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피어리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
(1856년 5월 6일 ~ 1920년 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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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미국의 탐험가. 한때 위인전 등에서는 인류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실상은 인면수심의 인종차별주의자.

펜실베이니아주(州) 크레슨 출생으로 1881년 미합중국 해군 토목기사가 되어 니카라과 운하의 조사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후 그린란드를 거쳐 북극을 탐험하고, 1898∼1902년에는 북위 84 °17', 1905∼1906년에는 북위 87 °6'에 도착하고, 1909년 4월 6일 드디어 북극점에 도달하였다...고 당시에는 알려졌다.

2 인면수심스러운 행보

그런데 문제는... 로버트 피어리는 그냥 북극점만 정복한 게 아니라 가서 이누이트들을 가혹하게 부려먹고 심지어 그들을 속여서 미국으로 데려와 전시하고 입장비를 챙기는 악마 같은짓을 했다는 거다. 이런 인간쓰레기스러운 면모가 널리 알려지면서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의 어린이 위인전에서 피어리가 사라졌다. 실제로 최근 등장하는 위인전을 보면 북극을 탐험한 프리드쇼프 난센이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로알 아문센, 심지어 비극의 콩라인 로버트 스콧까지 자주 등장하나 유독 피어리만은 언급이 없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전에 출간된 숱한 학습용 위인전에는 로버트 피어리가 빠짐 없이 실려 있어서 위인전 열풍 속에서 자라난 70,80년생들은 아직도 로버트 피어리를 영웅적인 탐험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90년 초반 국내 중학교 영어 책자에서까지 피어리를 위대한 탐험가로 묘사한 게 나왔었다!

이후로 무수한 소송에 걸려 늘그막에 재판장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비아냥까지 나왔을 지경이며 심지어 그가 북극점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돌 정도였다(...)[1]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공교롭게도 피어리를 괴롭히던 인물이 바로 아문센과 같이 벨지카 호에 탔던 프레드릭 쿡이었는데캡틴 쿡과는 관련없다 서로가 북극점에 먼저 갔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논란이 거셌다.

더불어 피어리가 욕먹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이누이트를 마구 부려먹은 것 말고도 결정적인 게 있다. 피어리에게 속아서 미국까지 와서 자연사동물원에서 살아 있는 야만인이란 표본으로 전시되던 이누이트 부자가 있었는데 그만 아버지가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자연사박물관 측은 시체까지도 해부하여 박제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그 아들인 미닉은 영어를 배우고 나서야 피어리에게 아버지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으며, 되려 피어리는 그 박제 관련 수익을 나에게도 내놓으라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는 추태까지 벌였다.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살다보니 전통적인 이누이트 생활방식을 잊어버려서 고향으로 돌아가도 살아갈 수 없었지만 인종차별로 미국에서도 고생하던 미닉은 나무꾼으로 근근히 살다가 1918년 28살 나이로 병사했으며, 마지막으로 극소수 친구들에게 제발 아버지의 시체와 같이 내 유골을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한 맺힌 유언을 남겼다. 그러다가 박제된 그의 아버지 시체는 1997년에서야 미닉의 유골과 같이 고향에 돌아가 묻혀지게 된다. 국내에도 나온 바 있던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에서 이걸 자세히 다룬 바 있다. 보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심지어 피어리는 이누이트 여성과 사귀어서 아이까지 얻은 전력이 있다. 당시로선 있을 수 없는 스캔들이었고 덤으로 이누이트 여성과 관계를 맺은 건 여자가 14세였을 때였다. 밝혀질 경우에는 피어리의 인생 뿐 아니라 북극탐험 스폰서의 대거 이탈을 가져올 우려가 있어서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중은 모르는 전설이 되었다.

