항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항모 보유파는 민족주의적 성향과 패권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반대파는 실용적인 성향과 혁신적 군개혁을 중시하며 대립하였다.
또한 류화칭은 장쩌민과 사이가 매우 안좋았기에 장쩌민은 류화칭의 항공모함 확보 정책을 모두 거부하며 대립하기도 하였다. 이는 덩샤오핑이 장쩌민을 감시하기 위해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한 인물이 바로 류화칭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찬반 논쟁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항공모함의 확보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은 성공적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며 중국 내부가 민족주의와 패권주의적 성향으로 기울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오면서였다. 2004년 당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른 후진타오는 항공모함 보유에 부정적이던 전임 장쩌민과 다른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려 했고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낮은 군사적 영향력과 지위를 항공모함의 보유로 일시에 끌어 올릴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의 결정에 따라 당과 군 지도층은 항공모함 보유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게 되었다.
4 상세
4.1 탄생 즉시 사망한 기구한 운명
기본설계나 무장에 대해서는 관해서는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참조바람. 물론 중국에서 개조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무장이나 전투시스템같은 경우는 모두 메이드 인 차이나제를 썼기 때문에 성능이 많이 다를 수 있다.
미국의 항모전단에 맞서기 위해 소련해군이 야심차게 추진한 대양함대 육성계획에 따라 소련 흑해함대[10] 주력이 될뻔 했던 이 항모는 소련 해체의 크리를 맞고 소유권만 우크라이나에 넘겨진 채 몇 년간 방치된다.[11]
소유권이 넘어갈 당시에는 건조한지 10년도 안 되는 신품 항모였고, 당시 레이더나 통합전투시스템과 같은 전자장비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으며, 엔진도 없이 그저 골격과 선체만 완성된 상태로 67%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이런 걸 운용할만한 나라도 아니었고, 우크라이나도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의 매각을 추진한다.
이때 항공모함 건조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던 중국은 해상공원으로 사용하겠다며 우크라이나에 접근했다. 중국은 전략적 위치상 항모 설계 기술을 전수해줄 나라가 사실상 없으므로,[12] 어떻게든 자력으로 만들어야 했으나, 당시만(1990년대 후반) 해도 중국의 조선사업은 형편없었으며, 현재(2012년)도 중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선체보다는 벌크선 위주의 조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항모같은 걸 자력개발하는건 너무 리스크가 컸다. 항모가 한두푼 짜리도 아니고...
이 항모를 구입하기 위해 나선 협상자는 홍콩 여행사였으나 이는 페이크였고, 중국이 해상공원[13] 운운한 것은 다른 나라의 견제를 피하기 위한 술책. 이 회사의 경영자(혹은 대지분을 가진 사람)부터가 전직 인민해방군 제독이었고, 항공모함 구매를 주도한 것은 위에서 언급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류화칭이였다. 중국이 이 항모를 사려고 할 때부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이 충분히 드러나는 대목.
4.2 희망봉을 돌아
1998년, 드디어 경매끝에 중국은 이를 2000만 달러 의 헐값에 획득했다. 그러나 운송이 문제였는데, 다르다넬스나 보스포러스 해협의 항행권을 손에 쥔 터키는 절대로 통과를 허가할 수 없다고 공언했고, 수에즈 운하를 관리하는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은 타국 군함이 앞마당에 지나가게 할 수 없다는 안보적 이유에 관한 이유도 있지만,[14] 만약 지나가다가 이 미완성 상태의 항모가 침몰하기라도 하면 해상로가 막히고, 또한 비싸게 건설한 해협을 잇는 대교들이나 운하 시설물을 박살낼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런 복잡한 문제 때문에 소유권이 넘어가고도 이 항모는 한동안 중국에 도달하지 못하다가, 2001년 10월부터 중국으로 가기 위한 예인을 시작했다. 결국 중국정부는 터키에 엄청난 혜택를 약속[15] 하고서야 겨우 이스탄불 앞바다의 통행권을 받아냈다. 그리하여 이 항모는 2001년 11월 6시간동안 예인선에 끌려 다르다넬스 해협을 겨우 건넜다고 한다.
이때 터키 측이 내건 조건은 20개에 달하는데:
1. 중국 정부는 10억 달러의 보증금을 준비할 것.
2. 중국 정부가 직접 싸인한 서약서.
3. 국제적으로 인가받은 보험회사가 담보할 것.
4. 16척의 견인선으로 견인할 것.(중국은 8척을 제시.)
5. 해협을 건널때 항시 조명을 켜고 있을 것.
6. 배에는 닻과 예인용 줄, 관련인원을 상주시켜 비상사태에 대응할 것.
