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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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주년 Legend All-Star BEST 10
in 2011. KBO-NAVER
장효조
OF / 삼성
이순철
OF / 해태
양준혁
OF / 삼성
김재박
SS / MBC
박정태
2B / 롯데
한대화
3B / 해태
선동열
P / 해태
장종훈
1B / 빙그레
김기태
DH / 쌍방울
이만수
C /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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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현역 시절 나의 완벽한 팔각도를 봐라 뭔가 팔이 길어보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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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앙팡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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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9 멍게 + 참치 = 꼴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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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팔각도 좁혀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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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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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과 함께.
동열이도 있고, 종범이도 있고
근데 내쳤다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김응용
(2001~2004)
선동열
(2005~2010)
류중일
(2011~2016)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
조범현
(2008~2011)
선동열
(2012~2014)
김기태
(2015~)
이름선동열 (宣銅烈 / Sun Dong Yeol)
국적대한민국
생년월일1963년 1월 10일
출신지광주광역시 광산구[2]
학력송정동초-무등중-광주일고-고려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5년 1차지명 3순위
소속팀해태 타이거즈 (1985~1995)
주니치 드래곤즈 (1996~1999)
지도자주니치 드래곤스 코치 (2003)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04)[3]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05~2010)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코치 (2006)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감독 (2007)
KIA 타이거즈 감독 (2012~2014)
WBSC 프리미어 12 투수코치 (2015)
응원가Jimmy Davis & Charles Mitchell - 'You are my sunshine'[4]
종교천주교(세례명 : 타데오)[5]
보유 기록
2005, 2006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역대 수상

1986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3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86년 1989년 1990년 한국프로야구 MVP
1986년 1989년 ~ 1991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1985년 ~ 1991년 1993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1986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1986년 1988년 ~ 1991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1993년 1995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1987년 1989년 ~ 199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KIA 타이거즈 영구결번

지도자 커리어에 LG 트윈스 감독이 들어갈 수 있다.[6]

1 소개

무등산 폭격기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
해태 왕조를 상징하고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슈퍼 에이스

대한민국의 前 투수, 前 삼성 라이온즈KIA 타이거즈의 감독.

현역 시절 별명은 무등산 폭격기, 국보급 투수, 멍게(피부가 안좋아서), 선뚱 등이 있다. 주니치 시절엔 나고야의 태양(성이 'Sun'이라서), 호빵맨(앙팡만)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7]

팀에 선동열 하나 있으면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아니 우승이 당연시 되었다. 주요 개인기록은 통산방어율 1.20으로 0점대 방어율만 3차례 기록하였다. 타이틀로는 리그 MVP 3회, 골든글러브 6회, 트리플크라운 4회, 방어율왕 8회, 다승왕 4회 등의 역대급 기록과 타이틀들을 보유하였고 당연히 모두 역대 최고기록이다. 1980,1990년대 최강의 팀 해태 타이거즈에서 에이스로서 6차례 우승에 기여하였다. 주요 개인기록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지만 선동열만이 갖고있는 자잘한 기록들 역시 무시무시한 수준인데 한 경기 최다탈삼진 (18개), 한 시즌 최다완봉승 (8회), 최다투구이닝 무피홈런 (319이닝), 특정팀 상대 최다연승 (롯데상대 20연승) 등 현역시절 그의 커리어에는 이런 무섭기까지 한 기록들이 잔뜩 쌓여있다. KBO 출신으로는 최초로 해외리그에 진출하였고, 또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선구자이기도 한데 34살의 나이에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다. 첫 해는 고전했지만 이후 세이브 1위(구원 2위)까지 기록하는 등 리그 최고수준 마무리로 활약하다 은퇴했다. 선동열의 성공은 이후 이종범, 이상훈, 구대성, 이승엽 등 국내 탑선수들이 일본에 진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선수시절 그의 기록은 당대 최고이자 역대최고. 간단하게 그야말로 Untouchable. 그러나 감독 시절 성적은 '스타 플레이어는 명 감독이 되기 어렵다' 말의 대표 주자로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2004년 삼성의 수석코치로 취임하며 감독 수업을 받았고, 이듬해 2005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 취임하여 우승 2회[8], 2위 2회, 4위 2회, 5위 1회를 기록했다. 일반적인 팀이라면 나쁜 성적은 아니나 감독으로 부임하는 동안 계속되는 성적하락, 주축 선수들에 대한 혹사 논란, 레전드 홀대[9] 등으로 재임기간 동안 많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선수시절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영입되었으나 5위 1회, 8위 2회를 기록하며 좋지 못한 성적으로 팀을 암흑기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KIA에서도 레전드(이종범) 은퇴종용, 주축선수들에 대한 혹사 논란 등은 다시 반복되었으며 삼성에서 받던 비판이 다시 KIA에서도 이어지며 결국 불명예스럽게 감독직에서 퇴장하였다.

