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히토

창씨개명한 이름이 '콘도 후미히토'인 한국인에 대해서는 김동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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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문인) 친왕(秋篠宮文仁親王)아키시노노미야의 문장

1 개요

일본황족. 나루히토 황태자의 남동생. 현재 황위 계승 서열 2순위이므로, 향후 형인 나루히토 황태자가 덴노가 될 경우, 실질적으로 황태제가 될 예정(…) [2]

125대 일본 덴노 아키히토미치코 황후의 2남 1녀 중 차남.[3] 일본 황위 계승 서열 2위로, 궁호[4]는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이며, 칭호[5]는 아야노미야(禮宮). 궁호는 황실의 옛 땅인 야마토 북서부의 아키시노(秋篠)에서 유래했다.

아내 키코 비와의 사이에 마코 공주, 카코 공주, 히사히토 친왕을 두고 있다. 히사히토 친왕은 일본 황실에 40년 만에 태어난 황위 계승자(=남자)로 주목을 받았다.

2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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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후미히토를 낳고 퇴원하는 어머니 미치코 황태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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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명명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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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장난기가 가득했다.

1965년 11월 30일 탄생. 후미히토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 미치코 황태자비가 한 차례 유산[6]을 했던 터라 상당한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갓 태어난 후미히토 친왕을 형 나루히토 친왕이 엄청 귀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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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부모가 공무로 떠나자 울고 있는 모습.후미히토 : 으아앙~엄마,아부지 가지마, 나루히토 : 울지마.돌아오실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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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高松宮喜久子) 비에게 서예를 배우는 후미히토.

아키히토 덴노의 숙모 다카마츠노미야 키쿠코 비[7]는 자녀를 낳지 못해, 조카 아키히토 덴노의 자녀들을 손주처럼 귀여워하며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키쿠코 비는 어린 시절에 배운 서예 기법인 '아리스가와 류 서도'[8]를 후미히토 친왕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어린 후미히토 친왕은 교본에 없는 글자를 묻는 등 종조할머니 키쿠코 비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였지만, 이를 통해 종조할머니와 조카손자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쿠슈인 유치원, 초등과, 중등과, 고등과를 거쳐 1984년 4월 가쿠슈인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9]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영국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갔고, 1996년 조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류 외에 메기도 연구했다.[10] 그가 쓰는 도장의 문양은 매화나무이다.

3 결혼 이후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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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와 여장한 신동엽?

1990년 6월 29일 가쿠슈인 대학 1년 후배인 가와시마 키코와 결혼했다. 아래에서도 나와 있듯이 둘의 결혼에 대해서는 안 좋은 말이 많지만, 좋은(?) 이야기도 있다. 신입생 키코와 사귀게 된 후미히토가, 20살의 키코에게 청혼했다고(...). 키코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거절하고, 어머니 미치코 황후도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키코가 24살이 되었을 때, 결혼시켜 주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다, 왕자의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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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의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 뒷편의 집은 후미히토의 셋째 고모 다카츠카사 카즈코가 살던 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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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당시 이 둘은 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나 동아리 활동 등을 함께 하며 꽤 오랫동안 교제한 사이로, 나루히토 황태자가 결혼한 다음에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황태자의 결혼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자 참다 못한 후미히토 친왕이 청혼했다고.[11] 1991년 10월 23일 장녀 마코 공주를, 1994년 12월 29일 차녀 카코 공주를, 2006년 9월 6일 장남 히사히토 왕자를 낳았다.

2008년에는 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와 공동 저작으로 사이좋게 논문을 냈다.# 저자 목록을 살펴보면 "아키히토, A 후미히토 등"(Akihito, A. Fumihito et al.)이라고 적었는데, 일본 황실은 성(姓)이 없어서 덴노는 '이름'만 올렸고, 후미히토 친왕은 후미히토를 성으로, 궁호인 '아키시노노미야'를 이름으로 등재했다. 대개 황족이 황적에서 이탈할 때는 궁호에서 성을 따오는데, 그렇게 할 경우 저자 검색에서 '후미히토'가 아닌 '아카시노노미야' 쪽이 노출되기 때문에 더 자주 사용되는 후미히토를 성으로 등재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저자 주소는 Imperial Residence(皇居:일본 황궁).