사실 이누이트 말고도 아프리카나 폴리시네아 원주민들에서 심지어 아시아 나라들 근현대까지 서구권에서 비서구권 성 인식은 다르며 훨씬 음란하다느니 성이 개방적이라느니 아주 개차반으로 왜곡[2]한 걸 책으로 써대고 상식으로 들이대었다.[3] 사실 이누이트들은 성 인식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다![4]] 다만! 극히 일부 이누이트는 손님이 찾아오면 극진한 대접과 더불어 아내를 들여보내기도 하는데 이는 인구가 너무나도 적고 외부인이 좀처럼 없는 곳이나 이렇다. 좁은 공동체 사회에서 근친을 막기 위해 외부의 혈통을 들여오는 것은 인류사에서 지겹게 흔한 일이기에 이걸 야만스럽다고 할 수도 없다. 당장 무수한 인류 역사에서 왕이나 군주가 아들이 없어서 친척이라든지 양자를 들여와 세자로 책봉하던 것도 흔한 일이었고 포르투갈같은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전쟁 및 여러 일로 인구가 줄어들고 남자가 없어서 당시 사람대접도 하지 않던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들까지 자유롭게 풀어줘 사람대접하고 백인여성과 관계하여 아이를 낳도록 해야했던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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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성적으로 문란한 이누이트인들"을 묘사한 영화로 안소니 퀸 주연의 '야생의 순수'(The Savage Innocents,1960년)[5]가 있다. 이 영화는 아시아(중국)에 대하여 편견이 가득한 모습을 보인 북경의 55일을 감독한 콜라스 레이(1911~1979)가 감독한 영화로, 이누이트들이 진짜로 자기 아내랑 같이 잠자리를 이방인에게 내줬던 일이 있었다고 묘사하였다. 완전 왜곡은 아니라 일부 아주 오지에서 도저히 인구가 적은 곳에서 소수로 있던 일이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 지역 일로서 이누이트에게 전부 이러냐고 묻는건 처맞을 일이며, 만화가인 조관제는 이 영화를 보고 사양말아야지 헛된 꿈을 품으며 세계 오지 여러 나라 여행을 하다가 캐나다에 가서 이누이트들과 이야기하다가 비웃음만 진탕 받았다고 한다. 거기 이누이트 역사학 센터 담당자에게 "당신은 영화만 보고 그저 우리가 무작정 아내를 남에게 바쳤다고 보았나요?"라는 쓴소리를 듣고 자신이 망령들었다며 후회와 미안함만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대중에게 알려진 너무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극히 일부의 지역의 관습이기 때문에 이누이트 역사학자들은 전혀 없다고 부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3 북극점 도달 논란과 진상

뉴욕 헤럴드지는 쿡이 북극점에 먼저갔다고 주장했으며 뉴욕 타임스는 피어리를 편들었고 결국 다수결 선거(?)끝에 135대 34로 피어리가 승리했지만, 그 증거가 명확하지 않았다. 즉 북극점에 도달했다는 경도와 방위각을 측정하지 않았으며 항해일지가 너무 깨끗하다는 점[6]에다 단 며칠 사이에 70킬로미터를 헤쳐갔다는(참고로 피어리 탐험대는 이전에 하루에 3킬로미터 이하에서 멈칫거리며 느리게 횡단하고 있었다.) 게 말이 되느냐는 온갖 불신론에 시달렸으며, 쿡의 집념어린 반격으로 피어리는 해군 소장으로 진급했다는 것 빼곤 온갖 소송과 비난에 시달렸으며 늘그막에는 온갖 위장병으로 고생하다가 죽는데, 되려 그가 한 짓을 보면 참 평온하게 살다가 갔던 것이다. 비록 죽기 며칠 전까지 혼수상태에서 "아냐…. 난 북극점에 갔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릴 정도로 워낙에 비난을 들어서 한이 맺혔지만.스토리가 대한민국의 누구랑 너무나 흡사하다.

기존에는 피어리가 약간의 쇼맨쉽이나 가필을 부렸지만 북극에 간 건 맞는 것으로 보았다. 앞서 말한 없어진 꾀죄죄 노트도 공개되었고, 실제 피어리가 탐험했다는 경로를 피어리 시대의 장비로 탐험한 탐험대가 거기에 써있는 말대로 며칠 사이에 70킬로미터를 어렵잖게 가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쿡 자신이 제시한 증거는 피어리의 증거보다도 더 빈약했다. 쿡은 이 사건 이후로 완전히 묻혔고, 그가 이전에 했던 업적 하나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하여간 쿡은 말년에 다른 일로 석유탐사를 했고 그 보고서마저도 조작의혹에 시달렸다.