7. 앞에서 말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명과 예인용 줄을 감을 동력을 제공할 발전기를 설치할 것.
8. 배에 무선통신장비를 설치하여 항시 통신을 유지할 것.
9. 해협을 통과하기 전에 터키 측에서 기술지원단을 보내 모든 안전조치가 문제 없는지 확인하도록 할 것.
10. 중국이 준비한 예인선은 모두 터키 해안방위대의 지시에 따를 것.
11. 돌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배와 육지에 모두 소방대가 상주할 것.
12. 해협을 통과하는 도중 안개가 끼면 즉시 항행을 정지할 것.
13. 해협을 통과하는 도중 큰 바람이 불면 즉시 항행을 정지할 것.
14. 해협을 통과하는 도중 파도가 심해지면 즉시 항행을 정지할 것.
15. 해협을 통과하는 도중 시야가 5KM 이내면 즉시 항행을 정지할 것.
16. 배에는 항행지휘인원이 상주할 것.
17. 해협을 통과할 때 해협 양쪽 끝에는 다른 배들의 통행을 금지.
18. 배에 유류와 폭발물을 적재하지 말 것.
19. 해협을 통과할 때 안전, 장비, 기술인원은 모두 터키 쪽의 지시를 따를 것.
20.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 해협은 협소하므로 낮에만 항행할 것. 마르마라해협은 밤에 항행 가능.
터키의 생떼에도 불구하고 항모가 급한 중국정부는 모두 받아들이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중해에 들어선 바랴그는 더욱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중국으로 가려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든지 아니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돌아야만 했는데,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통과를 불허했다. 이집트가 딱히 반중국적인 국가도 아니고 수에즈 운하의 폭도 항모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체기동이 아닌 예인되고 있는 거대선체는 컨트롤이 훨씬 어렵기 때문[16]에 운하에서 사고가 날 위험성이 너무 컸다. 운하통과료가 국가의 주수입원인 이집트[17]로서는 허가해주기 힘든문제. 중국이 이집트를 달래고 애원했지만 이집트는 터키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기에 결국 희망봉을 돌아야 했다. 2만8천km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스페인-카나리아제도-희망봉-마푸토-모잠비크-싱가포르를 거쳐 최종적으로 2002년 2월 20일에 중국 다롄항에 도착했다. 5개월간 평균 속도는 시속 11km. (...)
4.3 소생작업
이후 바랴그는 다롄의 군조선소에서 다시 항모로서 부활하기 위해 대대적인 소생작업을 받는다. 그러나 이 항모전단의 창설을 둘러싸고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에서도 격론이 많았으며,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공군과 해군의 대립[18]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해군내에서조차 항모중시파와 잠수함중시파가 갈려 엄청난 논쟁이 있었다고. 한국의 군사전문가 중에서도 중국 주변해역은 압도적인 미국 태평양함대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항모는 한두척 있어봐야 별 도움 안되니 항모보유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개발을 위한 자원확보 때문에 영해를 둘러싸고 베트남(파라셀 군도), 필리핀(스프래틀리 군도), 일본(센카쿠 열도)같은 나라들과 마찰을 겪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항모전단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고, 결국 창설을 확정. 그리하여 바랴그의 "소생수술"도 계속된다.
항모전단은 항모뿐 아니라 함재기도 있어야 하므로 항모전단 창설을 결심한 중국은 항모에서 굴릴 헬기는 러시아에서 직구매 했다. 그러나 항모에서 굴릴 함재기(Su-33)를 라이센스 생산하기 위한 계약을 맺기 위해 러시아와 접촉했으나, 러시아는 중국이 번번히 J-11(중국판 Su-27)에 관한 계약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며[19] 중국과 더이상의 무기 제조 라이센스 계약를 거부했다.[20] 할수 없이 중국은 다시 우크라이나와 접촉하여 Su-33의 원형기(T-10K-3)를 손에 넣었고 이를 다시 카피하여 함재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21] 이렇게 나온 것이 바로 J-15.
