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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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 마코 내친왕, 아이코 내친왕, 카코 내친왕
앞줄 : 마사코 황태자비, 나루히토 황태자, 아키히토 덴노, 미치코 황후, 후미히토 친왕, 히사히토 친왕, 키코 친왕비

현재 일본 황실의 심각한 남성 부족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편의상 다이쇼 덴노의 자녀와 쇼와 덴노의 자녀도 함께 표기했다. 아래의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여성 황족이 결혼한 후에도 미야케(宮家)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다시 말해 계속 황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신적강하 때 평민이 된 구 미야케를 다시 복권시키자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와 관련한 사항은 일본/왕실 항목 참조.

노란색은 덴노를 나타낸다. 현재 생존한 왕위계승권자는 주황색으로 나타냈다.

1 다이쇼 덴노의 자녀

이름하루노미야 요시히토 친왕(明宮嘉仁親王) → 다이쇼 덴노(大正天皇) 1879.8.31 ~ 1926.12.25
아내쿠죠 사다코(九條節子) → 데이메이 황후(貞明皇后) 1884.6.25 ~ 1951.5.17
자녀1남이름미치노미야 히로히토 친왕(迪宮裕仁親王)
쇼와 덴노(昭和天皇) 1901.4.29 ~ 1989.1.7
2남이름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秩父宮雍仁親王) 1902.6.25 ~ 1953.1.4
아내마츠다이라 세츠코(松平節子)
→ 야스히토 친왕비(雍仁親王妃) 세츠코(勢津子)[1] 1909.9.9 ~ 1995.8.25
3남이름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高松宮宣仁親王) 1905.1.3 ~ 1987.2.3
아내도쿠가와 키쿠코(德川喜久子)[2]
→ 노부히토 친왕비(宣仁親王妃) 키쿠코(喜久子) 1911.12.26 ~ 2004.12.18
4남이름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 [3] 1915.12.2 ~ 2016.10.27.
아내다카키 유리코(高木百合子)
→ 다카히토 친왕비(崇仁親王妃) 유리코(百合子)[4] 1923.6.4 ~ 현재
자녀1녀이름야스코 내친왕(甯子內親王)
→ 고노에 야스코(近衞甯子) 1944.4.26 ~ 현재
남편고노에 다다테루(近衞忠煇)[5] 1939.5.8 ~ 현재
1남이름토모히토 친왕(寛仁親王)[6] 1946.1.5 ~ 2012.6.6
아내아소 노부코(麻生信子)
토모히토 친왕비(寬仁親王妃) 노부코(信子)[7] 1955.4.9 ~ 현재
자녀1녀아키코 여왕(彬子女王)[8] 1981.12.20 ~ 현재
2녀요코 여왕(瑤子女王) 1983.10.25 ~ 현재
2남이름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桂宮宜仁親王)[9] 1948.2.11 ~ 2014.6.8
2녀이름마사코 내친왕(容子內親王)
→ 센 마사코(千容子) 1951.10.23 ~ 현재
남편센 소시츠(千宗室) 1956 ~ 현재
3남이름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高円宮憲仁親王)[10]
1954.12.29 ~ 2002.11.21
아내돗토리 히사코(鳥取久子)
노리히토 친왕비(憲仁親王妃) 히사코(久子)[11] 1953.7.10 ~ 현재
자녀1녀쓰구코 여왕(承子女王) 1986.3.8 ~ 현재
2녀노리코 여왕(典子女王)
센게 노리코(千家典子)[12] 1988.7.22 ~ 현재
3녀아야코 여왕(絢子女王)[13] 1990.9.15 ~ 현재

다이쇼 덴노의 아들 4명과 그 후손들을 살펴보면, 장남 쇼와 덴노와 그 후손을 제외하고 현재 생존한 왕위계승권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는데 토모히토 친왕이 2012년 6월 6일 암으로 사망했고,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독신인 채 사망하면서, 아키히토 덴노의 숙부인 미카사노미야 만 남았다.

게다가 노령의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경우, 3남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을 보낸 지 10년 만에 장남 토모히토 친왕을 자신보다 먼저 보낸 충격으로 입원, 결국 타계하였다. 설상가상으로 2년만에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떠나버렸다. 또 2년 뒤에 다카히토 친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계승권자는 4명밖에 안 남았다.

