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역대 영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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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대75대76대
고든 브라운데이비드 캐머런테레사 메이
사진출처: 수상관저 공식 플리커 계정 (라이선스에 의한 표기의무)

데이비드 윌리엄 도널드 캐머런(David William Donald Cameron).

영국의 75대 총리.

임기 :
2010년 5월 11일 ~ 2015년 5월 7일 :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2010년~2015년)
2015년 5월 7일 ~ 2016년 7월 13일 : 보수당 단독 정부(2015년 ~ ).

1 약력

1966년 10월 9일 런던 출생. 윌리엄 4세생물학적 후손으로, 엘리자베스 2세와는 생물학적으로 먼 친척 사이다[1]. 고조부는 독일계 유대인인데, 그와 그의 고손인 캐머런이 모세의 직계 후손(!)일지 모른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나 캐머런 본인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없고 영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꽤나 강한 편이다. 종교는 영국 성공회. 참고로 캐머런 가문 자체는 스코틀랜드의 가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이미 꽤나 먼 조상대부터 본가와 거리가 먼 분가 출신이었지만 캐머런 가문 본가는 현재도 스코틀랜드의 유서깊은 귀족 가문으로 존재한다.

  • 헤더다운 스쿨 (Heatherdown Preparatory School) 졸업
  • 이튼 칼리지(Eton College) 졸업
  •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PPE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최우수학위 (first class honours)로 1988년 졸업.
  • 영국보수당 정책연구소(Conservative Research Department)에서 노먼 러몬트(Norman Lamont), 이후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의 특별보좌관
  • 칼턴 커뮤니케이션스 회사(Carlton Communications Limited)의 법인업무 이사(Director of Corporate Affairs)

1997년 총선 때 스태퍼드(Stafford)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2001년 옥스퍼드 근처 위트니(Witney)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 당선.
2005년 12월 6일 당수 경선에서 승리, 38세의 젊은 나이에 보수당 당수.
2010년 5월 11일 총리 취임. 43세.
2015년 5월 7일 총리 재선, 48세
2016년 6월 24일 총리 사임 발표, 49세
2016년 7월 13일 총리 퇴임, 49세
총리 자리에 복귀하지 않는 한 인생의 주요 이력이 40대에 다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역대 총리들이 내각의 주요 보직(재무장관, 외무장관, 내무장관 등)을 거쳐 총리의 지위에 오른 것과 달리, 캐머런은 내각 주요 보직을 한 번도 거치지 않고 총리에 오른 이례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단점도 많지만[2] 섀도우 캐비닛[3]으로 2005년 교육부 장관을 6개월 간 잠깐 치르고 바로 당수가 되었다. 이게 사실 더 치명적.[4]

캐머런의 경우 2001년에 하원 의원으로 당선 되었다가 2005년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듣보잡에서 한 순간에 주요 정치인으로 등극한 것. 게다가 실질적으로 정치 입문 9년 만에 총리가 된 셈이니 정치인으로서는 쾌속 승진인 셈. 충공깽. 물론 그의 정당인으로서의 경력은 최소 20년 이상은 되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캐머런은 첫째 아이를 잃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부인 사만다 캐머런이 2002년에 낳은 장남 이반 레지널드 이언(Ivan Reginald Ian)은 만 6세였던 2009년에 희귀병인 오타하라 증후군#을 앓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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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에게는 현재 1남 2녀로 2004년에 낳은 딸 낸시 그웬(Nancy Gwen), 2006년에 낳은 아들 아서 엘원(Arthur Elwen), 2010년 총리 취임 뒤에 낳은 딸 플로렌스 로즈 엔델리언(Florence Rose Endellion)이 있다. 막내 플로렌스는 출산 예정보다 3주 일찍 태어났는데, 당시 캐머런 가족은 휴일에 콘월에 가 있었다고 한다. 가운데 이름 Endellion은 출산지 인근에 있는 세인트 엔델리언(St Endellion)이라는 지역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세인트 엔델리언은 콘월어 Sen Endelyn을 영어화한 표기이기 때문에, 그의 딸 이름에 콘월어가 들어갔다며 콘월 현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전 해에 아들을 잃은 기억 때문인지 총리직을 맡고 있음에도 육아 휴직을 내서 이 역시 화제가 되었다.