히사히토 탄생 이후 황실 내부의 권력구도가 크게 달라졌는데,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 전까지만 해도 차남이라 존재감이 미미하던 후미히토 친왕이 아들을 등에 업고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8년 이후 아키히토 덴노의 건강 악화로 황실 안이 혼란스럽자, 히사히토 친왕의 아버지이자 황위 계승 서열 2위인 후미히토 친왕의 입장은 형인 나루히토 황태자를 몰아 붙이기에 충분했다. 마사코 황태자비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낳은 뒤부터 시부모인 덴노 부부에게 노골적으로 박대받기 시작, 다시 임신해서 이번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까닭으로 유폐생활을 겪었고, 이로 인한 우울증으로 9년간 대부분의 공무에서 배제된 적이 있다. 이 일로 황태자 부부와 덴노 부부의 사이는 꽤 멀어졌지만, 차남 부부는 황태자 부부보다 책임이 적어서인지 예전부터 덴노 부부와 친했다. 여기에 차남 부부가 아들을 낳아 후계자 문제를 풀었으므로, 당연히 차남 부부에 대한 총애가 더 심해졌다.

그는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난 후로 공공연하게 형님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황태자 부부는 아카시노노미야 일가의 행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나루히토 황태자와 후미히토 친왕 사이의 갈등이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는 상황.

대표적인 예로는 '덴노 정년론'의 주장. 일단은 건강이 나쁜 아키히토 덴노를 고려한 효심의 발언 같지만, 그 이상도 겨누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죽하면 아키히토 덴노가 사망하면 일본 황실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상까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루히토 황태자와 후미히토 친왕은 나이 차가 적어서, 정년제를 시행하면 자기도 덴노 몇 년밖에 못한다.

이렇게 입김이 세지자 후미히토 친왕은 2011년 말부터 아버지를 위해서라며 '덴노 정년제' 주장을 한다거나, 형님 나루히토 황태자를 몰아붙히는 발언을 자주 꺼낸다[12]. 덕분에 현 아키히토 덴노 사망 뒤 일본판 왕자의 난이 일어나나 하는 주장도 조금씩 일어난다. 이대로 나루히토 황태자가 적장자를 낳지 못하면, 나루히토 황태자가 덴노로 즉위한 뒤에는 후미히토 친왕이 계승 1순위가 되기 때문이다.[13]

2013년 3월에 한 일본의 종교학자가 "황실을 위하여 나루히토 황태자가 퇴위하라!!"라는 주장을 했다. 명목상 개인의 의견이라지만, 일본에선 황실을 대상으로 의견을 내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절대로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아이코 공주의 우수한 성적이 공개되면서, 아이코 공주의 자폐설 같은 소문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에 비해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는 후미히토 본인과 두 딸들의 대학 입학 정당성 논란이 있었던 만큼 공부 못하기로 유명한 집안(…)이니, 히사히토의 왕위 계승 확률이 반반으로 나뉘어졌다.

2013 도쿄국제도서전 개최 첫날인 7월 3일에 찍었는데, 예고도 없이 한국관에 들러서 박경리토지 일본어판을 읽었다.

2015년에는 작은딸 카코 공주와 함께 공무에 자주 나왔다. 가끔 키코 비히사히토와 나오기도 했다.

2016년에도 공무에 나오는데, 당시 키코 비를 폭행한다거나 자녀 교육 문제로 인해 쇼윈도 부부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하녀처럼 키코 비가 우산을 들어주고 있다. 아들딸들이 이런 엄마 아빠를 보고 뭘 배울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등 나름 이미지 관리를 하는 중인듯 하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히사히토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4 후미히토에 대한 평가

4.1 일본 황실망나니

일본 사회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는 애처가인 형 나루히토 황태자하고는 달리, 후미히토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나쁘다.

일본극우주의자 및 국수주의자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늦둥이 아들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났기 때문에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여성 덴노 즉위가 사실상 물건너가면서, 더더욱 평이 나빠졌다. 게다가 마사코 황태자비의 안타까운 삶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코 공주는 황태자 부부가 천신만고 끝에 낳은 친딸이라는 점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에, 당연히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 이유로도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인 후미히토 친왕을 나쁘게 생각한다.