감독시절 기록은 영광스러운 선수 시절과 극명히 대조되며 지금도 당시의 성적과 팀 운영은 많은 논란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2 선수 시절

선동열/선수 경력 문서로.

3 지도자 시절

역대 감독 전적
연도소속팀경기수정규리그한국시리즈
2005삼성 라이온즈126744841위우승
2006126735031위우승
2007126626044위4위
2008126656104위4위[10]
2009133646905위-
2010133795222위준우승
통산77041734013
연도소속팀경기수정규리그한국시리즈
2012KIA 타이거즈133626565위-
2013128517438위-
2014128547408위-
통산3841672139
총계115858455322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은 논란이 많았다면, KIA 타이거즈 시절은 그냥 무능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선동열/지도자 경력 문서로.

4 KIA 타이거즈 감독 사퇴 이후

KIA 타이거즈 감독 사퇴 후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자택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들을 보낸다고 한다. 선동열의 현재 근황

2015년 11월에 개최되는 국제 야구대회인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 사령탑 1순위로 거론됐지만 결국은 김인식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제 1회 WBC에서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를 맡았던 선동열에게 코치로 합류를 상의한다고 해서 국제 대회에서 그의 참여가 다시 있을 지 미지수이다.김인식 감독 "선동열 코치 합류 상의할 것"

2015년 7월 5일에는 2015년 11월에 열리는 국제 대회인 2015 WBSC 프리미어 12 기술위원으로 확정되었다. 프리미어12, 선동열 전 감독 등 기술위원회 확정

2015년 8월 20일 KBO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김시진, 이만수와 함께 KBO 유소년 야구캠프에 참여하여 아이들을 지도해주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팔각도 좀 좁혀야.. "선동열 감독님! 슬라이더 좀 알려주세요"

2015년 9월 3일에는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됐다. 투수코치로서의 평가는 꽤나 호평. 매끄러운 투수교체로 철벽불펜진 구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이 많다.

2015년 10월 2일 엠엘비파크에서 LG 트윈스고려대학교 출신 깜짝 놀랄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할지도 모른다는 썰이 나오자 선동열의 LG 감독 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곧바로 엠엘비파크 한게는 엄청난 글리젠으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곧이어 디시인사이드 LG 트윈스 갤러리 역시 그렇게 되었고 이건 현재 진행형이다. 당연히 LG 트윈스 팬들은 거품물고 반대하는 중이다.

결국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으로 이끈 투수코치가 되었고 이번대회에서 매끄러운 투수교체로 좋은결과가 이어졌다. 이에 네티즌들은 감독이 아닌 투수코치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들이 주를 이뤘다.

현재 김성근 감독의 노장들 기용 때문에 한화 이글스 운용이 망가지자, 선동열 감독을 데려오자는 의견이 대다수.그렇게 한화는 또다시...

