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제국의 제후국 | |||||||
왕국 | 프로이센 | 바이에른 | 뷔르템베르크 | 작센 | |||
대공국 | 바덴 | 헤센 | 올덴부르크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 ||||||
공국 | 안할트 | 브라운슈바이크 | 작센-코부르크-고타 | 작센-마이닝겐 | |||
작센-알텐부르크 | |||||||
후국 | 리페 | 샤움부르크-리페 |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 |||
로이스-게라 | 로이스-그라이츠 | 발데크-피르몬트 | |||||
기타 | 함부르크 | 브레멘 | 뤼베크 | 엘자스-로트링겐 |
한국어 : 로이스-게라 공국
독일어 : Fürstentum Reuß-Gera / Reuß jüngerer Linie
표어 : Ich Bau Auf Gott ("나는 신에 의해 지어졌다")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령(Fürstentum)이었으며 수도는 게라(Gera).
1905년 기준으로 면적 827 km², 인구 14만 5천 가량.
1 약사
한 뿌리였던 로이스-그라이츠 공령과 함께, 하인리히 6세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공가의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다. 로이스 백작가가 다스려온 백작령이었으나, 1806년에 로이스-게라, 로이스-로벤슈타인, 로이스-슐라이츠, 로이스-에베르스도르프, 로이스-쾨스트리츠 백작들이 각각 공(Fürst)으로 승격되었다. 1848년까지 이들 공들이 다스리던 영토는 슐라이츠 계통으로 통합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로이스-그라이츠와 합쳐져 1919년 로이스 자유국이 되었고, 튀링겐 주에 흡수되었다.
2 왕사(王史)
로이스 공가는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는데, 로이스-게라의 경우에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 그 때부터 태어나는 남자아이는 넘버링을 다시 1세부터 시작한다.
- 하인리히 42세 (1806-1818)
- 하인리히 62세 (1818-1854)
- 1785~1854. 1848년 혁명으로 퇴위한 로이스-로벤슈타인 및 에베르스도르프의 하인리히 72세의 영토를 흡수했다. 미혼으로 사망했다.
- 하인리히 67세 (1854-1867)
- 1789~1867. 북독일 연방에 가입했고 프로이센과 가깝게 지냈다. 지성적이었으며 노련한 상업적 경험으로 많은 인기를 받았다.
- 하인리히 14세 (1867-1913)
- 1832~1913. 1913년에 로이스-그라이츠의 섭정을 맡았다.
- 하인리히 27세 (1913-1918)
- 1858~1928. 1918년 퇴위했다. 1927년 로이스-그라이츠의 마지막 당주가 사망하자 로이스 공가의 통합 당주가 되었다. 그의 계승자인 하인리히 45세(1895~1945)가 소련군에 납치, 사망하면서 슐라이츠 계통이 단절되었고, 이후부턴 쾨스트리츠 계통이 당주가 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