중국 최초의 함재기 J-15
2006년부터는 이 바랴그호에 스랑(施琅)이라는 새함명과 함번호 83이 붙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스랑은 강희제시절 대만과 팽호도를 정복한 청나라 수군 제독 이름으로서 대양해군을 목표로 하는 인민해방군의 의지가 엿보이는 이름. 2008년에는 이런 소생작업이 거의 끝났고 2009년까지는 소생의 마지막 단계로서 엔진과 레이다, 그리고 미사일 발사대, 화력 통제시스템을 이식 받았다. 물론 이런 물건들은 모두 러시아제가 아니라 중국 자체개발품. 중국의 군수기술이 최근에 많이 발전했지만, 아무래도 이것들의 성능은 러시아 원판보다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4.4 실전배치
2009년부터 후베이성 우한[22] 인민해방군 해군연구소가 있는 있는 황자후(黃家湖)에서는 모의항모를 건설해 놓고 항모운용에 필요한 인원들을 훈련하고 있음이 목격되었다. [23] 사실 항모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하기 때문에 전혀 노하우가 없는 중국으로서는 매우 신경쓸 수 밖에 없는 부분.
2011년 6월 중국군 총참모장은 항모배치 계획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고, 아직 항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다른 관계자는 "항모는 강대국의 상징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2011년 8월부터 이 항모는 본격적으로 항해훈련에 들어갔으며, 점차 항해시간을 늘려가며 최종적으로는 한달 정도의 순항 훈련을 하였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확정된 함번호와 '랴오닝'이라는 함명이 공개되었고, 공식적으로 9월 25일 후진타오 국가주석,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 임석 하에 취역식을 하고 실전배치에 들어갔다. 아직 함재기의 항모발착은 목격되지 않았다고 하나 어떤 보도에 의하면 항모 내부에 항재기를 탑재했다고 하며, 착륙하는 것처럼 접근하여 비행갑판에 랜딩기어를 접촉한 후 다시 떠오르는 '터치 앤 고' 훈련이 현재 시행중이라 하고 사진도 공개되었다.
현재 J-15 시험용의 프로토타입만 있는듯 하며, 2014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서 당분간은 몇 대 안되는 프로토타입 기체만 싣고 다닐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여러차례 항해하면서 이런저런 운용 노하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9월 25일 취역식. 후진타오 주석이 직접 참석했다.
터치 앤 고 훈련 중인 J-15.
독도함과 마찬가지로 함장은 대령급이 맡았다. 초대함장은 장정(張崢) 대교(대령). 공산국가의 특징인 함의 정치장교는 메이원(梅文) 대교. 배치된 승조원수는 순수한 선체운용원만 1960명, 비행계통원은 626명이라고 한다.
2012년 11월 드디어 랴오닝함에서 J-15기가 이착륙하는 훈련 모습이 공개되었다. 미국처럼 비행 유도요원들의 옷차림이 색깔별로 나뉘었고, 동시에 여러대를 이륙시키는 것으로 봐서는 운용의 노하우의 개발도 상당히 진척된 듯 하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중국이 비교적 단시일안에 뽑아낼 수 있는 항모나 함재기 등 하드웨어보다는 여러 운용노하우 때문에 실전배치가 느릴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중국은 항모운용국 중에서 비교적 중국과 이해관계가 겹치지 않는 브라질 [24]에 해군과 해군항공대 요원들을 대거 파견하여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랴오닝 함에서 J-15의 이착륙 모습. 한국의 주요 밀덕 커뮤니티에서 일부 밀덕들이 노하우가 없는 중국의 항모는 이착륙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떨었으나, 중국은 보란듯이 랴오닝 배치 3달만에 전격 이착륙장면을 공개하여 그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2013년 11월 말부터는 약 1개월 동안 남중국해 하이난 섬 일대에서 초보적인 항공모함 전단 형태의 훈련을 실시했으며, 그 과정에서 한때 미 해군 함선과 대치한 적도 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2014년 1월 1일에 맞춰 중국 차이나 데일리에서 랴오닝급 항모 전단의 훈련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도했는데, 여기에는 장카이급 호위함과 루저우급 구축함 각 2척, 그리고 J-15 함재기 등이 포함된 모습이 담겨져 있다.
4.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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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언론에 보도된 랴오닝급 항모전단 예상도
항모를 미롯하여 공격형 핵잠 2척, 란저우급 2척, 광저우급 2척, 054급(장카이급) 2척과 뤼하이급(51B식 혹은 선전급)2척, 보급함으로 이뤄진다고...
아직도 이 항모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원작인 쿠즈네초프급 자체도 러시아에서 최초로 개발한 대형 항모라 항모로써의 완성도에 문제점이 있는 과도기적인 함선이고,[25] 때문에 함선 자체의 과무장이나 항공기 착륙시 방해가 되는 대형 지휘실 같이 소소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항모 이착륙을 위한 훈련만 해도 바쁠터라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실전배치용 보다는 훈련용과 차기 항모 설계와 기술의 테스트 베드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중.