2016년 10월 12일 kt 위즈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선언하면서 후임 자리 후보 4인 중 한명으로 거론되었다. (기사에 이니셜 처리를 했지만 대놓고 힌트까지 주면서 선감독임을 야구팬들이 눈치챌 정도)

5 그 외

  • 은퇴 후 수년이 지난 상태이지만, 신체 능력은 여전히 괴물급으로, 차범근과 비슷한 케이스이다. 특히 절정에 이르렀던 1986년의 기록은 인간이 세운 기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
  • 은퇴를 한 상태이나 아직 130km/h대의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 삼성/기아 계투진이 무너지면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선동열이 올라오라고 할 때도 있다. 실제로 은퇴한 후 몇 년이 지나고 감독과 코치들이 특별전을 펼쳤을 때, 선동열이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서 하체는 쓰지않고 상체만 쓰면서도 130km/h대의 직구를 꽂아넣는가 하면 전성기 때와 흡사한 슬라이더를 보여 주며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했다. 뭐 메이저리그의 투수 제이미 모이어같은 경우 선동열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130km/h대 공으로 현역 선발 투수로 커리어를 지속했던걸 보면...
  • 지금이 현역이라면 붙어보고 싶은 타자로 이대호를 꼽았다. 본인은 삼구삼진으로 잡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10대1 인터뷰 선동열 "현역때 공이면 이대호 삼진 잡겠지"]