그런데 1996년에 발견된 피어리의 새로운 일지를 검토해 본 결과 북극점에서 40km 못 미친 지점까지만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피어리의 탐사를 지원해줬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피어리의 일지를 재검토한 결과 피어리가 북극점에 도착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었고, 일지에 나오는 기상정보를 통해 피어리의 위치를 다시 계산한 결과 피어리의 최종 도착점은 북극점인 북위 90도가 아닌 북위 89도 57분으로 밝혀졌다.## 물론 피어리는 북극점을 항해와 도보로 향했으므로 당시 기록으로는 가장 북극점에 가까이 도달한 것이 맞지만 북극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이 때문에 피어리의 북극점 탐험 성공을 대대적으로 기사화했던 뉴욕 타임스는 진상이 밝혀지자 79년 만에 정정보도를 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피어리는 '해당 지점에 도달한 최초의 사람'도 아니다. 그의 길을 안내해준 이누이트 족 안내인들이 먼저 해당 지점을 밟았기 때문이다.어째 스토리가 누구랑 많이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기사나 뉴스, 사전에서도 로버트 피어리를 북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인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시 모든 건 국적빨이다.[7] 그 동안 피어리가 북극점에 갔다고 써논 위인전이 많아서 개정이 안 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피어리가 북위 89도 57분까지만 도달했다고 명시한 기사에도 피어리가 북극점에 최초로 간 사람이라고 적어놓는 이상한 경우도 나오고 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로버트 피어리는 북극점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북극점에 가까이 갔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 국적으로 아주 가까이 간 것도 피어리보다 더 먼저인 사람이 있었다!

4 비운의 탐험가 매튜 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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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매튜 핸슨(Matthew Henson, 1866~1955)이다. 보다시피 흑인인 그는 어릴 적부터 마차 및 개썰매 조종에 뛰어났고 이뉴이트어도 잘하고 사냥도 잘하며 피어리의 조수로서 활약하며 1시간이나 먼저 북극점에 당시 도달했음에도 이걸 질투한 피어리가 숨기고 자신이 먼저 갔다고 개뻥치며 조작했던 거였다. 나중에 피어리는 핸슨이 먼저 간 것이라고 하던 쿡에게 그가 흑인이라 잘 몰라(?) 북극점에 가지 못했다고 어거지로 질투에 열폭했다.

이렇게 흑인이라서 인종차별도 당하며 모든 공로를 부정당하고 그냥 조수로서 도왔다 수준으로 알려진 핸슨은 빈민굴에서 어렵게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난다. 물론 흑인들에게는 피어리보다도 핸슨이야말로 진정한 위인이라고 존경받았으며 빈민굴 속에서도 핸슨은 우대받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지나서야 핸슨의 시신은 1988년 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진다. 우습게도 그의 곁에는 피어리의 무덤이 있는데 즉 피어리랑 동급으로 우대받는 셈이다. 물론 핸슨에게 불명예같으나 반대로 그동안 피어리의 따까리 수준으로 무시당하던 핸슨이야말로 동급이라고 인정한 셈. 후원하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 진정한 북극점 도달자라고 2000년 영예의 메달을 피어리가 아닌 핸슨에게 사후 수여했다.

그리고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것이 가장 확실한 사람은 로알 아문센이다. 지구 양 쪽 극점을 정복한 정복왕의 위엄.. 로버트 피어리의 북극점 탐험은 무효가 되었고 공중항로로 북극점에 최초로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리처드 버드의 경우에는 일지의 기록이 지워져 있고 육분의의 기록이 공식 기록과 일지의 기록이 다른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전한 이유가 원래 꿈이였던 북극점 정복을 피어리에게 뺏겼기 때문이였던 걸 생각하면 미국에게 두 번이나 엿을 먹인 셈이다. 미국인: 너희 영국인들은 로버트 스콧이 남극점에 먼저 도착했다고 가르쳤다지? / 영국인: 너네는 너네 나라 사람들이 최초로 북극점에 도착했다고 구라치고 다녔다면서? 본격 승자없는 병림픽
노르웨이 : 그래봤자 최종 승자는 우리야, 아문센이 어느 나라 사람이었더라?

한편으로 피어리는 북극점이라 생각했던 지점에 국기를 꽂으면서 북극점을 미국 영토로 선포하는 2000년대 관점으로 봐서는 무개념한 짓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소련은 북극 1호로 최초로 북극점을 비행기로 도달했고 나중에는 북극해 해저에 위치한 북극점에 도착해 티타늄으로 만든 자국의 국기를 박았고[8] 이는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북극해에서 양 측의 병림픽이 격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