어쨌든 이런 항모라도 있는 것은 현재 중국과 해양분쟁을 벌이고 있는 각국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건 사실이다. 이 항모의 재생작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중국은 다른 항모 두척도 건조중이며, 이렇게 3척의 항모를 보유하게 될 경우 1척은 작전, 1척은 훈련, 1척은 정비라는 3교대 사이클로 상시배치할 수 있으니 주변국으로서는 골머리를 앓는 셈.
중국이 처음부터 독자개발하지 않고 러시아에서 사들인 것은 좋은 전략으로 보인다. 소련이 독자개발한 1세대 항공모함인 키예프급이 항공모함도 아니고 순양함도 아닌 애매한 컨셉으로 사실상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랴오닝의 원형인 쿠즈네초프급의 건조를 서두른걸 보면... 중국도 독자개발했으면 아마 비슷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밀리계에서는 가끔 남이 버린 불량 항모에 데드카피의 짝퉁 함재기로 이뤄진 급조 항모전단은 전혀 무섭지 않다식으로 극언을 하는 밀덕후들도 나오는 상황인데[26], 그건 대한민국 인근에서 공군력과 해군력을 전부 발휘 할 수 있는 상황에서나 해당되며, 공군기가 오지 못 하는 먼 공해상(예: 남중국해의 말라카해협) 등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중국은 짝퉁이라도 전투기를 날릴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은 항공기의 지원을 전혀 못 받는다. 게다가 대함 미사일이라도 장비할 경우 한국이 확실하게 우위를 갖는것도 아니라서 이지스함 정도 꺼내들지 못하면 불리해진다. 게다가 제대로 된 항모전단이기에 한국에게도 위협적이다.물론 한국이 거기까지가서 전쟁을 할 당위성은 어지간한 경우에는 없다.
어차피 해군 대국인 러시아나 영국, 프랑스,인도도 각각 항모 한척씩만을 현재 운용하고 있는데, 중국이 항모 한척만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과소평가하는 것은 근시안적 견해이며, 현재 건조중인 것으로 확인된 나머지 두척(한척은 다롄, 한척은 상하이에서 건조중 확인)의 항모가 정식 배치된다면 중국도 3척의 항모로 상시 교대근무를 시킬 수 있으니, 주변해역 분쟁에서 큰 전력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선진국들도 이럴진대 함대방공함 한척도 없는 그보다 작은 아시아권 나라들에게는 그야말로 캐깡패의 출현과 동시에 그 나라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나 발언권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아시아권 나라에서는 메이저 국가에서 그리 높게 치지 않는 카피판 전투기에서 날아간 짝퉁 미사일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며 대함미사일 발사 능력이라도 생기면 항모기동거리 + 함재기 항속거리 + 미사일 사거리 안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함선과 항공기들에게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위협이다.
사실 한국의 서해(황해)에서는 특별히 한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겹치지 않는데다가,[27] 한국도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3척이라는 함대방공함과 함께 상당한 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중국이 거대한 전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항공모함을 이용한 깡패짓을 하기는 어렵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사정이 다르다. 각각 약 1억의 인구를 갖고 있지만 안습한 경제사정 때문에 전력이 후달리는 베트남과 필리핀 같은 경우는 중국의 항공모함 정도면 자국 해군력의 전멸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2014년 5월에 베트남 앞바다인 파라셀 제도 (또는 서사군도)에서 중국과 베트남은 분쟁을 벌이고 있으며, 사실 이곳은 중국의 현재 해군 전력+항공모함 한척 정도면 필리핀이나 베트남의 안습 해군은 정말로 개전 초기에 전멸할 정도니, 참으로 커다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이 꼭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강력한 해군국과의 대결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나라를 위협하여 남중국해의 자원만 제대로 확보해도 커다란 이익이니 중국입장에서 항공모함 진수는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세계경제 1위에다, 랴오닝급과는 차원이 다른 10만톤급 항모만 11척 굴리는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그 미국조차 대국도 아닌 고작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약소국 상대로 전쟁 두번하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빚더미에 빚더미를 올리고 있는 작태를 본다면 중국의 항공 모함은 아직 본격적으로 경계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감안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아프간 전쟁은 사실상 해당국을 완전히 지배에 두려는 전쟁이었기에,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엄청나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단지, 사담 후세인의 깡패짓을 응징하는 것에 목적이 제한되었던 걸프전에서, 미국은 실로 완벽한 전략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를테면, 중국이 파라셀 군도에서 베트남의 군사적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베트남에 제한적인 해상봉쇄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로테이션이 이뤄지는 항모전단은 넘쳐흐르고도 남는 전력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중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마닐라나 호치민을 먹겠다고 (아직은)덤비지 않을 것이기에,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항공모함의 위협수준은 그 항공모함이 탑재하는 함재기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랴오닝급의 함재기 수준으로는 한국이나 일본, 러시아와의 무력충돌에는 별 영향을 줄수 없으며, 중국군으로서는 항공모함과 함재기 구입 및 유지보수할 돈으로 차라리 다른 전력에 투자하는것이 이 세나라에게 더 실질적인 위협이 될수 있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2015년 명목 GDP로 중국은 미국의 60%까지 쫓아왔다.이전에는 항모랄 것이 전혀 없다가 2010년대 들어 갑자기 항모를 여러척 굴리려는 중국의 행보를 벼락부자가 명품을 사들이는 것쯤으로 폄하하려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보다 훨씬 경제규모가 작은 프랑스나 영국도 한두척씩을 보유하고 있는 항공보함을 중국이 보유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의 항모나 함재기의 전력이 사실 (미국에 비해서) 대단하다고 보기 힘들지만, 문제는 중국은 수십년 앞을 보고 대규모 항모전단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막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는 중국 항모전단의 전력으로 앞으로 중국이 건설할 항모전단의 유용성을 논한다는 것은 좀 성급한 일이다.