파일:Attachment/선동열/사본 -11 0019657.jpg

  • 2006년 올스타전 식전행사로 열린 25년 올스타 vs 연예인야구단과의 경기에서 1회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하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던지면서도 130km/h가 넘는 공을 던졌다. 결과는 1이닝동안 이휘재, 윤종신, 허준호를 상대로 각각 삼진, 파울플라이, 삼진을 얻어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최고구속은 134km/h 허준호 삼진잡는 장면. 이 2006년 경기는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던져서 저런 공이 나온 것이다. 몇 주간 준비를 하고 나왔던 2005년 올드스타전에서는 경기 전 구속 측정 이벤트에서 139km/h로 2위를, 경기를 마무리하러 나와서는 무려 140km/h를 던졌는데, 다음날 올스타전 방송인터뷰에서 손민한권오준은 전날 경기를 보고 자신들에게 한숨이 나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이름을 표기할 때 선동렬(宣銅烈)과 선동열 양쪽을 왔다갔다하지만, 한국어 문법상 사람이름에서는 두음법칙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11] 본인의 습관에 따라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문법적 원칙은 선동렬이 맞지만 선동열이라고 해도 문법상 전혀 하자가 없다. 따라서 본인이 어릴 때부터 선동열로 사용해오고 KBO에서도 '선동열'이라는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있으므로 선동열이라고 적어야 될 것이다.
  • 소싯적에 말술을 자랑하는 굉장한 술꾼이었다. 특히 프로에 들어와서는, 예컨대 상대 선발이던 MBC 청룡정삼흠(고대 시절 둘도 없는 절친)을 경기 전날 저녁에 불러내서 다음 날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해놓고, 그 날 저녁 그 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운드에 올라 사이좋게 무실점의 투수전을 이어갔다는 ㅎㄷㄷ한 일화도 있을 정도...선동열도 대단하지만 같이 마신 정삼흠도 대단하긴 마찬가지.
  • 그리고 학창시절 태릉선수촌에서 친분을 쌓은 농구계의 대표 말술 농구선수 허재농구대잔치 일정 차 광주로 내려왔을 때, 경기를 마친 허재를 불러내어 밤새도록 술을 펐다고 한다. 물론 계산은 선동열이 했고... 술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허재도 3차, 4차까지 가는 강행군에 기진맥진 하며 선동열에게 끌려다녀야 했고, 후에 허재는 처음으로 '술 먹다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아득해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차에 야밤이 되어 광주시내에 문을 연 술집이 눈에 띄지않게 되자, 허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선동열이 어떤 주점 앞에서 내려진 셔터를 두들기며 "나 선동열이요. 문좀 열어 주소" 하자, 주인이 셔터를 벌컥 올리고 반색을 하며 선동열과 허재를 안으로 들였다고(...). 결국 견디지 못한 허재는 화장실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바로 숙소로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이렇게 실력과 주량으로 리그를 평정했던 두 종목의 대표가 붙은 전설의 매치업은 선동열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전날 그렇게까지 마신 선동열이 걱정이 되어 신문을 확인해보니 "해태 선동열, 오늘도 완봉승!" 이란 기사가 떡 하고 올라왔다고 한다. 다만 완봉승에 대해선 허재가 무릎팍도사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했다(말이 안되는게, 농구대잔치는 겨울에 하는데 프로야구 시즌과 겹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천하의 주호(酒豪)인 선동열이었지만, 마실 술 다 마시고도 몸 관리만큼은 철저했고 시합에서도 꾸준히 제 실력을 보여주었기에, 철권통치의 아이콘 김응용 감독도 선동열에겐 절대로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김응용은 야구만 잘 한다면 그 선수의 사생활에 관해선 절대로 터치하지 않았다. 반면 실력은 그저 그런 선수가 일탈을 저지르면 말 그대로 헬게이트를 여는 권능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승호[12].[13]
  • 다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 간이 나빠졌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후 그동안 즐겼던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다고 한다. 이후로는 건강에 신경쓰면서 개인운동도 많이 하고 있다고.
  • 몸관리 부분을 추가하자면, 지금은 고인인 아버지 선판규씨[14]가 선동열이 어릴 때 부터 몸에 좋다는 것은 천리 밖에서라도 구해와 먹였다고. 이나 개구리 정도는 양반이었고, 심지어 오소리생피까지 들이킬 정도였다. 잘못 섭취했다간 기생충 크리 그 덕분에 선동열은 누구보다도 강골을 자랑할 수 있었다.
  • 1980년대 전성기 시절 광고를 찍었는데, 선동열은 당시 안국약품[15]이 생산하고 판매한 '투수코친'이라는 약품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선동열이 약품에 효능에 대해서 말하는데, 선동열의 목소리가 아니라[16] 성우 한상덕이 더빙한 목소리다. 이 더빙은 디시인사이드에서 합성으로 가끔 사용되기도 한다.
  • 한국프로야구에서 굵직한 기록과 사건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름이 유명하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성씨( 씨)이기 때문에 선동열과 관련된 기사에서 헤드라인을 뽑을 때 그의 이름 대신 성씨를 영어로 바꾼 'SUN'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 선동열이라는 이름은 대학교에서도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선동열 학점. 선동열 학점이라 함은 바로 선동열의 최전성기 시절의 방어율이 학점으로 나오는 현상이다. 평균적으로 1.3 정도면 선동열 학점 확정. 2015년 현재는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커쇼급 학점이라고 하는듯.
  •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많은 경기에서 오심이 많이나와 선동열의 항의가 빈번했다. 그때 당시엔 비디오판독제도가 활성화 되지 않았고 선동열의 항의부분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카메라로 애매한판정을 확인할때 덕아웃에서 본 선동열의 눈이 경기를 바로 앞에서 판단하는 심판보다 정확한 판단을 했다. 다시 프로야구로 돌아오시면 심판으로 돌아오셔도 괜찮으실꺼 같다능..
아들이 특전사에서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2015년 1월 임관식 때 계급장을 달아주는 장면. 아들아. 계급장 붙이는 각도 좁혀라.

6 각종 기록들

보유 기록
통산 최저 평균자책점1.20
한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0.78
2년 연속 0점대 평균자책점1986~1987
한 경기 최다 탈삼진18개[17]
통산 최저 WHIP0.80
한 시즌 최저 WHIP0.538
한 시즌 최다 완봉승8회(1986년)
통산 최다 완봉승29회
통산 최고 승률0.785
통산 최소 피홈런28개[18]
통산 최저 자책점220점[19]
통산 최소 피볼넷342개[20]
통산 최다 평균자책점왕8회[21][22]
통산 최다 다승왕4회[23]
통산 최다 탈삼진왕5회[24]
최다 이닝 무피홈런319이닝[25]
최다 타석 무피홈런1,186타석[26]
최다 이닝 무실점49⅓이닝[27]
특정팀 상대 최다 연승20연승 롯데 자이언츠[28][29]

