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역사

무협소설의 뿌리는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의 『자객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최근 거론되는 무협 장르는 근대에 쓰인 무술을 익힌 영웅의 영웅담을 이야기한다.

1 중국 무협지의 시작

무협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22년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이란 필명을 쓰는 향개연(向愷然)이란 작가가 《홍잡》에 『강호기협전』이라는 소설을 6년 동안 연재한 것을 시초로 한다.

향개연의 성공 후 무협지를 쓰려는 작가들이 늘어났고 20여 년에 걸쳐 발전에 발전을 하여 남파(南派)와 북파(北派)로 나뉘어 작가들의 남북대립구조가 생겨났다. 흔히 무협지에 등장하는 마교 / 정파의 대립은 이 남파와 북파의 대립을 토대로 와룡생이 만든 것이다.

  • 남파 :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이란 필명을 쓰는 향개연(向愷然)과 동료 작가들, 그 문하생들의 집단을 지칭한다. 최초의 무협지로 기록된 《강호기협전》의 저자인 향개연이 참여한 것을 통해 소위 정통무협지의 이름을 내세우며 북파와 대립하였다.
한국 무협지에서 주로 다루는 신비문파나 이국의 이방인 같은 제3세력을 주인공으로 삼는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 북파 : 환주루주(還珠樓主)라는 필명을 쓰는 이수민(李壽民)과 왕도려(王度廬)를 중심으로한 작가파벌을 지칭한다. 남파보다 대중들의 수요가 더 많다는 것을 내세워서 남파와 대립하였다.
구파명문가라고 하는 구파일방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영웅세력을 만들어 두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스타일을 추구하였다.[1]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 내에선 무협지가 금지된 이후부터는 대만으로 터를 옮기거나 홍콩에 터를 잡은 중국인들에 의해서 계보를 이어오게 된다.

2 국내의 시작과 몰락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최초의 무협지는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정협지로 위지문의 《검해고홍》을 김광주라는 번역가가 번역한 것이다. 경향신문에서 정협지를 연재하여 엄청난 판매율을 올리자 너도나도 무협지의 번역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대만산의 위작들이 와룡생, 고룡, 양익 같은 유명작가의 이름을 빌리거나 비슷하게 사용한 해적판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한국작가들이 위작을 시작하며 쇠퇴기를 걷게 된다. 70년대 중후반부턴 한국작가들에 의한 독자적인 창작무협지들이 출판 되었지만 대개의 경우 도색잡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90년대 후반, 청년층을 노린 판타지 소설에 밀려 아저씨들의 전유물화되었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을 읽던 청년들이 늙어 아저씨가 되어 무협지를 보기 시작하자 판타지 쓰던 사람들이 무협지를 써대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3 한국 무협의 세대별 구분

3.1 1세대

1세대는 김광주에서 사마달, 검궁인, 서효원, 와룡강, 금강, 야설록까지로 본다. 김광주 같은 초기 시대는 따로 구분한 후 창작 무협의 생산이 본격화되고 대본소용 박스형 무협소설들이 자리 잡은 시기부터 1세대라고 보기도 한다. 번역 무협소설과 번역을 가장한 창작 무협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들은 만화방에 공급되는 박스형 무협소설을 통해 작품을 내놓았다

이 때 나온 무협소설들은 주인공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고전소설을 연상케 하는 일대기적 구성이 대부분인데, 주인공이 차츰 힘을 쌓아가다 패업을 달성하는 게 주된 결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전적 이야기 구조가 소설들에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독자들의 식상을 불러왔고 그 식상에 대응하고자 소설들이 뒤로 갈수록 만화테니스의 왕자》마냥 뻥튀기 되어갔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작품 표절, 일본사무라이물 표절, 자기 작품의 표절 등 끝간 데 없는 표절이 이어지며 무협소설의 명예를 떨어트려 갔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무협을 읽던 독자들은 점점 빠져나갔고 그런 독자들을 잡겠다는 안간힘은 소설 속 성행위 묘사가 갈수록 진해지는 꼴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의미한 성행위 묘사의 증가는 제대로 된 무협을 보려는 독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꼴을 불렀고, 거기다 지속적인 작품 공급을 위해서 이름만 빌려주고 그림자 작가들이 적당히 짜깁기한 글을 내놓는 이른바 대명무협이 범람하면서 작품들의 질은 급격히 하강, 결국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아타리 쇼크와 똑같은 꼴로 무협 시장은 망한다.

이런 상황들 속에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1세대 무협은 와룡강 상표, 사마달 상표가 붙은 자기 복제성 노루표 무협지를 제외하곤 멸종 상태로 이어졌다.

1세대 무협의 경우 일대기적 구성 외에도, 강시나 음산한 지하동굴의 괴물 등 괴기스런 묘사가 있는 작품이 많았다는 특징도 있으며, 소설 서두에 기본 설정을 느낌표 가득한 거창한 문장으로 나열하는 점도 특징.

