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래

img_history21_4_8.jpg
삼성 라이온즈 현역 시절.

파일:/image/109/2010/12/02/201012021216771377 1.jpg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이름김성래(金聲來 / Sung-rae Kim)
생년월일1961년 12월 3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북도 의성군[1]
출신학교경북고 - 연세대
포지션1루수, 좌익수, 2루수[2]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84 ~ 1996)
쌍방울 레이더스(1997 ~ 1999)
SK 와이번스(2000)
지도자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2001 ~ 2009)
오릭스 버팔로스 2군 타격코치(2010) (연수)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2011)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타격코치(2012)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2013 ~ 2016)
1993년 한국프로야구 MVP
장종훈(빙그레 이글스)김성래(삼성 라이온즈)이종범(해태 타이거즈)

1986년~1988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정구선(청보 핀토스)김성래(삼성 라이온즈)강기웅(삼성 라이온즈)

1993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장종훈(빙그레 이글스)김성래(삼성 라이온즈)서용빈(LG 트윈스)
1987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김봉연(해태 타이거즈)김성래(삼성 라이온즈)김성한(해태 타이거즈)
1993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장종훈(빙그레 이글스)김성래(삼성 라이온즈)김기태(쌍방울 레이더스)
1993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장종훈(빙그레 이글스)김성래(삼성 라이온즈)양준혁(삼성 라이온즈)
1988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장효조(삼성 라이온즈)김성래(삼성 라이온즈)한대화(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번
김성철(1982)김성래(1984 ~ 1996)김한수(1997 ~ 200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0번
오오시오 신이치(2006 ~ 2009)김성래(2011 ~ 2016)

1 소개

역대 최초 2루수 홈런왕

KBO 리그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 선수이자 전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 주 포지션은 2루수와 1루수. 등번호는 5번(삼성) - 9번(쌍방울, SK) - 79번(SK) - 80번(삼성) 덩크슛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홈런왕 2루수[3]

2 선수 시절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70주년 기념 OB All-Star
in 2016. 동아일보
장효조
OF / 상원고
이정훈
OF / 상원고
박재홍
OF / 광주제일고
류중일
SS / 경북고
김성래
2B / 경북고
김동주
3B / 배명고
남우식경북고
송진우세광고
유지홍
1B / 선린상고
백인천
C / 경동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애초에는 실업 팀인 한일은행에 입단하려고 했었다. 연세대학교 시절에는 유격수를 봤었지만,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유격수는 서정환을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KBO 리그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오대석이었기 때문. 그러나 어머니의 위암 판정을 받자,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수술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1985년 김영덕 감독이 그에게 유격수 대신 2루수 전향을 지시해 2루수로 활동하게 되었다. 1987년 22홈런을 기록하면서 2루수 포지션 최초로 홈런왕을 차지한다.[4] 1988년에는 만담가 김상훈과 타격왕 경쟁을 벌일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으나, 1988년 9월 6일 해태전 때 인간흉기 김성한과의 충돌로 인해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하락세를 걸었다. 게다가 1989년에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평가를 받았던 강기웅이 입단함으로써 그 입지가 더 줄게 되었다.

하지만 무릎 수술을 받고 좌익수로 자리를 옮긴 1992년 0.292의 타율을 기록했고 1루수로 변경한 이듬해인 1993년 타율 0.300, 28홈런, 91타점으로 홈런왕, 타점왕 그리고 최우수 선수 타이틀을 수상하며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28홈런이 이승엽이나 심정수 그리고 우즈에 비하면 하찮아 보일 수도 있으나, 이 해 롯데 자이언츠는 팀 홈런이 29개였다. 즉 이 해 김성래의 홈런 수는 롯데 자이언츠 전체 홈런보다 1개가 적었던 것이다.[5] 이 해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클러치 히터로서의 능력 또한 대단했다.[6]

내야수로서의 수비 능력도 출중한 편이라 당시엔 매우 큰 키였던 185cm의 장신을 이용한 높은 공의 점프 캐치는 물론 낮은 공 처리에도 매우 능숙했다. 그래서 마구마구에서는 레어 87김성래의 잠재력이 무려 1슬롯에 하이점프캐치가 달렸다 당시 1루수에서 다리를 찢는 학다리 수비로 유명했던 OB 베어스신경식 선수와 함께 꺽다리 내야수로 자주 비교되었다.