현재 추세대로 중국이 계속 성장한다면[28] 어쨌든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자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돈은 국방비에 퍼부울 것이고, 기술적 진전도 매우 빠를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몇 년은 걸릴 것이라던 서방 항모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이 항공모함 이착륙을 1년도 안되어 성공시킨 것을 보면 랴오닝급을 1-2년 안에 전력화하는 것은 문제없고, 이후 건조될 4-5척의 예비항모까지 포함하면 궁극적으로는 미국식 항모전단을 꾸릴 생각인 것 같다. 이미 동아프리카에 해군기지를 추진 중이고.. 결과적으로 이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큰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J-15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기사도 있긴 하지만, 사실 신빙성은 거의 없다. 출처가 캐나다의 군사잡지라고 하는데 어이없게도 중국어 이름, 한자표기다. 해당잡지의 정체는 파룬궁에서 발행하는 잡지이며, 파룬궁에서 발행하는 인쇄물들은 중국을 까는 내용으로 넘쳐난다. 당연히 신뢰성은 거의 없다.예를 들면 장쩌민 친일파설이라던지...
현실적으로 논해보자면, 중국의 전투기 제조기술은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러시아를 거의 뒤따라잡은 상황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주요 소프트웨어 기술이나 항공기 관련 엔진 기술에서는 평균 이하인 수준이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2위의 막대한 국방비를 통해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전반적인 군사기술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에 중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전 버전에서는 중국이 J-15에 목매여있을 동안 미국과 러시아는 F-35와 PAK-FA를 대량생산하여 배치할게 뻔하니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고 서술하였는데 애초에 미국이나 러시아와 비교하였을때 썩 희망적이지 않을 뿐이지 현재 중국군의 빠른 기술성장 속도와 발전잠재력을 고려해본다면 주변 국가들(인도,일본,한국,동남아 등등)과 비교하였을때는 매우 위협적이다.
2016년 4월에 중국의 함재기인 J-15가 추락사고를 내면서 중국의 함재기 기술 수준에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신형기의 사고는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늘 있는 일인데다가 특히 중국은 함재기를 처음으로 만드는 국가이기에 생산초기의 잦은 사고는 불가피하다. 더욱히 중국으로서는 J-15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는데다가 남중국해의 급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함재기든 항공모함이든 일단 배치하고 시행착오를 고쳐나가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4.6 랴오닝이 위험하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랴오닝이 위험할 수 있다는 기사가 캐나다의 한 군사잡지에 실렸다고 2014년 6월 25일 중국 언론 환구망이 보도했다. 그 원인은 바로 금속피로.
2012년에 러시아 해군의 조선 전문가가 랴오닝 개조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강재의 품질, 구성 비중이 다르다. 게다가 20년간 유지 보수가 되지 않은데다, 특히 용접 부위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 내부의 강판이 변형되어 선체가 기울 가능성이 있다." 며 개조가 성공했는지 여부는 "3-5년 경과하지 않으면 모른다." 고 말했다는 것.
영국의 해군 전문가도 랴오닝 중기 유지 보수에 공개된 사진을 보고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변형이나 기울기 등이 생기면 배는 폐기된다. 내부의 상황은 확실치 않지만, 랴오닝 개장 속도가 빨랐던 것은 인상 깊다." 고 말했다는 것.