5 트리비아

  • 그나마 업적이라고 한다면 북극점은 바다에 있다는 것과 이누이트 족의 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해 이누이트 족의 문화와 생활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남겼다는 점이라고 그동안 알려졌으나 이마저도 핸슨이야말로 공로자이다. 핸슨이야말로 이뉴이트어로 그들과 이야기하며 그들 생활을 꼼꼼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결국 피어리가 한 일은 핸슨이 한 일을 가로챘다는 점으로 업적이랄 것도 없다. 결국 한 게 뭐냐
  • 미합중국 해군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군함들이 여럿 진수되었지만, 피어리의 이런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 뒤에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역 함정 중에도 벌크선인 USNS Robert E. Peary가 있고, 제2차 세계대전리버티선 SS Robert E. Peary가 4일 15시간 30분만에 건조부터 진수까지 마무리하는 몰뭐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한지라 현역 벌크선이 퇴역하더라도 비전투함 명칭으로 오랫동안 우려먹을 것 같다. 그래도 주력 전투함에 이름이 붙던 것에 비하면 좀 개선된 점...일까? 더불어 핸슨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미해군 수송함에 핸슨의 이름을 따서 USNS Henson호라고 이름이 지어져 그를 기리고 있다. 확실히 피어리랑 차원이 다르게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하던 일을 다하고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로를 남긴 핸슨이야말로 피어리랑 차원이 다르게 존중을 받아야 한다.
  • 조세핀이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이 사람도 탐험가였다. 로버트가 북극 탐험에 갔을 당시 조세핀도 남편을 찾아 북극 탐험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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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가지고 2015년 프랑스,불가리아,스페인 합작으로 'Nobody Wants the Night'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서 조세핀 피어리는 줄리엣 비노쉬가 맡았다. 평가는 그냥 그랬고 흥행도 실패해 묻혀졌지만. 이젠 피어리가 개쌍놈인데 이딴 걸 만들어?

  1. 90년대 나온 대중적 역사책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재조사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아예 피어리가 안 간 걸 사실화한 적도 있었다.
  2. 1988년 이탈리아,필리핀 합작 영화 <팬텀 솔져>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베트남 남자들에게 플레이보이를 주면 얼마든지 좋아한다든지(불평 불만 다 사라지고) 아시아에 대하여 음란한 모습만 보인다고 월간 플래툰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다가 아시아나 비서구권적 지역에서 성이 개방되어 있다라고 왜곡한 모습이라고 깐 바 있다. 그런데 팬텀 솔져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이 영화감독은 필리핀인이다!
  3. 지금은 사라진 잡지 취미가에서 이런 걸 짧게 언급했는데 한 서구인이 만든 베트남 전쟁 디오라마에서 미군 전차가 가는 길에 베트남 여성들이 가슴을 다 보이고 가는 게 찍혀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설명역으로 해외 디오라마에 참가했다가 베트남계 이민자로부터 베트남 여성이 훌러덩 가슴을 이방인들에게 들이대고 간다는 걸 마치 사실인 마냥 소개한다며 욕만 실컷 먹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 참전한 한국 군인들의 회고록에서도 직업적으로 몸 파는 여성이 아닌 이상, 당연히 가난한 시골 여성들도 보수적이고 이방인 남성에 대하여 거부감을 보이며 피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걸 생각하면 이 디오라마는 엉터리일 수 밖에.
  4. 다만 아시아나 이런 보수적인 지역 사람들도 반대로 서구권이 성이 개방되어 있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양방이 서로의 문화를 잘 이해못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매도하는 것.
  5. 오역이다. 여기서 "Innocents"는 특별히 s까지 붙인, 다수를 뜻하는 명사이며, "Savage" 부분도 야생보단 야만적임을 뜻하는 단어다. 좀 더 제대로 번역하자면 야만적인 미개인들. Innocents 라는 단어가 무고하거나 순수한 자를 뜻하는 단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피해자 라는 뜻도 담겨있기 때문에 문맥을 고려하면 미개인이라는 단어가 적당하다. 특히 "Innocents"라는 단어자체의 대상을 순진무구한(...) 어린이 수준으로 낮잡아본다는 속뜻도 고려하면...
  6.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북극 탐험때 당연히 씻지도 않고.. 기름이 니글니글한 페미컨만 우적우적 먹기 때문에 일지 자체가 꾀죄죄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가 당시 공개한 부분은 중요한 부분도 없고 깨끗했다.
  7. 국적 이전에, 탐험가의 인성이 더 크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트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의 경우처럼, 본인이 마음만 있다면 공동으로 등정한 사람의 이름이 빠지는 일은 없다.
  8. 잠수함으로 도달한 건 미국이 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