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마 켄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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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山虔一. 1909-1990. 블랙넛

1 개요

조선 26대 왕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의 장남이다. 조선 이름은 이건(李鍵)이다. 의친왕과 마찬가지로 왕공족으로 생활했으나 아버지와 남동생 이우와는 달리 반일 의지는 전혀 없었다고 기록된다. 국적이 복잡한데 1909년에 대한제국인으로 태어났다가 1910년에 일본인이 되고 1945년 종전으로 반 무국적 상태에 놓였다가 1952년에 일본 국적이 박탈되었다가 1955년에 일본인으로 완전 귀화하였다. 결론은 조선 왕실 출신의 조선계 일본인이다.

2 생애

1909년 의친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수관당 정씨. 어릴 적 이름은 용길(勇吉)이었으나 1924년에 건으로 개명한다. 1910년 한일합방 당시에 왕공족고종황제, 순종황제, 순정효황후, 영친왕, 의친왕과 그의 아내, 흥친왕과 그의 아내 등 8명이고 나머지 이왕가의 왕족들은 왕공족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건의 이복동생인 이우이준용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왕공족이 되자 그도 왕공족으로 대우하게 된다.

1930년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기병소위로 임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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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이방자 여사의 외사촌인 마츠다이라 요시코(松平佳子)와 결혼한다. 1936년에 대위로 진급하고 육군대학을 졸업한 뒤 중령 계급으로 종전을 맞았다. 1947년 신적강하가 이뤄지자 모모야마 켄이치란 이름을 쓴다. 장남 이충은 타다히사(忠久), 차남 이기는 킨야(欣也), 장녀 옥자는 아키코(明子)로 개명한다. 원래 아내인 요시코의 이름은 세이코(誠子)였는데 이때 요시코로 개명한다.

일본의 패전 후 부부는 시부야에서 단팥죽과 산양젖을 팔거나 제과점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1984년 경향신문에서 연재된 이방자의 회고록[1]에 따르면, 그래도 엄연한 왕족이고 군대 장교였던 이건 공이 시장에서 단팥죽 장사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 몰래 찾아갔더니, 정말 이건 공과 부인 요시코가 '모모야‘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이방자 여사는 굉장히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영친왕 내외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다고 한다.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독일어 번역일 등을 하기도 했다. 요시코는 사교적인 성격이라 이 시절에 긴자의 클럽 등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이건이 이를 굉장히 싫어했다.

그러다가 부인의 외도[2]를 계기로 1951년 이혼하였다. 차남 킨야는 이건이, 장남 타다히사와 아키코는 전처인 요시코가 키운다. 1952년 재혼한 마에다 요시코(前田美子)와의 사이에서 3남인 고야(孝哉)를 낳았다. 1955년에 일본인으로 귀화하였고, 1990년에 사망하였다. (전처인 요시코는 2006년에 사망했다.)

3 여담

의친왕의 5녀이며 이건의 이복 여동생인 이해경 여사가 집필한 <나의 아버지 의친왕>에 의하면, 의친왕과 이건 부자는 원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의친왕은 아들들이 어려서부터 둘째아들 이우는 무척 총애하면서 큰아들 이건을 노골적으로 미워해서, 술을 마시고 취하면 이건에게 일본으로 가서 살라고 화를 내곤 했다. 이우가 방학 때 일본에서 돌아오면 직접 서울역으로 마중나갔지만, 이건이 돌아오는 날에는 일부러 외출하며 이건을 피하곤 했다.

어느날 이건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또 의친왕이 일부러 집을 비웠다. 이것을 알고 참다 못한 이건이 웃통을 벗어부친 채 마당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울부짖는 것을 이해경 여사가 목격한 적도 있다. 이건이 이우와 다르게 일본의 식민지배에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고 해방 후 아예 일본에 귀화한 데는, 아버지 의친왕의 미스테리한 미움과 구박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이건이 공식적인 생모인 수관당 정씨 소생이 아니라 일본 여자 소생이라는 출처 불명의 루머가 있는데 자세한 사정 아시는 분은 보충설명 바람.


자동차 애호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최고급 대형 리무진 등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1970년대 후반에 일본클래식자동차클럽 회장을 지냈다.

모모야마 켄이치의 후손들은 전처 요시코 사이에 2남 1녀, 후처 요시코 사이에 1남이 있다. 3남인 모모야마 고야는 카이세이학원에서 영어 교사를 하고 교감을 지내기도 했다. 전주 이씨 모임이 고야와 접촉하려 했을때 고야가 '아버지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라고 한 것을 보면 본인이 왕족임을 숨기고 산 듯 하다. 고야는 전주 이씨 왕실 모임을 거절했고 나머지 후손들도 현재까지 참석하지 않는다.
  1. 원 제목은 <세월이여 왕조여>. 2014년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로 재출간(출판사 : 지식공장소) 됨
  2. 장남의 혈액형이 다른 것이 드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