이후 30대 후반에 접어들자 팀에서는 은퇴와 코치 연수를 권했지만 김성래는 선수로 남길 원해, 1996 시즌 후 코치 연수를 거부하고 삼성에서 방출되어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고, 쌍방울에서는 지명타자, 1루수, 그리고 3루수로도 뛰었고 김광림과 함께 팀의 최고참으로 뛰었다.

1999년 말 쌍방울이 해체되고 쌍방울 선수들을 모아 창단한 신생구단 SK 와이번스 소속이 되며 2000년 리그 최고령 선수로 뛰었지만[7] 해태에서 이호준이 이적해오면서 자리를 완전히 잃었고, 2000년 8월 11일 은퇴를 선언했다. 이 때 SK 와이번스의 첫 은퇴식을 치룬 선수가 바로 이 분이다. 은퇴식은 동년 8월 13일 열렸다.

한편, 1997년 쌍방울로 떠난 그의 등번호 5번의 빈 자리는 3루수 김한수가 말끔히 메워 줬다.[8] 현역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 SK 유니폼을 입고 개인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2.1 평가

선수 시절 홈런왕을 2번이나 했을 정도로 타격지표도 좋았고, 내야 유틸리티로도 쓸 수 있었을 정도로 수비력도 뛰어난 선수였지만 의외로 저평가를 받는다. 2루수로 뛰면서 홈런왕을 했는데[9] 이는 2루수 레전드로 꼽히는 홍현우, 박정태 등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하지만 저평가를 받는 게, 이는 역설적이게도 내야 유틸리티로 활동한 게 컸다. 유격수로 시작해서 주 포지션이었던 2루수를 포함해 내야 전 포지션에서 활동하였고, 외야수로도 뛰었던 시즌이 있었으니 어느 포지션의 레전드로 낙점할지 참 애매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는 2루수-3루수로 활동했던 홍현우가 있다. 그래도 홍현우는 2루수 레전드로 가는 추세이다 이외에도 1988년 한창 때 부상으로 몇 시즌을 날려먹은 것도 타격이 컸다.

게다가 당대 홈런왕 치고는 의외로 인기도 많지 않았다. 이만수가 독식해서?

3 은퇴 후

2001년부터 2009년까지 SK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10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11 시즌부터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있었으나 오보로 밝혀졌다. 타네다 히토시가 2010 시즌 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옮기자 삼성 라이온즈에서 그를 타격코치로 영입하였다. 관련기사 무려 15년 만에 친정 팀으로 가게 된 것. 일부 마구마구 삼올유저들은 '김상수 하점 달아주세요'라고 징징대고있다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수비코치가 아니라 타격코치인데 그리고 2011 시즌 전에는 류중일이 불러들여 김용국이 돌아왔고, 2011 시즌 중에는 강기웅도 2군 타격코치로 합류하여 레전드들이 코치진에 모두 모였다!!! 야 신난다.

2011 시즌 초반만 해도 코치로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해 팬들의 의구심을 샀지만, 사실 그동안 경산에서 선수들과 같이 합숙하며 선수들의 타격 훈련을 도왔다.# 그리고 6월 들어 김상수, 이영욱, 최형우의 타격감이 잇따라 폭발하며 1위까지 탈환. 오오 성래매직 오오

2012 시즌 부로 수석코치로 승격되었으나, 김한수 타격코치가 코치로서 경력이 짧아 타격코치를 겸임했다.

2015년 9월 16일 나바로가 에릭 테임즈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내렸다.