2 쇼와 덴노의 자녀

이름미치노미야 히로히토 친왕(迪宮裕仁親王) → 쇼와 덴노(昭和天皇) 1901.4.29 ~ 1989.1.7
아내나가코 여왕(良子女王) → 고준황후(香淳皇后) 1903.3.6 ~ 2000.6.16
자녀1녀이름데루노미야 시게코 내친왕(照宮成子內親王)
→ 모리히로 왕비(盛厚王妃) 시게코 내친왕(成子內親王)
히가시쿠니 시게코(東久邇成子) 1925.12.6 ~ 1961.7.23
남편모리히로 왕(盛厚王)
→ 히가시쿠니 모리히로(東久邇盛厚)[14] 1917.5.6 ~ 1969.2.1
2녀이름히사노미야 사치코 내친왕(久宮祐子內親王) 1927.9.10 ~ 1928.3.8
3녀이름다카노미야 카즈코 내친왕(孝宮和子內親王)
다카츠카사 카즈코(鷹司和子) 1929.9.30 ~ 1989.5.26
남편다카츠카사 도시미치(鷹司平通) 1923.8.26 ~ 1966.1.27
4녀이름요리노미야 아츠코 내친왕(順宮厚子內親王)
이케다 아츠코(池田厚子) 1931.3.7 ~ 현재
남편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 1926.10.21 ~ 2012.7.21
1남이름쓰구노미야 아키히토 친왕(繼宮明仁親王)
아키히토 덴노(明仁天皇) 1933.12.23 ~ 현재
아내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
미치코 황후(美智子皇后) 1934.10.20 ~ 현재
자녀1남이름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浩宮德仁親王)
→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皇太子德仁親王) 1960.2.23 ~ 현재
아내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
→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비(皇太子德仁親王妃)
마사코(雅子) 1963.12.9 ~ 현재
자녀1녀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敬宮愛子內親王) 2001.12.1 ~ 현재
2남이름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秋篠宮文仁親王) 1965.11.30 ~ 현재
아내가와시마 키코(川嶋紀子)
후미히토 친왕비(文仁親王妃) 키코(紀子) 1966.9.11 ~ 현재
자녀1녀마코 내친왕(眞子內親王) 1991.10.23 ~ 현재
2녀카코 내친왕(佳子內親王) 1994.12.29 ~ 현재
1남히사히토 친왕(悠仁親王) 2006.9.6 ~ 현재
1녀이름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紀宮淸子內親王)
구로다 사야코(黒田淸子) 1969.4.18 ~ 현재
남편구로다 요시키(黒田慶樹) 1965.4.17 ~ 현재
2남이름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常陸宮正仁親王) 1935.11.28 ~ 현재
아내쓰가루 하나코(津輕華子)
마사히토 친왕비(正仁親王妃) 하나코(華子) 1940.7.19 ~ 현재
5녀이름스가노미야 타카코 내친왕(清宮貴子內親王)
시마즈 타카코(島津貴子) 1939.3.2 ~ 현재
남편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 1934.3.29 ~ 현재

왕위계승권자가 부족한 건 쇼와 덴노의 후손들도 마찬가지. 일단 아키히토 덴노에게는 4명의 누나와 1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남동생이라고는 마사히토 친왕 하나뿐인데 자녀 없이 여든을 넘겼다. 아키히토 덴노는 2남 1녀를 낳았지만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는 딸만 하나이고, 차남 후미히토 친왕은 딸 둘을 얻은 뒤 늦둥이 외아들을 두었다.

3 한국인들의 일본 왕실에 대한 시선

일본 황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좋지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저런 역사적인 이유로 일본 황실이라고 하면 한국을 짓밟아 놓은 대마왕 일족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 황실에 대해 알만큼 아는 한국인들 중에는,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아키히토 덴노와 황태자 부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호의적으로 보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 일단 아키히토 덴노는 일본의 우경화를 반대하는 입장인 데다, 지금까지 한국이나 역사와 관련해 발언한 내용들을 미루어 보면 적어도 역대 덴노 가운데 어느 정도 개념인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루히토 황태자는 생긴 것도 호감형이지만 황실 내의 거의 유일한 진보주의자로써 일본의 극우들과 충돌하는 사이고 그런 탓에 지금까지 고생한 것도 있다. 게다가 아내인 마사코 황태자비의 비운적인 삶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갖는 한국인들이 많아, 일본 황실에 대해 알만큼 아는 한국인들은 황태자 부부에 대해서는 좋게 보기도 한다.

  1. 마츠다이라 가타모리의 손녀이며 이방자 비의 이종사촌 여동생. 본래 이름의 한자는 세츠코(節子)세스코였으나, 시어머니 사다코 황후한자가 같아서 결혼할 때 바꾸었다. 이세신궁이 있어 황실과 인연이 있는 땅인 이세(伊勢)와, 친정 마츠다이라 가문의 근거지인 아이즈(會津)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2. 마지막 쇼군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며, 외가는 방계 황족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이다.
  3. 2016년 10월 27일 타계할 당시까지 남성 황족 중 최연장자였다. 참고로 이 사람은 2004년 NHK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4. 2016년 현재 93세로, 생존한 여성 황족 중 최연장자.
  5. 일본의 막장 정치인 고노에 후미마로의 외손자.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의 친동생. 본래 이름은 호소카와 모리테루(細川護煇)였으나 외가인 고노에 가문에 양자로 가면서 개명.
  6. 암투병 중 2012년 6월 6일 66세를 일기로 사망.
  7. 아소 다로의 여동생이다.
  8. 일본 황실 최초의 여성 박사이다.
  9. 1988년 만 40세가 되면서 독신으로 가츠라노미야 궁가를 창시했으나, 그해 5월 쓰러진 이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았다. 말년에는 형 토모히토 친왕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잃기까지 했다. 보통 결혼을 하면서 궁가를 창시하는 게 통례임에도 독신인 상태에서 궁가를 창시하게 된 까닭으로, 여종을 건드려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다(…). 설령 숨겨 놓은 아들이 있다고 해도 현행 황실전범에서는 서자의 왕위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으니 큰 의미는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냐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다카히토 친왕의 세 아들이 모두 아들을 못 낳고 아버지보다 먼저 가버려서 미카사노미야 궁가의 단절이 확정되었다.
  10. 2002 한일 월드컵 때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부산광역시에 왔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일본 황족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 사례라 양국에서 화제였다. 개방적인 성격에다가 사진스포츠에 조예가 있어서 평판이 좋았으나, 스쿼시를 하던 도중 만 47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
  11. 키코 비가 1994년 둘째 카코 공주임신했을 때, "큰며느리가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는데 작은며느리가 계속 임신을 하다니, 황실 내의 서열을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라는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12. 2014년 5월 27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의 신관인 15살 연상의 센게 구니마로(千家國磨)와 약혼을 발표, 동년 10월 5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왕족에서 제외되었으며,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되었다.
  13. 죠사이 국제대학 복지종합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큰언니에 이어 가쿠슈인을 선택하지 않은 2번째 사례.
  14.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의 첫 총리를 역임한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의 장남. 메이지 덴노의 외손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