난봉꾼이라는 소문도 자자하다. 공식적으로는 가쿠슈인 대학에서 키코 비를 만나 교제하다가 결혼한 과정이 아름답게 선전되어 왔지만, 사실 키코 비와 함께 활동했다는 동아리는 후미히토 친왕의 하렘이었다는 것. 후미히토 친왕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보면 꼬붕(…)을 시켜 동아리에 가입하게 했고, 그녀들 중에서 끝까지 후미히토 친왕의 곁에 남았던 여학생이 가와시마 키코였다는 것이다.[14]

심지어 결혼 전에 키코가 후미히토 때문에 낙태를 몇 차례나 했다는 루머도 있다. 실제로 2006년에 히사히토를 임신하고 출산할 때도 키코 비는 여러 산부인과를 거치며 꽤나 고생했다고 하는데, 이런 정황 때문에 낙태 루머가 힘을 얻기도 했다. 또한 사실 키코는 원래 후미히토의 친구의 여자친구였는데, 후미히토가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버리려는 것을 키코의 아버지인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 교수[15]가 알고 궁내청까지 와서 자신의 딸을 책임지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바람에 결혼에 이르렀다는 비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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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히토 친왕의 장인어른인 가와시마 타츠히코 교수.[16] 시집가기 전의 딸 가와시마 키코와 함께.

심지어 이미 고등학생 시절에 키코를 알았다는 말도 있다. 가쿠슈인 고등과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후미히토 친왕은 인근 명문 여고 몇 군데에 "예쁜 여학생들의 사진을 달라"고 요구했고, 다른 학교들은 모두 거절했으나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만은 그 요구에 응하여 몇몇 여학생들의 사진을 제출했는데, 그 중에 가와시마 키코의 사진도 있었다는 것.

또한 일본 국내뿐 아니라, 태국에 나가서 성매매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 내용의 이야기도 떠돈다고 한다. 태국 여성과의 스캔들로 떠들썩하기도 했다.[17] 2003년 키코 비, 마코 공주, 카코 공주와 함께 간 태국 순방[18]에서까지 그 여성을 만났다고도 한다. 키코 비는 그것을 알면서도, 순방 내내 참으며 공식 석상에서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고. 일본에서는 부정적인 황실 관련 보도를 금기시하여 화제가 잘 되지 않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게 얘기가 돈다. 그래서 우익 세력 말고는 엄청나게 씹어대는 인물이었다.[19] 과연 밥맛 없는 사람이자 국민 망나니.[20]

그리고 젊은 시절, 황실 가족 모임에서 술에 취해 시녀를 희롱하다가 형 나루히토 황태자로부터 질책을 듣자, 지가 잘났다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새댁이었던 키코 비는 남편의 포악한 행동을 보고만 있었으며, 여동생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달려와 두 오빠의 다툼을 말렸다고 한다.

딸들과는 사이가 좋은 듯도 하지만, 두 딸 모두 만 20세 생일의 성년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큰딸 마코 공주는 "아버지께서 예전에는 화를 잘 내셨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2006년 9월에 고명아들 히사히토가 태어나면서 후미히토의 난폭한 성정이 좀 누그러졌다는 설이 있었는데, 마코 공주가 확인시켜 준 셈. 작은딸 카코 공주도 자신의 단점에 대해 말할 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도화선이 짧은 면이 있어서,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는 하다하다 2016년 일본 내에서 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과 쇼윈도 부부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다만 소문들이 진짜라기보다는 후미히토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또는 이미지라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후미히토가 정말 키코 비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후미히토는 여자들을 막 대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2016년 들어서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소문이 돌고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딸들에 비해 아들 히사히토를 굉장히 오냐오냐 떠받들고 있다고 한다.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딸들이 했던 행동을 히사히토가 하면 그냥 넘어간다고. 그러다보니 마코 공주카코 공주는 아버지에게 더 야단을 치라며 눈치를 준다고 하는데, 두 공주 모두 불만이 많지만, 특히 작은딸 카코 공주의 불만이 많다고 한다. 아무리 10살 넘게 차이나는 늦둥이 동생이라 해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나들과 남동생의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다.