파일:/image/382/2012/07/20/47927482.2 1 20120720204306.jpg
2012년 7월 20일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매치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이 때 TV에 소개된 투수 선동열의 통산기록이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었다.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162경기 10승 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
  • 한국프로야구 입상내역
    • 평균자책점 1위 8번 85~91년 7년연속 포함
    • 다승 1위 4번 89~91 3년연속 포함
    • 승률 1위 4번 89~91 3년연속 포함
    • 삼진 1위 5번 88~91 4년연속 포함
    • 구원 1위 2회 (93, 95)
    • 골든 글러브 6회 수상 (86, 88~91, 93 투수부분 최다 수상자)
    • MVP 3회 수상 (86, 89~90)
    • 투수 트리플 크라운 3회 달성(89~91 방어율, 다승, 삼진, 승률 모두 1위, 86년의 경우 다승, 방어율, 삼진은 1위였으나 승률이 2위였고 당시의 트리플 크라운은 삼진이 아닌 승률이 포함된 의미였다. 오늘날의 의미로 보자면 트리플 크라운을 4회 달성하였다. 참고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은 선동열을 제외하면 류현진윤석민단 1회 달성했을 뿐이다.) 승률 2위가 된 이유는 이 시즌 승률 1위는 최일언. 김형석이 최동원을 상대로 마지막 경기에서 3루타를 쳐내며 최일언이 패전을 면했고, 승률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 노히트 노런 1989년 7월 6일 대 삼성전에 달성
    • 2005, 2006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2회 달성.
  • 보유 기록들(역대 10위 내 기록만 기록)
    • 역대 단일 시즌 평균 자책점 1, 2, 3, 5, 6, 7, 9위
    • 역대 단일 시즌 R/9(9이닝당 실점) 1, 2, 4, 5, 6, 7, 8위
    • 역대 단일 시즌 WHIP(이닝당 출루 허용) 1, 3, 4, 5, 6, 7, 8위
    • 역대 단일 시즌 K/9(9이닝당 탈삼진) 2, 3, 4, 9위
    • 역대 단일 시즌 K/BB(볼넷 대 삼진 비율) 1, 2, 5, 6위
    • 역대 단일 시즌 OAVG(피안타율) 1, 2, 5, 6, 9위
    • 역대 단일 시즌 이닝 5위
    • 역대 단일 시즌 탈삼진 5, 6위
    • 역대 단일 시즌 다승 6, 9, 10위

10위권내의 기록이다. 50위 권으로 확대되면 더 많은 선동열의 이름을 볼 수 있다.

7 기록 관련 여담

7.1 선발투수 선동열 논란

선동렬이 선발투수냐? 스윙맨이지!!!

에이스 투수를 선발등판으로 고정시킨다는 현대야구의 상식과는 달리 선동열은 선발보다는 계투 등판이 더 많다. 이를 가지고 계투로 낸 성적이므로 순수 선발스탯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계투가 선발보다 가치가 낮다고 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소화 이닝이 선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동열은 전업마무리로 뛰기 전까지는 대부분 시즌 규정이닝을 채웠으며, 1985년부터 1995년까지 등판 경기수 2위, 이닝 3위로 상위권에 있다. 등판일지를 보면 현대야구 기준으로 보면 오마이숄더!를 외칠만 한 등판기록을 볼 수 있다. 팀내 최고 투수를 마구잡이로 등판시키면 혹사논란이 나오는게 일반적인 상식인데(80년대에는 보편적인 기용법이었지만) 선동열의 경우에는 기록 폄하의 논리로 작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최동원처럼 계륵인 경우는 물론 예외. 애초에 국내에서 선발투수 불펜투수 마무리 투수 세분화한것은 90년대 중반 LG 이광환 감독이 최초이고, 다른 감독들의 반응은 "왜 잘 던지는 투수를 4일씩이나 썩혀??" 였고 1994년 LG가 우승하면서 조금씩 다른팀에도 퍼진것이다.