용인발음[5]의 대표적인 구사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BBC 방송 출연시에는 에스츄어리 억양(Estuary accent)을 약간 섞는 편이다.

2016년 EU탈퇴 국민 투표를 실시하였으나 6월 24일(한국 시간) 탈퇴가 51.9%의 지지를 받으면서 16시 23분(8시 23분, 영국 시간)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임을 발표했다. EU와의 협상은 새로운 총리가 맡아야 한다며 10월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까지 새 총리가 내정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성명 발표를 끝냈다.

2016년 7월 11일, 차기 총리가 테레사 메이 현 내무장관으로 결정됨에 따라 7월 13일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16년 9월 13일,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퇴임 이후 청소년 개발 프로그램을 돕는 일을 첫 직업으로 삼았다.#

2 13년만의 정권 교체

2010년 계속되는 세계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영국 노동당병크를 발판으로 삼아 집권에 성공. 하지만 어느 정당도 의회 의석의 과반수를 넘기지 못한 상황이라 결국 보수당이 제1당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당과의 연정 협상을 통해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체제로 수상으로 재임 했었다. 현재는 2015년 5월 영국 전역에서 치뤄진 총선 결과에 따라 의회의 의석 수가 과반수를 넘겨 영국 보수당 단독 내각으로 재임 중.

3 악재

자유민주당과 호주식 선호투표제 국민투표 실시를 협상해[6] 연정 체제로 집권하여 노동당에게 빼앗겼던 정권을 무려 13년 만에 빼앗아 왔으나, 대학 등록금 문제, 그리고 NHS (영국의 국가의료보험) 개혁 문제등으로 초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지지율은 줄고 있는 실정. 간질을 포함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었던 장남 이번이 2009년 2월 사망했기에 캐머런은 NHS를 지지했지만, 총리가 된 이후에 NHS 개혁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다.

초기에는 인기가 나쁘진 않았다. 토니 블레어존 F.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젊은 지도자에, 드라마테니스를 즐기는 나름 서민적인 성품, 무엇보다 보수당임에도 마거릿 대처를 아주 제대로 씹어버리면서 "영국이 두 나라가 되었다. 부자와 빈자의 나라, 이건 반드시 막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재정건전화 속에서 결국 보수성을 버릴 리가 있나(...). 런던 폭동(riot)도 이 양반의 이런 정책 때문에 북부부터 들끓으며 무정부 상태가 된 게 런던까지 번진 것이다. 2011년 영국 폭동 참조

게다가 내각의 한 차관이 일으킨 '우유 도둑' 논쟁으로 인하여 점점 민심이 이반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 자유민주당이랑 협상할 때 5년간은 집권할 것이라고 했는데 5년도 못 채우게 생겼으니 자유민주당만 안습 (...) [7]

2011년 4월, 부총리 닉 클레그가 "솔직히 나도 낙하산, 인맥타기 등으로 사회 진출이나 인턴십에 관한 덕을 많이 보았다. 나 말고도 이런 사람 많을 거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시스템이고, 우리는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덕을 보았다. 이제부터라도 제정신 차리고 적어도 공적기관의 인턴 선발은 공정하고 열린 과정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라고 밝혔다. (스펙이 취직의 제일 기준이 된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한 이야길수 있다!) 근데 얼마 후..

인맥타기/낙하산이 뭐가 나쁨? 나도 다 그랬고 내 주위 그거 부탁하는 사람 많음. 현대사회에서는 다 그러는 거 아님?(...)