기사는 한편 러시아 전문가에 의한 예측에서 2년이 경과한 2014년 현재의 사진에서 내부의 변화나 선체의 경사가 발생한 모습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 이유에 대해 랴오닝에 24기 탑재 될 예정인 전투기 J-15가 현재까지 6기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아서 랴오닝의 하중이 아직 가벼운 것에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향후 J-15 24대뿐만 아니라 탄약 등이 탑재될 경우, 금속피로가 발생할 위험이 있고, 그 결론이 나오는 것은 5년 이내일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서치나 보도
이에 대해 랴오닝은 이름은 거창해도 실질적으로 훈련항모 이상의 의미는 없으므로 전투기를 만재하는 일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아무려면 중국이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닌 항모를 개조하면서 그 정도도 신경쓰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도 있다. 무엇보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만의 문제인지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
5 자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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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함의 과거 모항이었던 다롄에서 중국의 2번째 항공모함이 건조되고 있음이 포착되었다. 기사 알려진 바와는 달리, 이 함도 스키점프대를 갖추었으며, 이는 캐터펄트 를 구비할 것이라는 과거의 정보와는 다른 것이다. 빠르면 2016년 말 진수될 예정이라고 한다. 명칭은 001A형 항모라고 하며, 스키점프대 및 비슷한 스펙을 볼 때, 실질적으로 랴오닝함을 역설계 하거나 혹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부터 설계도를 넘겨받아 건조한 것으로 보인다.[29]
중국 차기항모는 원래는 재래기관대신 핵동력을, 스키점프대가 아닌 캐터펄트를 장착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갑자기 재래동력에 스키점프대로 변경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은 원자로와 자체제작한 캐터펄트를 달기에는 중국 기술력의 신뢰도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정도의 스펙으로도 주변국을 위협하기는 충분한 전력이 되기 때문이라고도 해석되기도 한다.
대만언론 중국시보가 중국은 2025년까지 원자력 항모 2척을 비롯해 총 6대의 항모를 보유하려 한다는기사를 냈다.#
6 기타
미국의 니미츠급에 비하면 훨씬 처지지만,[30] 어쨌거나 고정익기 탑재 대형 정규항모인 랴오닝의 취역에 따라 최근 중국과 영토분쟁(센카쿠/조어도)을 겪는 일본과 대만으로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 이런 그림들까지 나오는 판이다.
- 그림은 일본의 프라모델 메이커 아오시마가 2013년 6월에 발매한 해상자위대 헬기탑재 호휘함 휴우가급의 <1/700 휴가 센카쿠 방위작전> 버전 박스아트로 침몰하는 랴오닝급을 유유히 지나쳐가는 휴우가급이 인상적이다. 애국심 마케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꽤나 과격한 편이긴 하다. 설명서도 '최근 우리나라의 영토에 대한 외국의 침략 도발적 행위가 다발하고 운운'으로 시작할 정도.그리고 아오시마는 2014년에 아키즈키급 프라모델을 내면서 박스아트에 독도를 침공하는 해자대를 묘사했다...
- 어느 나라보다 중국의 군사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대만은[31] 2011년 8월 랴오닝급의 첫 출항 직후, 자국산 초음속 대함미사일 '슝펑' 3호가 랴오닝급을 격침시키는 사진을 함께 전시했다. '항모킬러(航母殺手)'란 문구는 덤.
- 랴오닝함 이후로 중국이 총합 4척의 항모 건조를 계획중이라는 정보가 있다, 랴오닝의 개량형인 국산 항모 '산둥'과 '광둥', 그리고 원자력 항공모함(!)을 계획중이며, 이중 산둥함은 2018년 진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듯. 그리고 현재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개발중이라 하여 기술 확보 경위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다.
- 2014년 4월 21일에는 랴오닝을 주제로 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대내적으로는 중국군이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이며,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항모전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 2012년에 취역 당시에 현역 군인인 함장과 정치위원을 공개했다. 둘 다 계급은 해군대교로 한국의 해군대령에 상당한다. 왼쪽이 함장인 장정(張崢), 오른쪽이 정위인 메이원(梅文)이다. 각각 1969년생과 1965년생으로 2012년 당시에 43세, 47세로 타국의 대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이 고령의 장교들을 군에서 밀어내면서 젊은 장교들이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출처
7 관련 문서
(영어 위키백과)Chinese aircraft carrier Liaoning- ↑ 랴오닝 성에서 딴 명칭이다. 그리고 이 이 함의 모항인 다롄이 소속되어 있는 성이기도 하다.