또한 얼마 안 되는 선발 출장 기록에도 불구하고 한국야구 통산 최다 완봉 기록은 선동열이 제일 많다. 프로 6년차까지인인 1991년까지 선동열은 29번의 완봉승을 기록했고 밑에 있는 공동 2위는 완봉 20개로, 이를 달성한 사람은 100완투를 한 윤학길과 300경기 넘게 선발등판한 정민철이다.

현재의 시각으론 선동열이 선발로 출장한 횟수가 적어 선동열의 전체 커리어상 포지션을 스윙맨이나 구원투수로 볼 수는 있겠지만, 1990년대 마무리 투수는 현재의 1이닝이 마무리가 아니었고 7회 심하면 6회에도 올라와서 경기를 책임지는 중무리였다. 임창용의 경우만 중무리로 알지만 원조는 선동열이었다. 1993년에는 시즌 후반 한경기를 선발로 뛰고 나머지 경기는 모두 불펜으로 나왔는데 정규 이닝을 채울정도 였다. 또한 선발로 등판했을 때는 최고의 선발로 활약했으므로 선동열이 선발로서 부족하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또한 선동열의 커리어 하이인 1986년의 경우에는 선발등판 횟수가 가장 많았던 시즌이라는 점을 생각하도 마구잡이 등판이 오히려 악영향으로 작용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이 부분은 선동열뿐 아닌 1980년대 투수 대부분에게 해당한다.

또한 이닝과 실점을 함께 평가하는 전체평가 스탯이라 할 수있는 WAR스탯에서도 선동열이 통산, 단일시즌 모두 1위이다. 단일시즌 투수로 가장 높게 평가되는 장명부의 1983 시즌보다 1986년의 선동열이 높은 WAR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이미 여러차례 있어왔는데, 사실 한국의 세이버매트릭스 커뮤니티 내에서 이에 대한 논쟁은 이미 지나간 떡밥에 가깝다[30].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장명부의 이닝과 자책점에서 선동열의 이닝과 자책점의 차 만큼의 이닝과 자책점을 기록한 가상의 투수A가 대체 선수 미만의 투수이기 때문. 다시 말해 선동열의 WAR+기여도가 음수인 가상의 투수의 WAR=장명부의 WAR 이다.

7.2 시기 논란

간단하게 말해 선동열이 활약한 시대는 야구 수준이 매우 뒤떨어졌기에 그의 기록에는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그 시절에 태어나 자신의 시대에 전설이 된 선동열의 기록을 이런식으로 평가절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런 좀 억지스런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전형적인 빠가 까를 낳은 케이스이다. 열성적인 팬들이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최동원, 김시진 등과 비교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대 최고 한국 투수로 꼽히는 박찬호와 현재 한국 최고 투수인 LA 다저스에서 활약하는 류현진과 비교하며 그들이 선동열만 못하다는 주장을 해대는 탓에 이런 논쟁이 생겨난 것이다. 류현진은 좀 다른게 국내야구팬들은 기록상으로 비교해도 조정방어율을 감안하면 선의 근소우세, 미국 진출하기전엔 엠팍을 비롯한 야구 커뮤니티에서 선과 류를 비교하면 선의 약간 우세였고 미국진출 후인 현재는 평가가 달라진것... 한국 야구 수준을 높게 보지 않았던 엠엘비 팬들이 류현진 포스팅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트리플A 수준급으로 쳐주는 NPB[31]에서 어느정도 성적을 찍어준 선동열을 좀더 높이 평가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선동열을 높게 쳐주던 논거가 류현진이 상위리그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평가가 완전히 뒤집혔다.