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영국도 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구만. 이게 보통 사람이었어도 시끄러운 발언인데, 문제는 아직 출신이나 집안에 의해 사회 진출의 한계가 그어지는 영국에서 명문가 출신의 현직 총리[8] 자기가 빈부차, 계급차 없는 나라 만들겠다고 말한게 엊그제 같은데도 이런 발언을 한 탓에 파문이 일파만파...덕분에 캐머런 본인은 물론이고 보수당까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것은 물론이요, 지지자들까지 안티로 돌아서고 있다[9]. # 관련기사, # 참고기사. 그런데 엉겁결에 클레그 부총리는 총리 때문에 불쌍하다며(...) 동정표를 받고 있다. 어...?[10]

유럽연합의 금융규제정책 도입 압박과 닉 클레그 부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말이야 당당한 영국이라지만, 그것때문에 영국이 입은 손실도 상당하다. 하지만 또 영국은 금융 빼면 이미 앙금 빠진 단팥빵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말그대로 진퇴양난의 딜레마. 이에 힘을 받은 당내 반EU파들이 주도한 2011년 10월 24일 EU 회원국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 동의안 의회투표가 주도되고, 보수당에서 찬성표 81표가 나와 캐머런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11] 보수당 내부에는“EU가 영국의 주권과 자율성을 위협한다”는 반EU정서가 뿌리깊게 남아있으며 이는 영국의 재정문제와 함께 비유로권 국가임에도 EU 재정위기로 인한 구제금융지원을 해야함에 따라 촉발된 것. 결국 당시 캐머런 및 자유민주당, 노동당과 손잡고 국민투표 실시안을 반대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 정국을 누가 만든 것이겠는가? #

클레그 부총리는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코엑스 회의장에 가기 전에 건너편에 있는 봉은사를 방문, 를 마시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까지 치고 왔다고 한다.'#'하지만 세계 평화 이전에 영국의 평화부터 지켜야 할 것 같다.

2012년 4월이 되자 그나마 40% 중반선을 유지하던 지지율도 30%로 급락했다. 아직 노동당 당수가 지지율이 낮아 망정이지 노동당은 이미 40%의 지지를 받고 있다.[12] 그래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결과는 당연히 보수당은 정체성을 깨닫고 돌아온노동당에 밀려 2당으로 전락했다.[13]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서 " 2014년 9월 18일에 독립투표 시켜줄게"라고 합의했는데, 처음엔 스코틀랜드 내 독립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14]....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독립찬성 여론이 빠르게 높아져서, 선거직전까지 찬반여론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진짜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영국 정치계에서는 뭐하러 그 합의를 해줘서 이 사단을 냈냐고 미친 듯이 까이고 있다[15]. 본인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불똥이 떨어진 셈. 스코틀랜드 독립이 부결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만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해 버렸다면 정치적인 생명은 끝난 것 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북해 원유도 잃었겠지게다가 스코틀랜드 자치권을 둘러싸고 투표가 끝난 직후부터 이곳 저곳에서 갈등과 잡음이 생기는 후폭풍을 돌파해야 하는 최악의 악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2015년 7월에는 채널 터널로 밀입국자와 난민[16]이 몰려들자 이들을 소위 벌레나 동물과 같은 집단에 쓰는 난민떼라는 말실수를 했다가 신나게 까였다. 그래놓고 2020년까지 2만명의 난민을 받겠다나 뭐랬나?

4 경제 정책

데이비드 캐머런은 처음부터 강력한 보수정책을 내걸고 당선되었다.[17] 당선된 이후 과감한 재정감축을 단행했고, 공무원 임금을 동결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러한 정책은 많은 반발을 불러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한 때는 IMF가 경고를 할 정도로 캐머런의 이러한 경제행보는 위태로워 보였으나 # 참고기사 그 뒤에 IMF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 참고기사. 뚝심있는 자유주의 정책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도 돋보였다. '레드 테이프 첼린지'를 통해 과감한 규제 개혁을 펼쳤고, # 참고기사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참고기사

