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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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 (常陸宮 正仁親王)히타치노미야의 문장

1 개요

일본황족. 쇼와 덴노고준황후의 차남이자 아키히토 덴노의 남동생. 어릴적 칭호는 요시노미야(義宮), 현재의 궁호는 히타치노미야(常陸宮).[1]

2014년 현재 승계서열 4위.

2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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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1935년 11월, 히로히토 덴노와 나가코 황후의 차남이자 6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아키히토 덴노와는 2살 터울. 덴노의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결혼 전까지는 칭호인 요시노미야(義宮)로 호칭했다.

1939년 만 4살 때 그 시절의 관례에 따라 궁궐을 나와 따로 양육되었다. 이 무렵 아버지 히로히토 덴노는 "영국 왕실에서는 자녀를 직접 키우는데, 일본은 왜 이래야만 하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2]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몸이 허약했다. 패전 후에는 마사히토 친왕 자신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만화 캐릭터의 이름인 '카세이(火星) 쨩'이라는 애칭으로 국민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었고, 형 아키히토 황태자와 함께 새로운 '열린 황실'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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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카세이 짱

1958년 가쿠슈인 대학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했고[3], 도쿄대학 대학원 연구생으로 지내며 동물학을 전공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 명예박사, 미네소타 대학 명예박사 등의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독일 암 학회 명예회원이기도 하다.

3 결혼

1964년 9월 30일 지금의 아내인 쓰가루 하나코(津輕華子)와 결혼했으며, 결혼과 동시에 새로운 친왕가인 히타치노미야(常陸宮) 궁가를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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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히타치노미야 궁가는 전후(戰後) 처음 창설된 궁가인데다, 결혼 다음날인 10월 1일에는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되고, 10월 10일에는 1964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전후 부흥을 실감케 하며 당시 일본인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식을 올렸다. 그러나 하나코 친왕비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을 얻지 못했다.[4] 특히 평민[5] 출신 미치코 황태자비를 몹시 미워했던 어머니 나가코 황후를 비롯한 황족 및 구황족 인사들은, 이번만큼은 화족 가문의 딸을 뽑아서 결혼시켰는데도 자식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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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전범 상 양자를 들일 수도 없는 처지라서, 히타치노미야 부부의 애견에 대한 정은 각별하다.

이후 연구를 계속하여, 1969년부터 재단법인 일본 암연구회 암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1년 1월부터는 암연구회 명예총재로 있다.

4 기타

  •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자식도 없어서 일본 황실의 마이너한 존재. 조카 후미히토 친왕은 말할 것도 없고, 승계서열이 밀렸던 사촌동생 이슈메이커토모히토(寬仁) 친왕[6]보다도 존재감이 없었을 정도.
  • 온화한 성격으로 점심시간에 궁녀가 냅킨을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궁녀가 미안해할까봐 지적하지 않고 조용히 무릎에 손수건을 얹고 식사했다고 한다.
  1. 궁호는 지명에서 따오는 게 일반적이다. 히타치(常陸)는 지금의 이바라키 현의 옛 이름.
  2. 1959년 "최초의 평민 출신 비(妃)"로 화제를 모으며 아키히토 황태자에게 시집온 쇼다 미치코는, 관례를 깨고 2남 1녀를 직접 키우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일본 황실에서도 아이들을 친부모 곁에서 길렀다.
  3. 히로히토 덴노의 2남 5녀 가운데서 유일한 학사학위 보유자이다. 아키히토 덴노는 대학 시절 1년간 외유했던 것 때문에 동기들과 함께 졸업할 수 없게 되자, 학교 수업만 듣고 졸업은 하지 않았다. 왕 노릇하는데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첫째 누나 히가시쿠니 시게코는 여자 가쿠슈인, 셋째 누나 다카츠카사 카즈코는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만을 졸업했다. 넷째 누나 이케다 아츠코는 가쿠슈인 여자단기대학(現 가쿠슈인 여대) 가정생활과를 졸업했고, 여동생 시마즈 타카코는 가쿠슈인 대학 영문과를 다니던 중 결혼 관계로 중퇴했다. 둘째 누나 히사노미야 사치코(久宮祐子) 공주는 생후 6개월 만에 요절.
  4. 마사히토 친왕이 무정자증고자이라는 소문이 거의 정설.
  5. 말이 평민이지 대 재벌가의 딸이며 외가는 옛 화족 가문.
  6. 2012년 암으로 사망. 자유분방한 성격의 영향인지 언론노출이 꽤 잦은 편이었고, 구설수에 오른 적도 많았다. 특히 여성 덴노 논의에 강력히 반대하며, "을 두어서라도 아들을 낳아, 남성으로 황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도 딸만 둘이었다.
  7. 미치코 황후의 친정 쇼다(正田) 가문은 가톨릭 집안이고, 그래서인지 미치코 황후는 가톨릭계 여학교인 후타바(雙葉) 여학원(초등학교)와 세이신(聖心) 여학원(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