선동열이 KBO 역사에 남을 방어율을 기록했던 시절, 그에 가려 방어율 타이틀을 따지는 못했지만 방어율 순위 수위권을 기록했던 다른 투수들의 성적도 2000년대 중후반의 방어율 1위 투수들보다 훨씬 뛰어났던 점을 생각하면 선동열의 전설적인 0.대 방어율이 조금은 현실감 있어 보이는게 사실이긴 하다. 1986년 방어율 순위는1위 선동열: 0.99 2위 최동원: 1.55 3위 최일언: 1.58 4위 김용수: 1.60 5위 김건우: 1.80 6위 장호연: 1.90 그러나 스탯티즈가 폐쇄되기전 86 선동열 시즌은 83 장명부 99 이승엽 03 심정수를 제치고 역대 WAR 최고 시즌을 찍었기에 압도적이었다는걸 부인하기 어렵다. 108여경기 시즌에서 262이닝 던지고 0.99 찍은것은 역대금 투고타저 시즌이라하더라도 압도적인것은 맞다.조정방어율이 높아도 80년대라 인정 안한다고 하는 개드립이 있는데 조정방어율은 시대를 감안하는 보정으로 그런데 쓰라고 만든 스탯이다. 스탯에 대한 이해 자체가 떨어져서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의 개드립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70년대 투고타저 시절에도 1점대 2점대가 수두룩 했지만 역대급으로 조정해서 현재의 스탯과 비교해 거품낀것이라곤 해도 그 당시 리그 수준이 허접했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선동열이 외국인 타자를 접해보지 않았다고 폄하 받는데 선동열은 국내에서 외국인 타자들을 상대한 적은 없지만 96년에서 99년까지 외국인 영입이 무제한[32]인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그냥 맹목적인 까에 가깝다.. 98년 첫 KBO 외국인 선수가 한국에 왔을때 NPB에서 1996년엔 털렸지만 1997~1999년에는 양호한 활약을 했고 양리그의 용병 수준차이는 말하면 입아픈 정도... 다만 좋은 활약을 한 시즌에도 마이너출신 용병들을 상대로 고생꽤나 했던점을 볼때 일부 과격팬들의 주장인 메이저에서는 통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역사가 유구한 메이저리그에서도 19세기 스핏볼 시절 스탯까지 인정하고 2차대전 이전 투수 월터 존슨을 역대 최고 투수로 뽑는데 그 시절 수준드립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사이 영의 100년 전의 511승도 현대 야구에선 나오기 불가능하지만 기록은 기록으로 존중해 준다. 동시에 월터 존슨과 사이영이 시대를 뛰어넘어 랜디 존슨이나 커쇼보다 기량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선동열의 팬들도 제발 현재 한국야구 에이스들과 선을 비교하는 짓은 하지 말자. 지금 한국프로야구는 일본야구 올스타를 상대로도 해볼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는데 현재 한국야구 에이스들을 선만 못하다고 하는것은 현 한국프로야구를 무시하는 행위다.