2016년 삼성 라이온즈가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떨어지고 그에 따른 대체 선수가 나오지 않는 등 그동안 왕조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며 육성면에서 그동안 뭐했냐고 류중일 감독, 장태수 2군 감독, 양일환 2군 투수코치와 함께 철밥통이라고 팬들에게 까이는 빈도가 늘어났다.

결국 2016 시즌 후 강성우, 김용국과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4 기타

  • 1993년 시절의 그 분과 2008 시즌의 모 투수와 닮았다.(사실 전준호도 모 탤런트와 닮았다고)
  •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부상 때문에 한 포지션에서 오래도록 활약하지 못해 역대 포지션 레전드를 뽑으면 이래저래 밀린다. 2루수로서는 롯데의 박정태한테 밀리고, 1루수에는 아직 현역이지만 전설의 레전드급 타자가 있다. 게다가 삼성만으로 한정해도 다르지 않은 것이, 1루수는 이승엽이 독보적이고 2루수 쪽은 김성래보다 강기웅의 인기가 더 높기 때문. 특히나 류중일-김성래의 키스톤보다 류중일-강기웅키스톤이 더 유명한 탓도 있다.[10] 서건창-강정호 : ???
  • 야구계의 소문난 주당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마리텔에서 허구연이 밝히기를, "술을 정말 좋아한다. 술만 줄였어도 성적이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
  • 어울리진 않지만 옛 별명은 꺼벙이로 故 길창덕 화백의 만화의 꺼벙이에서 따왔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4삼성 라이온즈3959.186112013609.271.294
1985103300.28385160135140554.467.393
1986102344.2889922
(3위)
184847341.427.362
198799344.332
(4위)
11111122
(1위)
70
(3위)
59
(2위)
248.569
(2위)
.413
(3위)
198896314.350
(2위)
110182105454765.516
(5위)
.459
(1위)
19893977.2471930213708.364.314
199054141.199283062020021.348.302
19913051.157810357014.353.328
199286226.29266130115031137.496.392
1993124436.300
(5위)
131
(3위)
18228
(1위)
91
(1위)
64
(4위)
274.544
(2위)
.395
(3위)
1994105276.24668101144339370.442.395
199544124.258324031713017.363.345
19962237.16262013505.297.262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7쌍방울 레이더스99266.2566814094527042.410.348
199893238.2315514352621030.378.314
1999113346.2729419094843151.405.363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0SK 와이번스2964.2661700287011.359.373
통산12773633.27710081701014759549024597.451.376
  1. 고향은 의성군이고, 학창 시절은 대구에서 보냈다.
  2. 쌍방울 시절에는 3루수를 본 적도 있다.
  3. 마구마구에서 87김성래 레어버전은 1슬롯에 하이점프캐치 잠재력이 달려있다.
  4. 2루수 홈런왕은 장종훈의 유격수 홈런왕 기록과 함께 엄청난 기록이라 볼 수 있다. 2루수/유격수 홈런왕은 2016년 현재까지도 김성래와 장종훈이 유일하다.
  5.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홈런왕의 홈런 개수와 팀홈런 꼴지의 개수차이가 1자리 수인 경우가 딱 두 번 있었는데 두번 다 홈런왕은 김성래였다.##
  6. 1993년 7월 30일에 1-0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에서 터진 정영규와의 back-to-back homerun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7. 물론 진짜 최고령 선수는 삼성 외야수(?)였던 훌리오 프랑코였지만, 이 사람은 KBO 등록상 1961년생이었다. 실제로는 1956년생이라는 말도 있고 호적상으로는 1958년생이다.
  8. 심지어 응원가마저 김성래의 것을 물려받았다.
  9. 2루수 역시 유격수처럼 수비부담이 큰 편이라 거포가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10. 개개의 성적이 아닌 두 선수를 하나의 콤비으로 봤을 때는 KBO 리그 전체로 따져도 류중일-강기웅을 능가하는 키스톤 콤비가 없다. 이것은 타 팀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 그나마 박진만-박종호 키스톤이 이 콤비에 맞설 만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역시 강기웅-류중일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건 인정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