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富平 / Bupyeong




1 전통적 지명

지금의 인천광역시 서구[1], 부평구[2], 계양구경기도 부천시[3]서울특별시 구로구 서부[4], 강서구 오곡동, 오쇠동 일대를 일컫던 지명.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에 속했으며, 23부, 13도 시절에는 부평군(郡)이었다. 인천(원인천)이 미추홀(매소홀)로 불린 삼국시대에, 부평은 주부토로 불렸다. '주부토(主夫吐)'는 고대어 '줄보뚝'의 한자 음차로, 긴 둑을 뜻한다. 이에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고유어 지명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장제(長堤)'로 개칭되었다. '주부토', '장제'는 현재 계양구, 부평구 일대의 도로명 등에 남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부평구/역사, 1914년에서 1940년 사이는 부천시/역사 문서 참조.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내지는 부평역 인근을 가리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아주 드물게나마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이기도 한다. 둘 다 부평시장이 있다...


1.1 역사

부평 지역 행정구역 변천사
주부토군 (主夫土郡)
장제군 (長堤郡, 757)
수주 (樹州, 940)
안남도호부 (安南都護府, 1150)
계양도호부 (桂陽都護府, 1215)
길주목 (吉州牧, 1308)
부평부 (富平府, 1310)
부평도호부 (1413)[5]
인천부 부평군 (1895)
부평군 (1896)
부천군 (1914)
부천군 서곶면 (1914)부천군 부내면 (1914)부천군 계양면(1914)부천군 오정면 (1914)부천군 계남면 (1914)
1940 ↓1931 ↓
인천부 (1940)부천군 계양면부천군 오정면부천군 소사면 (1931)
1949 ↓1941 ↓
인천시 부평출장소 (1949)부천군 계양면부천군 오정면부천군 소사읍 (1941)
1968 ↓1963 ↓
인천시 북구 (1968)부천군 계양면부천군 오정면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편입 (1963)부천군 소사읍
인천시 북구김포군 계양면 (1973)김포군 오정면 (1973)서울특별시 영등포구부천시 (1973)
인천시 북구김포군 계양면부천시 편입 (1975)서울특별시 영등포구부천시 (소사구, 원미구)
1981 ↓1980 ↓1977 ↓
인천직할시 북구 (1981)김포군 계양면부천시서울특별시 구로구 분리 (1980)서울특별시 강서구 분리 (1977)
1988 ↓1989 ↓
인천직할시 서구 (1988)인천직할시 북구부천시서울특별시 구로구서울특별시 강서구
인천광역시 서구 (1995)인천광역시 부평구 (1995)인천광역시 계양구 (1995)부천시 (오정구)서울특별시 구로구서울특별시 강서구


2 인천광역시의 자치구 부평구

2.1 부평동(인천)

3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부평역

해당 항목 참조.


4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행정동이며 이곳에 부평깡통시장, 부평골목야시장 등 중구의 나름 번화가 지역이다. 여담으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과 한자까지 완전히 똑같다.

면적 0.21㎢, 인구 5270명(2008)이다. 용두산(49m) 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광복동, 남쪽은 남포동, 북쪽은 보수동, 서쪽은 서구와 접해 있다.

부평동은 부민동(富民洞)과 같은 어원에서 동명이 유래한다. 보수천 하구 일대는 갈대밭과 풀밭으로 되어 있어서 옛부터 새뛰 또는 샛띠라고 하였다. 새뛰는 초량(草梁)이라는 뜻인데, 해정리(海汀里;현재의 동구 초량동)까지를 새뛰라고 불렀다. 현재의 부평동, 부민동에서 초량동까지를 모두 초량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부평동의 '부'는 부산의 옛지명인 부산(富山)의 '부'자와 같은 의미이며, '평'은 '터'라는 뜻으로 새뛰의 '뛰'에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동래군 사하면(沙下面) 부평리(富平里)였으며, 1896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부평정(富平町)이라고 하였고, 1947년에 부평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부평동은 법정동인 부평동1~4가로 이루어져 있다.

  1. 검단 지역 제외.
  2. 십정동 제외.
  3. 계수동, 옥길동 제외.
  4. 안양천 이서 지역.
  5. 1438 ~ 1446년, 1505 ~ 1506년 1698 ~ 1708년, 3차례 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다.