- ↑ 劉華清(1916-2011). 인민해방군 해군, 공군 원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원래 항일전쟁 시기에는 육군지휘관이었으나, 건국 후 해군으로 전속되었다. 특히 1950년대에는 소련 해군에서 유학했는데, 당시 그의 은사가 바로 소련 해군의 대부인 세르게이 고르시코프 제독. 항일전쟁시기 덩샤오핑과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덩샤오핑이 집권한 후인 1982년부터 해군 총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중국의 해군력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점에서 류화칭을 '중국의 고르시코프'라고 부르기도 한다.
- ↑ 그는 중국 군인 중 최초로 미국의 항공모함에 탑승해본 인물로 1980년 미 항모 키티호크에 방문하여 직접 항공모함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는 항공모함의 규모나 전투력이 크게 인상에 남았는지 당시 각오를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조국과 약속을 했다. 죽기 전 반드시 항모를 갖겠다." 임종 전 그의 마지막 유언도 "항공모함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였으며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후임 해군 장성들은 내년까지 꼭 완성하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 ↑ 1966년에 호주 달러로 변경되었다.
- ↑ 러시아의 경우 키예프급과 쿠즈네초프급의 보일러와 호환성이 있는 90m급의 스팀 캐터펄트를 이미 1980년대에 완성하였으나 예산상 문제로 탑재하지 못했고 차기 원자력 항모였던 울리야놉스크급 항공모함에 탑재할 예정이였지만 건조가 중단되면서 사장된 기술이 있다. 러시아는 이후 해양공학 중앙 연구소에서 차기 항모에 대비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30톤급의 신형 캐터펄트의 연구를 수행하여 캐터펄트 기술을 발전 시켜 놓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항공모함을 가져온 중국은 러시아의 이 기술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다.
- ↑ 아래 나와 있지만 민스크는 한국 기업이 샀다가 중국에 되판 것이다.
- ↑ 러시아는 키예프급 4번함 바쿠를 인도에게 이러한 제안으로 판매에 성공하였는데 그것이 비크라마디티야함으로 2012년에 인도할 예정있으나 연기되어 2013년 11월에 비로소 인도되었다.
- ↑ 퇴역한 클레망소급 2번함 포슈는 결국 브라질에서 구입하여 상파울로라는 함명으로 현재 운용 중이다.
- ↑ 항모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군함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3척이 있을 때 한척은 작전 투입, 한척은 훈련, 한척은 수리와 정비를 위한 대기를 통해 정상적인 운용 싸이클을 돌릴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미국의 국력을 되새겨 보면 미국은 항모가 11척으로 훈련용 항모는 따로 놔두고 각 대양마다 작전용으로 한척씩 보내서 미리 대기시켜 놓고 있다.
- ↑ 흑해는 거의 호수이기 때문에,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흑해에 면한 1, 2위의 가상적국 터키나 이란이 상당한 군사강국이고, 무엇보다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중동에 가깝다는 점에서, 흑해함대는 러시아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여차하면 터키와 핵전쟁을 벌여서라도 함대가 지중해로 나가거나 혹은 함재기들이 이란영공을 통과하여 중동으로 출동해야 했으니...
- ↑ 태평양함대로 전출될 예정이었다는 설도 있다.
- ↑ 항모 건조 경험이 있는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같은 서방국가는 당연히 중국의 팽창을 우려하며, 러시아 같은 경우는 서방보다도 직접 국경을 맞댄 중국이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중국이 비싼 값을 부르며 애원해도 전략무기는 팔지 않는다. 그밖의 다른 나라(일본같은 경우)들은 2차대전 후 항모 건조 경험이 아예 없다. 물론 일본은 서방과 마찬가지 입장이고...
- ↑ 미국의 퇴역 항모 중에도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것이 좀 있다. 지금도 2차대전때 활약한 미드웨이호는 샌디에이고에서, 인트리피드호는 뉴욕에서 관광객에 개방되어 있다.
- ↑ 국제법상으로 이런 국제수역을 자유 통과하는 것은 원칙상 군함에도 해당하나 영유권을 가진 나라는 안보상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 ↑ 터키와 중국 사이 관광협약을 체결. 이로써 터키는 연 200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받아들이고 약 20억 달러의 외화수입이 생김. 또한 중국은 터키에 3.6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를 제공.
- ↑ 자력으로 항해하는 미국의 초대형 원자력 항모들은 종종 수에즈 운하를 이용한다.
- ↑ 수에즈 운하 통행료는 이집트 GDP의 1% 이상을 차지할만큼 중요한 수입원이다.