그리고 캐머런 정부는 마침내 영국 경제를 회생의 길로 이끌었다. # 참고기사 경제성장률은 다시 오르고, 다른 유럽국가들이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에 신음하는 동안 영국은 아주 빠르게 금융위기의 늪에서 벗어났다. 유럽에서 영국 만큼 경제가 잘 나가는 나라는 없고, 그나마 근접한 국가도 독일 정도에 불과한 수준. 인구 구조도 프랑스 만큼이나 견실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유럽 1위에 이르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성장률이 최선진국임에도 한국과 비슷하고 역사적으로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적 쇠퇴기를 쉽게 벗어나곤 했던 미국까지 능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2015년에는 더 강력한 경제개혁안을 내놓았다. # 참고기사 오랜 영국병의 원인이었던 복지비용을 추가 삭감하고, 법인세상속세를 내렸다. 다만 국내 각계각층의 반발을 감안하여 최저임금은 대폭 끌어올리는 등 워킹푸어 문제에도 신경쓴 게 특징이다. 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국민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 복지로 전환하겠다는 뜻.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5 2015년 총선

총선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보수당은 노동당과 박빙의 접전을 벌여 재집권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에드 밀리밴드가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었다. 하지만 투표 당일 BBC출구조사 결과 보수당이 31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재집권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한국시각 8일 기준으로 보수당이 321석을 차지한 상태로, 명목적 다수인 326석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단독 재집권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 보수당이 예상외의 승전을 거둔 데에는 에드 밀리밴드의 공약이 급진적이어서 보수층의 결집을 자초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그리고 캐머런 정부는 경제 측면에서 커다란 실책을 한 상황도 아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캐머런의 재집권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선전이 복병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결국 총선 결과 보수당이 331석으로 과반수를 넘겨 재집권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단독 집권을 해서 자민당을 제외하고 보수당만으로 내각이 구성되었는데 이는 1997년 이후 18년만에 처음이다.[18] 암흑기 탈출 성공 총선 전 영국의 보수적인 기업가들은 보수당이 이기면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리스크를 져야 하고,[19] 노동당이 이기면 경제 자체에 리스크를 져야 한다[20][21]며 푸념했는데 결국 둘 중에 유럽연합 리스크(기업인들의 관점에 따른다면)를 지게 됐다(...). 게다가 친유럽적인 SNP(스코틀랜드 국민당)가 이번 총선에서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전체 의석 59석 중 무려 56석을 차지한 상태라 유럽연합 탈퇴를 빌미로 독립을 재시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중.[22] 그래서 미국 언론들은 총선 직후 영국이 유럽연합도 탈퇴하고 스코틀랜드도 잃어서 캐머런이 리틀 잉글랜드[23]의 건국의 아버지(...)[24]가 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은 전례 없는 분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6 브렉시트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EU 탈퇴파가 승리하자 결과에 승복하며 8월 이내로 사임할 것임을 발표했다. # # 데이비드 캐머RUN 한국에서는 이에 대해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한 후 정치 커리어가 박살(...)난 일이 떠오른다며 다시 회자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자기 목만 날린 오세훈과 전 지구촌 사람들의 밥줄을 끊고 있는 캐머런은 스케일부터가 비교불가다(...). 그와중에 캐머런은 내추럴 본 다이아 수저라 서민들이야 죽든말든 관전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다. 브렉시트를 하던 안했던 어차피 서민들이 살기 힘들다는 사실은 잊어주자

7월 12일, 마지막으로 의회 간담회에 출석하여 "저도 한때는 미래였습니다(I was the future once)."이라는 명언(?)[25]을 남기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원래 이 말은 지난 2005년 12월 보수당 당수로서 처음으로 의회 간담회에 나섰던 캐머런이 영국 학교들의 입학 정책 자율화 문제와 관련,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향해 "그의 접근법은 구닥다리다. 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블레어)도 한때 미래이긴 했다(This approach is stuck in the past. And I want to talk about the future. He was the future once)"고 말했던 내용의 셀프 패러디.