4.2 실제 성향이 극우인가?

이 양반이 정말 극우 성향이 맞는데 덴노까지 된다면, 황실과 우익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뒷골 땡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까놓고 말해서 우경화에 적대적인 아키히토 덴노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요런 양반이나 이런 양반이나 저런 양반들이 날뛰는 판국인데, 우익 성향의 덴노가 즉위한다면…

실제로 그는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난 후부터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형님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은근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때문에 황태자 부부는 아카시노노미야 일가의 행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나루히토 황태자와 후미히토 친왕간 갈등의 심각성을 반증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것만 갖고는 그가 정말 우익 세력에 동조하는지의 여부는 확신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나루히토 황태자가 황실이 개혁하기를 바라는 것에 비해 후미히토 친왕은 여지껏 해온대로 황실을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생각일 뿐, 일본의 우경화는 탐탁치 않게 바라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키히토 덴노도 수차례에 걸쳐 일본의 우경화를 반대하는 발언을 직설에 가깝게 했으나, 아들 출산 문제를 놓고 황태자 부부와 갈등을 빚는 등 황실 내부 문제에는 꽤나 보수적이다. 한 마디로 현 덴노인 아키히토 덴노도 황실 현안에는 보수적으로, 대외 정책에는 진보적으로 성향을 달리한다는 말. 따라서 후미히토 친왕 역시 아버지처럼 이러한 상황별로 두 갈래의 성향일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후미히토 친왕이 진심으로 우익 세력을 가까이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우익 세력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흠좀무 결국 네가 덴노 되면 니네들은 토사구팽이야.

한 마디로 의심이 가는 정황은 많지만, 후미히토가 극우에 속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는 셈.

실제로 2015년 11월 30일, 본인의 50세 생일 기념 인터뷰에선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아베 신조 내각의 우경화에 대해 우회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 해 1월 아키히토 덴노의 신년사와 2월 나루히토 황태자의 55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 때도 연달아서 우경화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가 있었고, 10월 미치코 황후 81세 생일 기념 서면 회견에 이어서 또다시 후미히토가 비슷한 소리를 반복함으로서 사실상 일본 황실이 정치권의 우경화에 매우 우려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21]

4.3 무관심한 아버지?

위에서 언급한 대로, 후미히토가 아내 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단순히 소문인 듯 하지만, 후미히토는 매일마다 술을 마시거나 자녀 교육도 방임형이라는 소문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대해 키코 비는 술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히사히토가 공부하는데 방해되니 나가서 술을 마시라고(...)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일단 아들을 편애하긴 해도 공부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진 않는 듯.

5 트리비아

5.1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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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박대기라고 알려진 이 짤방의 주인공이다(…). 부제는 '왕자의 굴욕'.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늘 백발인지라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넘게 늙어 보이고, 가끔 검게 염색을 해도 얼마 못가 다시 백발로 돌아간다. 참고로 30대에 이미 머리가 백발이었는데 콧수염은 또 검어서(…) 엄청난 괴리감을 보이기도. 소문에 따르면 백발로 온 노안을 감추려고 콧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그럼 더 늙어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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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굴 자체가 노안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애매하다(…). 사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 나이 52살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동안에 가깝다고 봐 줄 수도 있다.

참고로 위 사진은 2013 도쿄국제도서전 개최 첫날인 7월 3일에 찍었는데, 예고도 없이 한국관에 들러서 박경리토지 일본어판을 읽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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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실에서는 최장신. 178cm라서 꽤나 특출나(…) 보일 정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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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이 마흔 먹고 낳은 히사히토 친왕을 의식했는지 최근에는 염색을 해서 최대한 검은 머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옆의 커트머리를 한 여성이 아내 키코 비.

5.2 한국에 대한 생각?