- ↑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원래 해군이 강하지 않던 중국에서 해군 항공대가 거대해지고 중요도가 올라갈수록 공군에게 돌아갈 예산과 항공기 관련 자원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미국도 제독들의 반란이라는 중국 해군 vs 공군과 비슷한 진통을 겪었던 일이 있었는데, 해군과 해병대가 주로 작전을 수행하여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을 개발살낸 뒤에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하자 핵무기라던지 여러 예산 문제를 놓고 크게 싸우다가 해군장관 출신의 제임스 포레스탈 초대 국방장관이 자살까지 해버리는 등 큰 사단이 났다.
- ↑ J-11의 부품을 뜯어보지 못하는 계약이 있었는데 러시아측은 후에 부품의 봉인이 뜯어진 것을 발견했고, 결국 J-11의 부품공급을 중단한다. 중국은 이때문에 이 사업의 후반기에는 자국산 부품으로 J-11을 데드카피 해야만 했다.
- ↑ 이뿐만 아니라 공격헬기 사업에서도 중국의 라이센스 요청을 거절했다.
- ↑ Su-27과 Su-33의 가장 눈에 띄이는 차이는 날개접힘이다. 또한 Su-33은 동체에 염분에 좀 더 강한 재질을 썼을 것이고...
- ↑ 내륙에 있다. 묘하게도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의 근처이다.
- ↑ 항모를 운용하기 위한 훈련이 호수에서 행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바다는 파도, 해풍 등의 위험요소가 있어서 기상상황에 따라 훈련에 제약이 있기 때문.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도 오대호에 울버린과 세이블을 띄워놓고 훈련을 진행했었다.
- ↑ 전에 포슈라는 이름이 붙어있다가 프랑스가 브라질에 매각한 상파울로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다.
- ↑ 구소련 시절 러시아 해군의 최종목표는 미국의 니미츠급에 대응 가능한, 배수량 8만톤 급의 항모 생산이었다. 이전에 만들어본 거라고는 항모라고 하기도 민망한 키예프급이 전부였던지라 쿠즈네초프는 기본 배수량 5만톤급 내외로 일종의 기술실증 내지는 시험생산형 이라 봐도 좋은 성격의 항모였다.
- ↑ 심지어 모 밀리잡지에서는 유사시 한국해군이 서해에 소형디젤잠수함(방위사업청에서 특수전용및 수출용으로 개발결정한 배수량 1천톤이하의 잠수함)을 16척 정도만 배치하면 중국해군의 수상전투함들은 서해에서의 작전행동자체가 불가능하다고까지 언급하고 있다. 크릭스마리네와 달리 한국해군은 지상발진 항공기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싸우기 때문
- ↑ 사실 한중간의 서해안의 여러 분쟁지점은 남중국해 처럼 여러 무인도가 없기 때문에 일부 밀덕후가 주장하는 것처럼 심각한 분쟁이 일어날 확률은 없다. 이어도 같은 경우에도 국제법상 암초이기 때문에, 중국이 경제수역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늘어놓아도, 남중국해처럼 군사충돌 직전까지 갈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 ↑ 예나 지금이나 경제부문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분야이고, ~~가 미국경제를 추월한다는 말은 당장 일본 버블경제때 지겹도록 들려왔던 말이기에 새로울 것이 없다. 곧 미국을 제칠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던 일본이 지금 어떤지를 보면 경제 상황에 대한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이를 그나마 객관적으로 보자면 '현재' 중국의 경제력에서 볼때 항모를 장만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것이 객관적 일수 있다.그리고 최근 중국 경제도 거품이 빠지는 중이다.
- ↑ 그 중 러시아는 가능성이 낮은게, 계약을 위반하고 전투기의 봉인을 뜯어냈기 때문에 기술 유출을 우려했기 때문(...). 항공모함 역시 중요 자산인데 그 설계도와 노하우를 넘겨주는 건 중국이 호갱짓을 어지간히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 ↑ 중국군 수뇌부 자신들도 허세부리지 않고 이를 너무나 알고 있다. 중국군 국방부 대변인은 항상 서구 언론이 제기하는 중국 위협론을 반박하면서 "중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20~30년 뒤처져 있다"고 발표하곤 한다. 다만 이 바닥(군사)은 국제정치에서도 특히 허세와 속임수가 일상이라, 어떤 나라가 하는 군사 관련 발언은 액면 그대로 믿기보다는 온갖 정보를 토대로 여러가지 검증을 해보아야 한다.
- ↑ 대만군은 중국이 그동안 양안 군사분쟁 최전방인 대만해협, 즉 대만 서부연안을 우회하여, 랴오닝급 항모를 동남부 연안 지역의 공격에 동원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랴오닝급의 존재가 대만 후방지역에 대한 제2전선 형성을 강요할 것이라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