7 논란

2015년 9월 들어 '캐머런이 상류층 마약 클럽에 출입한 적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있다. 기사 이곳의 신고식은 자신의 음경돼지머리 입속에 집어 넣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캐머런의 별명은 Pig Fxcker가 되었으며, 그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확산 중이다. 지금 이런 걸 생각했다면 지는 거다 이 드라마의 1편을 모두가 다시 보게 되었다 해시태그로 '#piggate'가 나온 걸 보면 말 다했다. 이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영국 보수당의 전직 회계 책임자인데 이에 대해 캐머런은 좋은 자리에 앉혀 주지 않아서 복수하는 것이다라고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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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중산층 가정을 방문했을 때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를 시전하다 역풍을 맞았는데 핫도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서 었다. 이걸 두고 "캐머런은 우리(서민)와는 다른 사람(금수저)"이라고 각인되었다.[26]

2016년 4월 4일에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아버지가 서류상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에 돈 세탁을 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즈가 처음 공개 됐을 당시,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은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정했으나, 파나마 페이퍼의 세부정보가 더더욱 공개 되기 시작하면서, 첫날부터 완전히 정직하게 말을 못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따라 아이슬란드 총리 처럼 사퇴 하라는 의견이 주목을 이끌고 있다.

2016년 5월 런던 시장 선거에 노동당 소속인 후보 사디크 칸이 무슬림이라고 공격하며 같은 당의 (유대인인) 잭 골드스미스를 지지했지만, 칸의 승리로 역사상 첫 무슬림 런던 시장이 나오는 걸 축하해줘야 했다. 게다가 골드스미스는 컬럼으로 노동당이 테러리스트와 친구인 정당이라고 발악하다가 호되게 욕먹었는데, 보수당 또한 무슬림 의원이 여럿 있어서 스스로 테러리스트와 친구인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꼴이었다. 이러니, 이걸 비난해야 하던 캐머런이 되려 골드스미스를 지지했기에 같은 당 무슬림 의원을 비롯하여 당 내부에서도 캐머런에 대하여 비난이 쏟아졌다.
  1. 사생아의 후손이기에 왕위 계승권은 없다.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서자도 계승 가능성이 있었지만 서양에서는 원칙적으로 일부일처제였기 때문에 서자는 사생아로 취급됐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2세는 월리엄 4세의 조카인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다.
  2. 이건 토니 블레어도 그렇다. 영국의 정치가 1980년대 이래 보수당 장기집권 18년, 노동당 장기집권 12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난 정권에서 각료를 지낸 인물은 보통 옛날 사람이 되고 만다(...)
  3. 그림자 내각이란 뜻으로 의원 내각제 국가에서 정권을 잡지 못한 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를 대비한 예비 내각이란 뜻이다.
  4. 예를 들어 토니 블레어도 집권 이전 10년 가까이 섀도 캐비닛의 에너지부, 노동부, 내부무(Home Office) 장관을 맡았다.
  5. 항목을 참조하면 캐머런의 금수저력을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다.
  6. 이 투표는 결국 2011년 5월 6일 국민투표 끝에 69%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 사실 보수당이나 노동당이 이미 당론을 반대로 정한지라 투표만 하는거지 찬성은 아니란다 31%의 찬성이면 자민당 자체의 지지율보다 높은 결과긴 했다.
  7. 원래 우유 도둑 논쟁은 그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소소한 사건이었으나 보수당 내각의 장관이 BBC에 출연하여 병크(...)를 터뜨려 전국적인 비난을 면치 못 하게 되었다. 이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이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12세 이하 어린이의 무상 우유급식을 철폐하면서 촉발된 논쟁이 1차.