2013 도쿄국제도서전 개최 첫날인 7월 3일에 찍었는데, 예고도 없이 한국관에 들러서 박경리토지 일본어판을 읽었다. 후미히토 친왕이 도서전에 자주 왔어도 특정 국가 부스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한국관에 느닷없이 오더니만 조선통신사 행렬도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는 여러 책들 가운데 토지를 직접 집어서 안경까지 써가며 유심히 훑어봤다고. 게다가 이렇게 머무른 시간이 총 20여 분으로 상대적으로 길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후미히토 친왕이 한국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듯하다.

애초에 큰딸은 졸업 작문에다 "한국에 인연을 느꼈다"는 글을 쓴 적도 있는 걸 보면 한국에의 인식이 어느 정도 우호적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일본 내 소문인데, 가쿠슈인 대학 시절에 친하게 지낸 한국인 여자친구도 있었다고. 만약 그가 극우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면…

하지만 개별적인 한국인 한두 명이나 한국 문화에 호감이 있는 것과 전반적으로 한국에 호감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예를 들어 그 이토 히로부미도 당시 조선의 문화는 꽤나 좋아해서 한복 차림으로 가족 사진을 찍기도 했고, 요즘 시대에도 일본은 싫어하지만 일본 문화나 개별적인 일본인(또는 연예인)들은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많다. 즉, 일본도 우익이라고 해서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무조건 다 적대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아베조차 한국 의원들이 방일했을 시 혐한 시위하는 애들은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니.(...)[23] 고로 후미히토의 행보 역시 그의 정치관과는 별개로 그냥 사소한 일화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1. 한국 영화배우 조재현, 한국 탁구 국가 대표 감독 안재형, 미국 헐리우드 영화배우 벤 스틸러, 중국 영화배우 공리와 동갑이다.
  2. 다만, 현행 황실전범상으로 규정되어있는것은 '황태자'와 '황태손'뿐, '황태제'는 없다. 따라서 현행 황실전범을 개정하지 않는 한 '나루히토 덴노' 시대가 되어도 후미히토가 '황태제'라는 직함을 쓸 가능성은 없다. 애초에 '황사', 즉 황태자로서의 지위에 앉을 수 있는 것이 '당대 덴노의 자녀'로서 규정되어 있다. '황태제'를 인정하지 않는 현 전범의 규정상, 나루히토가 모종의 이유로 폐태자가 되지 않는 이상은 후미히토가 '황태제'가 된다거나 해서 덴노가 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다.일례로 아키히토가 태어나기 전인 쇼와 초기(1926년 12월 ~ 1933년 12월까지)의 7년동안 일본에는 황태자가 없었다. 당시 계승서열 1위였던 야스히토(雍仁) 친왕은 어디까지나 치치부노미야(秩父宮)라는 일개 궁가의 당주였을 뿐. 후미히토도 이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3. 사실은 미치코 황후의 아들이 아니라는 카더라도 있다. 궁에서 공연했던 다카라즈카 가극단 여배우의 아들이라는 가쉽이 떠도는데, 실제 사진을 보면 닮았다. 우스운 것은, 후미히토 친왕 역시 다카라즈카 가극단 여배우와 그렇고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것. 여동생 구로다 사야코 또한 미치코 황후의 친딸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다. 하긴 이 모녀는 너무나도 안 닮았다.(…) 하지만 모녀지간이 대단히 애틋한 걸로 유명하다.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할 뿐이지만 사실이라면 생각보다 큰일인데, 현행 황실전범에서는 서자를 황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후미히토가 혼외관계로 얻은 자식임을 입증한다면 후미히토 본인 뿐만아니라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5명 모두 더이상 황족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말.
  4. 황태자 아래, 즉 덴노의 차남 이하인 남성 황족이 결혼하여 가장(家長)이 될 때 주어지는 이름. 자녀들은 아버지의 궁호를 따르며, 장남이 아버지의 궁호를 계승한다. 차남 이하는 결혼하면서 새로운 궁호를 다시 받는다. 딸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5. 덴노의 자녀와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개인 이름. 나루히토 황태자의 칭호는 히로노미야(浩宮)였고, 구로다 사야코의 칭호는 노리노미야(紀宮)였다. 그리고 나루히토 황태자의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의 칭호는 도시노미야(敬宮).
  6. 미치코 황태자비는 황실에서 엄청난 시집살이를 당했는데, 이때도 황족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들었다. 심신 모두 병들어, 궁을 떠나 황실 별장에서 한동안 요양했다고 한다.