3.2 2세대

과거 야설록의 고스트라이터로 시작해 1세대 말미에 활약하다 무협 시장이 망한 후 활동을 접었던 작가 용대운하이텔 무림동호회에 《태극문》이란 작품을 연재하면서 2세대의 싹이 피기 시작한다.

PC통신에 연재되다 책으로 출판된 《태극문》은 큰 인기를 끌면서 무협 시장 부활에 견인차 역할을 했고, 1995년에 들어와 좌백이 《대도오》를 내놓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2세대 무협은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2세대 무협은 당시 이들이 얻었던 이름인 신무협처럼 1세대와는 다른 무협소설을 추구했다. 고대 소설이 연상되는 1세대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 아닌 일반 소설과도 같은 문체로 소설을 쓰고[2], 절벽만 떨어지면 등장하던 기연을 줄이거나 없애면서 주인공이 힘을 얻는 과정에 최대한 개연성을 부여하고, 악당을 주인공으로 삼기도 하고, 일부다처는 기본이던 남녀관계도 아주 담백해지는 등 철저히 1세대 무협과는 다름을 추구했는데, 이런 다름에 대한 추구는 역으로 다름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지면서 이후 2세대 무협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2세대 무협의 최대 성과는 피상에 머물러 있던 무협소설 속 강호란 이름의 세계를 생생하게 살려냈다는 점이다. 이후 등장한 2세대 무협 작가들은 당대 중국에 대한 전례 없는 고증이나 치밀한 묘사를 하거나 혹은 한국사의 한 부분을 작품 속 사건으로 치환하거나 하면서 2세대 무협소설은 이전 세대와는 훨씬 깊은 진실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런 진실성 추구는 작품 집필기간이 이전 작가들에 비해 한참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계속해서 신인 작가가 등장하면서도 이들 중 안정적으로 계속 작품이 나오는 작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틈새를 사마달이나 와룡강이란 상표를 단 무협소설들이 집어삼키면서 2세대 무협의 전성기는 종말을 고한다.

3.3 3세대

3세대 무협의 시작은 《묵향》과 《비뢰도》. 온라인으로 나오던 여러 소설들이 책으로 나오는 와중에 《묵향》과 《비뢰도》가 서점에 등장해 인기를 끌고 이들을 따라 이런 저런 사람들이 무협소설을 온라인에 쓰고 그것들이 책으로 나오게 되면서 3세대 무협의 시대가 열렸다. 3세대는 2009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태.

3세대의 특징은 초반 만렙 이후 먼치킨. 3세대 무협은 소설 초반에 주인공을 먼치킨으로 만든 후 그 힘으로 여기 저기 휘젓는 주인공을 보임으로서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짜증이 싫고 주변을 휘어잡는 대리만족을 원하는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초반 만렙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은 독자들이 작품에 대리만족하기 좋게 해주기도 했는데 이런 레벨업 소재로 차원이동도 주요 재료로 등장한다.

초반에 급격한 레벨업 후 주변을 휘어잡는 게 3세대의 주요 특징이긴 하나 3세대 무협의 인기가 부른 다양한 신인 소설가들의 등장은 이런 스타일만이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기기도 한다. 중국 무협보다 더 고전적인 소재를 잘 활용한 등선협로나 소요장강기 같은 소설이 나오는가 하면, 요리를 소재로 하거나 환상적인 요소를 더욱 가미하거나 하는 등 신선한 시도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시도만 좋다가 글쓴이들이 제대로 이야기를 끌어가지 못해 말아먹는 경우가 상당수이기도 하다.

3세대 무협은 현대인들의 욕망을 대리충족하게 하면서 커졌다는 점에서 1세대 무협과 유사성이 있는데, 1세대 무협 몰락의 원인인 유사한 패턴의 반복과 그로 인해 식상한 독자들의 이탈, 1세대 식의 표절까진 아니라 해도 유사한 소재의 반복적인 차용, 질 떨어지는 상품의 범람 같은 1세대 무협 몰락의 원인까지 따라가는 경향이 계속 보이는 상태다. 질 떨어지는 글의 범람은 결국 괜찮은 작품까지 묻어버리고 괜찮은 작품이 묻히면서 결국 독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데, 대여점 체제에선 일단 질은 둘째 치고 책들이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는 게 문제점이다.
  1. 세간에 알려진 구파일방이란 것은 북파가 만든 구파명문가란 설정에 김용의 독자적인 설정인 개방을 한국 작가들이 추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2. 그러나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현대 소설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며, 이전 세대의 영향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무협소설 특유의 낱말이나 상투적인 문장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용대운이나 좌백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문체로 따지면 오히려 1세대 중의 1세대 무협이라는 김광주의 《정협지》가 더 현대소설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