  8. 이 항목에서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캐머런은 금수저 맞다. 한국으로 따지면 초등학생인 나이에 미국 석유 재벌가 친구의 생일파티를 간다고 친구의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 생일파티에 참가한(...) 사람이 서민이라 말하기엔 거리가 몇 광년쯤 멀다.
  9. 캐머런이 가난한 집안이었어도 저런 말을 해도 개드립이라고 까일 마당에 귀족에다가 부잣집 자제출신이 저딴 말을 해댔으니 최악의 병크였다.
  10. 여하간 전반적인 경향성으로 따지면 한때 가디언지가 지지할 정도로 진보적인 평가를 받으며 총선 전엔 정당지지율 1위까지 하던 자민당은 이젠 캐머런 짝퉁, 가짜 진보 평가나 받으며 바닥을 기는 신세다. 연정의 대가인 셈. 안습.
  11. 투표는 찬성 111표 대 반대 483표로 부결되었다.
  12. 노동당의 당수 에드 밀리밴드는 '총리 못되는 남자'로 개그캐릭터화 되었다.왕이 못되는 찰스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13. 그나마 보리스 존슨이 켄 리빙스턴을 꺾고 런던 시장직을 수성해서 체면치레.
  14. 시기와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낮아도 6:4, 높으면 8:2 정도였다.
  15. 보수당이야 자당 총리의 병크에 경악을 하며 큰 비난을 했고, 야당인 노동당조차 스코틀랜드가 워낙 노동당의 텃밭인지라 만일에라도 독립하면 지지기반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상황이라서 정말 미친듯이 깠다.
  16. 전원 밀입국자라고도, 난민이라고도 하기 뭐한 것이 불법체류가 목적인 사람과 진짜 난민이 뒤섞여 있다.
  17. 그가 한 말 중에 빚으로 하는 복지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18. 앞서 말했듯이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대처, 메이저로 이어진 보수당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다. 보수당이 정권에 복귀한 건 2010년이지만 이때는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었으므로 보수당만의 단독 정부 수립은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9. 영국이 만약에 EU를 탈퇴하게 되면 유럽 단일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는 데다가, EU의 정책에 영국의 입장을 반영할 길이 막히게 된다.
  20. 당시 노동당 대표인 에드 밀리밴드가 당내 좌파 라인이라 토니 블레어 시절의 소위 신노동당(뉴 레이버) 시절보다 더 좌파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기업의 우려가 컸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노동당의 경제 정책 중 보수당보다 나은 건 EU 탈퇴 리스크가 없다는 것 하나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1. 이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15년 5월 2일자 커버스토리였다. 당시 표지
  22. 물론 주민투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재실시되기는 쉽지 않다. 주민투표가 실시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명분이 있는 데다가, 2014년에 예상과 달리 독립 직전까지 갔었던 충격과 공포 기억 때문에 향후의 영국 총리들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 실시를 받아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캐머런도 더 이상의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상태이고.
  23. 영국 국호에 들어가 있는 '그레이트 브리튼'을 비튼 표현이다. 물론 스코틀랜드(약 530만 인구)가 독립해도 웨일스(약 300만 인구)와 북아일랜드(약 185만 인구)가 영국에 남아 있지만 잉글랜드(약 5300만 인구)가 영국 국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져 버린다(스코틀랜드가 빠진 영국 인구의 약 92%가 잉글랜드 거주자). 따라서 과장을 보태면 스코틀랜드가 없는 영국은 사실상 잉글랜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24. 이 표현은 당연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비튼 것이다.
  25. 원래 이 간담회는 신랄하게 아가리 파이팅 서로를 몰아붙이고 말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날만큼은 마지막 자리였던 만큼 전반적으로 여유와 유머가 넘쳐났다.
  26. 비슷하게 도널드 트럼프가 서민 코스프레 한답시고 KFC 치킨을 먹었는데, 전용기를 탄 채 포크와 나이프로 치킨을 썰어먹는 모습을 보여줘서 신나게 까였다(...). 박근혜비슷한 일화가 있는 것을 보아 금수저 종특이라도 되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