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단장 | |
민경삼(閔庚三) | |
생년월일 | 1963년 2월 24일 |
학력 | 신일고-고려대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6년 1차 지명 |
소속팀 | MBC 청룡 (1986~1989) LG 트윈스 (1990~1993) |
1 소개
현 SK 와이번스의 단장.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선수 출신 단장이다.
감독 따라 팀을 옮겨다니는 변절자들이 재세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일명 반 노리타 토템
2 선수 시절
신일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연고팀 MBC의 1차지명을 받아서 입단하게 된다. 이 시절은 전형적인 수비형 내야수였는데, 수비는 그럭저럭 했지만, 타격이 최악이었다. 나름 대학에서 이름을 날린 유격수였지만 그 자리에 김재박이 있었고, 유고웅과 김인식 또한 수비력이 강한 선수였기 때문에 자리가 없었다. 결국 1993시즌이 끝나고 일찌감치 은퇴해 프런트가 되었다.
1994년 홈 개막전에서 김동재, 김정준과 같이 은퇴식을 치뤘다.[1]
여담이지만, 선수 시절 통산 타율이 0.217. 역대 최악의 타자 10인에 들어가는 레벨이다. 참고로 이 엔트리에는 감독 3인, 코치 3인, 단장 1명과 고교야구 코치 1인을 배출할 정도.[2]
3 LG에서의 프런트, 지도자 시절
LG에서 1994~1995시즌을 매니저로 근무면서 이 시기 우승도 맛보았다. 1997년 천보성 감독이 취임하면서 코치를 맡아 2000년까지 역임했다. 2001년 프런트연수를 떠나며 다시 프런트가 되었지만, 김성근 경질 여파 속에 LG를 떠났다. 이는 민경삼이 최종준[3] 전 단장의 인맥이었기 때문이었다. 최 전 단장은 김성근 지지파였다. 이 시기에 전력분석팀인 김정준, 노석기도 SK로 가게 된다.
4 프런트 2기
2003년 최종준이 단장으로 있던 SK로 이직, 프런트 요직을 거쳐서 2010년부터 단장에 취임했다. 이 시기 사장인 신영철과 더불어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가 껄끄러웠고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였다. 당시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몇몇 팬들은 제대로 빡친 나머지 문학구장 소요 사태를 일으키고 말았다. 더군다나 경질 직후 감독 대행을 맡은 이만수가 취임식을 하는 등 황당한 행보를 보여주었고, 특히 여러차례 부적절한 인터뷰로 논란거리를 만들면서 같이 까였다. 결국 2013년 성적이 6위로 추락하자 2014시즌부터 현장에서의 권한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2014년 시즌 후 갓동님 이만수 와의 재계약을 안 한 덕분에 SK팬들은 기쁨을 느꼈고 타팀팬들은 감동님이 없어져서 슬퍼했다., 팀의 핵심선수인 최정, 조동화, 김강민을 잔류시키며 간만에 좋은 평을 받았다. 이재영, 나주환이 FA미아가 될 뻔했지만 알게뭐야
그러나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보여주고 있는 막장행보 때문에 신영철 사장과 함께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김성근이 자신의 강연 및 인터뷰 내용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면서, 그동안 잘드러나지 않던 내로남불식 행태가 부각되었고, 감독 경질 과정에서 친김성근 성향의 기자들에 의한 의도적인 여론몰이가 있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었다.
다만 김성근 경질은 단장으로서 팀의 미래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재평가 한다쳐도, 이 과정에서 아무런 사전공지 없이 용마를 폐쇄하고 현재까지 부활할 기색조차 없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팬들과의 소통 문제가 빈발하였다. 어찌하던 감독 교체가 매끄럽지 않게 이루어지면서 이 과정에서 SK와이번스 팬덤은 공중분해되버렸다.
애초에 미래의 감독 후보로 이만수를 데려와 놓고, 성향이 전혀 다르고 특별한 관계도 없는 김성근을 2년짜리 감독으로 앉힌 구도 자체가 당시 신영철 사장과 민경삼 단장 프런트의 명백한 패착이었다고 할 수 있다.[4] 처음부터 프런트 - 김성근 감독 - 이만수 코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4.1 FA 시즌 행보
2013년 정근우가 구단의 제시액을 걷어차고 한화로 이적할 무렵, 민경삼은 정근우가 70억을 걷어찼다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갈팡질팡하던 SK팬덤의 공격목표를 친히 지정해주는 한편, 다른 구단이 정근우에게 최소 70억 이상으로 베팅할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최정, 김강민, 조동화를 잔류시킨 다음에 중요도가 떨어진 나주환과 이재영을 쿨하게 보내버림으로써 '14민경삼 카드는 엘리트다' 라는 드립이 생겨났다.
2015년에는 200억을 준비했다는 언플로 SK 팬들이 FA 6명 전원 잔류의 꿈을 꾸게 하였으나 과도하게 불펜투수 정우람에게만 집중하는 정책으로 박정권과 채병용을 각각 30억, 10.5억으로 협상기간 종료직전에야 잡아냈고 윤길현, 정상호는 각각 롯데에 38억, LG에 34억으로 이적하게 되는 뼈아픈 결과를 만들었다.
정우람 계약 불발 직후에는 '정우람이 미쳤고 민 단장은 최선을 다했다'는 여론이 팬들 사이에서 대세였지만, 윤길현과 정상호가 40억 미만의 금액으로 이적하자 '도대체 어떻게 대우를 했으면 저 금액으로 타팀에 가느냐'는 이유로 여전히 극딜을 먹고있다.
한편 정우람은 졸렬하게 원 소속팀에게 제시액 비공개를 요청했는데, 민경삼 단장은 원 소속팀 협상 마감일 자정에 정우람이 제시액 비공개를 요청했다는 기사를 올렸고, 다음날 아침에 정우람이 88억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밝혀 윤길현, 정상호의 잔류 실패에 화난 SK팬들의 화살을 정우람으로 돌리게 만드는 뛰어난 언플을 선보였다.언플형 단장
그리고 현재, 정우람, 윤길현, 정상호가 모두 사이좋게 망했으요(...) 그의 짠돌이 기질이 승리했다. 게다가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데려온 타자는 초대박을 쳤다. 이쯤되면 제2의 빌리 빈
그리고 전병두에 대해서 보인 태도[5],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6]덕분에 재평가 되고있다.관련 기사들오오 킹갓삼 오오
- ↑ 같이 은퇴식을 치른 김정준은 LG와 SK에서 줄곧 함께 일했지만 17년 후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된다.
- ↑ 감독으로는 염경엽, 조범현, 김경문, 코치로는 김태룡, 장광호, 장재중. 이 외에 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코치인 조충열도 이 엔트리에 포함된다.
- ↑ LG 트윈스의 리즈시절이던 1990년대 단장으로 일하면서 KBO 리그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인물. SK 와이번스 단장으로 선임된 이후에도 좋은 평을 얻었다. SK 단장에서 물러난 이후 대구 FC 사장과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등을 거쳤다.
- ↑ 국내외를 막론하고 A가 경험을 쌓아서 감독을 할때까지 B를 감독으로 쓴다는 식의 구도는 대부분 팀내분을 유발시켜서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구도는 김응용 감독-선동렬 수석코치처럼 상호신뢰가 두터울때만 가능한데, 김성근-이만수는 그런 관계도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 삼성 라이온즈에서 감독과 선수로 함께 했지만, 이때는 김성근도 스스로 실패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던 시기이며 둘 사이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 ↑ 5년간 재활하느라 1군 등판이 없던 선수를 기다려주었다.
- ↑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전병두를 SK에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