8 대중문화

한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알려져서 대중문화의 등장인물로 나오는 일이 좀 있다. 2012년 영화 퍼펙트 게임에는 양동근이 선동열 역을 맡았다. 2005년 영화 스카우트에서는 선동열이 사건의 주된 모티브가 되며, 등장씬은 거의 없다. 거의 유일한 등장신으로는 마지막에 갈비 15인분을 먹는 장면 뿐...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역의 아역배우 출신 이건주가 선동열 역을 맡았다.
  1. 실제로 현역시절 공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던져서 오른쪽 팔이 왼팔보다 몇cm나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각동님뿐만 아니라 공 좀 던졌다는 투수들은 비슷한 장애가 하나씩은 있다. 예를 들자면 바로 아래의 빙동님.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광산구 송정동 출신이다. 출생 당시에는 전라남도 광산군이었다.
  3. 사실 수석코치로 오기 전인 2001~2003 시즌은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스프링캠프에서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4. 세상에... 감독에게도 전용 응원가(?)가 있다! 승장 감독 인터뷰 시에 관중석에서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KIA 한정. 삼성 시절에는 그런 거 없었다. 이 곡은 오정복이 삼성 라이온즈 시절에 잠시 쓴 적이 있었으며,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에서 공격시 응원가로도 쓴다.
  5. 대구 대교구 100주년 기념 성당의 건립에 1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참고로 이 성당은 범어대성당으로 불리며, 대구대교구의 공동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대구에 사는 가톨릭 신자라면, 진심으로 감사할 일.
  6. 2013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LG 선수들로 채워지면서 졸지에 일일 감독을 하게 되었다. G-STAR 참고로 류중일 감독도 전년 올스타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현재윤이 부상을 입어 김태군이 대신 선발되는 바람에 결국 LG 싹쓸이는 실패... 하지만 김태군은 LG 출신이란게 함정(...)
  7. '나고야의 태양'은 국내 언론들이 갖다붙인 국내한정 별명에 가깝고 일본에서의 주 별명은 앙팡만.
  8. 이 때 우승은 삼성이라 가능했다는 말이 있다.
  9. 양준혁 은퇴종용과 이승엽 복귀 거부 등. 이외에도 임창용을 홀대하는 등의 행동을 저질렀다.
  10. 페넌트레이스 3위팀 롯데를 꺾음.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배
  11. 라틴 문자로 표기할 때도 제각각. 이런 거야말로 통일하고
  12. 어느날 양승호가 훈련 시간보다 일찍 야구장에 들어왔는데 그 이유가 낮잠 좀 자려고였다고 한다.(...)
  13. 낮잠을 집에서도 자면 되지, 왜 집에서 안 자고 거기서 자?라고 말할지도 모르나 잘 생각해보자. 야구 시즌은 여름이 주가 된다. 당연히 더운데 무등구장엔 바람이 솔솔 잘 통하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고. 거기가 시원해서 잠이 잘 왔다고 한다.
  14. 宣判奎. 당시에 광주 송정동에서 송정여관과 목욕탕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15. 토비콤을 만드는 그 회사 맞다.
  16. 참고로 인터뷰 등을 보면 실제 선동열의 목소리는 의외로 괜찮은 편이다. 전라도 억양이나 사투리가 있어서 그렇지.
  17. 13이닝 기록으로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은 류현진의 17개이다.
  18. 최다승 5위내 모두 통산 210개이상 허용
  19. 김시진(547점)을 제외한 통산 다승 10위내 모두 600점이상 허용
  20. 통산 다승 5위내 모두 통산 650개이상 허용
  21. 1985~1991, 1993.
  22. 1985~1991년까지 7년 연속 수상.
  23. 1986, 1989~1991.
  24. 1986, 1988~1991.
  25. 1989. 5.9~1990. 9.25
  26. 1989. 5.9~1990. 9.25
  27. 여기서 말하는건 선발+구원이닝이다. 1986년 8월부터 1987년 4월까지. 2위기록도 1995년에 46⅓이닝으로 선동열이 보유. 선발무실점 기록은 2012년 서재응이 깼다.
  28. 1988. 8.11~1995. 9.26
  29. 참고로 이 기록은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고, 거기서 은퇴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즉, 롯데가 선동열에게 패전을 안겨서 깨진 기록이 아니다.
  30. 다만 이를 두고 '내가 보기엔 장명부가 더 뛰어난데 WAR은 과연 엉터리 스탯이구나'(...)라는 주장 덕택에 논쟁이 더 커진 감이 없지 않다.
  31. 선동열이 활약한 90년대 NPB는 메이저 진출이 본격화 되기전 노모 히데오,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 사사키 가즈히로 같은 수퍼스타들이 많았고 MLB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MLB와 수준차이면에서 보면 오히려 현재보다 수준 높다는 평이 있지만 극소수의 정상급 선수들이 MLB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서 나머지 선수들의 실력도 뛰어날것이란 보장은 없다.
  32. 1군 엔트리는 4명 등록에 3명 출전 제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