  7. 다이쇼 덴노의 3남 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친왕의 아내.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손녀이기도 하다. 자녀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노부히토 친왕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8. 키쿠코 비의 외가인 방계 황족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서예 기법.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마지막 당주 다케히토 친왕의 자녀들 중 차녀 미에코(實枝子) 여왕만이 유일하게 생존하여 이를 배웠고, 미에코는 훗날 자신의 딸 키쿠코에게 이를 전수했다.
  9. 공부를 퍽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후미히토 친왕의 점수가 커트라인이 되어, 1984년 당시 가쿠슈인 대학의 입학생 수가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그의 장녀 마코 공주와 차녀 카코 공주도 아버지를 닮아 공부를 못한다고 한다.
  10. 별명이 메기 전하다. 약혼 반지를 메기 모양으로 맞추기도 했다.
  11. 가쿠슈인 대학 근처 횡단보도의 신호등 아래에서 청혼하여 일명 '신호등 아래의 청혼'으로 유명했고, 문제의 그 장소도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12. 일본 황족은 가문이나 정치 관련으로 언론에 입조심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러니 이 말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후미히토 친왕의 궁내 권력이 얼마나 커졌나를 알 수 있다. 예전부터 후미히토 친왕은 효자라는 평을 받았고, 그의 발언 대부분이 부모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닌 편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극우주의자들과 가깝다는 등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딱히 나루히토 황태자의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이 상황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13. 단, 현재 황실전범에 황태제직은 없다. 따라서 실질적인 계승 1순위라도 그에 해당하는 직분은 황실전범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은 받지 못한다.
  14. 가와시마 키코는 후미히토 친왕을 만나 그가 황자임을 알게 된 후, 이전까지 쓰던 보통의 말씨를 일본 황실 특유의 말씨로 싹 바꾸었다고 한다. 즉 그때부터 황실에 시집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 황실에 시집 가기를 자처했다는 점에서는, 영국의 왕세손빈인 캐서린 미들턴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15. 가쿠슈인 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저명한 경제학자이다. 미국유럽에서 공부하여, 그의 딸 키코 비도 어린 시절의 상당한 기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16. 가와시마 타츠히코 교수는 외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을 해서인지 성격이 매우 괄괄하고 꼿꼿하다고. 후미히토 친왕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황실에 찾아가서 사돈 아키히토 덴노와 담판을 지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17. 이때도 키코 비의 친정아버지 타츠히코 교수는, 궁으로 쫓아와 사돈 아키히토 덴노에게 사위의 행실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8. 당시 마코 공주가쿠슈인 초등과 6학년, 카코 공주는 3학년이었다. 어린 두 공주에게는 첫 해외순방이었다.
  19. 히사히토 탄생과 형수 마사코 황태자비의 요양으로 상대적 이미지가 엄청 좋아졌다.
  20. 더군다나 키코 비가 후미히토 친왕을 상당히 내조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자세한 사항은 키코 비 항목 참조)
  21. 2차대전으로 인해 일가 친족이 죄다 강등되어(신적강하) 왕가의 손이 절손되게 생겼으니...
  22. 180cm에 조금 못 미치니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일본 남자 황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키이다. 황실에서 그 다음으로 키가 큰 사람이 형인 나루히토 황태자도 아닌 형수인 마사코 황태자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형보다 키도 한참 큰 데다가 형하고 닮은 곳도 없어서, 아키히토 덴노가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루머가 한때 계속 돌았었다. 모범생인 나루히토와 달리 후미히토는 학업에도 소질이 없었고 난봉꾼 기질이 다분했는데도 미치코 황후는 저런 후미히토를 이상하리만치 제재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루머를 부추겼다. 물론 장자 혈통을 우선하는 황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는 차자인 후미히토에게 소홀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여담이지만 일본 황실에서는 마사코 황태자비나루히토 황태자보다 키가 큰 것 가지고도 험담을 해댔다.
  23. 사실 아베 신조의 부인 아베 아키에가 유명한 한류 팬으로, 혐한 댓글러들에게 SNS 테러를 무진장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